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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사유의 지평을 넓히는 힘...왜 성인에게 ‘어휘력’이 곧 ‘생존력’인가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소통전문가] 이 짧은 문장은 우리가 세상을 인지하고 해석하는 방식의 핵심을 찌릅니다. 요리사가 가진 식재료가 빈약하면 일류 요리를 만들 수 없듯, 우리가 보유한 어휘가 빈약하면 우리의 사고 역시 빈곤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의 독서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행위를 넘어, ‘사고의 영토’를 확장하는 필수적인 과정이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어휘의 빈곤은 사고의 한계를 만든다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감정이나 상황을 명명할 단어를 갖고 있지 못할 때, 그 현상은 우리 머릿속에서 안개처럼 모호하게 머뭅니다. 예를 들어, ‘슬프다’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 감정을 퉁치는 사람과 ‘비창하다’, ‘애잔하다’, ‘먹먹하다’, ‘울적하다’의 차이를 섬세하게 구분해 사용하는 사람의 내면 풍경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전자가 감정의 덩어리를 그저 견뎌낸다면, 후자는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성인에게 어휘력이란 단순히 말을 잘하는 기술이 아니라, 복잡한 세상을 정교하게 읽어내는 해독 장치인 셈입니다. ■ 왜 ‘어른의 독서’는 달라야 하는가 학창 시절의 독서가 시험과 성적을 위한 ‘입력’이었다면, 성인의 독서는 삶의 맥락을 짚어내기 위한 ‘재구성’의 과정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며 마주하는 수많은 갈등, 인간관계의 피로도, 그리고 정체성의 혼란은 대부분 ‘적절한 언어’를 찾지 못해 발생합니다. 독서는 타인의 정제된 ‘생각의 재료’를 나의 창고에 채워 넣는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고전을 읽으며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을 배우고, 인문 서적을 통해 현상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어휘를 익히는 과정은 뇌의 근육을 단련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휘가 풍부해질수록 우리는 현상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재정의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 문해력 저하의 시대, 다시 ‘텍스트’로 돌아가야 할 때 영상 매체가 지배하는 시대입니다. 30초 내외의 숏폼 콘텐츠는 즉각적인 즐거움을 주지만, 우리의 사고를 ‘수동적 수용’ 상태에 머물게 합니다. 영상은 이미지를 통해 결론을 바로 보여주지만, 텍스트는 독자가 스스로 머릿속에서 이미지를 구현하고 논리를 세우게 만듭니다. 이 ‘사유의 간극’이야말로 생각이 자라나는 핵심적인 공간입니다.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는 ‘성인 문해력 저하’ 문제는 단순히 단어 뜻을 모르는 수준에 그치지 않습니다. 긴 글의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고, 타인의 의도를 오해하며, 논리적 비약에 쉽게 빠지는 현상은 모두 ‘생각의 재료’인 어휘력과 독서량의 부족에서 기인합니다. 지적인 성숙을 원하는 성인이라면, 이제 다시 활자의 세계로 돌아와 사유의 밀도를 높여야 합니다. ■ 사유의 풍요를 위한 제언... ‘어휘의 결’을 살리는 독서법 그렇다면 어떻게 독서해야 할까요? 단순히 많이 읽는 ‘다독’보다 중요한 것은 ‘숙독(熟讀)’과 ‘필사(筆寫)’입니다. ▪︎낯선 단어를 수집하십시오. 책을 읽다 마주친 생소하지만 울림이 있는 단어를 메모하십시오. 그 단어가 내 일상에 들어오는 순간, 그 단어만큼의 세계가 당신의 것이 됩니다. ▪︎맥락을 곱씹으십시오. 저자가 왜 이 상황에서 이 단어를 선택했는지 고민하며 읽는 습관은 공감 능력과 비판적 사고력을 동시에 길러줍니다. ▪︎나의 언어로 출력하십시오. 읽은 내용을 바탕으로 단 세 줄이라도 자신의 생각을 적어보는 연습을 하십시오. 재료(어휘)를 가지고 직접 요리(글쓰기)를 해볼 때 사유는 비로소 완성됩니다. ■ 언어는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준다 우리가 구사하는 언어는 곧 우리 존재의 격(格)을 결정합니다. 빈곤한 생각은 빈곤한 삶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풍성한 식탁을 차리기 위해 좋은 식재료를 고르듯, 풍요로운 삶을 위해 매일 독서를 통해 생각의 재료를 다듬으십시오. 오늘 당신이 읽은 한 페이지, 당신의 머릿속에 남은 한 단어가 내일의 당신을 더 깊고 넓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입니다. 언어라는 재료가 풍성해질 때, 당신의 인생이라는 작품 또한 비로소 깊은 맛을 내기 시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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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현장탐방] 거친 파도 너머 ‘나란다’의 비원(悲願), 해운대 인어상에 깃든 천년의 향수
[부산=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대기자] 부산 해운대 동백섬 해안 산책로를 걷다 보면, 갯바위 위에 앉아 아스라이 수평선을 바라보는 황동빛 여인을 마주하게 된다. 부산 해운대의 상징 중 하나인 ‘인어상’이다. 단순히 관광객의 눈길을 붙잡기 위한 조형물이라 치부하기엔 그 눈망울에 담긴 서사가 예사롭지 않다. 이 인어상에는 바다 건너 미지의 나라에서 온 공주의 애틋한 망향가(望鄕歌)가 서려 있다. ● 고국을 향한 그리움, 황옥공주 전설 해운대 인어상의 주인공은 인어 나라 ‘나란다’에서 온 황옥공주(黃玉公主)다. 전설에 따르면, 아주 먼 옛날 인어들의 나라인 나란다의 황옥공주는 해운대 무궁나라의 은혜왕에게 시집을 오게 된다. 낯선 땅에서의 생활은 행복했으나, 공주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떨칠 수 없었다고 한다. 공주가 가련해 보였던 것일까. 나란다의 대신들은 공주에게 신비로운 황옥(黃玉) 한 알을 건넸다. 보름달이 뜨는 밤, 그 황옥을 비추어 보면 고국인 나란다의 전경이 거울처럼 나타난다는 것이다. 공주는 매일 밤 동백섬 해안가 바위에 앉아 황옥을 들여다보며, 거친 파도 너머에 있을 부모님과 고향의 모습을 그리워했다. 이 이야기가 오늘날 해운대 인어상의 유래가 되었다. ■ 가락국 허황옥 신화와의 기묘한 연결고리 흥미로운 점은 이 전설이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의 비(妃)인 허황옥(許黃玉)의 신화와 맥을 같이한다는 점이다. 인도 아유타국에서 건너왔다는 허황옥의 이름 ‘황옥’과 인어 전설 속 ‘황옥공주’의 이름이 일치하는 것은 우연의 일치라 보기 어렵다. 학계와 지역 문화계에서는 이 전설을 두고 고대 해상 교류의 흔적이 구전 설화로 정착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먼 바다를 건너온 이주민들의 고독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던 이방인의 정서가 ‘인어’라는 신비로운 존재를 빌려 투영되었다는 분석이다. ● 시대의 부침을 견디며 지켜온 자취 현재 우리가 보는 인어상은 사실 두 번째 모습이다. 1974년에 처음 세워졌던 석재 인어상은 1987년 태풍 ‘셀마’의 위력에 휩쓸려 유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1989년 청동으로 새롭게 제작된 것이 지금의 인어상이다. 유실된 첫 인어상의 파편은 현재 부산박물관에 보존되어 있어, 그 자체가 해운대의 현대사를 증언하는 유물이 되었다. ■ 현대인에게 던지는 ‘위로’의 메시지 해운대 인어상은 단순히 전설의 재현을 넘어, 고향을 떠나 대도시로 모여든 현대인들에게 묘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화려한 마린시티의 마천루와 대비되는 고요한 인어의 뒷모습은, 우리 모두가 마음속 한편에 간직한 '돌아가고 싶은 어딘가'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오늘도 인어상은 '억겁의 세월'을 견디며 바다를 본다. 그 시선 끝에는 잃어버린 낙원 나란다가 있을까, 아니면 우리가 잊고 지낸 순수한 본연의 모습이 있을까. 동백섬의 파도 소리는 지금도 황옥공주의 전설을 실어 나르며 해운대를 찾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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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인생은 리허설이 없다
[詩] 인생은 리허설이 없다 李昌虎(65岁) 붉은 태양이 지평선을 박차고 오를 때 심장 깊은 곳, 잠들었던 말 한 마리가 깨어난다 굽이치던 세월의 강을 건너온 예순다섯 누구는 황혼이라 말하지만, 나는 이를 절정이라 부른다 지나온 길 위에 연습은 없었으니 모든 눈물은 진실이었고, 모든 웃음은 정직한 축제였다 되감기 할 수 없는 필름처럼 뜨겁게 타오른 나날들 이제는 남의 시선이 아닌, 내 영혼의 박동에 발을 맞춘다 병오의 뜨거운 불길이 온몸을 감싸 안을 때 멈추지 않는 근육으로 다시 대지를 박차고 나가리라 남겨둔 후회는 바람에 날려 보내고 오직 이 순간, 가장 찬란한 나를 연기(演技)가 아닌 삶으로 살아내리라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 리허설은 없다 오늘이 바로, 내 생의 가장 뜨거운 본 공연이다 ● 시 해설 및 감상○ 이 시는 2026년 병오년의 상징인 '적토마(붉은 말)'의 강렬한 이미지와 65세(1960.12.26생)라는 나이가 갖는 원숙한 품격을 결합하여 창작되었습니다. ▪︎강렬한 생명력 (병오년의 기운), 병오(丙午)는 천간과 지지가 모두 뜨거운 불의 기운을 상징합니다. 65세라는 나이를 쇠퇴하는 시기가 아닌, 오히려 그동안 쌓아온 내공이 불꽃처럼 터져 나오는 '인생의 본 공연'으로 정의했습니다. ▪︎리허설 없는 삶의 가치, '인생은 리허설이 없다'는 제목처럼, 지나온 세월의 모든 순간이 연습이 아닌 실전이었음을 강조합니다. 이는 과거에 대한 후회보다는 현재의 소중함과 자기 긍정을 담고 있습니다. ▪︎65세의 품격,젊은 날의 치기 어린 열정과는 다릅니다. 세상을 관조할 줄 아는 여유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슴 속에 뜨거운 열망을 간직한 '현역'으로서의 당당함을 표현했습니다. 이창호의 "65세, 한중 무대는 이제 막 가장 화려한 조명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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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칼럼] 어이 여보게! 어르신, ‘학습’의 전선(戰線)으로 즉각 나오라
