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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기자신문] 초고령사회, 노동을 다시 설계하다 (1편) 초고령사회 노동 갈등, 해법은 정년이 아니라 ‘이동 설계’이다
    【대한기자신문 김한준 박사 평생교육학, 송곡대학교 객원교수】 문제의 원인이 구조에 있다면 해법 역시 구조여야 한다. 이 글은 초고령사회 노동정책이 어떤 전환 설계를 통해 실행돼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정년을 늘릴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중요한 것은 정년 찬반이 아니라, 왜 이 사회가 매번 같은 질문으로 되돌아오는지에 대한 정책적 성찰이다.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한국에서 중장년은 더 오래 일하지 않으면 생계가 불안하다고 말하고, 청년은 출발선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고 호소한다. 직장 안에서는 임금과 고용을 둘러싼 긴장이 높아지고, 직장 밖에서는 자영업과 중소기업이 인건비 상승과 고금리, 수요 둔화라는 복합 압박을 동시에 견뎌야 한다. 겉으로는 세대 갈등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모두가 불안정한 구조 안에 놓여 있는 상태다. 중장년에게 정년은 특권이 아니라 연금 이전의 소득 공백을 메우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과 실제 은퇴 시점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크고, 이 공백을 개인 저축만으로 메우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반면 청년에게 정년 연장은 신규 채용 축소의 신호로 읽힌다. 기업 역시 연공형 임금체계가 유지되는 한 정년 연장이 곧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다. 이처럼 한쪽의 요구는 다른 쪽의 불안으로 번역되고, 세대 갈등은 공정의 언어를 빌려 증폭된다. 청년과 중장년이 동시에 패자가 되는 구조가 반복되는 이유다. 문제는 정년 논의가 실제로 작동하는 정책 설계와 결합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정년만 조정하고 임금체계와 직무 구조를 그대로 두면 기업은 채용을 줄일 수밖에 없고, 조직은 경직된다. 그 결과 청년은 진입 기회를 잃고, 중장년은 불안정한 잔여 노동으로 밀려난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선택을 강요했을 뿐, 전환의 경로를 제시하지 못했다. 갈등의 원인은 세대의 이기심이 아니라, 구조를 바꾸지 않은 채 결정을 미뤄온 정책 방식에 있다. 초고령사회에서 노동정책의 핵심은 ‘더 오래 일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이동하고 전환하는가’에 있다. 정책의 초점은 정년 연장이 아니라 전환 설계로 옮겨져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연공급 중심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기반으로 단계적으로 전환하고, 일정 연령 이후에는 숙련과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멘토·품질관리·안전·교육·관리 직무로 이동할 수 있도록 직무 재설계를 병행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숙련의 사회적 활용도를 높이는 방향이어야 한다. 기업이 이러한 전환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정책 수단도 필요하다. 청년 채용과 중장년 전환을 동시에 추진하는 기업에 대해 사회보험료 감면이나 법인세 세액 공제 같은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직무 전환 성과가 확인된 기업에는 공공조달이나 정부 사업 참여에서 가점을 부여하는 방식도 검토할 수 있다. 이는 노동시장 내부의 자율적 조정을 촉진하는 신호로 작동할 수 있다. 전환 비용을 개인에게만 맡겨서는 정책이 작동하지 않는다. 중장년 전환교육과 재훈련 비용은 고용보험기금과 직업능력개발기금을 연계해 안정적으로 지원하고, 일정 기간 소득 감소를 완충할 수 있는 전환수당 제도 역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는 새로운 재정 지출이라기보다 기존 고용·훈련 재원의 재배치와 우선순위 조정의 문제에 가깝다. 청년 고용 확대와 중장년 전환이 동시에 이뤄질 경우, 장기적으로는 실업·복지 비용을 줄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정책의 성패는 방향보다 실행 순서에 달려 있다. 정년 논의가 먼저 나오고 임금·직무 개편이 뒤따르면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전환 설계와 재정 분담의 원칙을 먼저 제시할 때 비로소 사회적 신뢰가 형성된다. 초고령사회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세대 갈등은 정책 선택의 결과다. 이제 필요한 것은 세대 간 경쟁을 부추기는 논쟁이 아니라,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구체적 정책 결단이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인생3모작 전문가】는 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 LH인재개발원 미래설계지원센터장, 국토교통인재개발원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기사제보 charlykim@hanmail.net). ※ 이 글은 초고령사회 노동 갈등의 구조적 원인을 짚는 연속 칼럼의 첫 번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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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2026-01-12
