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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년의 시선⓵] 청년의 눈에 비친 한국, 기회의 나라인가 구조의 벽인가
    오늘부터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발행인은 총접속자 100만 돌파를 기념해 ‘청년의 시선’ 칼럼을 5회 연재한다. 이 기획은 20~30세대가 체감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감성과 논리로 풀어내며, 기회·공정·주거·가치의 변화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청년의 목소리로 대한민국의 현재를 진단하고, 나아갈 방향에 대한 성찰을 제시한다.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발행인의 칼럼] 오늘의 20~30세대가 바라보는 한국은 더 이상 단순한 성장의 서사가 아니다. 그들에게 한국은 기회와 한계가 동시에 공존하는, 복합적인 현실의 공간이다. 과거 세대가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산업화를 이끌었다면, 오늘의 청년은 ‘해도 안 될 수 있다’는 냉정한 인식 속에서 삶을 설계한다. 청년들이 가장 크게 체감하는 변화는 ‘기회의 축소’다. 교육 수준은 높아졌고 정보 접근성은 확대됐지만, 정작 사회로 진입하는 문은 더 좁아졌다. 노력과 성취가 비례하던 시대는 지나갔고, 이제는 출발선 자체가 결과를 좌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공정에 대한 요구가 커진 것도 이 때문이다. 청년들이 말하는 공정은 규칙의 형평성이 아니라,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의 보장이다. 삶의 방식 또한 달라졌다. 안정된 직장을 목표로 삼던 시대에서 벗어나, 오늘의 청년은 불확실성을 전제로 한 생존 전략을 택한다. 여러 개의 직업을 병행하거나, 조직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선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도전이라기보다 현실에 대한 적응이다. 그러나 사회는 여전히 전통적 성공 기준을 고수하고 있고, 이 간극은 청년들에게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한다. 부동산 문제는 이들의 인식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내 집 마련’은 더 이상 계획 가능한 목표가 아니라, 계층을 가르는 상징이 되었다. 자산의 유무가 곧 기회의 유무로 이어지는 현실 속에서, 청년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넘어 구조적 한계를 체감한다.이는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신뢰를 흔드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가치의 중심도 이동하고 있다. 국가나 조직보다 개인의 삶을 우선시하는 경향은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이는 공동체 의식의 약화라기보다, 개인이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시대적 조건의 반영이다. 헌신을 요구받기에는 보상이 불확실하고, 미래에 대한 예측은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이 한국을 완전히 떠나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 사회가 여전히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빠른 적응력과 역동성, 그리고 문제를 직시하는 세대의 등장 자체가 희망의 근거다. 비판은 냉소가 아니라 기대의 다른 표현이다. 청년의 시선은 불편하지만, 그 안에는 방향이 있다. 한국 사회가 이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는다면, 기회의 나라는 다시 설계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낙관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다. ▲ 글/사진: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겸 국제다자외교평의회 대표(의장), 한중기자연맹 회장, 중국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 위해직업대학 객좌교수, 허베이미술대학 명예/종신교수, Marquis Who’s Who 등재 저자, 《우리가 아는 중국 우리가 모르는 중국》 저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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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2026-04-13
  • 대한기자신문, 창간 후 총 접속자 수 100만 명 돌파… ‘정론직필’의 힘
    [대한기자신문 김채원 기자] 독자 중심의 뉴스 가치를 지향하는 대한기자신문이 공식 홈페이지 누적 접속자 수 100만 명을 2026.04.12.오후 3시에 돌파하며 신뢰받는 언론 매체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굳혔다. 이번 100만 명 돌파는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도 자극적인 보도보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독자들이 필요로 하는 심층적인 정보를 꾸준히 제공해 온 결과로 풀이된다. 대한기자신문(발행인 李昌虎)은 그동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균형 잡힌 시각을 견지하며 독자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매진해 왔다. 특히,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 사회적 이슈의 본질을 꿰뚫는 분석 기사와 시민 기지들의 활발한 참여를 통한 현장 중심의 보도가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또한, 모바일 최적화와 사용자 중심의 인터페이스 개선을 통해 독자들이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 뉴스를 접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인 점도 이번 성과에 기여했다. 대한기자신문 고위 관계자는 “총 접속자 100만 명 돌파는 독자들이 보내준 신뢰와 격려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앞으로도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정론직필(正論直筆)의 자세로 사회의 어두운 곳을 밝히고, 독자와 함께 호흡하는 진정한 언론의 사명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대한기자신문은 이번 100만 명 돌파를 기점으로 디지털 콘텐츠 역량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영상 뉴스 강화, 데이터 시각화 뉴스 도입 등 미디어 트렌드에 발맞춘 다양한 시도를 통해 독자들에게 더욱 풍성하고 가치 있는 정보를 전달할 예정이다. 대한기자신문은 앞으로도 ‘독자가 주인인 신문’이라는 초심을 잃지 않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신뢰의 아이콘으로 성장해 나갈 것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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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2026-04-12