[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칼럼니스트]=대한민국 사회가 거대한 ‘경험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 한때 산업화의 역군이자 조직의 기틀을 닦았던 시니어 세대 중 상당수가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과거의 훈장(勳章)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 변화의 파고는 나날이 높아지는데, 정작 배를 저어야 할 노련한 사공들이 ‘학습’이라는 노를 내려놓고 뒷방으로 물러나 앉은 형국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세대 갈등은 단순히 가치관의 차이에서 기인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식의 유통기한’을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과거에는 한 번 익힌 기술과 지식으로 평생을 버텼지만, 지금은 지식의 반감기(半減期)가 5년도 채 되지 않는 시대다. 이런 격변기에 '시니어가 학습 문화'에 소극적이라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성장이 멈추는 것을 넘어 조직과 사회 전체의 소통 마비와 활력 저하를 의미한다. ● '경험'이라는 이름의 독배(毒杯)를 경계하라 시니어들이 학습을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체면’과 ‘관성’이다. “이미 알 만큼 안다”는 오만과 “이제 와서 뭘 배우겠느냐”는 패배주의가 결합하여 학습의 담벽을 높인다. 하지만 냉정하게 짚어보자.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과 인공지능(AI)이 일상이 된 지금, 과거의 성공 방정식은 오히려 혁신의 걸림돌이 되기 일쑤다. 경험은 양날의 검이다. 통찰력을 주는 스승이 되기도 하지만, 새로운 정보의 유입을 막는 거대한 필터가 되기도 한다. 시니어가 학습 문화의 전면에 나서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축적된 ‘지혜’에 새로운 ‘지식’을 더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숙련의 힘’이 우리 사회에 절실하기 때문이다. 시니어가 배움을 멈추는 순간, 그들의 노련함은 ‘고집’으로 전락하고 만다. ● 학습은 시니어의 '사회적 생존권'이다 학습은 단순히 자기계발의 영역을 넘어선다. 그것은 변화하는 세상과 호흡하겠다는 ‘의지’이자, 젊은 세대와의 접점을 찾으려는 ‘배려’다. 최근 화두가 되는 ‘리터러시(literacy·문해력)’ 문제는 비단 문자를 읽고 쓰는 능력에 국한되지 않는다. 새로운 툴을 다루고, 새로운 문법으로 소통하며, 달라진 가치관을 이해하는 능력까지를 포함한다. 시니어가 적극적으로 학습 문화에 참여할 때, 조직 내의 ‘지식 전수’는 비로소 선순환의 고리를 갖게 된다. 가르치기만 하려는 선배는 기피 대상이지만, 함께 배우고 고민하는 선배는 존경의 대상이다. 학습하는 시니어는 권위(權威)를 내세우지 않아도 권위가 선다. 배움의 과정에서 보여주는 겸손과 열정은 그 어떤 훈계보다 강력한 메시지를 젊은 세대에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 '안주(安住)'를 버리고 '도전'의 문법을 익혀야 정부나 기업의 제도적 뒷받침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시니어 스스로의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은퇴 이후의 삶을 ‘휴식’이나 ‘소비’의 시간으로만 정의해서는 안 된다. 인생 2막, 3막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재무장(Re-skilling)’이어야 한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데 드는 서투름과 어색함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이 나이에 창피하게”라는 생각은 시니어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적이다. 오히려 그 서투름을 당당히 드러내고, 후배 세대에게 묻고 배우는 ‘역(逆) 멘토링’의 자세가 필요하다. 배움에는 은퇴가 없으며, 성장은 죽는 순간까지 멈추지 않는 지속적 과정임을 몸소 증명해야 한다. 배움의 현장이 곧 삶의 현장이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활력을 잃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동력은 결국 ‘배우는 노년’에게서 나온다. 시니어가 학습 문화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때, 우리 사회는 세대 간의 단절을 극복하고 진정한 의미의 ‘통합’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제 시니어들이 화답할 차례다. 익숙한 안락의자를 박차고 나와 도서관으로, 강연장으로, 그리고 온라인 클래스의 바다로 뛰어들어야 한다. ● 당신의 경험에 최신 지식의 날개를 달아라. 그것이 본인의 삶을 풍요롭게 함은 물론, 이 나라의 미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길이다. 배움을 멈춘 노인은 살아있어도 노인일 뿐이지만, 배우는 시니어는 언제나 현역(現役)이다. [부록] 2025년 시니어 재도약을 위한 필수 학습 프로그램 리스트 배움의 문턱을 고민하는 시니어들을 위해, 국가와 지자체가 마련한 검증된 학습 전선(戰線)을 소개한다. ● 디지털 리터러시 및 미래 기술 분야 * 카카오 '찾아가는 시니어 디지털 스쿨': 전국 150개 복지관에서 시니어 티처가 1:1로 스마트폰 활용 및 키오스크 결제 등 실생활 디지털 기술 전수. * 서울시 50플러스재단 'AI 활용 강좌': AI를 활용한 수채화 이미지 생성, 디지털 드로잉, 숏폼 콘텐츠 제작 등 '뉴 시니어'를 위한 창의 학습 과정. * 디지털배움터: 전국 17개 시·도 거점에서 모바일 중심의 실습형 교육 제공(국비 지원). ● 전직 지원 및 전문 자격증 과정 * 중장년내일센터 '전직스쿨': 만 40세 이상 대상, 1:1 맞춤 컨설팅을 통한 제2의 인생 설계 및 경력 관리 서비스 제공. * 서울시 평생학습포털 '재취업 완전정복': 내일배움카드 활용법부터 사무직(컴활, ITQ), 사회복지사 등 국가 자격증 취득을 위한 온라인 전문 강좌. * 실버케어 및 서비스 직무 교육: 요양보조, 치매예방 지도사, 시니어 바리스타 등 신규 노인 일자리 맞춤형 실무 교육. ●인문학 및 생애 설계 * 강남시니어플라자 평생교육: 서양문화사, 고전철학 등 인문학 특강과 ICT 기반 인지 훈련을 결합한 웰다잉(Well-dying) 및 심리 상담 프로그램. * 국가평생학습포털 '슬기로운 노무/의사소통': 재취업 시 필요한 노무 상식 및 세대 간 원활한 소통을 위한 대화 기법 교육. ※ 신청 팁: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국민내일 배움카드'를 통해 최대 500만 원까지 교육비를 지원받을 수 있으므로, 가까운 고용센터나 '고용24' 홈페이지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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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칼럼] “인생은 더 이상 ‘청·장·노’로 나눌 수 없다”… WHO 새 연령 기준이 던진 경고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칼럼니스트(65세)] = 세계보건기구(WHO)가 2025년 4월 발표한 새로운 사람의 연령 분류는, 우리가 익숙하게 써온 ‘청년–중년–노년’의 삼분법을 근본에서부터 흔들고 있다. 세계 평균수명 73.3세 시대, WHO는 인생을 다섯 단계로 재구성하며 각 시기의 역할과 가치까지 새로 정의했다. 이는 단순한 연령 조정이 아니라 삶의 구조 자체를 전면적으로 재설계하라는 시대적 요구다. WHO의 새 기준은 다음과 같다. ● 미성년(0~17세): 생리·심리 성장의 핵심기 ● 청년(18~65세): 사회의 핵심 노동력, 평생학습 시대 ● 중년(66~79세): 경험 전수와 재도약의 시기 ● 노년(80~99세): 건강 중심의 삶의 질 추구 ● 장수자(100+): 인간 수명의 확장, 사회 지원의 상징 이 분류가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나이는 숫자지만, 그 숫자를 대하는 사회의 태도는 더 이상 과거의 틀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먼저 미성년기는 단지 ‘학교에 다니는 시절’이 아니다. 정서·심리 발달이 절정을 이루는 시기이며 교육·돌봄이 핵심 과제다. 입시 경쟁에 매몰되어 아이들의 내적 성장을 놓치고 있는 우리나라의 교육 체계를 돌아보게 한다. 이어지는 청년기(18~65세)는 WHO가 가장 과감하게 재정의한 영역이다. 단숨에 47년의 광대한 시기를 하나의 ‘청년기’로 묶었다. 이는 지식의 유효기간이 짧아지고 기술 변화가 가속된 현대 사회에서, ‘평생 학습’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한국 사회가 이 구간에 있는 국민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떠안기고 있는 현실 역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중년기(66~79세)는 WHO가 새롭게 의미를 부여한 구간이다. 이들은 더 이상 ‘퇴직 이후 여생을 보내는 집단’이 아니라, 경험과 지혜를 사회로 환원하는 최고급 자원이다. 창업, 교육, 멘토링 등 다양한 방식의 사회적 기여가 가능하며, 지금까지 소외되어온 이 세대의 재발견이 필요하다. 노년기(80~99세)는 ‘오래 사는 것’보다 ‘어떻게 사는가’를 중심에 놓는다. 건강과 삶의 질, 관계 회복, 사회적 활동이 핵심 지표이며, 기존의 연금·병원 중심 복지로는 대응이 불가능하다. 한편 100세 이상의 장수자는 더 이상 신기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 수명의 확장을 상징하는 이 단계는 의료·복지·사회 구조 전반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한다. 이 모든 변화를 관통하는 결론은 명확하다. 우리는 더 이상 20세기식 ‘청·장·노’의 틀로 인생을 설계할 수 없다. 나이는 단순한 생물학적 지표가 아니라, 사회가 어떻게 사람을 대하고 어떤 역할을 부여하는지 보여주는 문화적 지표다. WHO의 새 기준은 우리에게 숙제를 남긴다. 생애주기별 정책 재정립, 평생 학습체계 강화, 중·노년의 사회적 역할 확장, 건강 중심 복지로의 전환 등 사회적 체질 개선 없이는 100세 시대를 온전히 맞을 수 없다. 인생은 이제 더 길고, 더 분화되고, 더 역동적이다. WHO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제 인생을 다시 정의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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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단독] 초고령사회, 국가 존엄을 지키는 최소한의 의무를 묻는다
이창호 발행인 (대한기자신문)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은 이제 더 이상 미래의 과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현재를 관통하는 엄중한 현실입니다. 65세 이상 인구가 이미 전체의 20%를 넘어선 오늘, 국가가 노후 생활 안정의 최소 안전망인 기초연금을 확고히 세우는 일은 선택의 영역이 아닌, 국가 존립의 근간을 지키는 최소한의 책무에 가깝습니다.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노년층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기초연금의 지속적 확대는 단순한 사회적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 본질은 복지의 이름을 달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의 기초적 존엄을 지키는 국가적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고령층의 소득 단절과 건강 비용 증가는 한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 전체의 부담으로 전이되는 거시경제적 위험 요인입니다. 더구나 전통적인 자녀 부양 구조가 급격히 약화된 지금, 노인의 생활 안정은 더 이상 가족 시스템에 맡겨둘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이제 과감하고 구조적인 결단을 내릴 때입니다. 첫째, 지급 대상의 합리적인 확대와 급여 수준의 현실화를 통해 노후 빈곤율을 실질적으로 낮춰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물가 상승률을 반영하는 수준을 넘어, 국민연금의 낮은 급여로 인해 발생하는 ‘연금 크레바스(Pension Crevasse)’ 세대에 대한 보완책으로서 그 역할을 재정립해야 합니다. 기초연금을 소득 보장 피라미드의 최하단 안전망으로 확고히 구축하여, 노인 상대적 빈곤율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둘째,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책임을 미루는 행위를 지양하고, 세대 간 형평성과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조화시키는 구조 개편에 나서야 합니다. 이는 기초연금 재원을 위한 목적세 도입 검토 등 재원 다변화 방안을 포함하며, 장기적으로는 조세-재분배 메커니즘을 활용한 보편적 지급 시스템으로의 전환 가능성까지 열어두어야 합니다. 지속 가능한 재정 확보 방안 없이는 국가의 약속은 공허한 구호에 불과합니다. 셋째, 기초연금을 단순한 현금지원 정책에 머물게 할 것이 아니라, 건강·돌봄·주거 정책과 연계하는 통합적 노후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연금 수급을 고령층을 위한 재가 복지 서비스나 공공 실버 주택 지원과 연동함으로써, 예방적 복지를 강화하고 의료 및 요양 비용이라는 사회적 외부 효과를 최소화해야 합니다. 이는 기초연금이 빈곤을 완화하는 것을 넘어, 노년 삶의 질 전반을 향상시키는 전략적 투자가 되도록 하는 핵심입니다. 국가의 품격은 가장 약한 시민을 어떻게 대하느냐로 평가됩니다. 초고령화 시대에 65세 이상 국민에게 안정된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일은 복지의 확장을 논하기 이전에, 대한민국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이자 성숙한 사회적 합의의 출발점입니다. 정부는 이제 늦은 책임을 미루지 말고, 노년의 삶을 존중하는 인도적 국가(Humane State)의 모습을 행동으로 증명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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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예방/연속기획①] 기억은 삶의 뿌리다, 인문학으로 풀어보는 치매 예방의 길