  • [토요칼럼] “인생은 더 이상 ‘청·장·노’로 나눌 수 없다”… WHO 새 연령 기준이 던진 경고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칼럼니스트(65세)] = 세계보건기구(WHO)가 2025년 4월 발표한 새로운 사람의 연령 분류는, 우리가 익숙하게 써온 ‘청년–중년–노년’의 삼분법을 근본에서부터 흔들고 있다. 세계 평균수명 73.3세 시대, WHO는 인생을 다섯 단계로 재구성하며 각 시기의 역할과 가치까지 새로 정의했다. 이는 단순한 연령 조정이 아니라 삶의 구조 자체를 전면적으로 재설계하라는 시대적 요구다. WHO의 새 기준은 다음과 같다. ● 미성년(0~17세): 생리·심리 성장의 핵심기 ● 청년(18~65세): 사회의 핵심 노동력, 평생학습 시대 ● 중년(66~79세): 경험 전수와 재도약의 시기 ● 노년(80~99세): 건강 중심의 삶의 질 추구 ● 장수자(100+): 인간 수명의 확장, 사회 지원의 상징 이 분류가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나이는 숫자지만, 그 숫자를 대하는 사회의 태도는 더 이상 과거의 틀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먼저 미성년기는 단지 ‘학교에 다니는 시절’이 아니다. 정서·심리 발달이 절정을 이루는 시기이며 교육·돌봄이 핵심 과제다. 입시 경쟁에 매몰되어 아이들의 내적 성장을 놓치고 있는 우리나라의 교육 체계를 돌아보게 한다. 이어지는 청년기(18~65세)는 WHO가 가장 과감하게 재정의한 영역이다. 단숨에 47년의 광대한 시기를 하나의 ‘청년기’로 묶었다. 이는 지식의 유효기간이 짧아지고 기술 변화가 가속된 현대 사회에서, ‘평생 학습’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한국 사회가 이 구간에 있는 국민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떠안기고 있는 현실 역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중년기(66~79세)는 WHO가 새롭게 의미를 부여한 구간이다. 이들은 더 이상 ‘퇴직 이후 여생을 보내는 집단’이 아니라, 경험과 지혜를 사회로 환원하는 최고급 자원이다. 창업, 교육, 멘토링 등 다양한 방식의 사회적 기여가 가능하며, 지금까지 소외되어온 이 세대의 재발견이 필요하다. 노년기(80~99세)는 ‘오래 사는 것’보다 ‘어떻게 사는가’를 중심에 놓는다. 건강과 삶의 질, 관계 회복, 사회적 활동이 핵심 지표이며, 기존의 연금·병원 중심 복지로는 대응이 불가능하다. 한편 100세 이상의 장수자는 더 이상 신기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 수명의 확장을 상징하는 이 단계는 의료·복지·사회 구조 전반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한다. 이 모든 변화를 관통하는 결론은 명확하다. 우리는 더 이상 20세기식 ‘청·장·노’의 틀로 인생을 설계할 수 없다. 나이는 단순한 생물학적 지표가 아니라, 사회가 어떻게 사람을 대하고 어떤 역할을 부여하는지 보여주는 문화적 지표다. WHO의 새 기준은 우리에게 숙제를 남긴다. 생애주기별 정책 재정립, 평생 학습체계 강화, 중·노년의 사회적 역할 확장, 건강 중심 복지로의 전환 등 사회적 체질 개선 없이는 100세 시대를 온전히 맞을 수 없다. 인생은 이제 더 길고, 더 분화되고, 더 역동적이다. WHO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제 인생을 다시 정의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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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2025-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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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기자신문=치매예방/연속기획⑥] 철학하는 일상, 노년의 뇌를 살찌우다
    [대한기자신문=이강문 건강리포터] 인간의 신체가 시간의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처지듯, 정신 또한 노화라는 자연의 섭리 앞에 무력해지기 마련이다. 흔히 ‘노년의 뇌’를 떠올릴 때 대중의 뇌리에는 퇴행성 질환이나 인지 기능의 저하라는 우울한 단어들이 먼저 자리 잡는다. 하지만 최근의 뇌과학과 철학적 성찰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 노년이야말로 뇌를 가장 풍요롭게 ‘살찌울’ 수 있는, 인생에서 유일무이한 사유의 적기라는 사실이다. ◈고독, 결핍이 아닌 성찰의 공간 노년의 일상은 대개 사회적 역할의 축소와 관계의 단절로 채워진다. 흔히 이를 ‘고독’이라는 병명으로 진단하지만, 철학적 관점에서 이는 ‘단독자’로서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축복의 기회다. 젊은 시절 우리는 생존과 성취를 위해 외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왔다. 그러나 노년에 이르러 외부의 소음이 잦아들 때, 비로소 내면의 깊은 울림이 들리기 시작한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을 ‘세계-내-존재’로 규정하며 일상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자기 존재의 근원을 성찰할 것을 권했다. 노년의 고독은 단순히 홀로 남겨진 상태가 아니라, 평생 쌓아온 경험의 조각들을 하나의 서사로 엮어내는 ‘사유의 실험실’이 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뇌는 새로운 신경 가소성을 발휘한다.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닌, 의미의 맥락을 짚어내는 고차원적인 인지 활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철학적 사유가 뇌에 새기는 문장 뇌과학은 말한다. 우리의 뇌는 쓰면 쓸수록 정교해진다고. 특히 노년기에 칸트의 정언명령을 고민하거나 스피노자의 기쁨을 사유하는 행위는 뇌의 전두엽을 자극하는 가장 강력한 영양제다. 복잡한 철학적 텍스트를 읽고, 그것을 자신의 삶에 비추어 해석하는 과정은 뇌세포 간의 연결망인 시냅스를 새롭게 확장한다. 일상에서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왜 이 길을 걷는가?”, “오늘 먹은 음식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와 같은 근원적인 물음들은 굳어가는 뇌의 회백질에 파동을 일으킨다. 철학은 먼지 쌓인 서가에 꽂힌 고전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낡은 구두를 수선하며 장인의 몰입을 느끼고, 해 질 녘 노을을 바라보며 유한한 삶의 숭고함을 깨닫는 그 찰나의 순간이 모두 철학이다. 이러한 '철학하는 일상'은 치매 예방이라는 실용적 목적을 넘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된다. ◈죽음을 기억하며(Memento Mori), 삶을 사랑하라(Amor Fati) 노년이 직면한 가장 큰 철학적 화두는 단연 ‘죽음’이다. 죽음을 외면하거나 공포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은 뇌를 위축시키고 삶을 수동적으로 만든다. 반면, 죽음을 삶의 완성으로서 수용하는 태도는 현재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세네카는 “인생은 짧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짧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남겨진 시간이 유한함을 자각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지금, 여기’의 가치를 재발견한다.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니체의 ‘아모르 파티’는 노년에게 가장 절실한 위로다. 지나온 과거의 회한과 상처마저도 내 삶의 필연적인 조각이었음을 긍정할 때, 노년의 뇌는 평온과 지혜라는 최고의 결실을 맺는다. 