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명사 <제망매가>와 월강 <제망자가>의 비교문학연구
– 들뢰즈의 사건의 존재론을 중심으로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Ⅰ. 로그인
- 비교문학의 지평과 향가 현대시의 차이
비교문학은 “텍스트를 국경, 시대, 장르의 경계를 넘어 읽는 학문”이다. 바흐친이 말했듯, “모든 문학은 타자의 목소리를 품고 있다.” 비교문학의 목적은 바로 이 타자적 목소리를 서로의 반사경 속에서 드러내는 일이며, 이를 통해 개별 텍스트가 띠는 의미의 잔향을 확대하는 데 있다. 월명사의 <제망매가>와 월강의 <제망자가>는 약 1,300년의 시차를 두고 있으나, ‘가족의 죽음’이라는 본질적 사건을 매개로 하여 동일한 정동의 깊이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비교문학적 접근이 가능하다. 두 작품의 비교는 단순한 형식적 대비를 넘어, 시대와 문화가 죽음과 슬픔을 경험하고 서사화하는 방식을 폭넓게 조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동일한 정동적 사건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문학적 전통과 미학적 전략을 분석함으로써, 텍스트 사이의 역사적, 문화적 대화를 촉진할 수 있다. 이러한 비교적 접근은 단일 작품 분석이 놓칠 수 있는 감정과 의미의 층위를 드러내는 데 특히 유용하다.
괴테는 “모든 문학은 시대를 넘어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라고 했다. 신라 향가는 공동체적 의례와 승려 화랑층의 정신성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노래였다. 향찰이라는 문자체계가 보여주듯 향가는 한국 고대의 구술와 문자 혼종체이며, 노래 주술 기원의 결이 혼재한다. 반면 현대시는 인쇄문화와 근대적 자아를 토대로 하며, 개인적 상실의 내면을 정교한 언어의 조탁을 통해 표출하는 장르다. 즉 향가가 ‘행위로서의 언어’였다면, 현대시는 ‘기억으로서의 언어’라는 차이가 존재한다. 향가의 언어는 공동체 속에서 울림과 반복을 통해 의미를 확보하지만, 현대시의 언어는 개인적 체험과 고유한 시간성을 따라 사건을 기록하고 재구성한다. 또한 향가는 의례적 정조 속에서 슬픔과 애도의 감정을 집단적으로 생산하는 반면, 현대시는 내면의 고통을 언어적으로 번역함으로써 독자와의 심리적 공명을 유도한다. 이러한 대비는 시가 경험과 표현을 조직하는 방식이 시대와 문화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츠베탕 토도로프는 “문학의 변화는 곧 인간이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의 변화이다.”라고 했듯이, 향가와 현대시는 바로 그 다른 ‘경험방식’을 드러낸다. 들뢰즈는 진정한 차이는 단순히 다름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오늘과 다른 차이나는 것을 생성해 내는 데 있다고 했다. 이런 차원에서 월명 시와 월강 시의 비교연구는 의의가 크다고 할 것이다. 두 시의 사건화 방식은 죽음을 단순한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주체와 세계의 접속관계를 재편하고 새로운 윤리적, 정동적, 미학적 지평을 생성한다. 향가는 공동체적 의례와 순환적 시간 속에서 죽음을 사건화하며, 현대시는 개인적 고통과 언어적 쓰기를 통해 죽음을 사건으로 재현한다. 따라서 들뢰즈적 사건의 존재론을 중심으로 한 분석은 두 작품이 죽음을 다루는 방식의 근본적 차이를 밝히고, 각각의 시가 형성하는 정서적, 미학적 구조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Ⅱ. 클릭
– 사건의 존재론으로 읽는 <제망매가>와 <제망자가>
1. 월명사와 월강의 작품세계
월명사(月明沙)는 신라 후기의 승려로, 향가 창작과 불교적 영가(靈歌) 사상에 깊이 관여한 인물이다. 그는 특히 <제망매가>를 통해 죽은 누이를 기리는 서정적·의례적 시를 남겼는데, 이 작품에서는 승려로서의 정체성과 신앙적 사유가 결합되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단순한 개인적 애도를 넘어서, 죽음에 대한 슬픔을 불교적 윤회와 초월적 구원이라는 차원으로 확장함으로써, 개인의 고통을 세계적·우주적 질서와 연결시키고자 했다. <제망매가>는 죽음을 ‘순환적 사건’으로 수용하는 특징을 지닌다. 신라 불교의 윤회 사상을 바탕으로, 죽음을 단절이 아닌 미래의 재회로 보는 관점이 작품 전체에 깔려 있으며, 시적 형식 또한 향가 특유의 짧고 압축된 문장, 상징적 이미지, 반복과 운율을 통해 의례적 의미를 전달한다.