  • [토요칼럼] 결핍의 심연에 침잠하는 인간, 그 고통의 무게를 견디는 법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칼럼니스트] "인생은 결핍(缺失)의 기록이다."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인간의 생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채워지지 않는 구멍을 메우려는 처절한 몸부림의 연속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를 짓누르는 공기는 사뭇 무겁다. 물질적 풍요가 정점에 달했다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역설적이게도 현대인들은 그 어느 시대보다 깊은 '결핍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결핍이 크면 클수록 삶이 어렵고 힘들다는 이 자명한 명제는, 이제 개인의 심리적 고통을 넘어 공동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번지고 있다. ● 결핍, 생존을 위협하는 근원적 공포 결핍은 단순히 '부족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부재할 때 발생하는 심리적 공동(空洞)이다. 경제적 빈곤, 정서적 고갈, 관계의 단절 등 결핍의 양상은 다양하지만, 그 뿌리는 하나로 통한다. 바로 '안전망의 부재'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타인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지거나, 내일의 생계를 기약할 수 없는 경제적 궁핍에 몰릴 때 인간의 뇌는 이를 물리적 통증과 동일한 층위의 비상사태로 인식한다. 결핍이 커질수록 인간의 시야는 좁아진다. 당장의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 장기적인 미래를 설계할 여력을 잃게 되는 '터널 시야(Tunnel Vision)' 현상이 발생한다. 오늘을 버티는 것이 전쟁인 이들에게 '내일'이나 '성장' 같은 단어는 사치에 불과하다. 결국 결핍은 인간을 현재라는 감옥에 가두고,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훼손한다. ● 비교의 덫, 가공된 결핍이 주는 고통 주목해야 할 점은 현대의 결핍이 과거의 '절대적 빈곤'과는 궤를 달리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생산되는 '상대적 결핍'이다. SNS의 화려한 이미지 속에서 자신의 일상을 투영하며 느끼는 박탈감은 실재하는 굶주림만큼이나 고통스럽다. "남들은 모두 가진 것 같은데 나만 없다"는 인식은 인간의 자존감을 바닥으로 끌어내린다. 이러한 가공된 결핍은 인간을 끝없는 경쟁으로 내몬다. 남보다 더 많이 가져야만 안심할 수 있는 '불안의 질주'는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결핍의 크기는 곧 욕망의 크기와 비례하며, 그 간극이 벌어질수록 삶의 무게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워진다. 현대인이 느끼는 피로감의 정체는 육체적 노동이 아니라, 채워지지 않는 결핍을 메우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심리적 소진이다. ● 결핍의 역설... 고통인가, 동력인가 물론 인류 역사는 결핍을 극복하려는 의지 속에서 진보해 왔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집을 짓고, 배고픔을 잊기 위해 농경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결핍이 '관리 가능한 수준'일 때의 이야기다.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거대한 결핍은 인간의 영혼을 파괴한다. 삶이 힘들고 어렵다는 아우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개인에게 지워진 결핍의 짐을 덜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립된 개인이 스스로의 결핍을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구조 속에서, 삶은 축복이 아닌 형벌이 된다. 결핍의 무게가 임계점을 넘어서면 인간은 냉소(Cynicism)에 빠지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우울증의 확산과 저출산이라는 거대한 사회적 결과물이다. ● 삶의 무게를 줄이는 지혜, '자족'과 '연대' 결핍이 주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두 가지 길을 고민해야 한다. 첫째는 내면의 단단함을 회복하는 것이다. 외부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삶의 가치를 정립하는 '자족(自足)'의 미학이 절실하다. 내가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을 냉철하게 구분하고, 결핍 자체를 삶의 일부로 수용할 때 비로소 고통의 무게는 가벼워진다. 둘째는 사회적 연대의 강화다.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거대한 결핍, 특히 주거나 교육, 의료와 같은 생존권적 결핍은 공동체가 나누어 짊어져야 한다. '나 혼자 잘 사는 삶'이 아니라 '함께 버티는 삶'이 가능할 때, 개인의 결핍은 더 이상 절망의 낭떠러지가 되지 않는다. 인간의 삶에서 결핍을 완전히 소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결핍이 삶을 파괴할 정도로 거대해지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결핍의 크기가 삶의 고통을 결정한다면, 우리는 그 크기를 줄이기 위한 개인적 성찰과 사회적 합의를 서둘러야 한다. 고통의 심연 속에서도 인간의 품격을 잃지 않는 법, 그것은 결국 내 안의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에서 시작될 것이다. ▲ 글/사진: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겸 국제다자외교평의회 대표(의장), 한중기자연맹 회장, 중국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 위해직업대학 객좌교수, 허베이미술대학 명예/종신교수, Marquis Who’s Who 등재 저자, 《우리가 아는 중국 우리가 모르는 중국》 저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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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2026-04-11
  • [이창호칼럼] 초연결 사회의 고독... 우리는 왜 더 외로워졌는가
    [대한기자신문] 스마트폰 하나로 세계와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시대다. 메시지는 즉각 도착하고, 영상은 끊김 없이 흐르며,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타인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기술은 분명 인간의 소통을 획기적으로 확장시켰다.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초연결의 시대에 우리는 더 깊은 고독을 호소하고 있다. 연결의 양은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관계의 질은 오히려 희미해졌다. 수백 명과 소통하면서도 정작 마음을 털어놓을 단 한 사람을 찾기 어려운 현실은 낯설지 않다. 소셜미디어 속 ‘좋아요’와 짧은 댓글은 관계의 흔적일 뿐, 관계 그 자체가 아니다. 인간은 본래 타인의 온기와 표정, 침묵 속의 공감으로 관계를 형성하는 존재다. 그러나 디지털 공간은 이러한 미묘한 결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 더 큰 문제는 비교의 일상화다. 타인의 ‘편집된 삶’이 끊임없이 노출되면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상대적 박탈감에 빠져든다. 타인의 성공과 행복은 확대 재생산되고, 자신의 일상은 축소된다. 이는 자연스럽게 자존감의 균열로 이어진다. 연결은 늘었지만, 마음의 거리는 오히려 멀어지는 이유다. 현대 사회는 또한 속도를 강요한다. 빠르게 반응하고, 즉각적으로 답변하며, 끊임없이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관계’보다 ‘노출’에 익숙해진다. 깊이 있는 대화는 사라지고, 단편적인 소통이 자리를 대신한다. 관계는 소비되고, 감정은 피상적으로 흐른다. 결국 남는 것은 피로와 공허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연결을 줄이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모든 관계를 유지하려는 강박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의미 있는 관계에 집중해야 한다. 단 몇 사람과의 깊은 대화, 눈을 마주하며 나누는 진심 어린 공감이야말로 인간을 고독에서 구해낸다. 기술은 인간을 대신할 수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도구일 뿐이다. 관계의 본질은 여전히 인간에게 있다. 초연결 사회 속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얼마나 많이 연결되어 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고독은 연결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관계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이제 우리는 다시 묻고 답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누구와 진짜로 연결되어 있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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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2026-04-06
