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차 한잔
양은순/ 시인, 사)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고문
노을 보며 차를 마시는 시간
낙엽은
가벼운 입맞춤으로 흙에 안긴다
길은 끝없이 이어져
어디까지 왔는지 묻지 않아도
늦가을 여행은
고독을 감싸 안는 일
낡은 찻집 창가에 홀로 앉아
따뜻한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싼다
차빛은 저무는 노을을 닮아
가을의 차향이 목젖을 타고
차나무가 가진 맑은 숨결을 전해준다
▼양은순
* 경남 함양 출생. 부산에서 성장
* 1972년 부산 한성여자대학(현, 경성대학교)을 졸업
* 등단 : 1978년 시와 의식(현,문예한국)에서 신인상 수상, 1979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 1980년 불교신문 기자, 한국시인협회,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한국본부 자문위원, 부산여류문인협회 회장, 미래시시인회 회장 등
* 부산여자대학에서 강의,
* 시집으로는 <체온><낱말 길들이기><제 마음 단풍드는 시간><사랑빛 한올><바늘과 실><茶꽃마을> 등
* 문화와문학타임 발행인, 부산문학상, 설총문학상 대상 등 수상
▼ 권대근 해설
이 시에서 ‘노을’, ‘낙엽’, ‘늦가을 여행’, ‘홀로 앉은 찻집’은 단순한 정경 묘사가 아니라 들뢰즈적 의미에서 사건(event)으로 작동한다. 들뢰즈에게 사건이란 사물의 실체가 아니라, 사물들 사이에서 생겨나는 변화의 표면적 효과, 즉 경험의 결을 바꾸는 미세한 진동이다. 낙엽이 “가벼운 입맞춤으로 흙에 안기는” 장면, 노을빛이 차빛과 겹쳐지는 순간, 고독이 ‘감싸 안는 일’로 전환되는 감각은 모두 외부에서 날아와 주체의 내면을 스치며 새로운 감응을 일으키는 순수사건의 발생이다. 시적 화자는 그 사건들을 붙잡거나 해석하려 하지 않고, 그저 두 손으로 따뜻한 찻잔을 감싸 쥐며 사건이 스스로 의미를 생성하도록 허용한다. 들뢰즈의 관점에서 이는 주체가 세계와 조응하는 방식, ‘나-세계의 경계가 잠시 풀리는 표면의 철학’을 감각적으로 구현한 장면이다.
또한 이 시는 차가 가진 치유적, 명상적 힘을 은근하게 드러낸다. “차빛은 저무는 노을을 닮아 / 가을의 차향이 목젖을 타고 / 차나무가 가진 맑은 숨결을 전해준다”는 구절을 보면, 차를 마시는 행위가 단순한 음료 섭취가 아니라, 몸–자연–시간이 다시 연결되는 작은 치유 의례로 제시된다. 차의 온기와 향, 그리고 그것이 지닌 시간의 느린 흐름은 고독을 파괴하지 않고 ‘견디고 다독이게 한다. 노을빛이 스며든 ‘차빛’은 감정의 거친 결을 누그러뜨리고, 차나무가 품어온 맑은 숨결은 늦가을의 선선한 공기와 겹쳐 마음의 막힘을 풀어내는 일종의 정화 작용을 수행한다. 이로써 찻집 창가의 고독은 고립이 아니라, 들뢰즈가 말하듯 새로운 감응의 가능성, 즉 또 다른 삶의 속도로 전환되는 특이한 순간의 사건화가 된다. 차를 마시는 행위는 그렇게 자연과 존재의 리듬과 다시 연결되는 치유적 시의 경험으로 확장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