이것이 바로 ‘살찐 뇌’가 선사하는 노년의 우아함이다. ◈사유의 근육을 단련하는 법 노년의 뇌를 살찌우기 위해 거창한 학위나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매일 조금씩 ‘사유의 근육’을 단련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첫째, 낯설게 보기다. 늘 걷던 산책길에서 처음 보는 풀꽃의 이름을 찾아보고, 익숙한 일상을 타자의 시선으로 관찰하라. 둘째, 기록하기다.짧은 일기라도 좋다.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을 문장으로 고정할 때 사유는 비로소 내 것이 된다. 셋째, 대화하기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과 삶의 본질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것은 뇌를 깨우는 가장 활발한 사회적 철학이다. 철학은 노년을 고독한 종말이 아닌, 풍요로운 완성의 시간으로 변모시킨다. 신체는 노쇠할지언정 사유하는 인간은 늙지 않는다. 오늘 당신의 뇌는 어떤 철학적 양식으로 채워지고 있는가. 삶의 마지막 장을 넘기기 전,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철학자가 될 권리와 의무가 있다. 그 깊은 사유의 끝에서 우리는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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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7
  • [대한기자신문=치매예방/연속기획⑤] 시(詩) 한 편의 힘, 감성이 뇌를 깨운다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건강리포트] 우리는 효율의 시대에 살고 있다. 빠른 정보, 짧은 문장, 즉각적인 결론이 환영받는다. 그 속에서 시(詩)는 종종 ‘느린 언어’로 밀려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가장 압축된 형식의 언어가 인간의 뇌를 가장 깊이 흔든다. 시 한 편은 몇 줄에 불과하지만, 그 여운은 긴 시간에 걸쳐 사고를 확장시킨다. 신경과학은 감성과 인지가 분리되지 않았음을 말한다. 감정은 판단을 방해하는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시를 읽을 때 우리의 뇌는 단순히 의미를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리듬과 운율을 따라가며 청각 피질이 반응하고, 이미지가 떠오를 때 시각 연합 영역이 활성화된다. 공감의 문장이 등장하면 변연계가 움직인다. 한 편의 시는 뇌의 여러 회로를 동시에 자극하는 복합 자극이다. 특히 은유는 사고의 지평을 넓힌다. “시간은 흐른다”는 표현 대신 “시간은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고 말할 때, 우리는 추상 개념을 감각적으로 체험한다. 이는 뇌가 새로운 연결을 만들도록 요구한다. 익숙한 언어의 자동 반응을 깨고, 낯선 결합을 통해 사고를 재구성하게 만든다. 시는 뇌의 관성을 흔드는 장르다. 현대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피로를 호소한다. 정보 과잉은 사고를 넓히기보다 오히려 좁힌다. 자극은 강해지지만 깊이는 얕아진다. 이때 시는 일종의 ‘정지 버튼’이 된다. 몇 줄의 문장을 천천히 음미하는 행위는 주의력을 회복시키고, 내면의 감각을 다시 깨운다. 감성의 회복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인지 기능의 회복과도 연결된다. 감정을 느끼는 능력은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 곧 사회적 지능과 직결된다. 교육 현장에서도 시의 역할은 재평가될 필요가 있다. 시험을 위한 분석이 아니라, 감각을 열어 두는 경험으로서의 시 읽기 말이다. 시를 통해 학생은 단어의 다층적 의미를 배우고, 침묵의 여백을 이해한다. 이는 정답을 찾는 능력이 아니라 질문을 확장하는 능력을 기르는 과정이다. 창의성은 새로운 연결에서 탄생한다. 시는 그 연결의 훈련장이다. 시의 힘은 또한 치유의 영역에서 드러난다. 마음의 상처를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못할 때, 시적 언어는 우회로가 된다. “아프다”는 말보다 “겨울이 오래 머문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때가 있다. 언어는 감정을 안전하게 담아내는 그릇이 된다. 이를 통해 개인은 자신의 감정을 객관화하고, 다시 삶의 방향을 찾는다. 우리는 종종 시를 현실과 동떨어진 장르로 오해한다. 그러나 시는 가장 현실적인 언어다. 삶의 균열과 기쁨, 상실과 희망을 가장 압축적으로 기록한다. 짧은 문장이 긴 사유를 이끈다. 그 힘은 속도가 아니라 깊이에서 나온다. 혹여, 시 한 편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지 모른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한 사람의 시선을 바꿀 수는 있다. 시선이 바뀌면 판단이 달라지고, 판단이 달라지면 선택이 달라진다. 감성은 약함이 아니라 인간다움의 핵심이다. 그 감성을 깨우는 가장 정제된 도구가 시다. 효율의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 자주 시를 읽어야 한다. 몇 줄의 언어가 뇌를 깨우고, 깨어난 뇌가 다시 삶을 깊게 만든다. ● 읽고 끝내기보다 확인까지 이어지는 기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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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4
  • [대한기자신문=치매예방/연속기획④] 대화와 공감, 치매를 늦추는 가장 인간적인 처방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건강리포트] 고령사회로 접어들며 치매는 더 이상 특정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과제가 되었다. 많은 이들이 예방을 위해 영양제와 약물, 퍼즐 훈련을 떠올리지만 정작 가장 강력하면서도 기본적인 방법은 종종 간과된다. 그것은 사람과의 대화, 그리고 공감이다. 뇌는 정보를 저장하는 기관이기 이전에 관계를 처리하는 기관이며, 관계가 줄어들 때 인지 기능은 빠르게 약해진다. 노년의 뇌는 단순히 늙어서 약해지는 것이 아니다. 사용되지 않는 기능이 먼저 줄어든다. 특히 언어 이해, 감정 해석, 상황 판단과 같은 사회적 인지 능력은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유지된다. 혼자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은 길지만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짧아질수록 기억력 저하가 빨라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뇌는 자극의 양보다 ‘의미 있는 자극’을 더 중요하게 처리한다. 대화는 단순한 말의 교환이 아니다. 상대의 표정을 읽고 맥락을 이해하며 적절한 반응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전두엽, 측두엽, 변연계가 동시에 작동한다. 