  • [대한기자신문] 中 하북미술대학, 권대근 박사 객좌교수 임용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기자] 대한민국 수필가 권대근 박사가 중국 하북미술대학 객좌교수로 임용 지난달 25일 됐다. 임기는 2026년 3월부터 2029년 3월까지 3년이다. 이번 임용은 양국 간 문예 교류 확대를 위한 학문적 협력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이창호 하북미술대학 영예·종신교수는 “엄정한 심사 과정을 거쳐 문학 교류에 기여할 인사를 객좌교수로 초빙했다”고 전했다. 임용장 전수식은 지난 4월 2일 서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날은 중국 하북미술대학 견충의 총장을 대신해 이창호 종신교수가 임용장을 전수했다. 권 박사는 향후 하북미술대학에서 특강과 학술 심포지엄 등을 통해 한국 문학을 소개하고, 양국 간 학문적 교류를 이어갈 예정이다. 그는 동아대학교 대학원 국문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88년 등단 이후 『본격수필의 이론과 실제』 등 28권의 저서를 펴냈다. 또 대신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와 한국문학세계화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해외 대학 강의와 번역 활동을 통해 한국문학의 외연 확장에 힘써왔다. 대통령 포장을 비롯해 교육부장관 표창 등 국내외에서 다수의 상을 받았다. 한편 권 교수는 “대학 발전과 더불어 한중 문예 교류 증진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계간 ‘에세이문예’를 발행하며 비평과 번역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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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2026-04-02
  • [대한기자신문] 나눔은 동행이다… 신현옥 목사의 울림, 소년소녀가장에 희망을 밝히다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기자] 지난 25일 서울 벤처대학원대학교에서 열린 ‘전국소년소녀가장돕기 시민연합 중앙회 2026년 1/4분기 임원회의 및 장학금 수여식’은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웃을 향한 따뜻한 연대와 책임을 다시금 일깨운 자리였다. 특히 이날 행사에서 축사를 맡은 시온세계선교교회 당회장 신현옥 목사는 담담하면서도 깊이 있는 메시지로 참석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신 목사는 “진정한 나눔은 일회성 도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지속적인 동행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소년소녀가장들에게 필요한 것은 물질적 지원을 넘어, 사회 전체가 함께 짊어지는 책임과 관심”이라며 공동체 정신의 회복을 호소했다. 그의 발언은 단순한 축사를 넘어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21명 학생이 선정돼 장학금이 전달됐으며, 후원 단체와 관계자들이 함께 자리해 나눔의 의미를 더했다. 각계각층의 참여 속에서 이어진 지원과 격려는 형식적인 절차를 넘어, 실질적인 희망을 전하는 자리로 평가됐다. 무엇보다 신 목사의 메시지는 각박해진 시대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본질적 가치를 다시 환기시켰다. 조용하지만 단단한 울림으로 전해진 그의 말은 단순한 행사장을 넘어, 우리 사회 전반에 깊은 성찰과 책임의식을 던지는 메시지로 남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 헤드라인뉴스
    • 경제
    202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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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년의 시선 ⓷] ‘안정’의 신화 무너진 자리, 청년들은 ‘각자도생’의 사선(死線)에 섰다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발행인은 총접속자 100만 돌파를 기념해 ‘청년의 시선’ 칼럼을 5회 연재한다. 이 기획은 20~30세대가 체감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감성과 논리로 풀어내며, 기회·공정·주거·가치의 변화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청년의 목소리로 대한민국의 현재를 진단하고, 나아갈 방향에 대한 성찰을 제시한다.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발행인의 칼럼] 과거 한국 사회에서 ‘성공’의 등식은 명료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번듯한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입성해 은퇴 시점까지 조직의 보호막 아래 머무는 것, 즉 ‘안정’이 생애 설계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부모 세대에게 직장은 삶의 터전이자 자아의 투영이었으며, 국가는 고도성장의 과실을 ‘평생직장’이라는 이름으로 분배했다. 그러나 오늘날 이 견고했던 성공의 방정식은 처참히 붕괴했다. 이제 청년들에게 안정이란 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아이며, 그들이 마주한 서늘한 진실은 오직 ‘생존’뿐이다. ◆ 안정이 사라진 시대, ‘생존’이 된 일상 오늘의 청년들이 N잡러가 되고, 불안정한 프리랜서의 길을 걷고, 이른 나이에 창업 전선에 뛰어드는 것은 기성세대가 칭송하는 ‘불타는 도전 정신’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거대한 절벽 앞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는 처절한 ‘적응’이자 본능적인 몸부림이다. 대기업과 공기업의 문턱은 갈수록 높아져 철옹성이 되었고, 그 좁은 문을 통과하더라도 평생의 안위를 보장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본능적으로 체감하고 있다. 과거의 청년이 '어느 조직에 속할 것인가'를 고민했다면, 지금의 청년은 '조직이 사라진 뒤에도 살아남을 기술이 있는가'를 자문한다. 불확실성을 상수가 아닌 변수로 취급했던 기성세대와 달리, 지금의 세대에게 불확실성은 호흡하는 공기와도 같다. 안정을 전제로 설계된 인생의 궤적은 이미 끊겼으며, 그들은 파편화된 일거리 속에서 스스로의 생존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가혹한 시험대에 올라 있다. ◆ 지체된 사회적 기준과 청년 현실의 괴리 비극은 청년들의 삶은 이미 변했는데, 우리 사회의 평가 잣대는 여전히 30년 전 ‘산업화 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이라는 이분법적 틀로 성공과 실패를 규정한다. 부모 세대는 자녀가 이름 모를 스타트업에서 밤을 지새우거나 유튜브 크리에이터로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며 ‘언제쯤 제대로 된 직장을 잡느냐’고 묻는다. 사회적 시스템 역시 정규직 중심의 복지와 대출 제도에 고착되어 있어,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청년들을 ‘부적응자’ 혹은 ‘불안정층’으로 소외시킨다. 청년들은 이미 다른 길 위에 서 있다. 그들에게는 조직의 명패보다 당장 내일의 수익 모델이 중요하며, 수직적 위계보다 수평적 네트워크가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안다. 사회가 제시하는 ‘표준 경로’를 이탈한 것이 아니라, 그 경로 자체가 수명을 다해 스스로 새로운 지도를 그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성 질서가 요구하는 ‘안정된 삶’의 기준은 청년들에게 도달 불가능한 박탈감만을 안겨줄 뿐이다. ◆ ‘생존’을 ‘성장’으로 전환하기 위한 성찰 이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청년들에게 왜 안주하지 않느냐고 물을 것이 아니라, 왜 우리 사회는 이토록 청년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청년들의 N잡과 창업 열풍을 단순히 ‘유행’이나 ‘자유로운 영혼’의 발현으로 치부하는 것은 비겁한 외면이다. 그것은 사회가 보듬지 못한 안전망의 빈자리를 청년들이 스스로의 노동력을 쪼개어 메꾸고 있는 비정상적인 풍경이다. 정부와 기성세대는 더 이상 ‘과거의 영광’을 기준으로 청년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 노동 시장의 유연화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면, 그 유연함 속에서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적 계약이 필요하다. 조직에 소속되지 않아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당당히 기능할 수 있도록 금융, 복지, 세제 전반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청년들의 삶이 바뀌었다는 것은 한국 사회의 근간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그들이 외치는 ‘생존’의 비명이 ‘창의’와 ‘성취’의 언어로 바뀔 수 있도록, 이제는 사회의 기준이 청년의 속도를 따라잡아야 할 때다.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낡은 잣대로 청년의 미래를 가두는 과오를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 된다. 안정이 사라진 시대, 청년들이 걷는 그 위태로운 길이 곧 대한민국의 새로운 경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 글/사진: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겸 국제다자외교평의회 대표(의장), 한중기자연맹 회장, 중국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 위해직업대학 객좌교수, 허베이미술대학 명예/종신교수, Marquis Who’s Who 등재 저자, 《우리가 아는 중국 우리가 모르는 중국》 저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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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15
