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꽃이 부러워
정순선/ 수필가, 한국본격문학가협회 회원
먼저 떠난 이와 마주한 거리에선 항상 슬픔이 고개를 내민다. 아프고 눈물이 내면으로 쭉 흘러 가슴이 서늘해진다. 잠시 걸음도 생각도 멈춘 채 그를 떠올린다. 내가 돌보고 있는 강아지 나츠를 옥상에서 먼 곳을 보여 준다고 안아 올렸다. 갑자기 미안함이 밀려들어 왔다. 동생이 병원에서 삶과 죽음을 오갈 때 “나츠야, 내 동생 대신 죽어 달라.”고 힘주어 말했던 지난날이 생각나서다. 말 못하는 강아지가 나를 한참 째려보는걸 느끼며 그래 내가 왜 이러지 하고 다시 나의 생명 반을 가져가서 동생을 살려 달라고 숨죽여 기도 올리고 또 올렸다. 누구나 살고자 하는데 강아지의 목숨 값을 너무나 하찮게 취급한 잠깐의 생각을 마음속 깊이 뉘우치며 나츠를 더 잘 보살피려고 수시로 맘을 조절 중이다.
산수국에 대한 수업을 받으면서 참꽃과 헛꽃을 알게 되었다. 헛꽃은 참꽃보다 예쁜 자태로 곤충을 유인하여 참꽃을 수정하게 도움을 주고 아래로 고개숙인다. 다른 산수국으로 곤충을 보내면서 자신만의 욕심을 가지지 않는것도 인상적이고 참꽃을 끝까지 지키는 운명이라고 하니 신비한 세상임이 느껴진다. 내가 살아가면서 가장 슬픈 마음은 동생이 이 세상에 없는 상황이다. 나는 내가 헛꽃이면 좋겠다고 느끼며 앙상하게 뼈만 남아 있었던 동생의 모습이 참꽃마냥 떠올랐다. 헛꽃은 참꽃을 지킬 수나 있건만 나는 동생을 떠나보낸 채 헛꽃만 부러워 하고 있지 않는가. 이세상에 없는 동생과 나는 지금은 떨어져 살고 있지만 이어져 있는 신기한 기운은 항상 만나고 있으리라. 참꽃과 헛꽃이 하나이듯이 자꾸 그렇게 엮어가고 있다.
가슴이 막히는 듯한 동생의 떠남이 있었다. 동생은 위암수술 후 보름마다 항암주사를 맞아가며 잘 견디고 완치판정을 받았다. 얼마후 혈액암으로 전이되어 또 아픔을 겪으면서 동생은 환갑까지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늘 바랐지만 그 믿음을 저버리고 반백의 나이에 동생이 떠날때도 나는 동생을 보내지 못했다. 나랑 같은 하늘 아래 살아주기를 간절히 바랐던 몇 년 전을 기억하면 인생의 무상함이 느껴져 한숨만 크게 쉬고 있다.
전철이 처음 생겼을 때 동생은 신문 파는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그날 번 수익금을 서랍에 넣어 두고 자는 걸 보고 필요한 만큼의 돈을 내가 가져다 쓰곤 했다. 동생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을 즈음 반성 겸 내가 그렇게 한 걸 말을 하자 동생은 아직 안 죽는다고 할 때가 기뻣다. 누나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켜 주거나 방에 상을 펼쳐 놓고 탁구도 같이 쳤다. 어린시절 오붓한 오누이로 잘 지냈던 그리움이 한움큼 더 보고픔에 머물게 한다.엄마 아버지를 만나 보고 오겠다며 떠나버린 동생을 나는 기다리지 못했다. 장례식장에서 나도 곧 따라갈 거라고 되뇌이는 나에게 큰딸은 손자 손녀를 다 키워주고 엄마의 인생이 남았노라고 설득했다. 헛꽃보다 못한 이기적인 맘이 해매이는 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작년 추위가 시작될 쯤 항상 웃으며 도와주던 친구의 떠남을 겪었다. 어릴 때부터 다른사람의 힒듬을 지나치지 않고 늘 도와주는 삶을 살았다. 항상 웃으며 친구들의 관심의 대상이었던 그 친구의 죽음은 충격 그 자체로 남아 엄청 긴 시간을 힘겹게 했다. 친구의 장례식에서 누나와 여동생의 손을 잡았을때 먼저 간 동생이 떠올라 더 아픈 경험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죽음은 정말 슬프다. 죽지 않고 사는 방법은 없을까. 평생을 풀지 못할 나의 오랜 숙제처럼 화두로 다가와 있다.
사회에서 자살하는 뉴스를 접하곤 한다. 내 동생처럼 좀 더 살고 싶어하는 모습과 비교하면 크나큰 사치처럼 보일 때가 많았다. 더구나 가족들을 모두 해치고 정작 자신은 죽지 못한 경우도 접할 때가 있었다. 목숨의 가치를 그렇게 가볍게 여기나 싶어서 충격적인 놀라움을 짓누르기가 쉽지 않았다. 누구나 한 번은 죽는다. 그래서 공평하기도 하고 더 많은 욕심을 낼 필요도 없이 맘을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살아있는 생명은 다 소중하다는 것을 되뇌이며 죽음과 삶이 하나로 다 이어져 있음에 감사한다.
그들이 떠난 후의 거리는 몇 번을 스쳐도 보이지 않는 만날 수 없는 낯선 거리가 된 듯하다. 늘 걷던 길이건만 멍하니 멈춰 두리번거린다. 먼저 떠난 이들을 언젠가는 만나리라는 희망과 좋은 곳에서 편히 지낼 거란 바람으로 애써 맘을 돌린다. 누구나 맞이하는 죽음이 힘겹지 않고 자신이 살아온 만큼의 여유와 희망으로 다음 생에 잘 다가가기를 간절히 염하면서 그들과 함께 걸어 나간다.
▼정순선
부산 출생, 방송통신대 교육학과 졸업, 부산교육대학교 평생교육원 문예창작반 수료, 계간 에세이문예 수필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회원, 부산수필문학협회 회원, 다스림 동인, 부산교대문학회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