질문을 듣고 기억을 꺼내고 감정을 조절하며 표현을 선택하는 일련의 과정은 복합적인 신경망을 활성화한다. 이는 어떤 두뇌 게임보다 실제적이고 입체적인 인지 훈련이다. 특히 과거 경험을 떠올려 이야기할 때 자전적 기억 체계가 반복적으로 자극되면서 기억 유지 효과가 커진다. 여기에 공감이 더해질 때 효과는 더욱 커진다. 공감은 단순히 듣는 태도가 아니라 감정을 이해하고 반응하는 과정이다. 인간의 뇌는 감정을 동반한 경험을 더 오래 저장한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에 반응하고 이해받는 경험은 정서적 안정과 함께 기억 회로를 강화한다. 반대로 무시되거나 단절된 환경은 인지 저하뿐 아니라 우울을 유발하고, 우울은 다시 기억력 저하를 가속시키는 악순환을 만든다. 가정에서의 실천은 어렵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질문의 방식이다. 사실 확인형 질문보다 경험 회상형 질문이 효과적이다. “약 드셨어요?”보다 “오늘 가장 즐거웠던 일이 무엇이었나요?”가 더 많은 뇌 활동을 유도한다. 정답을 요구하기보다 이야기를 이어가게 하는 대화가 필요하다. 속도를 맞추고 말을 끊지 않으며 감정을 되돌려 주는 반응은 치료적 효과를 만든다. 대화의 목적은 교정이 아니라 참여다. 또한 반복을 피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하는 것은 기억이 사라지는 과정이 아니라 기억을 붙잡으려는 노력이다. 이를 지적하기보다 함께 들어주는 태도는 불안을 줄이고 인지 기능을 안정시킨다. 기억력은 정확성보다 안정감 속에서 더 오래 유지된다. 뇌는 안전하다고 느낄 때 더 적극적으로 작동한다. 치매 예방은 거창한 기술 이전에 관계의 회복에서 시작된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며 뇌 역시 사회적 환경 속에서 가장 건강하게 유지된다. 하루 몇 분의 진심 어린 대화가 값비싼 치료보다 더 큰 효과를 만들 수 있다. 결국 기억을 붙드는 힘은 약이 아니라 관계이며, 공감은 가장 인간적인 치료이자 가장 오래된 의학이다. 말이 오가는 집은 조용하지 않을지 몰라도 그 속의 뇌는 천천히 늙는다. ● 읽고 끝내기보다 확인까지 이어지는 기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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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1
  • [치매예방/연속기획③]책 읽는 노년, 뇌를 단단하게 만드는 힘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건강리포트] 노년의 건강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혈압, 근력, 관절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삶의 자율성을 결정짓는 마지막 기반은 신체가 아니라 인지 기능이다. 기억하고 판단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 유지될 때 비로소 독립적인 삶이 가능하다. 그 핵심 훈련이 바로 독서다. 독서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뇌 구조를 유지시키는 가장 경제적이고 지속 가능한 인지 운동이다. 나이가 들면 뇌는 자연스럽게 처리 속도가 느려지고 단기 기억 저장 능력이 감소한다. 이를 ‘퇴화’로만 이해하면 소극적 관리에 머물지만, 현대 신경과학은 다른 사실을 보여준다. 뇌는 평생 변화하는 가소성의 기관이며 사용한 회로는 강화되고 사용하지 않은 회로는 약해진다. 즉 노년의 인지 기능은 운명이 아니라 사용량의 결과에 가깝다. 독서는 이 사용량을 가장 균형 있게 늘리는 활동이다. 독서가 특별한 이유는 뇌의 한 부위만 자극하지 않기 때문이다. 글자를 해독할 때는 시각피질이 작동하고, 의미를 이해할 때는 측두엽 언어 영역이 활성화된다. 내용의 흐름을 따라갈 때 전두엽의 실행 기능이 동원되고, 등장인물의 감정을 공감할 때 변연계가 반응한다. 한 문장을 이해하는 과정에 기억·추론·감정·판단 체계가 동시에 작동한다. 걷기나 퍼즐이 특정 기능을 단련한다면 독서는 뇌 전체의 협력 능력을 훈련한다. 특히 이야기 읽기는 노년기 정서 안정에도 영향을 준다. 사람은 경험의 범위가 줄어들수록 사고가 경직되기 쉽다. 그러나 책 속에서 다양한 상황과 타인의 삶을 반복적으로 접하면 판단의 유연성이 유지된다. 이는 단순한 교양 축적이 아니라 감정 조절 능력과 직결된다. 우울과 불안은 외부 자극 감소와 인지 자극 감소가 함께 올 때 심해지는데, 독서는 외부 세계와의 간접 접촉을 회복시켜 심리적 고립을 완화한다. 효과를 높이기 위한 방법도 중요하다. 첫째, 속도보다 이해 중심으로 읽어야 한다. 빠르게 넘기는 독서는 정보 소비에 가깝고, 천천히 의미를 구성하는 독서는 인지 훈련에 가깝다. 둘째, 소리 내어 읽기가 도움이 된다. 발화 과정이 추가되면서 언어 운동 회로가 함께 활성화된다. 셋째, 읽은 내용을 짧게 요약하거나 대화로 나누면 기억 고정 효과가 크게 증가한다. 뇌는 입력보다 출력 과정에서 더 강하게 강화된다. 독서의 가치는 치매 예방이라는 단어로만 축소될 필요가 없다. 책을 읽는 노년은 단순히 병을 늦추는 것이 아니라 판단력을 유지한다. 판단력은 인간의 존엄과 연결된다. 무엇을 먹고, 어디를 가고, 누구를 신뢰할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때 삶의 주도권이 남는다. 결국 독서는 기억을 지키는 활동이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는 활동이다. 노년의 시간은 줄어드는 시간이 아니라 정리되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텔레비전이 채우면 기억은 흘러가고, 책이 채우면 생각이 남는다. 하루 서너 쪽이라도 좋다. 꾸준히 읽는 행위는 뇌를 단단하게 만들고, 단단한 뇌는 삶을 흔들리지 않게 만든다. 책을 펴는 순간 노년은 늦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 읽고 끝내기보다 확인까지 이어지는 기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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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1