  • [청년의 시선 ⓶] 포기하지 않는 세대, 한국 청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발행인은 총접속자 100만 돌파를 기념해 ‘청년의 시선’ 칼럼을 5회 연재한다. 이 기획은 20~30세대가 체감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감성과 논리로 풀어내며, 기회·공정·주거·가치의 변화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청년의 목소리로 대한민국의 현재를 진단하고, 나아갈 방향에 대한 성찰을 제시한다.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발행인의 칼럼] 오늘의 한국 청년을 두고 흔히 ‘포기의 세대’라 부른다. 취업, 결혼, 출산을 내려놓았다는 이른바 ‘N포 세대’라는 표현은 어느덧 익숙한 사회적 용어가 되었다. 그러나 이 단어가 청년의 본질을 온전히 설명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겉으로는 체념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오히려 더 치열한 생존과 도전이 존재한다. 한국 청년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단지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서울의 한 청년 창업가는 대기업 입사를 준비하다가 방향을 틀었다. 수차례 탈락의 고배를 마신 뒤, 그는 자신이 가진 작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온라인 플랫폼 사업에 뛰어들었다. 초기에는 자금도, 인맥도 부족했지만 SNS와 콘텐츠를 활용해 판로를 개척했고, 지금은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갖춘 1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는 말한다. “기회가 없다고 느낄 때,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걸 배웠다”라고 한다. 또 다른 사례는 지방의 한 청년 공무원 준비생이다. 그는 5년간 시험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주변에서는 현실을 받아들이라는 조언이 이어졌지만, 그는 방향을 바꾸었다. 단순 암기 위주의 공부에서 벗어나, 자신의 약점을 분석하고 학습 방법을 전면 수정했다.결국 여섯 번째 도전 끝에 합격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방법을 바꿨을 뿐”이라고 말했다. 해외로 눈을 돌린 청년도 있다. 수도권 대학을 졸업한 한 청년은 국내 취업의 벽을 넘지 못하고 동남아 시장으로 진출했다. 현지 스타트업에 합류해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하나씩 넘으며 경력을 쌓았고, 지금은 현지 법인의 핵심 인력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한국을 떠난 것이 아니라, 더 큰 기회를 찾기 위해 확장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실패를 겪었지만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다만 이전 세대처럼 정해진 길을 고집하지 않았을 뿐이다. 안정된 직장 하나를 목표로 삼던 시대에서 벗어나, 오늘의 청년은 여러 갈래의 길을 동시에 모색한다. 이는 포기가 아니라 전략적 선택이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청년에게 ‘정답’을 요구한다. 그러나 정작 청년들은 이미 정답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 간극 속에서 청년들은 스스로 답을 만들어가고 있다. 때로는 돌아가고, 때로는 멈추는 듯 보이지만, 그 모든 과정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축적의 시간이다. 청년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져야 한다. 그들을 ‘포기한 세대’로 규정하는 순간, 우리는 그들이 쌓아가는 수많은 가능성을 놓치게 된다. 오히려 지금의 청년은 어느 때보다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세대다. 한국 청년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다만, 남이 만들어 놓은 길을 포기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어쩌면 더 큰 도전의 시작일지 모른다. ▲ 글/사진: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겸 국제다자외교평의회 대표(의장), 한중기자연맹 회장, 중국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 위해직업대학 객좌교수, 허베이미술대학 명예/종신교수, Marquis Who’s Who 등재 저자, 《우리가 아는 중국 우리가 모르는 중국》 저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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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2026-04-14
  • [대한기자신문] 국립중앙박물관 나들이
    [대한기자신문 송면규 논설위원(박사)] 서울은 늘 바쁘다. 아침이면 사람들은 서둘러 지하철을 타고, 도로 위의 자동차들은 끊임없이 도시의 시간을 밀어 올린다. 신호등이 바뀌면 사람들은 빠르게 횡단보도를 건너고, 휴대전화 속 일정과 약속들은 하루의 흐름을 쉼 없이 재촉한다. 이렇게 분주한 도시의 중심에서 우리는 종종 시간에 쫓기듯 살아간다. 하지만 이 분주한 서울 한복판에도, 마치 다른 시간의 흐름을 품고 있는 듯한 공간이 있다.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이다. 용산의 넓은 부지 위에 자리 잡은 이 박물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멀리서 바라보면 유리와 돌로 단단히 빚어진 현대적인 건물이지만, 그 안에는 수천 년에 걸친 역사와 기억이 조용히 숨 쉬고 있다. 박물관 앞에 서는 순간 묘한 감각이 찾아온다. 여전히 우리는 서울이라는 현재의 도시에 서 있지만, 일상의 빠른 속도에서는 이미 한 발짝 비켜나 있는 듯한 느낌이다. 넓은 광장을 지나 박물관 입구에 가까워질수록 도시의 소음은 조금씩 멀어진다. 바람이 잔잔하게 흐르고, 연못 위에는 햇빛이 부드럽게 반짝인다. 사람들은 천천히 걸으며 사진을 찍기도 하고, 벤치에 앉아 잠시 쉬어가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누구도 서두르지 않는다. 마치 이 공간이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발걸음을 느리게 만드는 듯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을 여는 순간, 시간은 방향을 바꾼다. 밖에서는 현재의 시간이 흐르고 있지만,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다른 시간의 세계로 들어간다. 높은 천장과 넓은 전시 공간, 그리고 조용히 이어지는 발걸음들. 이곳에서는 목소리마저 자연스럽게 낮아진다. 오래된 시간 앞에서는 누구나 조용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전시실을 따라 걸음을 옮기다 보면 우리는 조금씩 과거로 이동하게 된다. 조선의 시간에서 고려의 시간으로, 다시 신라와 백제의 시대로, 그리고 더 먼 고대의 세계로. 박물관의 길은 단순히 전시실을 이동하는 동선이 아니라, 시간의 층을 하나씩 거슬러 올라가는 여정처럼 느껴진다. 진열장 속에는 수많은 유물들이 말없이 놓여 있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어떤 전시실에서는 오래된 토기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 거칠지만 단단한 질감의 그릇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것을 만들었던 사람의 손길이 어렴풋이 느껴지는 듯하다. 수천 년 전 누군가는 이 그릇에 곡식을 담았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물을 담아 가족들과 나누었을 것이다. 