-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건강리포트]기억은 단순한 정보의 저장이 아니다. 기억은 한 인간이 지나온 시간의 결이며, 관계의 흔적이고, 정체성의 뿌리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잊는다. 그러나 문제는 망각 자체가 아니라, 기억을 붙잡으려는 노력의 유무에 있다. 치매 예방을 의학적 차원에만 맡겨둘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문학은 기억을 단련하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이다. 뇌는 쓰지 않으면 퇴화한다. 그러나 단순한 숫자 계산이나 반복 훈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감정과 의미가 동반될 때 기억은 더 오래 지속된다. 시 한 편을 소리 내어 읽고, 그 문장을 곱씹으며 자신의 삶과 연결해보는 일은 단순 독서 이상의 자극을 준다. '하루 10분'만이라도 책을 읽고 한 문장을 필사하는 습관은 언어 기능과 집중력을 동시에 자극한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깊이다. 대화 역시 강력한 예방법이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사고가 확장된다. 가족이나 이웃과의 일상적 대화, 과거 경험을 나누는 회상 대화는 기억 회로를 반복적으로 활성화한다. 특히 어린 시절, 청년기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떠올려 말하는 ‘회상 훈련’은 장기 기억을 자극해 인지 기능 유지에 도움을 준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의도적인 소통의 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기록하는 삶도 중요하다. 일기, 메모, 짧은 수필 쓰기는 생각을 구조화하는 과정이다. 하루를 돌아보며 세 줄이라도 적어보는 행위는 뇌의 전두엽을 자극하고 판단력과 표현력을 강화한다. 기억은 적는 순간, 더 또렷해진다.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기보다 손으로 쓰는 습관이 더 효과적인 이유도 손의 감각 자극이 뇌를 폭넓게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예술 활동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는 일은 좌우뇌를 동시에 사용하게 한다. 완성도의 문제가 아니다. 몰입의 시간이 뇌를 깨운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문화 활동에 참여하는 노년층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인지 저하 속도가 느리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여러 차례 보고된 바 있다. 물론 기본적인 생활 습관도 병행되어야 한다. 규칙적인 걷기 운동, 충분한 수면, 균형 잡힌 식사, 혈압과 혈당 관리가 토대가 된다. 그러나 몸의 관리 위에 ‘의미 있는 자극’이 더해질 때 비로소 예방은 완성된다. 치매는 단번에 찾아오지 않는다.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다가온다. 그렇기에 예방도 일상의 작은 선택에서 시작된다. 기억을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병을 늦추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끝까지 스스로 해석하고 말할 수 있는 힘을 지키는 일이다. 인문학은 거창한 학문이 아니다. 읽고, 쓰고, 말하고, 듣는 일상의 반복이다. 오늘 한 문장을 읽고, 한 사람과 대화하며, 하루를 기록하는 일. 그 소박한 실천이 우리의 뿌리를 단단히 붙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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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예방/연속기획①] 기억은 삶의 뿌리다, 인문학으로 풀어보는 치매 예방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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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사유의 지평을 넓히는 힘...왜 성인에게 ‘어휘력’이 곧 ‘생존력’인가
-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소통전문가] 이 짧은 문장은 우리가 세상을 인지하고 해석하는 방식의 핵심을 찌릅니다. 요리사가 가진 식재료가 빈약하면 일류 요리를 만들 수 없듯, 우리가 보유한 어휘가 빈약하면 우리의 사고 역시 빈곤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의 독서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행위를 넘어, ‘사고의 영토’를 확장하는 필수적인 과정이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어휘의 빈곤은 사고의 한계를 만든다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감정이나 상황을 명명할 단어를 갖고 있지 못할 때, 그 현상은 우리 머릿속에서 안개처럼 모호하게 머뭅니다. 예를 들어, ‘슬프다’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 감정을 퉁치는 사람과 ‘비창하다’, ‘애잔하다’, ‘먹먹하다’, ‘울적하다’의 차이를 섬세하게 구분해 사용하는 사람의 내면 풍경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전자가 감정의 덩어리를 그저 견뎌낸다면, 후자는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성인에게 어휘력이란 단순히 말을 잘하는 기술이 아니라, 복잡한 세상을 정교하게 읽어내는 해독 장치인 셈입니다. ■ 왜 ‘어른의 독서’는 달라야 하는가 학창 시절의 독서가 시험과 성적을 위한 ‘입력’이었다면, 성인의 독서는 삶의 맥락을 짚어내기 위한 ‘재구성’의 과정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며 마주하는 수많은 갈등, 인간관계의 피로도, 그리고 정체성의 혼란은 대부분 ‘적절한 언어’를 찾지 못해 발생합니다. 독서는 타인의 정제된 ‘생각의 재료’를 나의 창고에 채워 넣는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고전을 읽으며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을 배우고, 인문 서적을 통해 현상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어휘를 익히는 과정은 뇌의 근육을 단련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휘가 풍부해질수록 우리는 현상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재정의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 문해력 저하의 시대, 다시 ‘텍스트’로 돌아가야 할 때 영상 매체가 지배하는 시대입니다. 30초 내외의 숏폼 콘텐츠는 즉각적인 즐거움을 주지만, 우리의 사고를 ‘수동적 수용’ 상태에 머물게 합니다. 영상은 이미지를 통해 결론을 바로 보여주지만, 텍스트는 독자가 스스로 머릿속에서 이미지를 구현하고 논리를 세우게 만듭니다. 이 ‘사유의 간극’이야말로 생각이 자라나는 핵심적인 공간입니다.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는 ‘성인 문해력 저하’ 문제는 단순히 단어 뜻을 모르는 수준에 그치지 않습니다. 긴 글의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고, 타인의 의도를 오해하며, 논리적 비약에 쉽게 빠지는 현상은 모두 ‘생각의 재료’인 어휘력과 독서량의 부족에서 기인합니다. 지적인 성숙을 원하는 성인이라면, 이제 다시 활자의 세계로 돌아와 사유의 밀도를 높여야 합니다. ■ 사유의 풍요를 위한 제언... ‘어휘의 결’을 살리는 독서법 그렇다면 어떻게 독서해야 할까요? 단순히 많이 읽는 ‘다독’보다 중요한 것은 ‘숙독(熟讀)’과 ‘필사(筆寫)’입니다. ▪︎낯선 단어를 수집하십시오. 책을 읽다 마주친 생소하지만 울림이 있는 단어를 메모하십시오. 그 단어가 내 일상에 들어오는 순간, 그 단어만큼의 세계가 당신의 것이 됩니다. ▪︎맥락을 곱씹으십시오. 저자가 왜 이 상황에서 이 단어를 선택했는지 고민하며 읽는 습관은 공감 능력과 비판적 사고력을 동시에 길러줍니다. ▪︎나의 언어로 출력하십시오. 읽은 내용을 바탕으로 단 세 줄이라도 자신의 생각을 적어보는 연습을 하십시오. 재료(어휘)를 가지고 직접 요리(글쓰기)를 해볼 때 사유는 비로소 완성됩니다. ■ 언어는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준다 우리가 구사하는 언어는 곧 우리 존재의 격(格)을 결정합니다. 빈곤한 생각은 빈곤한 삶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풍성한 식탁을 차리기 위해 좋은 식재료를 고르듯, 풍요로운 삶을 위해 매일 독서를 통해 생각의 재료를 다듬으십시오. 오늘 당신이 읽은 한 페이지, 당신의 머릿속에 남은 한 단어가 내일의 당신을 더 깊고 넓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입니다. 언어라는 재료가 풍성해질 때, 당신의 인생이라는 작품 또한 비로소 깊은 맛을 내기 시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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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사유의 지평을 넓히는 힘...왜 성인에게 ‘어휘력’이 곧 ‘생존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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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현장탐방] 거친 파도 너머 ‘나란다’의 비원(悲願), 해운대 인어상에 깃든 천년의 향수