  • [치매예방/연속기획②] 망각의 시대, 기억의 인류학...파편화된 세계에서 나의 서사를 사수하라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건강리포트]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기록하지만 기억하지 않는다. 손가락 끝에 모든 지식이 매달려 있는 시대, 역설적이게도 현대인의 뇌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비워지고 있다. ‘검색’이 ‘사유’를 대체하고 ‘저장’이 ‘학습’을 앞지른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망각의 파고를 넘고 존엄한 기억의 주권을 되찾을 것인가. ■ ‘디지털 치매’를 넘어 ‘맥락의 소멸’로 과거의 기억이 삶의 궤적을 증명하는 켜켜이 쌓인 지층이었다면, 오늘날의 기억은 휘발성 강한 스냅숏의 나열이다. 스마트폰은 우리에게 무한한 저장 공간을 약속했지만, 정작 그 데이터를 내면화할 시간은 앗아갔다. 심리학계에서 말하는 ‘구글 효과(Google Effect)’는 단순히 기억력의 감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정보를 만났을 때 ‘무엇인가’를 기억하려 하기보다 ‘어디서 찾을 것인가’에만 집중하게 함으로써, 지식의 체계화를 방해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맥락(Context)’이 거세된다는 점이다. 파편화된 정보는 뇌세포 사이의 단단한 연결망(시냅스)을 형성하지 못한 채 부유하다 사라진다. 내가 직접 겪고 고뇌하며 얻은 ‘경험적 기억’이 사라진 자리를 알고리즘이 추천한 ‘타인의 취향’이 채우고 있다. 망각은 이제 단순한 생리적 현상이 아니라, 주체적인 삶의 서사를 잃어버리는 실존적 위기가 되었다. ■ 망각에 저항하는 기술: ‘느린 기록’과 ‘의도적 연결’ 그렇다면 이 ‘망각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전문가들은 역설적으로 ‘아날로그적 불편함’으로의 회귀를 권고한다. * 외화(Externalization)를 넘어선 내면화: 단순히 사진을 찍거나 링크를 저장하는 것은 기억이 아니다. 단 한 문장이라도 자신의 언어로 요약하고, 그것이 기존의 지식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반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 간격 반복(Spaced Repetition)의 미학:뇌는 한 번에 입력된 정보보다 일정한 시차를 두고 반복 노출된 정보를 중요하게 여긴다. 에빙하우스의 망각 곡선을 거스르는 유일한 방법은 효율적인 ‘다시 보기’다. * 맥락의 재구성: 기억은 고정된 데이터가 아니라 재구성되는 예술이다. 일기를 쓰거나 독후감을 남기는 행위는 파편화된 하루에 ‘의미’라는 뼈대를 세우는 작업이다. ■ 기억은 곧 나 자신이다 기억을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시험 성적을 올리거나 업무 효율을 높이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기억은 한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재료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사랑했는지, 어떤 고통을 건너왔는지를 기억하지 못할 때 인간은 외부 자극에 흔들리는 부표로 전락한다. 망각이 미덕이 되는 시대라지만, 지켜내야 할 기억의 성채는 분명히 존재한다. 거대한 데이터 센터에 나의 기억을 전적으로 의탁하는 대신, 가끔은 기기를 끄고 내면의 도서관을 정리해야 한다. 결국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우리가 지켜내야 할 것은 데이터의 양이 아니라, 그 데이터를 관통하는 삶의 숨결이다. [붙임] 이 기사가 마음에 닿으셨다면, 주변의 작은 광고 한 번 눌러 주시면 힘이 됩니다.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 나은 기사와 정직한 보도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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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0
  • [대한기자신문] 초고령사회, 노동을 다시 설계하다 (1편) 초고령사회 노동 갈등, 해법은 정년이 아니라 ‘이동 설계’이다
    【대한기자신문 김한준 박사 평생교육학, 송곡대학교 객원교수】 문제의 원인이 구조에 있다면 해법 역시 구조여야 한다. 이 글은 초고령사회 노동정책이 어떤 전환 설계를 통해 실행돼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정년을 늘릴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중요한 것은 정년 찬반이 아니라, 왜 이 사회가 매번 같은 질문으로 되돌아오는지에 대한 정책적 성찰이다.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한국에서 중장년은 더 오래 일하지 않으면 생계가 불안하다고 말하고, 청년은 출발선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고 호소한다. 직장 안에서는 임금과 고용을 둘러싼 긴장이 높아지고, 직장 밖에서는 자영업과 중소기업이 인건비 상승과 고금리, 수요 둔화라는 복합 압박을 동시에 견뎌야 한다. 겉으로는 세대 갈등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모두가 불안정한 구조 안에 놓여 있는 상태다. 중장년에게 정년은 특권이 아니라 연금 이전의 소득 공백을 메우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과 실제 은퇴 시점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크고, 이 공백을 개인 저축만으로 메우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반면 청년에게 정년 연장은 신규 채용 축소의 신호로 읽힌다. 기업 역시 연공형 임금체계가 유지되는 한 정년 연장이 곧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다. 이처럼 한쪽의 요구는 다른 쪽의 불안으로 번역되고, 세대 갈등은 공정의 언어를 빌려 증폭된다. 청년과 중장년이 동시에 패자가 되는 구조가 반복되는 이유다. 문제는 정년 논의가 실제로 작동하는 정책 설계와 결합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정년만 조정하고 임금체계와 직무 구조를 그대로 두면 기업은 채용을 줄일 수밖에 없고, 조직은 경직된다. 그 결과 청년은 진입 기회를 잃고, 중장년은 불안정한 잔여 노동으로 밀려난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선택을 강요했을 뿐, 전환의 경로를 제시하지 못했다. 갈등의 원인은 세대의 이기심이 아니라, 구조를 바꾸지 않은 채 결정을 미뤄온 정책 방식에 있다. 초고령사회에서 노동정책의 핵심은 ‘더 오래 일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이동하고 전환하는가’에 있다. 정책의 초점은 정년 연장이 아니라 전환 설계로 옮겨져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연공급 중심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기반으로 단계적으로 전환하고, 일정 연령 이후에는 숙련과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멘토·품질관리·안전·교육·관리 직무로 이동할 수 있도록 직무 재설계를 병행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숙련의 사회적 활용도를 높이는 방향이어야 한다. 기업이 이러한 전환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정책 수단도 필요하다. 청년 채용과 중장년 전환을 동시에 추진하는 기업에 대해 사회보험료 감면이나 법인세 세액 공제 같은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직무 전환 성과가 확인된 기업에는 공공조달이나 정부 사업 참여에서 가점을 부여하는 방식도 검토할 수 있다. 