그 평범한 일상의 흔적이 지금 이곳에서 하나의 역사로 남아 있다. 또 다른 전시실에서는 정교한 금속 공예품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빛을 받으면 은은하게 반짝이는 장식품과 세밀하게 새겨진 문양들은 당시 사람들의 뛰어난 기술과 미적 감각을 보여준다. 그 앞에 서 있으면, 이것을 만들었던 장인의 집중된 시간이 떠오른다. 작은 망치와 도구로 금속을 다듬고 문양을 새기며 완성해 갔을 긴 시간들 말이다. 불상이 전시된 공간에서는 분위기가 또 달라진다. 잔잔한 미소를 띤 얼굴, 조용히 감긴 눈, 그리고 흔들림 없는 자세. 그 앞에 서면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진다.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이 불상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소망을 빌었을 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그저 전시물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지만, 그 시간의 깊이는 여전히 공간 속에 남아 있는 듯하다. 박물관을 걷다 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질문을 하게 된다. 이 유물들은 어떤 시대를 지나왔을까. 이것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들은 무엇을 기뻐했고, 무엇을 두려워했을까. 이 질문들은 어느 순간 우리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가. 지금 우리가 만들고 남기는 것들은 먼 미래에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 박물관은 과거를 보여주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현재를 돌아보게 만드는 장소이기도 하다. 오래된 유물 앞에 서면 지금의 삶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바쁘게 쫓아다니던 일들이 사실은 아주 짧은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긴 복도를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시간의 두께가 느껴진다. 수백 년, 수천 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실감나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 한 시대가 끝나고 또 다른 시대가 이어지듯, 우리의 삶 역시 그 흐름 속에 놓여 있는 작은 한 부분일 것이다. 전시실을 모두 돌아보고 나와 박물관 로비에 서면, 처음 들어왔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 든다. 몇 시간 전만 해도 마음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이제는 조금 차분해져 있다. 마치 긴 시간을 여행하고 돌아온 사람처럼 말이다. 박물관 밖으로 나오면 다시 서울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자동차들이 지나가고,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걸어간다. 도시는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조금 전까지 머물렀던 오래된 시간이 잔잔한 여운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떠나는 나들이는 단순한 외출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거슬러 걷는 여행이며,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길 위에서 잠시 자신을 돌아보는 경험이다.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해 보는 시간.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지금 어디에 서 있으며, 앞으로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조용히 되묻는 시간. 그렇게 오늘의 국립중앙박물관 나들이는 시작된다. 도시를 떠난 여행이 아니라, 시간을 걷는 깊고 조용한 여정으로. 조금 있으면 박물관이 유료화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서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을 찾는 관객이 부쩍 많은 것 같다. 바로 옆에 있는 용산가족공원, 어린이 정원(월요일 휴무)을 산책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여유 가져보면 어떨까 싶다. ☞위 내용에 관해 조금 더 관심 있는 분은 필자가 집필한 “국립중앙박물관 나들이”책을 교보문고 등을 통해서 e-Book으로 만나볼 수 있음을 참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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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13
  • [청년의 시선⓵] 청년의 눈에 비친 한국, 기회의 나라인가 구조의 벽인가
    오늘부터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발행인은 총접속자 100만 돌파를 기념해 ‘청년의 시선’ 칼럼을 5회 연재한다. 이 기획은 20~30세대가 체감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감성과 논리로 풀어내며, 기회·공정·주거·가치의 변화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청년의 목소리로 대한민국의 현재를 진단하고, 나아갈 방향에 대한 성찰을 제시한다.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발행인의 칼럼] 오늘의 20~30세대가 바라보는 한국은 더 이상 단순한 성장의 서사가 아니다. 그들에게 한국은 기회와 한계가 동시에 공존하는, 복합적인 현실의 공간이다. 과거 세대가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산업화를 이끌었다면, 오늘의 청년은 ‘해도 안 될 수 있다’는 냉정한 인식 속에서 삶을 설계한다. 청년들이 가장 크게 체감하는 변화는 ‘기회의 축소’다. 교육 수준은 높아졌고 정보 접근성은 확대됐지만, 정작 사회로 진입하는 문은 더 좁아졌다. 노력과 성취가 비례하던 시대는 지나갔고, 이제는 출발선 자체가 결과를 좌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공정에 대한 요구가 커진 것도 이 때문이다. 청년들이 말하는 공정은 규칙의 형평성이 아니라,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의 보장이다. 삶의 방식 또한 달라졌다. 안정된 직장을 목표로 삼던 시대에서 벗어나, 오늘의 청년은 불확실성을 전제로 한 생존 전략을 택한다. 여러 개의 직업을 병행하거나, 조직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선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도전이라기보다 현실에 대한 적응이다. 그러나 사회는 여전히 전통적 성공 기준을 고수하고 있고, 이 간극은 청년들에게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한다. 부동산 문제는 이들의 인식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내 집 마련’은 더 이상 계획 가능한 목표가 아니라, 계층을 가르는 상징이 되었다. 자산의 유무가 곧 기회의 유무로 이어지는 현실 속에서, 청년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넘어 구조적 한계를 체감한다.이는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신뢰를 흔드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가치의 중심도 이동하고 있다. 국가나 조직보다 개인의 삶을 우선시하는 경향은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이는 공동체 의식의 약화라기보다, 개인이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시대적 조건의 반영이다. 헌신을 요구받기에는 보상이 불확실하고, 미래에 대한 예측은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이 한국을 완전히 떠나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 사회가 여전히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빠른 적응력과 역동성, 그리고 문제를 직시하는 세대의 등장 자체가 희망의 근거다. 비판은 냉소가 아니라 기대의 다른 표현이다. 청년의 시선은 불편하지만, 그 안에는 방향이 있다. 한국 사회가 이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는다면, 기회의 나라는 다시 설계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낙관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다. ▲ 글/사진: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겸 국제다자외교평의회 대표(의장), 한중기자연맹 회장, 중국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 위해직업대학 객좌교수, 허베이미술대학 명예/종신교수, Marquis Who’s Who 등재 저자, 《우리가 아는 중국 우리가 모르는 중국》 저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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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2026-04-13