- [부산=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대기자] 부산 해운대 동백섬 해안 산책로를 걷다 보면, 갯바위 위에 앉아 아스라이 수평선을 바라보는 황동빛 여인을 마주하게 된다. 부산 해운대의 상징 중 하나인 ‘인어상’이다. 단순히 관광객의 눈길을 붙잡기 위한 조형물이라 치부하기엔 그 눈망울에 담긴 서사가 예사롭지 않다. 이 인어상에는 바다 건너 미지의 나라에서 온 공주의 애틋한 망향가(望鄕歌)가 서려 있다. ● 고국을 향한 그리움, 황옥공주 전설 해운대 인어상의 주인공은 인어 나라 ‘나란다’에서 온 황옥공주(黃玉公主)다. 전설에 따르면, 아주 먼 옛날 인어들의 나라인 나란다의 황옥공주는 해운대 무궁나라의 은혜왕에게 시집을 오게 된다. 낯선 땅에서의 생활은 행복했으나, 공주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떨칠 수 없었다고 한다. 공주가 가련해 보였던 것일까. 나란다의 대신들은 공주에게 신비로운 황옥(黃玉) 한 알을 건넸다. 보름달이 뜨는 밤, 그 황옥을 비추어 보면 고국인 나란다의 전경이 거울처럼 나타난다는 것이다. 공주는 매일 밤 동백섬 해안가 바위에 앉아 황옥을 들여다보며, 거친 파도 너머에 있을 부모님과 고향의 모습을 그리워했다. 이 이야기가 오늘날 해운대 인어상의 유래가 되었다. ■ 가락국 허황옥 신화와의 기묘한 연결고리 흥미로운 점은 이 전설이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의 비(妃)인 허황옥(許黃玉)의 신화와 맥을 같이한다는 점이다. 인도 아유타국에서 건너왔다는 허황옥의 이름 ‘황옥’과 인어 전설 속 ‘황옥공주’의 이름이 일치하는 것은 우연의 일치라 보기 어렵다. 학계와 지역 문화계에서는 이 전설을 두고 고대 해상 교류의 흔적이 구전 설화로 정착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먼 바다를 건너온 이주민들의 고독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던 이방인의 정서가 ‘인어’라는 신비로운 존재를 빌려 투영되었다는 분석이다. ● 시대의 부침을 견디며 지켜온 자취 현재 우리가 보는 인어상은 사실 두 번째 모습이다. 1974년에 처음 세워졌던 석재 인어상은 1987년 태풍 ‘셀마’의 위력에 휩쓸려 유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1989년 청동으로 새롭게 제작된 것이 지금의 인어상이다. 유실된 첫 인어상의 파편은 현재 부산박물관에 보존되어 있어, 그 자체가 해운대의 현대사를 증언하는 유물이 되었다. ■ 현대인에게 던지는 ‘위로’의 메시지 해운대 인어상은 단순히 전설의 재현을 넘어, 고향을 떠나 대도시로 모여든 현대인들에게 묘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화려한 마린시티의 마천루와 대비되는 고요한 인어의 뒷모습은, 우리 모두가 마음속 한편에 간직한 '돌아가고 싶은 어딘가'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오늘도 인어상은 '억겁의 세월'을 견디며 바다를 본다. 그 시선 끝에는 잃어버린 낙원 나란다가 있을까, 아니면 우리가 잊고 지낸 순수한 본연의 모습이 있을까. 동백섬의 파도 소리는 지금도 황옥공주의 전설을 실어 나르며 해운대를 찾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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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현장탐방] 거친 파도 너머 ‘나란다’의 비원(悲願), 해운대 인어상에 깃든 천년의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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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窓]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대기자] 스티브 잡스는 생의 끝자락에서 비로소 삶의 본질을 깨달았다고 전해진다. 혁신의 아이콘, 세계 최고 기업의 창업자라는 화려한 수식어 뒤에 선 한 인간이 마지막에 붙잡은 진리는 놀랍도록 단순했다. 병원 침대에 누운 순간, 돈은 아무 의미가 없었고 명품도, 자산도, 성공의 훈장도 고통을 대신해주지 못했다. 삶의 마지막 국면에서 인간은 결국 가장 인간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나는 제대로 살았는가.” 현대 사회는 성공을 수치로 평가한다. 연봉, 자산, 직위, 팔로워 수가 한 사람의 가치를 대신한다. 죽음이라는 절대적 기준 앞에서 이 모든 계산식은 무력해진다. 운전기사를 고용할 수는 있어도 병을 대신 앓아줄 수는 없고, 최고의 병실을 쓸 수는 있어도 생명을 연장할 보증서는 없다. 인간의 유한성 앞에서 부와 권력은 침묵한다. 잡스가 남긴 통찰의 핵심은 분명하다. 살아가며 가장 소중한 것은 건강과 사랑이라는 사실이다. 건강을 잃으면 아무것도 누릴 수 없고, 사랑이 없으면 어떤 성공도 공허해진다. 마음이 가난한 상태에서의 성취는 오히려 고독을 키울 뿐이다. 진짜 부자는 통장 잔고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평온한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낼 수 있는 사람이다. 특히 우리가 놓치기 쉬운 대목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의 가치다.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우리는 종종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뒤로 미룬다. 가족, 친구, 동료와의 시간은 언젠가 충분히 보상할 수 있을 것이라 믿지만, 삶은 그렇게 여유롭지 않다. 성공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며, 사랑하지 못한 인생은 결국 공허함만을 남긴다. 죽음은 잔인하지만 정직하다. 삶의 모든 허위를 벗겨내고 진짜 중요한 것만 남긴다. 무엇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는가를 묻는다. 그래서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깨닫는다. 바쁘다는 이유로 미뤄왔던 말 한마디, 표현하지 못한 감사와 사랑이 사실은 인생의 핵심이었다는 것을. 오늘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감사할 일이다. 숨 쉬고, 걸을 수 있고, 누군가와 눈을 맞추며 대화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의미를 가진다. 거창한 성공이 없어도, 세상의 중심에 서지 않아도, 오늘을 온전히 살아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스티브 잡스의 마지막 깨달음은 특정 개인의 유언이 아니라, 모든 현대인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바쁘게 달리고 있는가. 그리고 그 끝에서 과연 후회 없이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사랑했고, 감사했고, 나답게 살았다”고. 지금 이 순간,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가장 중요한 것을 돌아볼 때다. 성공은 선택일 수 있지만, 삶의 의미는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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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窓]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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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초고령사회, 노동을 다시 설계하다 (1편) 초고령사회 노동 갈등, 해법은 정년이 아니라 ‘이동 설계’이다
- 【대한기자신문 김한준 박사 평생교육학, 송곡대학교 객원교수】 문제의 원인이 구조에 있다면 해법 역시 구조여야 한다. 이 글은 초고령사회 노동정책이 어떤 전환 설계를 통해 실행돼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정년을 늘릴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중요한 것은 정년 찬반이 아니라, 왜 이 사회가 매번 같은 질문으로 되돌아오는지에 대한 정책적 성찰이다.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한국에서 중장년은 더 오래 일하지 않으면 생계가 불안하다고 말하고, 청년은 출발선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고 호소한다. 직장 안에서는 임금과 고용을 둘러싼 긴장이 높아지고, 직장 밖에서는 자영업과 중소기업이 인건비 상승과 고금리, 수요 둔화라는 복합 압박을 동시에 견뎌야 한다. 겉으로는 세대 갈등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모두가 불안정한 구조 안에 놓여 있는 상태다. 중장년에게 정년은 특권이 아니라 연금 이전의 소득 공백을 메우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과 실제 은퇴 시점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크고, 이 공백을 개인 저축만으로 메우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반면 청년에게 정년 연장은 신규 채용 축소의 신호로 읽힌다. 기업 역시 연공형 임금체계가 유지되는 한 정년 연장이 곧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다. 이처럼 한쪽의 요구는 다른 쪽의 불안으로 번역되고, 세대 갈등은 공정의 언어를 빌려 증폭된다. 청년과 중장년이 동시에 패자가 되는 구조가 반복되는 이유다. 문제는 정년 논의가 실제로 작동하는 정책 설계와 결합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정년만 조정하고 임금체계와 직무 구조를 그대로 두면 기업은 채용을 줄일 수밖에 없고, 조직은 경직된다. 그 결과 청년은 진입 기회를 잃고, 중장년은 불안정한 잔여 노동으로 밀려난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선택을 강요했을 뿐, 전환의 경로를 제시하지 못했다. 갈등의 원인은 세대의 이기심이 아니라, 구조를 바꾸지 않은 채 결정을 미뤄온 정책 방식에 있다. 초고령사회에서 노동정책의 핵심은 ‘더 오래 일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이동하고 전환하는가’에 있다. 정책의 초점은 정년 연장이 아니라 전환 설계로 옮겨져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연공급 중심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기반으로 단계적으로 전환하고, 일정 연령 이후에는 숙련과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멘토·품질관리·안전·교육·관리 직무로 이동할 수 있도록 직무 재설계를 병행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숙련의 사회적 활용도를 높이는 방향이어야 한다. 기업이 이러한 전환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정책 수단도 필요하다. 청년 채용과 중장년 전환을 동시에 추진하는 기업에 대해 사회보험료 감면이나 법인세 세액 공제 같은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직무 전환 성과가 확인된 기업에는 공공조달이나 정부 사업 참여에서 가점을 부여하는 방식도 검토할 수 있다. 이는 노동시장 내부의 자율적 조정을 촉진하는 신호로 작동할 수 있다. 전환 비용을 개인에게만 맡겨서는 정책이 작동하지 않는다. 중장년 전환교육과 재훈련 비용은 고용보험기금과 직업능력개발기금을 연계해 안정적으로 지원하고, 일정 기간 소득 감소를 완충할 수 있는 전환수당 제도 역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는 새로운 재정 지출이라기보다 기존 고용·훈련 재원의 재배치와 우선순위 조정의 문제에 가깝다. 청년 고용 확대와 중장년 전환이 동시에 이뤄질 경우, 장기적으로는 실업·복지 비용을 줄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정책의 성패는 방향보다 실행 순서에 달려 있다. 정년 논의가 먼저 나오고 임금·직무 개편이 뒤따르면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전환 설계와 재정 분담의 원칙을 먼저 제시할 때 비로소 사회적 신뢰가 형성된다. 초고령사회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세대 갈등은 정책 선택의 결과다. 이제 필요한 것은 세대 간 경쟁을 부추기는 논쟁이 아니라,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구체적 정책 결단이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인생3모작 전문가】는 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 LH인재개발원 미래설계지원센터장, 국토교통인재개발원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기사제보 charlykim@hanmail.net). ※ 이 글은 초고령사회 노동 갈등의 구조적 원인을 짚는 연속 칼럼의 첫 번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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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초고령사회, 노동을 다시 설계하다 (1편) 초고령사회 노동 갈등, 해법은 정년이 아니라 ‘이동 설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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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인생은 리허설이 없다