이는 노동시장 내부의 자율적 조정을 촉진하는 신호로 작동할 수 있다. 전환 비용을 개인에게만 맡겨서는 정책이 작동하지 않는다. 중장년 전환교육과 재훈련 비용은 고용보험기금과 직업능력개발기금을 연계해 안정적으로 지원하고, 일정 기간 소득 감소를 완충할 수 있는 전환수당 제도 역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는 새로운 재정 지출이라기보다 기존 고용·훈련 재원의 재배치와 우선순위 조정의 문제에 가깝다. 청년 고용 확대와 중장년 전환이 동시에 이뤄질 경우, 장기적으로는 실업·복지 비용을 줄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정책의 성패는 방향보다 실행 순서에 달려 있다. 정년 논의가 먼저 나오고 임금·직무 개편이 뒤따르면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전환 설계와 재정 분담의 원칙을 먼저 제시할 때 비로소 사회적 신뢰가 형성된다. 초고령사회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세대 갈등은 정책 선택의 결과다. 이제 필요한 것은 세대 간 경쟁을 부추기는 논쟁이 아니라,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구체적 정책 결단이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인생3모작 전문가】는 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 LH인재개발원 미래설계지원센터장, 국토교통인재개발원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기사제보 charlykim@hanmail.net). ※ 이 글은 초고령사회 노동 갈등의 구조적 원인을 짚는 연속 칼럼의 첫 번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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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12
  • [대한기자신문=건강 칼럼] 스마트폰이 주치의? ‘디지털 헬스’가 시니어의 소외가 되지 않으려면...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건강리포터] 65세, 통계청이 정의하는 고령층의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대면하게 되는 현실은 생각보다 냉혹하다. 몸의 여기저기서 보내는 이상 신호는 '노화'라는 이름의 불가항력적인 통지서처럼 날아든다. 과거의 노년이 단순히 쇠락을 견디는 시간이었다면, 2026년 현재의 노년은 기술의 힘을 빌려 그 쇠락의 속도를 제어하고 삶의 질을 재정의하는 ‘능동적 관리’의 시대로 진입했다. 그 중심에는 우리 손 안의 작은 기기, 스마트폰이 있다. ■ ‘근육 연금’만큼 중요한 ‘데이터 저축’의 시대 최근 의료계와 IT 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디지털 헬스케어’다. 특히 65세 이상의 시니어들에게 손목 위의 스마트워치는 단순한 시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24시간 심박수를 체크하고, 수면의 질을 분석하며, 예기치 못한 넘어짐을 감지해 긴급 메시지를 보낸다. 이제 건강 관리는 병원 문턱을 넘을 때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움직임이 데이터로 기록되는 과정에서 완성된다.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건강 관리는 이른바 ‘건강의 민주화’를 가져올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과거에는 고가의 정밀 검사를 통해서만 알 수 있었던 신체 변화를 이제는 누구나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전송되는 활동량 리포트는 시니어들에게 “오늘 30분만 더 걸어보자”는 구체적인 동기를 부여한다. 기록된 데이터가 쌓여 '나만의 건강 지도'가 만들어질 때, 노년의 불안은 관리가능한 통제권 안으로 들어온다. ■ ‘디지털 격차’라는 새로운 건강 불평등 하지만 기술의 장밋빛 전망 뒤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이를 향유하는 층과 소외되는 층 사이의 이른바 ‘디지털 헬스 디바이드(Digital Health Divide)’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스마트폰 앱의 복잡한 UI(사용자 환경) 앞에서 좌절하는 시니어들에게 “스마트워치로 혈압을 관리하라”는 조언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대한기자신문이 주목해야 할 지점도 바로 여기다. 건강관리의 주도권이 디지털로 옮겨가면서, 기기 숙련도가 낮은 빈곤층이나 소외계층 시니어들은 보건의료 서비스의 사각지대로 더 깊숙이 밀려나고 있다. 최신 스마트워치가 고독사를 방지하고 만성질환을 예방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는 그저 '비싸고 다루기 힘든 시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개인의 정보 습득 능력을 넘어, 국가가 해결해야 할 새로운 형태의 건강 불평등 문제다. ■ 기술은 도구일 뿐, 핵심은 ‘연결’과 ‘돌봄’ 결국 스마트폰이 진정한 주치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술의 인간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단순히 기기를 보급하는 것을 넘어, 시니어들이 자신의 데이터를 스스로 해석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디지털 문해력(Literacy) 교육이 공공 서비스 차원에서 강화되어야 한다. 또, 기기가 내뱉는 수치보다 중요한 것은 그 수치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대면 돌봄’과의 결합이다. 스마트워치가 심장 이상을 감지했을 때 이를 즉각적으로 해석해 줄 지역사회 보건소의 전담 인력이 있고, 이상 수치가 발견되었을 때 안부를 물어줄 이웃이 존재할 때 기술은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 65세 이후의 삶은 더 이상 뒷방으로 물러나는 시간이 아니다. 스마트 기기를 통해 내 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데이터로 증명되는 활기찬 일상을 영위하는 것은 시니어의 권리다. 기술은 차가운 금속과 회로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것이 지향하는 바는 인간의 존엄한 노년이어야 한다. '스마트한 65세'는 단순히 기기를 잘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 기술을 도구 삼아 자신의 삶을 끝까지 책임지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제 고령층의 손에 스마트폰을 쥐여주는 것을 넘어, 그 안의 데이터가 그들의 생명을 지키는 실질적인 안전망이 될 수 있도록 촘촘한 ‘디지털 복지’ 설계를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100세 시대의 건강한 풍경이다.