  • 대한기자신문, 창간 후 총 접속자 수 100만 명 돌파… ‘정론직필’의 힘
    [대한기자신문 김채원 기자] 독자 중심의 뉴스 가치를 지향하는 대한기자신문이 공식 홈페이지 누적 접속자 수 100만 명을 2026.04.12.오후 3시에 돌파하며 신뢰받는 언론 매체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굳혔다. 이번 100만 명 돌파는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도 자극적인 보도보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독자들이 필요로 하는 심층적인 정보를 꾸준히 제공해 온 결과로 풀이된다. 대한기자신문(발행인 李昌虎)은 그동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균형 잡힌 시각을 견지하며 독자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매진해 왔다. 특히,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 사회적 이슈의 본질을 꿰뚫는 분석 기사와 시민 기지들의 활발한 참여를 통한 현장 중심의 보도가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또한, 모바일 최적화와 사용자 중심의 인터페이스 개선을 통해 독자들이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 뉴스를 접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인 점도 이번 성과에 기여했다. 대한기자신문 고위 관계자는 “총 접속자 100만 명 돌파는 독자들이 보내준 신뢰와 격려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앞으로도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정론직필(正論直筆)의 자세로 사회의 어두운 곳을 밝히고, 독자와 함께 호흡하는 진정한 언론의 사명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대한기자신문은 이번 100만 명 돌파를 기점으로 디지털 콘텐츠 역량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영상 뉴스 강화, 데이터 시각화 뉴스 도입 등 미디어 트렌드에 발맞춘 다양한 시도를 통해 독자들에게 더욱 풍성하고 가치 있는 정보를 전달할 예정이다. 대한기자신문은 앞으로도 ‘독자가 주인인 신문’이라는 초심을 잃지 않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신뢰의 아이콘으로 성장해 나갈 것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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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2026-04-12
  •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회(회장 김월강) 부산펜시화전 도슨트(권대근 교수) 투어 개최
    [대한기자신문]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회장 김월강)는 오는 4월 13일 월요일 부산 동래구 온천천 부산펜시화전시장에서 2026년 부산펜시화전 도슨트 투어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전시된 회원들의 작품을 해설해주는 도슨트는 부산펜 명예회장인 문학평론가 권대근 교수가 맡는다. 이날 부산펜사무국에서는 시화집 시집 200권을 시민들에게 나눠줄 예정이고, 행사를 마치면 근처 펜사무실로 가서 시낭송회 및 차담회를 갖는다. 도슨트 투어 참석자는 양은순 상임고문(시인, 문화와 문학타임 발행인), 송명화 상임고문(문학평론가, 에세이문예 주간), 김월강 회장(시인, 금어사 주지 스님), 김정애 부회장(평론가, 부산수필문학협회 회장), 최순덕 부회장(수필가, 평론가), 윤교숙 부회장(시인), 이종래 사무부회장(시인), 황인숙 사무국장(시인), 김예순 이사(시인), 장정애 이사(시인, 에세이문예 편집차장), 남현설 이사(시인, 권대근문학상운영위원회 사무국장), 박혜경 이사(시인), 유상순 이사(시인)이다. 김월강 회장 한국본부는 1954년 10월 23일 창설되었고, 1955년 6월 오스트리아 빈의 제27차 세계연차대회에서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 그 해 7월에 인준을 받았다. 세계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우리 민족의 예술과 문화를 소개함으로써, 세계 각 국민들과 문화적으로 국제친선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 도슨트 권대근 교수 국내의 우수 문학작품을 번역, 국제펜클럽을 통하여 세계 각국에 소개하며, 한국의 고유 문화와 전통 문화 등을 교류한다. 창설 당시의 구성원은 변영로(卞榮魯) 주요섭(朱耀燮) 모윤숙(毛允淑) 이헌구(李軒求) 김광섭(金珖燮) 이무영(李無影) 등이다. 1954년 영국에 다녀온 모윤숙을 중심으로 이들이 모여 발기인대회(1954.9.15) 총회를 열어 초대 위원장에 변영로, 부위원장에 모윤숙 김기진(金基鎭), 사무국장에 주요섭을 각각 선출하여 결성되었다. 1957년 일본 동경에서 열린 제29차 대회 때는 각국 대표 17명을 초청하여 문화 교류를 가지기도 하였고, 1970년 6월 28일에는 제37차 세계대회를 한국본부가 주관하여 개최했다. 이 대회에는 33개국에서 온 157명의 외국 대표와 우리 대표 60여 명이 모여 <동서문학의 해학>이라는 주제로 7일간 토의했으며, 여기서 아시아 번역국(飜譯局)을 우리 나라에 설치하게 되었다. 올림픽이 열린 1988년에 다시 제52차 펜총회를 서울에 유치해서 개최한 바 있다. 1957년부터 한국번역문학상 제도를 마련, 매년 여러 출판사의 번역작품들 중에서 가장 우수한 작품을 선정, 번역문학상을 시상하고 있다. 제1회 수상자는 ≪거인 巨人≫을 번역한 강봉식(康鳳植)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소설을 영어로 번역한 영문소설집 ≪Collected Short Stories from Korea≫도 발간했으며, 1962년에는 영문기관지 ≪The Korea PEN≫을 발행하기 시작했고, 아시아작가회의를 서울에서 열기도 하였다. 또, 1963년부터 아시아재단의 후원으로 문학강습회도 개최한 적이 있었고, 한국일보사의 후원으로 전국 각지를 순회하며 매년 강연회를 열었으며, 외국센터의 협조로 시화전을 열기도 하였다. 1965년 7월에는 한국문학사상 처음으로 아시아재단의 도움으로 본부 안에 펜작가기금위원회가 생겨, 문인들의 생활 보조비와 연구비를 지급하여 작품 집필에 전념하게 하는 사업을 시작하였다. 1977년부터 우리나라 문학작품을 대상으로 하여 각 장르별로 한 해 동안의 우수작을 선정, 한국펜문학상을 시상하고 있다. 1992년부터 지역사회의 문학 진흥과 활성화를 위해 매년 정례 세미나를, 1994년부터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논의를 위해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있다. 국제펜한국본부의 역대 회장은 변영로 정인섭(鄭寅燮) 주요섭 모윤숙 백철(白鐵) 전숙희(田淑禧) 문덕수(文德守) 이상문, 성기조, 손해일, 김용재 등이며, 현재 회장은 심상옥이다. 간행물로 계간지 ≪펜문학≫을 1985년 가을에 창간하였다. 한편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10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1996년 한국 문학의 정보를 해외에 홍보하는 영문 저널 계간 ≪KOREAN LITERATURE TODAY≫를 창간했다. 1998년 당시 회원수는 1,300여 명이었다. 국제펜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는 김석규 고문, 박송죽 고문, 변종환 고문, 양은순 상임고문, 권대근 상임고문, 송명화 상임고문을 두고 있으며, 회장은 김월강이며, 중구청과 함께 중구거리시축제를 열어오다가 몇 년 전부터 중단되었고, 23년부터 부산펜이 독자적으로 땅뫼산 산책로에 시화전을 개최해왔으며, 올해부터는 장소를 옮겨 세계 시의 날을 기념하여 온천천에서 부산펜시화전을 개최하고, 시화를 두 달간 전시하고 있다. 작년부터는 도슨트 투어를 열어 부산펜 회원들의 시를 분석하고 해설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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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12