- [詩] 인생은 리허설이 없다 李昌虎(65岁) 붉은 태양이 지평선을 박차고 오를 때 심장 깊은 곳, 잠들었던 말 한 마리가 깨어난다 굽이치던 세월의 강을 건너온 예순다섯 누구는 황혼이라 말하지만, 나는 이를 절정이라 부른다 지나온 길 위에 연습은 없었으니 모든 눈물은 진실이었고, 모든 웃음은 정직한 축제였다 되감기 할 수 없는 필름처럼 뜨겁게 타오른 나날들 이제는 남의 시선이 아닌, 내 영혼의 박동에 발을 맞춘다 병오의 뜨거운 불길이 온몸을 감싸 안을 때 멈추지 않는 근육으로 다시 대지를 박차고 나가리라 남겨둔 후회는 바람에 날려 보내고 오직 이 순간, 가장 찬란한 나를 연기(演技)가 아닌 삶으로 살아내리라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 리허설은 없다 오늘이 바로, 내 생의 가장 뜨거운 본 공연이다 ● 시 해설 및 감상○ 이 시는 2026년 병오년의 상징인 '적토마(붉은 말)'의 강렬한 이미지와 65세(1960.12.26생)라는 나이가 갖는 원숙한 품격을 결합하여 창작되었습니다. ▪︎강렬한 생명력 (병오년의 기운), 병오(丙午)는 천간과 지지가 모두 뜨거운 불의 기운을 상징합니다. 65세라는 나이를 쇠퇴하는 시기가 아닌, 오히려 그동안 쌓아온 내공이 불꽃처럼 터져 나오는 '인생의 본 공연'으로 정의했습니다. ▪︎리허설 없는 삶의 가치, '인생은 리허설이 없다'는 제목처럼, 지나온 세월의 모든 순간이 연습이 아닌 실전이었음을 강조합니다. 이는 과거에 대한 후회보다는 현재의 소중함과 자기 긍정을 담고 있습니다. ▪︎65세의 품격,젊은 날의 치기 어린 열정과는 다릅니다. 세상을 관조할 줄 아는 여유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슴 속에 뜨거운 열망을 간직한 '현역'으로서의 당당함을 표현했습니다. 이창호의 "65세, 한중 무대는 이제 막 가장 화려한 조명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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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칼럼] 빵, 빵, 빵, 그리고 삶
-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칼럼니스트] 사람의 삶은 때때로 한 조각의 빵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손에 쥐는 빵은 단순한 음식이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역사와 노동, 그리고 삶의 의미가 함께 담겨 있다.그래서 빵은 늘 인간의 삶과 가까이 있었다. 고대 문명에서부터 빵은 생존의 상징이었다. 곡식을 갈고 반죽을 만들고 불에 구워내는 과정은 단순한 요리가 아니라 공동체의 협력과 기술의 산물이었다. 빵이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땅을 일구는 농부의 땀, 밀을 가는 사람의 노동, 불을 지키는 사람의 인내가 함께 들어 있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먹는 한 조각의 빵은 사실 수많은 손길이 모여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래서 빵은 단순한 식량이 아니라 삶의 은유가 된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자라듯 인간의 삶 역시 보이지 않는 시간과 노력 속에서 조금씩 익어 간다. 반죽이 발효되기 위해 기다림이 필요하듯, 사람의 인생 또한 서두른다고 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삶에는 늘 시간이 필요하다. 도시의 아침 풍경을 떠올려 보면 그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른 새벽 문을 여는 작은 빵집 앞에는 언제나 따뜻한 냄새가 흐른다. 사람들은 출근길에 잠시 들러 빵 한 봉지를 들고 나선다. 그 빵은 단순한 아침 식사가 아니라 하루를 시작하는 작은 위로이기도 하다. 바쁜 도시 속에서 사람들은 그렇게 빵을 통해 잠시 숨을 고른다. 빵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그것은 나눔이다. 빵은 혼자 먹기보다 함께 나눌 때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오래전부터 공동체에서는 빵을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마음을 전했다. 가족이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빵을 찢어 나누는 모습은 인간 사회의 가장 오래된 풍경 가운데 하나다. 나눔이 사라진 사회는 아무리 풍요로워도 어딘가 허전하다. 현대 사회는 점점 풍요로워지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의 마음은 더 자주 허기를 느낀다. 물질은 많아졌지만 삶의 온기는 줄어들었다는 말도 들린다. 이런 시대일수록 빵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단지 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라,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최소한의 온기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인생은 거창한 사건들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시간은 아주 평범한 순간들로 채워진다. 아침에 빵을 먹고 하루를 시작하고, 저녁에는 가족과 함께 식탁을 나누는 일상 속에서 삶은 조금씩 완성된다. 그 평범한 순간들이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을 만든다. 그래서 어떤 철학자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빵만이 아니라고 말했다. 인간에게는 빵과 함께 삶의 의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빵이 몸을 살린다면, 의미는 마음을 살린다. 이 둘이 함께할 때 인간의 삶은 비로소 균형을 찾는다. 결국 빵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그것은 노동의 결과이며 나눔의 상징이고, 인간의 삶을 비추는 하나의 거울이다. 우리가 매일 먹는 한 조각의 빵 속에는 삶을 버티게 하는 힘이 들어 있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하나의 빵과 같을지 모른다. 서두르지 않고 시간을 견디며, 때로는 서로의 온기를 나누면서 조금씩 익어 가는 것.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삶의 맛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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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칼럼] 빵, 빵, 빵, 그리고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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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보기] 미식과 치유의 만남, 몸을 살리는 '에너지 업' 스테이크
-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기자] 우리는 흔히 스테이크를 특별한 날 즐기는 '무거운 외식'으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리법과 재료의 조화를 조금만 바꾸면, 스테이크는 단순한 고기 요리를 넘어 세포의 재생을 돕고 면역력을 끌어올리는 완벽한 '기능성 식사'가 됩니다. ◈ 원재료의 철학: '무엇을 먹은 소인가'가 결정한다 건강한 스테이크의 뿌리는 소의 먹이에 있습니다. 옥수수 사료를 먹인 소보다 목초 사육(Grass-fed) 소고기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오메가 지방산의 균형 목초 사육 고기는 염증을 억제하는 오메가3와 오메가6의 비율이 이상적입니다. 천연 비타민의 보고 항산화 성분인 베타카로틴과 비타민 E가 풍부하여 혈관 노화를 방지합니다. 부위 선택 포화지방이 적은 안심, 채끝, 부채살 부위는 단백질 밀도가 높아 근육 생성과 대사 활성화에 최적입니다. ◈ 조리의 과학: 독소는 줄이고 풍미는 살리는 기술 고기를 굽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 물질을 차단하는 것이 '건강 요리'의 핵심입니다. 마리네이드의 마법 굽기 전 로즈마리, 타임, 오레가노 등의 허브와 올리브유에 재워두면, 허브의 항산화 성분이 고온 조리 시 발생하는 발암물질(HCA)을 최대 90%까지 줄여줍니다. 리버스 시어링(Reverse Searing) 낮은 온도(약 100~120°C)의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에서 속을 먼저 익힌 뒤, 팬에서 겉면만 살짝 익히는 방식은 영양소 파괴를 최소화하고 육질을 부드럽게 유지합니다. 지방의 교체 발연점이 낮은 일반 기름 대신 아보카도 오일을 사용해 산패를 막으세요. ◈ 완벽한 파트너, 혈당을 잡고 소화를 돕는 가니쉬 스테이크의 단점인 '산성도'와 '식이섬유 부족'을 보완할 전략적 곁들임이 필요합니다. 알칼리성 채소의 조화 구운 아스파라거스, 브로콜리, 마늘은 고기의 산성을 중화합니다. 특히 구운 토마토의 라이코펜은 기름과 함께 섭취할 때 흡수율이 비약적으로 상승합니다. 천연 소화제, 파인애플과 키위 고기를 먹은 후 소화가 더디다면 브로멜린 성분이 풍부한 파인애플을 살짝 구워 곁들이는 것이 지혜입니다. 소스의 혁신 설탕 범벅인 시판 소스 대신 발사믹 식초와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생와사비를 사용해 혈당 스파이크를 방지하세요. ◈ 마음의 영양학, 천천히 음미하는 '마인드풀 이팅’ 스테이크에 풍부한 비타민 B12와 철분은 뇌신경을 안정시키고 우울감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저작 운동의 중요성 고단백 식품은 침 속의 효소와 충분히 섞여야 위장에 부담을 주지 않습니다. 감각의 집중 고기의 육즙, 허브의 향, 채소의 아삭함을 온전히 느끼며 식사하는 시간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를 낮추는 '치유의 시간'이 됩니다.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입니다(You are what you eat)." 오늘 당신의 접시 위에 올린 스테이크는 내일 당신의 근육이 되고, 혈액이 되며, 에너지가 됩니다. 단순한 칼로리 섭취가 아닌, 몸을 세우는 '건강한 의식'으로 스테이크를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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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보기] 미식과 치유의 만남, 몸을 살리는 '에너지 업' 스테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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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치매예방/연속기획⑥] 철학하는 일상, 노년의 뇌를 살찌우다
