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기자신문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한국 정부가 동북아 3국을 표기하는 공식 순서를 ‘한국–중국–일본’으로 확정했다.
표면적으로는 행정 문서의 일관성을 위한 조정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정교한 외교 감각과 전략적 메시지가 배어 있다.
정권 교체마다 뒤바뀌던 표기 방식은 그동안 국가 노선의 갈피를 보여주는 상징이자, 한반도 외교의 방향성을 가늠하는 바로 미터였다.
따라서 이번 결정은 단순한 ‘순서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외교가 어떤 균형점을 지향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선언이다.
윤석열 전 정부 시절 ‘한·일·중’ 표기가 잦아진 것은 미·일과의 안보 협력을 강화하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었다.
이것은 시대적 필요라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그만큼 중국과의 관계는 소모적 갈등과 전략적 긴장이 늘어났다.
대중 관계가 흔들릴 때마다 산업 공급망 불안, 관광·문화 교류 위축, 민간 감정의 경직 등 여러 파장이 이어졌던 것도 사실이다.
이재명 정부가 다시 ‘한·중·일’로 표준화한 결정에는 중국과의 관계 복원을 통한 외교적 안정의 재구축이라는 의도가 읽힌다.

이 대통령은 지난 11월 1일 시진핑 주석과의 회담에서 “양국이 쌓아온 깊은 우정과 역사는 흔들리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후 올린 이 대통령의 페이스북 글에서도 “양국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성과”를 약속했다.
이 발언들은 단순한 예의적 수사가 아니라, 한·중 관계를 실익 중심으로 재정착시키려는 실용 외교의 방향을 드러낸다.
전문가들은 이번 표기 표준화가 한국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발견한 ‘새로운 균형점’을 시사한다고 분석한다.
한국의 최대 교역국은 여전히 중국이며, 제조업 기반에서도 중국 시장과 공급망의 영향력은 여전히 크다.
일본과의 협력은 중요하지만, 중국과의 관계를 경직시키는 순간 한국 경제 전반의 부담이 커진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또 최근 한국 사회에서 발생해 온 반중(反中) 시위와 감정적 대립에 대해 중국 정부가 “근본적 해결책”을 요구한 점도 정부가 고려한 대목으로 보인다.
국내 여론의 건강한 비판과 외교적 관계는 별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감정의 진폭을 관리하면서도 국익 중심의 현실적 외교를 펼치는 일이다.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의 발언은 의미를 더한다. 그는 이번 결정을 두고 “동북아 삼각 구도 속에서 한국이 주도적 균형을 회복하려는 첫 단계”라며 “한·중 관계를 보다 부드럽게 만들고, 나아가 민간 교류의 신뢰 기반을 복원하는 중요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이전 정부의 일본 편향적 흐름은 균형 외교의 기본을 흔들 수 있는 위험이 있었다. 외교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라 균형 잡힌 중심축을 세우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실 한국 외교의 고질적 딜레마는 ‘동맹과 실리’ 사이의 긴장이다. 미국과의 안보동맹은 한국 외교의 기둥이자, 흔들어서는 안 되는 전략적 자산이다.
하지만 경제·산업 기반에서 중국은 결코 쉽게 대체할 수 없는 거대한 시장이자 협력 파트너다.
이 두 축을 모두 고려한 균형 외교는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다.
따라서 이번 표기 표준화는 작은 변화처럼 보이지만, 한국 외교가 다시금 균형의 자리로 돌아왔다는 신호다.
일본과의 협력을 소홀히 하겠다는 뜻도, 중국 쪽으로 일방적으로 기울겠다는 뜻도 아니다. 오히려 두 강대국 사이에서 ‘주체적 균형’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의지의 표현이다.
외교는 상징을 통해 메시지를 보낸다. 표기 순서 하나에도 국가의 시선과 전략이 녹아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이 아닌 이성, 진영이 아닌 국익, 선언이 아닌 실질이다.
이번 변화가 한·중·일 3국 관계의 질서를 다시 짜는 물꼬가 된다면, 이는 단순한 표기 조정이 아니라 한국 외교의 새로운 시작으로 기억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