  • [대한기자신문] 김태후 에세이 ‘실패는 끝이 아닌, 다시 시작이다’ 출간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기자] 인생을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왔지만 기대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한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특히 중년에 겪는 실패는 단순한 좌절을 넘어 삶의 방향 자체를 흔드는 깊은 상실과 절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적인 삶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전자책 ‘실패는 끝이 아닌, 다시 시작이다’가 출간됐다. 이 책은 시인이자 언론인, 문화예술기획자로 활동해 온 김태후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다. 저자는 맡은 일에 대한 강한 책임감과 성실함으로 쉼 없이 달려온 삶 속에서, 동업 실패와 인간관계의 배신이라는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특히 오랜 신뢰를 바탕으로 시작한 동업 과정에서의 욕심과 배신으로 인한 실패는 경제적 손실뿐 아니라 깊은 심리적 상처로 이어졌고, 이는 삶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책은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실패 이후의 시간, 즉 무너진 자리에서 자신을 다시 바라보고 삶의 방향을 재설정해 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실패는 끝이 아닌, 다시 시작이다’는 실패를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기존 자기계발서와 차별성을 지닌다. 저자는 실패를 통해 비로소 자신을 이해하고, 삶의 속도와 방향을 다시 선택하게 되었음을 강조한다. 김태후 작가는 “실패했지만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며 “실패는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자리였다”고 말한다. 이어 “이 책이 실패를 경험한 이들에게 작은 위로와 다시 걸어갈 용기를 전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이 책은 중년의 삶과 인간관계, 재도전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40~60대 독자층에게 깊은 울림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실패는 끝이 아닌, 다시 시작이다' 에세이는 유페이퍼 전자책 플랫폼에서 만나볼 수 있다. 김태후 작가는 198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36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해 온 시인이자 문화예술기획자이다. 전 중앙일보 이코노미스트 객원기자를 지냈으며, 현재 뷰티엔패션 편집인 겸 대표, 뉴스문화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명사초청 세미나, 콘서트, 소비자대상 어워즈, 패션모델 콘테스트 등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를 기획·주관하며 문화 콘텐츠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시인으로서는 '봄이 또 내게로 왔다', '날마다 달마다', '워킹모델K' 등 시집을 출간하며 꾸준한 창작 활동을 이어왔다. 삶의 경험과 내면의 성찰을 통해 사유를 길어 올린 작품 세계를 구축해 왔다. 최근 에세이 전자책 『실패는 끝이 아닌, 다시 시작이다』를 통해 동업 실패와 중년의 삶을 솔직하게 풀어내며, 실패 이후의 삶과 재도전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현재 계간 『시와세계』 등단 시인이며, (사)한국시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또한 2017년 한류문화산업발전공로대상 국회부의장 표창, 2025년 대한민국 뉴리더대상 (언론부문대상)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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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2026-04-11
  • [토요칼럼] 결핍의 심연에 침잠하는 인간, 그 고통의 무게를 견디는 법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칼럼니스트] "인생은 결핍(缺失)의 기록이다."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인간의 생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채워지지 않는 구멍을 메우려는 처절한 몸부림의 연속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를 짓누르는 공기는 사뭇 무겁다. 물질적 풍요가 정점에 달했다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역설적이게도 현대인들은 그 어느 시대보다 깊은 '결핍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결핍이 크면 클수록 삶이 어렵고 힘들다는 이 자명한 명제는, 이제 개인의 심리적 고통을 넘어 공동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번지고 있다. ● 결핍, 생존을 위협하는 근원적 공포 결핍은 단순히 '부족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부재할 때 발생하는 심리적 공동(空洞)이다. 경제적 빈곤, 정서적 고갈, 관계의 단절 등 결핍의 양상은 다양하지만, 그 뿌리는 하나로 통한다. 바로 '안전망의 부재'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타인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지거나, 내일의 생계를 기약할 수 없는 경제적 궁핍에 몰릴 때 인간의 뇌는 이를 물리적 통증과 동일한 층위의 비상사태로 인식한다. 결핍이 커질수록 인간의 시야는 좁아진다. 당장의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 장기적인 미래를 설계할 여력을 잃게 되는 '터널 시야(Tunnel Vision)' 현상이 발생한다. 오늘을 버티는 것이 전쟁인 이들에게 '내일'이나 '성장' 같은 단어는 사치에 불과하다. 결국 결핍은 인간을 현재라는 감옥에 가두고,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훼손한다. ● 비교의 덫, 가공된 결핍이 주는 고통 주목해야 할 점은 현대의 결핍이 과거의 '절대적 빈곤'과는 궤를 달리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생산되는 '상대적 결핍'이다. SNS의 화려한 이미지 속에서 자신의 일상을 투영하며 느끼는 박탈감은 실재하는 굶주림만큼이나 고통스럽다. "남들은 모두 가진 것 같은데 나만 없다"는 인식은 인간의 자존감을 바닥으로 끌어내린다. 이러한 가공된 결핍은 인간을 끝없는 경쟁으로 내몬다. 남보다 더 많이 가져야만 안심할 수 있는 '불안의 질주'는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결핍의 크기는 곧 욕망의 크기와 비례하며, 그 간극이 벌어질수록 삶의 무게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워진다. 현대인이 느끼는 피로감의 정체는 육체적 노동이 아니라, 채워지지 않는 결핍을 메우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심리적 소진이다. ● 결핍의 역설... 고통인가, 동력인가 물론 인류 역사는 결핍을 극복하려는 의지 속에서 진보해 왔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집을 짓고, 배고픔을 잊기 위해 농경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결핍이 '관리 가능한 수준'일 때의 이야기다.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거대한 결핍은 인간의 영혼을 파괴한다. 삶이 힘들고 어렵다는 아우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개인에게 지워진 결핍의 짐을 덜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립된 개인이 스스로의 결핍을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구조 속에서, 삶은 축복이 아닌 형벌이 된다. 결핍의 무게가 임계점을 넘어서면 인간은 냉소(Cynicism)에 빠지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우울증의 확산과 저출산이라는 거대한 사회적 결과물이다. ● 삶의 무게를 줄이는 지혜, '자족'과 '연대' 결핍이 주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두 가지 길을 고민해야 한다. 첫째는 내면의 단단함을 회복하는 것이다. 외부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삶의 가치를 정립하는 '자족(自足)'의 미학이 절실하다. 