- [대한기자신문=이강문 건강리포터] 인간의 신체가 시간의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처지듯, 정신 또한 노화라는 자연의 섭리 앞에 무력해지기 마련이다. 흔히 ‘노년의 뇌’를 떠올릴 때 대중의 뇌리에는 퇴행성 질환이나 인지 기능의 저하라는 우울한 단어들이 먼저 자리 잡는다. 하지만 최근의 뇌과학과 철학적 성찰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 노년이야말로 뇌를 가장 풍요롭게 ‘살찌울’ 수 있는, 인생에서 유일무이한 사유의 적기라는 사실이다. ◈고독, 결핍이 아닌 성찰의 공간 노년의 일상은 대개 사회적 역할의 축소와 관계의 단절로 채워진다. 흔히 이를 ‘고독’이라는 병명으로 진단하지만, 철학적 관점에서 이는 ‘단독자’로서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축복의 기회다. 젊은 시절 우리는 생존과 성취를 위해 외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왔다. 그러나 노년에 이르러 외부의 소음이 잦아들 때, 비로소 내면의 깊은 울림이 들리기 시작한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을 ‘세계-내-존재’로 규정하며 일상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자기 존재의 근원을 성찰할 것을 권했다. 노년의 고독은 단순히 홀로 남겨진 상태가 아니라, 평생 쌓아온 경험의 조각들을 하나의 서사로 엮어내는 ‘사유의 실험실’이 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뇌는 새로운 신경 가소성을 발휘한다.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닌, 의미의 맥락을 짚어내는 고차원적인 인지 활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철학적 사유가 뇌에 새기는 문장 뇌과학은 말한다. 우리의 뇌는 쓰면 쓸수록 정교해진다고. 특히 노년기에 칸트의 정언명령을 고민하거나 스피노자의 기쁨을 사유하는 행위는 뇌의 전두엽을 자극하는 가장 강력한 영양제다. 복잡한 철학적 텍스트를 읽고, 그것을 자신의 삶에 비추어 해석하는 과정은 뇌세포 간의 연결망인 시냅스를 새롭게 확장한다. 일상에서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왜 이 길을 걷는가?”, “오늘 먹은 음식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와 같은 근원적인 물음들은 굳어가는 뇌의 회백질에 파동을 일으킨다. 철학은 먼지 쌓인 서가에 꽂힌 고전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낡은 구두를 수선하며 장인의 몰입을 느끼고, 해 질 녘 노을을 바라보며 유한한 삶의 숭고함을 깨닫는 그 찰나의 순간이 모두 철학이다. 이러한 '철학하는 일상'은 치매 예방이라는 실용적 목적을 넘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된다. ◈죽음을 기억하며(Memento Mori), 삶을 사랑하라(Amor Fati) 노년이 직면한 가장 큰 철학적 화두는 단연 ‘죽음’이다. 죽음을 외면하거나 공포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은 뇌를 위축시키고 삶을 수동적으로 만든다. 반면, 죽음을 삶의 완성으로서 수용하는 태도는 현재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세네카는 “인생은 짧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짧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남겨진 시간이 유한함을 자각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지금, 여기’의 가치를 재발견한다.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니체의 ‘아모르 파티’는 노년에게 가장 절실한 위로다. 지나온 과거의 회한과 상처마저도 내 삶의 필연적인 조각이었음을 긍정할 때, 노년의 뇌는 평온과 지혜라는 최고의 결실을 맺는다. 이것이 바로 ‘살찐 뇌’가 선사하는 노년의 우아함이다. ◈사유의 근육을 단련하는 법 노년의 뇌를 살찌우기 위해 거창한 학위나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매일 조금씩 ‘사유의 근육’을 단련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첫째, 낯설게 보기다. 늘 걷던 산책길에서 처음 보는 풀꽃의 이름을 찾아보고, 익숙한 일상을 타자의 시선으로 관찰하라. 둘째, 기록하기다.짧은 일기라도 좋다.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을 문장으로 고정할 때 사유는 비로소 내 것이 된다. 셋째, 대화하기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과 삶의 본질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것은 뇌를 깨우는 가장 활발한 사회적 철학이다. 철학은 노년을 고독한 종말이 아닌, 풍요로운 완성의 시간으로 변모시킨다. 신체는 노쇠할지언정 사유하는 인간은 늙지 않는다. 오늘 당신의 뇌는 어떤 철학적 양식으로 채워지고 있는가. 삶의 마지막 장을 넘기기 전,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철학자가 될 권리와 의무가 있다. 그 깊은 사유의 끝에서 우리는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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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치매예방/연속기획⑥] 철학하는 일상, 노년의 뇌를 살찌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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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치매예방/연속기획⑤] 시(詩) 한 편의 힘, 감성이 뇌를 깨운다
-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건강리포트] 우리는 효율의 시대에 살고 있다. 빠른 정보, 짧은 문장, 즉각적인 결론이 환영받는다. 그 속에서 시(詩)는 종종 ‘느린 언어’로 밀려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가장 압축된 형식의 언어가 인간의 뇌를 가장 깊이 흔든다. 시 한 편은 몇 줄에 불과하지만, 그 여운은 긴 시간에 걸쳐 사고를 확장시킨다. 신경과학은 감성과 인지가 분리되지 않았음을 말한다. 감정은 판단을 방해하는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시를 읽을 때 우리의 뇌는 단순히 의미를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리듬과 운율을 따라가며 청각 피질이 반응하고, 이미지가 떠오를 때 시각 연합 영역이 활성화된다. 공감의 문장이 등장하면 변연계가 움직인다. 한 편의 시는 뇌의 여러 회로를 동시에 자극하는 복합 자극이다. 특히 은유는 사고의 지평을 넓힌다. “시간은 흐른다”는 표현 대신 “시간은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고 말할 때, 우리는 추상 개념을 감각적으로 체험한다. 이는 뇌가 새로운 연결을 만들도록 요구한다. 익숙한 언어의 자동 반응을 깨고, 낯선 결합을 통해 사고를 재구성하게 만든다. 시는 뇌의 관성을 흔드는 장르다. 현대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피로를 호소한다. 정보 과잉은 사고를 넓히기보다 오히려 좁힌다. 자극은 강해지지만 깊이는 얕아진다. 이때 시는 일종의 ‘정지 버튼’이 된다. 몇 줄의 문장을 천천히 음미하는 행위는 주의력을 회복시키고, 내면의 감각을 다시 깨운다. 감성의 회복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인지 기능의 회복과도 연결된다. 감정을 느끼는 능력은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 곧 사회적 지능과 직결된다. 교육 현장에서도 시의 역할은 재평가될 필요가 있다. 시험을 위한 분석이 아니라, 감각을 열어 두는 경험으로서의 시 읽기 말이다. 시를 통해 학생은 단어의 다층적 의미를 배우고, 침묵의 여백을 이해한다. 이는 정답을 찾는 능력이 아니라 질문을 확장하는 능력을 기르는 과정이다. 창의성은 새로운 연결에서 탄생한다. 시는 그 연결의 훈련장이다. 시의 힘은 또한 치유의 영역에서 드러난다. 마음의 상처를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못할 때, 시적 언어는 우회로가 된다. “아프다”는 말보다 “겨울이 오래 머문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때가 있다. 언어는 감정을 안전하게 담아내는 그릇이 된다. 이를 통해 개인은 자신의 감정을 객관화하고, 다시 삶의 방향을 찾는다. 우리는 종종 시를 현실과 동떨어진 장르로 오해한다. 그러나 시는 가장 현실적인 언어다. 삶의 균열과 기쁨, 상실과 희망을 가장 압축적으로 기록한다. 짧은 문장이 긴 사유를 이끈다. 그 힘은 속도가 아니라 깊이에서 나온다. 혹여, 시 한 편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지 모른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한 사람의 시선을 바꿀 수는 있다. 시선이 바뀌면 판단이 달라지고, 판단이 달라지면 선택이 달라진다. 감성은 약함이 아니라 인간다움의 핵심이다. 그 감성을 깨우는 가장 정제된 도구가 시다. 효율의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 자주 시를 읽어야 한다. 몇 줄의 언어가 뇌를 깨우고, 깨어난 뇌가 다시 삶을 깊게 만든다. ● 읽고 끝내기보다 확인까지 이어지는 기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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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치매예방/연속기획⑤] 시(詩) 한 편의 힘, 감성이 뇌를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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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치매예방/연속기획④] 대화와 공감, 치매를 늦추는 가장 인간적인 처방