    • 젊은어른
    • 건강•운동
    2026-01-05
  • [토요칼럼] “인생은 더 이상 ‘청·장·노’로 나눌 수 없다”… WHO 새 연령 기준이 던진 경고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칼럼니스트(65세)] = 세계보건기구(WHO)가 2025년 4월 발표한 새로운 사람의 연령 분류는, 우리가 익숙하게 써온 ‘청년–중년–노년’의 삼분법을 근본에서부터 흔들고 있다. 세계 평균수명 73.3세 시대, WHO는 인생을 다섯 단계로 재구성하며 각 시기의 역할과 가치까지 새로 정의했다. 이는 단순한 연령 조정이 아니라 삶의 구조 자체를 전면적으로 재설계하라는 시대적 요구다. WHO의 새 기준은 다음과 같다. ● 미성년(0~17세): 생리·심리 성장의 핵심기 ● 청년(18~65세): 사회의 핵심 노동력, 평생학습 시대 ● 중년(66~79세): 경험 전수와 재도약의 시기 ● 노년(80~99세): 건강 중심의 삶의 질 추구 ● 장수자(100+): 인간 수명의 확장, 사회 지원의 상징 이 분류가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나이는 숫자지만, 그 숫자를 대하는 사회의 태도는 더 이상 과거의 틀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먼저 미성년기는 단지 ‘학교에 다니는 시절’이 아니다. 정서·심리 발달이 절정을 이루는 시기이며 교육·돌봄이 핵심 과제다. 입시 경쟁에 매몰되어 아이들의 내적 성장을 놓치고 있는 우리나라의 교육 체계를 돌아보게 한다. 이어지는 청년기(18~65세)는 WHO가 가장 과감하게 재정의한 영역이다. 단숨에 47년의 광대한 시기를 하나의 ‘청년기’로 묶었다. 이는 지식의 유효기간이 짧아지고 기술 변화가 가속된 현대 사회에서, ‘평생 학습’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한국 사회가 이 구간에 있는 국민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떠안기고 있는 현실 역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중년기(66~79세)는 WHO가 새롭게 의미를 부여한 구간이다. 이들은 더 이상 ‘퇴직 이후 여생을 보내는 집단’이 아니라, 경험과 지혜를 사회로 환원하는 최고급 자원이다. 창업, 교육, 멘토링 등 다양한 방식의 사회적 기여가 가능하며, 지금까지 소외되어온 이 세대의 재발견이 필요하다. 노년기(80~99세)는 ‘오래 사는 것’보다 ‘어떻게 사는가’를 중심에 놓는다. 건강과 삶의 질, 관계 회복, 사회적 활동이 핵심 지표이며, 기존의 연금·병원 중심 복지로는 대응이 불가능하다. 한편 100세 이상의 장수자는 더 이상 신기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 수명의 확장을 상징하는 이 단계는 의료·복지·사회 구조 전반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한다. 이 모든 변화를 관통하는 결론은 명확하다. 우리는 더 이상 20세기식 ‘청·장·노’의 틀로 인생을 설계할 수 없다. 나이는 단순한 생물학적 지표가 아니라, 사회가 어떻게 사람을 대하고 어떤 역할을 부여하는지 보여주는 문화적 지표다. WHO의 새 기준은 우리에게 숙제를 남긴다. 생애주기별 정책 재정립, 평생 학습체계 강화, 중·노년의 사회적 역할 확장, 건강 중심 복지로의 전환 등 사회적 체질 개선 없이는 100세 시대를 온전히 맞을 수 없다. 인생은 이제 더 길고, 더 분화되고, 더 역동적이다. WHO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제 인생을 다시 정의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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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2025-12-13
  • [대한기자신문] 막힌 경락을 푸는 힘...중의학이 말하는 마사지의 진정한 가치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건강리포터] 중의학에서 마사지는 단순한 ‘근육 이완’의 기법이 아니다. 이는 수천 년 동안 축적된 인체 이해를 바탕으로, 기혈(氣血)의 흐름을 바로잡고 장부(臟腑)의 기능을 조절하며 전신 균형을 회복시키는 치유학의 한 축이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마사지 치료가 대중화되고 있지만, 중의학이 바라보는 그 본질적 가치는 여전히 깊이 이해되지 않은 채 표면적 효능만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경락을 풀어 기혈의 흐름을 정상화하는 것은 단순한 자극을 넘어, 몸의 근본적인 회복력을 깨우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중의학적 마사지는 명확한 차별성을 지닌다. 중의학은 인체를 단절된 기관의 집합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흐르는 ‘하나의 생명체계’로 본다. 이 체계를 연결하는 통로가 바로 경락이며, 기와 혈의 흐름은 생명 활동의 바탕이다. 스트레스, 과로, 찬 기운, 감정 변화, 잘못된 식습관 등으로 경락이 막히면 기혈은 정체되고, 이는 통증·피로·소화장애·면역력 저하 등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난다. 이때 마사지는 막힌 경락을 열어 기혈 순환을 회복시키는 핵심 수단으로 작용한다. 즉, 아픈 부위를 직접 ‘힘으로 누르는 것’이 아니라, 인체 전체의 흐름을 바르게 조정하는 정교한 중의학적 접근이다. 특히 목·어깨·허리 통증은 현 시대의 대표적인 ‘기혈 정체형 증상’이다. 게다가 장시간 컴퓨터와 스마트폰 사용으로 승모근과 후경부 근육이 경직되면 기혈이 상초에서 정체된다. 중의학에서는 이를 단순한 근육 문제로 보지 않고, 간(肝)과 담(膽)의 기운이 울체되면서 스트레스와 어긋난 순환이 겹쳐 생기는 복합적 불균형으로 이해한다. 이때 경락 마사지(推拿)는 경직된 근육을 풀어줄 뿐 아니라, 간경·담경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여 머리의 탁한 기운을 내려주고, 가슴의 답답함을 해소하며, 심신의 순환을 되살리는 데 효과적이다. 마사지 이후 머리가 맑아지고 호흡이 깊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 중의학적인 마사지는 장부 기능 회복에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예컨대 복부의 경우, 비위(脾胃)의 기능이 약해지거나 소화가 더디면 복부 근육과 피부가 뭉치고 차가워지며 기혈의 흐름이 정체되기 쉽다. 이때 복부 마사지는 단순한 소화 촉진을 넘어, 비위의 운화작용을 돕고 장내 혈류를 개선하며, 몸 전체의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배를 따뜻하게 하면 건강이 돌아온다’는 중의학의 오래된 명제는 마사지가 단순한 외부 자극이 아니라, 내부 장부 기능을 바로 세우는 주요한 치료 수단임을 상기시킨다. 정신적 안정 또 마사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중요한 효과다. 중의학에서는 감정이 기의 흐름을 좌우한다고 본다. 기가 울체되면 화병, 불면, 가슴 답답함, 이유 없는 짜증 등이 생기는데, 이러한 증상은 종종 약보다 마사지가 먼저 효과를 보이기도 한다. 