내가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을 냉철하게 구분하고, 결핍 자체를 삶의 일부로 수용할 때 비로소 고통의 무게는 가벼워진다. 둘째는 사회적 연대의 강화다.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거대한 결핍, 특히 주거나 교육, 의료와 같은 생존권적 결핍은 공동체가 나누어 짊어져야 한다. '나 혼자 잘 사는 삶'이 아니라 '함께 버티는 삶'이 가능할 때, 개인의 결핍은 더 이상 절망의 낭떠러지가 되지 않는다. 인간의 삶에서 결핍을 완전히 소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결핍이 삶을 파괴할 정도로 거대해지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결핍의 크기가 삶의 고통을 결정한다면, 우리는 그 크기를 줄이기 위한 개인적 성찰과 사회적 합의를 서둘러야 한다. 고통의 심연 속에서도 인간의 품격을 잃지 않는 법, 그것은 결국 내 안의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에서 시작될 것이다. ▲ 글/사진: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겸 국제다자외교평의회 대표(의장), 한중기자연맹 회장, 중국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 위해직업대학 객좌교수, 허베이미술대학 명예/종신교수, Marquis Who’s Who 등재 저자, 《우리가 아는 중국 우리가 모르는 중국》 저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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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11
  • [대한기자신문] 기도는 하는 게 아니라 듣는 것
    [대한기자신문 송면규 논설위원(박사)]우리는 기도를 “하는 것”이라고 배워왔다. 말을 꺼내고, 소원을 나열하고, 간절함을 쏟아내는 행위. 그래서 기도는 언제나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질문이 생긴다.기도는 정말 말하는 것일까.혹은, 그보다 더 중요한 어떤 과정이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대화할 때, 말하는 것만으로는 관계가 깊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상대의 말을 듣지 않으면, 그 대화는 독백에 불과하다. 기도도 마찬가지다.끊임없이 말하기만 하는 기도는, 어쩌면 하늘을 향한 독백일지도 모른다. 진정한 기도는 말하는 순간이 아니라, 말을 멈춘 이후에 시작된다. 기도를 마치고 난 뒤의 침묵.그 짧은 고요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듣는 상태’에 들어간다. 자신의 욕망과 불안을 내려놓고,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미세한 울림을 감지하는 시간. 그것이 바로 기도의 본질에 가깝다. 많은 이들이 기도를 통해 답을 얻고 싶어 한다.하지만 답은 늘 말 속에 있지 않다. 오히려 답은 침묵 속에서,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순간에 떠 오른다. 기도는 신에게 설득을 시도하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을 정리하는 시간이다. 혼란스러운 감정들을 내려놓고,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어떤 삶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과정이다. 그래서 기도는 ‘요청’이 아니라 ‘경청’이다. 기도를 오래 한 사람일수록 말이 줄어든다.짧아진 문장, 단순해진 표현, 그리고 길어진 침묵. 그들은 더 이상 많은 것을 말하지 않는다.대신 더 깊이 듣는다. 삶이 복잡해질수록 우리는 더 많이 말하려 한다.설명하고, 설득하고, 요구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서는 말이 아니라 ‘들음’이 방향을 결정한다. 기도 역시 그렇다. 진짜로 들어야 할 것은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거창한 음성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있었지만 소음에 가려져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기도는 하늘을 향한 외침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말을 줄이고, 마음을 비우고, 조용히 귀를 기울일 때 비로소 기도는 시작된다. 그래서 기도는 하는 것이 아니라,듣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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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10
  • [대한기자신문=시론] 극단(極端)이라는 이름의 소모전, 이제는 상식의 길로 돌아와야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발행인]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를 관통하는 가장 위험한 단어는 ‘진보’나 ‘보수’가 아니다. 바로 ‘극(極)’이다. 좌와 우의 끝단에 서서 서로를 향해 삿대질하는 극좌와 극우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정작 나라를 지탱해야 할 합리적 이성과 건강한 중원은 질식하고 있다. 이들 극단 세력의 주장은 선명해 보일지 모르나, 냉정히 말해 국가 발전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국가 에너지를 갉아먹는 블랙홀에 가깝다. 극좌와 극우는 동전의 양면이다. 이들은 세상을 ‘선(善)과 악(惡)’의 이분법으로 재단하며, 자신들의 신념에 반하는 모든 목소리를 ‘적(敵)’으로 간주한다. 민주주의의 핵심인 대화와 타협은 이들의 사전에서 ‘배신’과 ‘굴복’으로 치환된다. 정치는 상대를 인정하는 기반 위에서 꽃피는 타협의 예술이어야 함에도, 극단의 정치는 상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멸절의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이들의 주장이 나라에 해가 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사회적 통합을 원천 봉쇄한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도 이들은 공동체의 안녕보다 진영의 승리를 우선한다. 둘째, 정책의 질을 떨어뜨린다. 복잡한 현대 사회의 문제들은 정교한 해법을 요구하지만, 극단주의자들은 자극적인 구호와 도그마에 갇혀 실현 불가능한 대안만 쏟아낸다. 셋째, 미래 세대의 정치 혐오를 부추긴다. 고성과 막말이 오가는 정치권의 풍경은 청년들로 하여금 공적 영역에서 고개를 돌리게 만든다. 문화적 관점에서도 극단주의는 치명적이다. 문화는 다양성을 먹고 자란다. 서로 다른 생각들이 부딪히고 섞이는 과정에서 새로운 창의성이 발현된다. 그러나 극단주의는 ‘하나의 정답’만을 강요하며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폭을 위축시킨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문화만 ‘애국’ 혹은 ‘개혁’이라 부르며 박수치고, 나머지는 ‘반동’이나 ‘적폐’로 몰아세우는 풍토에서 찬란한 문화의 꽃은 피어날 수 없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극(極)’에서 ‘중(中)’으로, ‘진영’에서 ‘상식’으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 단언컨대 좌든 우든 극단에 치우친 주장은 결국 공동체를 파열시킬 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목소리 큰 소수의 고함이 아니라, 묵묵히 일상을 지탱하며 합리적인 토론을 갈망하는 다수의 침묵하는 지성이다. 국가는 갈등을 동력으로 삼아 나아갈 수 없다. 극단이라는 이름의 소모전을 멈추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국가의 미래를 고민하는 생산적인 경쟁의 장으로 복귀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나라를 위하는 길이며,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높은 품격으로 진입하는 유일한 열쇠다. 극단의 시대, 이제는 기필코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다. ▲ 글/사진: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겸 국제다자외교평의회 대표(의장), 한중기자연맹 회장, 중국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 위해직업대학 객좌교수, 허베이미술대학 명예/종신교수, Marquis Who’s Who 등재 저자, 《우리가 아는 중국 우리가 모르는 중국》 저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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