-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건강리포트] 고령사회로 접어들며 치매는 더 이상 특정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과제가 되었다. 많은 이들이 예방을 위해 영양제와 약물, 퍼즐 훈련을 떠올리지만 정작 가장 강력하면서도 기본적인 방법은 종종 간과된다. 그것은 사람과의 대화, 그리고 공감이다. 뇌는 정보를 저장하는 기관이기 이전에 관계를 처리하는 기관이며, 관계가 줄어들 때 인지 기능은 빠르게 약해진다. 노년의 뇌는 단순히 늙어서 약해지는 것이 아니다. 사용되지 않는 기능이 먼저 줄어든다. 특히 언어 이해, 감정 해석, 상황 판단과 같은 사회적 인지 능력은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유지된다. 혼자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은 길지만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짧아질수록 기억력 저하가 빨라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뇌는 자극의 양보다 ‘의미 있는 자극’을 더 중요하게 처리한다. 대화는 단순한 말의 교환이 아니다. 상대의 표정을 읽고 맥락을 이해하며 적절한 반응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전두엽, 측두엽, 변연계가 동시에 작동한다. 질문을 듣고 기억을 꺼내고 감정을 조절하며 표현을 선택하는 일련의 과정은 복합적인 신경망을 활성화한다. 이는 어떤 두뇌 게임보다 실제적이고 입체적인 인지 훈련이다. 특히 과거 경험을 떠올려 이야기할 때 자전적 기억 체계가 반복적으로 자극되면서 기억 유지 효과가 커진다. 여기에 공감이 더해질 때 효과는 더욱 커진다. 공감은 단순히 듣는 태도가 아니라 감정을 이해하고 반응하는 과정이다. 인간의 뇌는 감정을 동반한 경험을 더 오래 저장한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에 반응하고 이해받는 경험은 정서적 안정과 함께 기억 회로를 강화한다. 반대로 무시되거나 단절된 환경은 인지 저하뿐 아니라 우울을 유발하고, 우울은 다시 기억력 저하를 가속시키는 악순환을 만든다. 가정에서의 실천은 어렵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질문의 방식이다. 사실 확인형 질문보다 경험 회상형 질문이 효과적이다. “약 드셨어요?”보다 “오늘 가장 즐거웠던 일이 무엇이었나요?”가 더 많은 뇌 활동을 유도한다. 정답을 요구하기보다 이야기를 이어가게 하는 대화가 필요하다. 속도를 맞추고 말을 끊지 않으며 감정을 되돌려 주는 반응은 치료적 효과를 만든다. 대화의 목적은 교정이 아니라 참여다. 또한 반복을 피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하는 것은 기억이 사라지는 과정이 아니라 기억을 붙잡으려는 노력이다. 이를 지적하기보다 함께 들어주는 태도는 불안을 줄이고 인지 기능을 안정시킨다. 기억력은 정확성보다 안정감 속에서 더 오래 유지된다. 뇌는 안전하다고 느낄 때 더 적극적으로 작동한다. 치매 예방은 거창한 기술 이전에 관계의 회복에서 시작된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며 뇌 역시 사회적 환경 속에서 가장 건강하게 유지된다. 하루 몇 분의 진심 어린 대화가 값비싼 치료보다 더 큰 효과를 만들 수 있다. 결국 기억을 붙드는 힘은 약이 아니라 관계이며, 공감은 가장 인간적인 치료이자 가장 오래된 의학이다. 말이 오가는 집은 조용하지 않을지 몰라도 그 속의 뇌는 천천히 늙는다. ● 읽고 끝내기보다 확인까지 이어지는 기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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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치매예방/연속기획④] 대화와 공감, 치매를 늦추는 가장 인간적인 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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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예방/연속기획③]책 읽는 노년, 뇌를 단단하게 만드는 힘
-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건강리포트] 노년의 건강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혈압, 근력, 관절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삶의 자율성을 결정짓는 마지막 기반은 신체가 아니라 인지 기능이다. 기억하고 판단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 유지될 때 비로소 독립적인 삶이 가능하다. 그 핵심 훈련이 바로 독서다. 독서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뇌 구조를 유지시키는 가장 경제적이고 지속 가능한 인지 운동이다. 나이가 들면 뇌는 자연스럽게 처리 속도가 느려지고 단기 기억 저장 능력이 감소한다. 이를 ‘퇴화’로만 이해하면 소극적 관리에 머물지만, 현대 신경과학은 다른 사실을 보여준다. 뇌는 평생 변화하는 가소성의 기관이며 사용한 회로는 강화되고 사용하지 않은 회로는 약해진다. 즉 노년의 인지 기능은 운명이 아니라 사용량의 결과에 가깝다. 독서는 이 사용량을 가장 균형 있게 늘리는 활동이다. 독서가 특별한 이유는 뇌의 한 부위만 자극하지 않기 때문이다. 글자를 해독할 때는 시각피질이 작동하고, 의미를 이해할 때는 측두엽 언어 영역이 활성화된다. 내용의 흐름을 따라갈 때 전두엽의 실행 기능이 동원되고, 등장인물의 감정을 공감할 때 변연계가 반응한다. 한 문장을 이해하는 과정에 기억·추론·감정·판단 체계가 동시에 작동한다. 걷기나 퍼즐이 특정 기능을 단련한다면 독서는 뇌 전체의 협력 능력을 훈련한다. 특히 이야기 읽기는 노년기 정서 안정에도 영향을 준다. 사람은 경험의 범위가 줄어들수록 사고가 경직되기 쉽다. 그러나 책 속에서 다양한 상황과 타인의 삶을 반복적으로 접하면 판단의 유연성이 유지된다. 이는 단순한 교양 축적이 아니라 감정 조절 능력과 직결된다. 우울과 불안은 외부 자극 감소와 인지 자극 감소가 함께 올 때 심해지는데, 독서는 외부 세계와의 간접 접촉을 회복시켜 심리적 고립을 완화한다. 효과를 높이기 위한 방법도 중요하다. 첫째, 속도보다 이해 중심으로 읽어야 한다. 빠르게 넘기는 독서는 정보 소비에 가깝고, 천천히 의미를 구성하는 독서는 인지 훈련에 가깝다. 둘째, 소리 내어 읽기가 도움이 된다. 발화 과정이 추가되면서 언어 운동 회로가 함께 활성화된다. 셋째, 읽은 내용을 짧게 요약하거나 대화로 나누면 기억 고정 효과가 크게 증가한다. 뇌는 입력보다 출력 과정에서 더 강하게 강화된다. 독서의 가치는 치매 예방이라는 단어로만 축소될 필요가 없다. 책을 읽는 노년은 단순히 병을 늦추는 것이 아니라 판단력을 유지한다. 판단력은 인간의 존엄과 연결된다. 무엇을 먹고, 어디를 가고, 누구를 신뢰할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때 삶의 주도권이 남는다. 결국 독서는 기억을 지키는 활동이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는 활동이다. 노년의 시간은 줄어드는 시간이 아니라 정리되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텔레비전이 채우면 기억은 흘러가고, 책이 채우면 생각이 남는다. 하루 서너 쪽이라도 좋다. 꾸준히 읽는 행위는 뇌를 단단하게 만들고, 단단한 뇌는 삶을 흔들리지 않게 만든다. 책을 펴는 순간 노년은 늦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 읽고 끝내기보다 확인까지 이어지는 기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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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예방/연속기획③]책 읽는 노년, 뇌를 단단하게 만드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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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예방/연속기획②] 망각의 시대, 기억의 인류학...파편화된 세계에서 나의 서사를 사수하라
-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건강리포트]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기록하지만 기억하지 않는다. 손가락 끝에 모든 지식이 매달려 있는 시대, 역설적이게도 현대인의 뇌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비워지고 있다. ‘검색’이 ‘사유’를 대체하고 ‘저장’이 ‘학습’을 앞지른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망각의 파고를 넘고 존엄한 기억의 주권을 되찾을 것인가. ■ ‘디지털 치매’를 넘어 ‘맥락의 소멸’로 과거의 기억이 삶의 궤적을 증명하는 켜켜이 쌓인 지층이었다면, 오늘날의 기억은 휘발성 강한 스냅숏의 나열이다. 스마트폰은 우리에게 무한한 저장 공간을 약속했지만, 정작 그 데이터를 내면화할 시간은 앗아갔다. 심리학계에서 말하는 ‘구글 효과(Google Effect)’는 단순히 기억력의 감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정보를 만났을 때 ‘무엇인가’를 기억하려 하기보다 ‘어디서 찾을 것인가’에만 집중하게 함으로써, 지식의 체계화를 방해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맥락(Context)’이 거세된다는 점이다. 파편화된 정보는 뇌세포 사이의 단단한 연결망(시냅스)을 형성하지 못한 채 부유하다 사라진다. 내가 직접 겪고 고뇌하며 얻은 ‘경험적 기억’이 사라진 자리를 알고리즘이 추천한 ‘타인의 취향’이 채우고 있다. 망각은 이제 단순한 생리적 현상이 아니라, 주체적인 삶의 서사를 잃어버리는 실존적 위기가 되었다. ■ 망각에 저항하는 기술: ‘느린 기록’과 ‘의도적 연결’ 그렇다면 이 ‘망각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전문가들은 역설적으로 ‘아날로그적 불편함’으로의 회귀를 권고한다. * 외화(Externalization)를 넘어선 내면화: 단순히 사진을 찍거나 링크를 저장하는 것은 기억이 아니다. 단 한 문장이라도 자신의 언어로 요약하고, 그것이 기존의 지식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반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 간격 반복(Spaced Repetition)의 미학:뇌는 한 번에 입력된 정보보다 일정한 시차를 두고 반복 노출된 정보를 중요하게 여긴다. 에빙하우스의 망각 곡선을 거스르는 유일한 방법은 효율적인 ‘다시 보기’다. * 맥락의 재구성: 기억은 고정된 데이터가 아니라 재구성되는 예술이다. 일기를 쓰거나 독후감을 남기는 행위는 파편화된 하루에 ‘의미’라는 뼈대를 세우는 작업이다. ■ 기억은 곧 나 자신이다 기억을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시험 성적을 올리거나 업무 효율을 높이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기억은 한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재료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사랑했는지, 어떤 고통을 건너왔는지를 기억하지 못할 때 인간은 외부 자극에 흔들리는 부표로 전락한다. 망각이 미덕이 되는 시대라지만, 지켜내야 할 기억의 성채는 분명히 존재한다. 거대한 데이터 센터에 나의 기억을 전적으로 의탁하는 대신, 가끔은 기기를 끄고 내면의 도서관을 정리해야 한다. 결국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우리가 지켜내야 할 것은 데이터의 양이 아니라, 그 데이터를 관통하는 삶의 숨결이다. [붙임] 이 기사가 마음에 닿으셨다면, 주변의 작은 광고 한 번 눌러 주시면 힘이 됩니다.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 나은 기사와 정직한 보도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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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예방/연속기획②] 망각의 시대, 기억의 인류학...파편화된 세계에서 나의 서사를 사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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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예방/연속기획①] 기억은 삶의 뿌리다, 인문학으로 풀어보는 치매 예방의 길