특히 백회, 풍지, 태충 등 특정 혈자리를 중심으로 한 이완 마사지는 과한 생각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며, 교감신경의 과흥분을 누그러뜨리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현대인의 정서적 피로는 단순히 ‘마음의 피곤함’이 아니라 기혈의 흐름 불균형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노년층에게 마사지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의학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기혈이 자연스럽게 줄어들고 순환이 느려진다고 본다. 따라서 경락을 열어주는 마사지가 관절의 뻣뻣함을 줄이고, 보행 균형을 개선하며, 전신의 따뜻함을 되찾게 한다. 특히 하지 혈류가 좋아지면 야간근육경련, 저림, 차가운 발 등 노년층에게 흔한 증상이 현저히 완화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마사지란 단순한 ‘시원함’을 넘어, 노화 과정에서 잃어가는 생명 에너지를 보완해주는 중요한 건강관리 수단이다. 중의학의 관점에서 본 마사지는 ‘누르고 문지르는 기술’이 아니라, ‘기와 혈의 길을 트는 의학’이다. 현대 사회의 혈액순환 장애, 만성피로, 불면, 스트레스성 통증은 대부분 기혈 정체에서 비롯되므로, 중의학 마사지의 가치와 필요성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몸은 스스로 치유할 힘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 치유력을 깨우는 열쇠가 때로는 한의학적 원리에 따른 섬세한 손끝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도움: 이창호 국제중의사, 백세보감 저자 ※ 본 내용은 전문가 자문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나, 개별 건강 상태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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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03
  • [대한기자신문=단독] 항암의 길 위에서, 전신 마사지는 왜 ‘조용한 치료’가 되는가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건강리포터] 항암 치료를 받는 환자에게 전신 마사지는 단순한 위로의 행위가 아니다. 중의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는 기혈(氣血)의 흐름을 조정하고, 장부(臟腑)의 기능을 부드럽게 일깨우며, 인체가 스스로 회복하려는 자연 치유력을 강화하는 하나의 치료적 행위다. 특히 주 2회의 규칙적인 마사지는 항암 과정에서 흔히 동반되는 피로, 식욕 저하, 수면 장애, 근육 긴장, 정서적 불안 등을 완화하는 데 의미 있는 역할을 한다. 대한기자신문 논조에서 말하자면, 그것은 ‘유난하지 않으면서도 깊은 체질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조용한 개입’이자, 환자의 일상성을 지켜내는 치료적 돌봄에 가깝다. 중의학에서 항암 치료는 단순히 암세포와의 전투가 아니라, 인체 전체의 균형을 회복하는 여정으로 본다. 항암제는 불가피하게 정기(正氣)를 소모시키고, 기혈의 순환을 막으며, 위장 기능과 수분 대사에 불균형을 초래한다. 그 결과 환자는 기허(氣虛), 혈허(血虛), 담음(痰飮), 어혈(瘀血)의 상태에 놓이기 쉽다. 전신 마사지는 이러한 불균형을 완화하는 데 의미가 있다. 부드러운 압박과 리듬은 경락을 관통하며 막힌 기운을 흐르게 하고, 근육과 연부 조직에 쌓인 담·어혈을 흩어지게 한다. 이는 항암 치료 이후 흔히 호소하는 ‘기운이 빠지고 몸이 무겁다’는 전신권태감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 또 주 2회의 일정한 간격은 인체의 생체 리듬을 회복시키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중의학은 인체의 회복력이 일정한 주기를 통해 되살아난다고 보는데, 지나치게 자주 시행하는 자극은 기를 흩뜨리고, 반대로 지나치게 긴 간격은 변화를 만들지 못한다. 주 2회는 기혈을 흥분시키지 않으면서도 꾸준히 순환을 북돋는 안정적 빈도다. 특히 항암 치료 중에는 위기(衛氣)의 방어력이 약해지므로 강한 지압이나 무리한 조작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부드럽고 리듬감 있는 전신 마사지는 이러한 점에서 매우 적합한 방식이다. 정서적 안정 또한 간과할 수 없다. 항암 과정은 신체의 고통뿐 아니라, 치료에 대한 불안, 미래에 대한 두려움, 우울감 등 복합적인 정서적 부담을 동반한다. 중의학에서 간(肝)은 기의 순환과 감정 조절을 주관하는 기관으로 본다. 마사지로 전신의 긴장이 풀리면 간기의 울결이 자연스럽게 해소되고, 심(心)의 불안도 함께 완화된다. 실제로 치료를 받은 환자들은 ‘마사지를 받고 나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밤에 잠이 많이 좋아진다’는 경험을 자주 말한다. 이는 신경계뿐 아니라 오행(五行)적 측면에서도 조화를 되찾는 과정이다. 혈액 순환의 개선 또한 주목할 부분이다. 항암제는 말초혈관을 수축시키고, 손발 저림이나 냉증을 유발한다. 전신 마사지는 모세혈관까지 혈류를 증가시키며 어혈을 풀어 말초신경 자극을 완화한다. 중의학적으로 이는 ‘활혈(活血)’과 ‘통락(通絡)’의 작용으로 설명된다. 혈이 움직이면 온기가 돌고, 온기가 돌면 통증이 줄어든다. 이는 환자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몸의 무거움, 저릿함, 시림 등을 줄이는 데 실질적 도움을 준다. 또 림프 순환의 활성화는 항암 치료 중 발생하기 쉬운 체액 정체, 부종, 염증을 줄이는 데 기여한다. 중의학의 ‘수습(水濕)’ 개념에 해당하는 이 작용은 몸속 불필요한 습적을 배출하여 몸의 가벼움을 회복하도록 돕는다. 항암 과정에서 수분 대사가 흐트러지면 다리가 붓거나 팔다리가 무거워지는데, 전신 마사지는 이를 완화하는 자연스러운 지원 요법으로 기능할 수 있다. 게다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신 마사지가 환자의 ‘삶의 감각’을 회복시키는 과정이라는 사실이다. 항암 치료는 흔히 환자의 주체성을 빼앗고, 몸의 감각을 둔화시키는 경험을 동반한다. 마사지는 치료의 능동적 참여자라는 감각을 되찾게 하고, 몸이 다시 자신과 연결돼 있다는 신호를 준다. 이는 의학적 효과를 넘어 삶의 품질을 지키는 중요한 행위다. 결국, 주 2회 전신 마사지는 항암 치료의 부작용을 단번에 해결하는 만능 처방은 아니다. 그러나 중의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는 기혈의 흐름을 바로잡고, 정서적 안정을 다독이며, 몸의 회복력을 높여 항암 과정 전반의 부담을 낮추는 ‘조용한 동반자’ 역할을 한다. 이는 서양의학적 치료와 충돌하지 않으면서도 인체 본연의 균형을 회복시킨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항암 치료로 지친 몸과 마음을 보듬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치유의 길, 그것이 바로 규칙적인 전신 마사지가 갖는 가치를 말해준다. 도움: 이창호 국제중의사, 백세보감 저자 ※ 본 내용은 전문가 자문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나, 개별 건강 상태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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