-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건강리포트]기억은 단순한 정보의 저장이 아니다. 기억은 한 인간이 지나온 시간의 결이며, 관계의 흔적이고, 정체성의 뿌리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잊는다. 그러나 문제는 망각 자체가 아니라, 기억을 붙잡으려는 노력의 유무에 있다. 치매 예방을 의학적 차원에만 맡겨둘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문학은 기억을 단련하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이다. 뇌는 쓰지 않으면 퇴화한다. 그러나 단순한 숫자 계산이나 반복 훈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감정과 의미가 동반될 때 기억은 더 오래 지속된다. 시 한 편을 소리 내어 읽고, 그 문장을 곱씹으며 자신의 삶과 연결해보는 일은 단순 독서 이상의 자극을 준다. '하루 10분'만이라도 책을 읽고 한 문장을 필사하는 습관은 언어 기능과 집중력을 동시에 자극한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깊이다. 대화 역시 강력한 예방법이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사고가 확장된다. 가족이나 이웃과의 일상적 대화, 과거 경험을 나누는 회상 대화는 기억 회로를 반복적으로 활성화한다. 특히 어린 시절, 청년기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떠올려 말하는 ‘회상 훈련’은 장기 기억을 자극해 인지 기능 유지에 도움을 준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의도적인 소통의 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기록하는 삶도 중요하다. 일기, 메모, 짧은 수필 쓰기는 생각을 구조화하는 과정이다. 하루를 돌아보며 세 줄이라도 적어보는 행위는 뇌의 전두엽을 자극하고 판단력과 표현력을 강화한다. 기억은 적는 순간, 더 또렷해진다.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기보다 손으로 쓰는 습관이 더 효과적인 이유도 손의 감각 자극이 뇌를 폭넓게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예술 활동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는 일은 좌우뇌를 동시에 사용하게 한다. 완성도의 문제가 아니다. 몰입의 시간이 뇌를 깨운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문화 활동에 참여하는 노년층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인지 저하 속도가 느리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여러 차례 보고된 바 있다. 물론 기본적인 생활 습관도 병행되어야 한다. 규칙적인 걷기 운동, 충분한 수면, 균형 잡힌 식사, 혈압과 혈당 관리가 토대가 된다. 그러나 몸의 관리 위에 ‘의미 있는 자극’이 더해질 때 비로소 예방은 완성된다. 치매는 단번에 찾아오지 않는다.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다가온다. 그렇기에 예방도 일상의 작은 선택에서 시작된다. 기억을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병을 늦추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끝까지 스스로 해석하고 말할 수 있는 힘을 지키는 일이다. 인문학은 거창한 학문이 아니다. 읽고, 쓰고, 말하고, 듣는 일상의 반복이다. 오늘 한 문장을 읽고, 한 사람과 대화하며, 하루를 기록하는 일. 그 소박한 실천이 우리의 뿌리를 단단히 붙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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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예방/연속기획①] 기억은 삶의 뿌리다, 인문학으로 풀어보는 치매 예방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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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칼럼] 아침, 스트레칭이 하루의 운명을 바꾼다
-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건강칼럼니스트] 아침은 나이가 들수록 더 중요해진다. 특히 65세 이후의 몸은 밤사이 굳어진 근육과 느려진 혈액순환으로 인해 ‘조심스러운 시동’을 필요로 한다. 젊은 날처럼 벌떡 일어나 움직이는 것은 오히려 어지럼증이나 근육 손상을 부를 수 있다. 하루를 여는 첫 10분, 침대 위에서의 스트레칭이 건강의 방향을 가른다. 첫째, 눈을 뜨자마자 바로 일어나지 말고 1~2분간 호흡을 고른다. 코로 깊게 들이마시고 입으로 천천히 내쉬는 복식호흡을 5회 반복한다. 횡격막이 충분히 움직이면 밤새 느려졌던 자율신경이 안정적으로 깨어난다. 이 과정은 심박수의 급격한 변화를 막고 기립성 저혈압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둘째, 손과 발부터 깨운다. 양손을 깍지 낀 뒤 천천히 위로 뻗으며 기지개를 켠다. 이어 발목을 좌우로 10회씩 돌린다. 발끝을 몸 쪽으로 당겼다가 밀어내는 동작을 반복하면 종아리 근육이 펌프처럼 작동해 혈액이 심장으로 원활히 돌아간다. 하체 혈류 개선은 노년기 부종과 하지 경련을 줄이는 기본이다. 셋째, 무릎을 세운 채 허리를 부드럽게 비튼다. 침대에 누운 상태에서 무릎을 세우고 좌우로 천천히 넘기면 허리와 골반 주변 근육이 이완된다. 단, 통증이 느껴지면 범위를 줄여야 한다. 관절은 ‘강하게’가 아니라 ‘부드럽게’가 원칙이다. 관절 연골은 자극보다 순환을 원한다. 넷째, 옆으로 돌아 누운 뒤 손을 짚고 천천히 일어난다. 바로 일어나는 대신, 잠시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목을 좌우로 천천히 기울이고 어깨를 돌린다. 목과 어깨는 수면 중 가장 쉽게 굳는 부위다. 이때 시선은 정면을 유지하고, 반동을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다섯째, 서서 하는 마무리 동작이다. 벽이나 의자를 짚고 종아리와 허벅지 뒤쪽을 10~15초씩 늘려준다. 이어 양팔을 벌려 가슴을 열어주면 굽은 어깨를 교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노년기에는 근력보다 균형감각이 더 중요하다. 한 발로 5초씩 서보는 균형 훈련을 더하면 낙상 예방 효과가 커진다. 이 모든 과정은 10분이면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지속’이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순서로 반복하는 습관이 몸을 안심시킨다. 근육은 기억하고, 신경은 적응한다. 하루아침에 유연성이 늘어나지는 않지만, 3주만 지속해도 몸의 반응은 달라진다. 고령자의 스트레칭은 운동이 아니라 ‘관리’에 가깝다. 땀이 날 정도로 무리할 필요도, 통증을 참고 견딜 이유도 없다. 오히려 통증은 경고 신호다. 특히 척추관 협착증이나 퇴행성 관절염이 있는 경우에는 범위를 줄이고 전문의 상담 후 동작을 조정해야 한다. 우리는 종종 노년의 건강을 약에만 기대려 한다. 그러나 하루의 첫 움직임을 바꾸는 일은 그 어떤 보약보다 근본적이다. 아침 스트레칭은 근육을 깨우는 행위이자, 삶에 대한 태도를 다잡는 의식이다. 오늘도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60세 이후의 아침은 서두르지 않는 사람에게 더 오래 머문다. 도움: 이창호 국제중의사 겸 백세보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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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칼럼] 아침, 스트레칭이 하루의 운명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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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거꾸로 보는 세상
- [대한기자신문 송면규 논설위원(박사)] 우리는 흔히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다고 믿는다. 눈으로 확인하고 경험으로 축적한 판단이 곧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금만 멈춰 보면,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는 사실 “현실 그 자체”라기보다 오랜 시간 학습된 해석의 결과일 때가 많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일정한 방향의 삶을 배운다.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고, 성장은 위로 향하며, 속도는 경쟁력이고, 더 많은 선택지는 곧 더 큰 안전이라고 여겨왔다. 이런 인식은 너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아 의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벗어난 시도는 비효율적이거나 위험한 선택으로 보이기 쉽다. 하지만 삶을 살아가다 보면 익숙한 해석으로 설명되지 않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치열하게 올라온 자리에서 예상하지 못한 공허를 느끼기도 하고, 남들보다 늦게 걷는 길에서 오히려 안정과 만족을 발견하기도 한다. 옳다고 믿었던 판단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장면을 마주할 때도 있다.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질문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기준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면?” “혹시 다른 방향에서 바라볼 수는 없을까?” ‘거꾸로 본다’는 것은 기존 질서를 부정하거나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해의 범위를 넓히는 인식의 전환에 가깝다. 같은 풍경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때 보이지 않던 의미가 드러나듯, 사고의 방향을 바꾸는 일은 우리가 세계를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실제로 많은 변화는 이런 관점의 전환에서 시작되었다. 실패를 끝이 아니라 학습으로 바라보는 태도, 경쟁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과정으로 해석하는 시선, 속도를 늦추는 것이 뒤처짐이 아니라 균형을 찾는 선택이라는 깨달음이 그렇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거창한 혁신이 아니라, 익숙함을 잠시 내려놓는 작은 질문에서 출발한다. 현대 사회는 정답을 빠르게 찾는 능력을 강조하지만, 때로는 질문을 바꾸는 일이 더 중요하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기준을 잠시 뒤집어 보는 순간, 삶의 방향뿐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선택과 속도를 인정하는 사회는 바로 이런 시선의 확장에서 가능해진다. 결국 ‘거꾸로 보는 세상’이란 세상을 부정하는 태도가 아니라, 익숙함 속에 숨은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노력이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많은 답을 배우며 살아왔다. 이제는 질문의 방향을 바꿀 때다. 때로는 세상을 바로 보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잠시 거꾸로 바라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위 내용에 관해 조금 더 관심있는 분은 필자가 집필한 “거꾸로 보는 세상”에세이를 e-Book으로 만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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