‘떨어지는 나뭇잎처럼’과 같은 자연 이미지는 죽음과 생명, 재회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며, 개인적 슬픔은 의례적 틀 속에서 공동체적 정서와 우주적 질서 속으로 통합된다. 이러한 방식은 향가가 단순한 시적 표현을 넘어 공동체와 세계를 조율하는 언어적·종교적 행위임을 보여 준다. 신라의 불교적 배경 역시 <제망매가>의 이해에 중요한 맥락을 제공한다. 미타신앙과 영가 의례는 죽은 영혼을 미타불의 세계, 즉 미타찰로 인도하는 신앙적 장치였으며, 화랑이나 승려 계층은 죽음을 윤회와 재회의 사건으로 해석하면서 의례와 노래를 통해 공동체적 정서를 강화했다. 향가는 이러한 종교적, 의례적 구조 속에서 태어난 시로서, 삶과 죽음, 인간과 우주의 관계를 언어와 행위를 통해 조율하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나고 죽는 길이
여기있어 두려워
'나는 가노라'
말한마디 못하고
가는구나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한 가지에 태어났으나
가는 곳 모르겠도다.
아아!
아미타 정토에서 만난 날
도 닦으며 기다리련다.
- 월명사 <제망매가祭亡妹歌> 전문
월명사의 시학적 의미는 단순한 정서적 표출을 넘어선다. 시 속 언어는 죽음을 사건화하여 주체와 세계의 접속을 재편하는 역할을 하며, 자연 이미지와 압축된 언어를 통해 슬픔과 구원의 감정을 정적이고 조화롭게 형상화한다. <제망매가>는 현대시와 비교할 때 상실과 죽음을 내면적 사건으로 재해석하는 출발점을 제공하며, 이를 통해 신라 향가의 종교적·의례적 특성과 죽음을 사건으로 바라보는 시학적 전통을 이해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월명사는 신라의 승려 시인이자 향가 창작가로서, <제망매가>를 통해 개인적 슬픔을 불교적 세계관 속에서 재배치하며 죽음을 사건화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과 활동은 신라 향가의 종교적·의례적 특성을 보여 주며, 후대 현대시와의 비교를 통해 죽음을 바라보는 문학적·시학적 전통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지점을 제공한다.
<제망자가>를 쓴 월강은 계간지 <문화와문학타임>으로 등단한 시인으로, 대종사 칭호를 받았다. 불교에서 대종사는 그 자체로 수행과 가르침의 정점을 나타낸다. 대종사란 불교 교리의 핵심을 구현하며 후학을 양성하는 가장 존귀한 승려의 상징이다. 그는 현재 사)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수석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월강 대종사는 1963년 출가입산, 1986년 대한불교조계종 총본산 서울 조계사 입승, 1980년 동국대학교 승가학과 졸업, 부산동래차밭골 금어사 주지, 1994년 공동선실천부산종교지도자협의회 공동대표, 1995년 부산불교연합회 상임부회장, 2005년 대한민국 청곡예술문화상 수상, 2009년 문예시대 신인상(시), 2023년 월강문학상 제정 이사장, 시집 '차 한잔 듬세' '달 그림자' '차밭골 사랑' '마음의 샘' '홍두깨에 꽃이 피다’ 2025년 제11회 세계한글작가대회 부산대표로 참석한 바 있다.
가슴에 묻은 아들아 눈에 밟히는 정이여
병마에 꺾인 청춘 꿈결 같던 나날들
환갑도 채 못 되어 서둘러 떠난 이승 길
아비는 조석으로 갈피를 못 잡네
붓을 들 때마다
피 토하듯 쏟아낸 시의 노래여
가슴을 깎아 만든 소설의 꿈이여
한 권의 책으로 피어나지 못한 채
이 세상 낙엽처럼 스러졌으니
그 한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리
남겨진 몇 편의 글만이
네가 다녀간 유일한 증표가 되어
아비의 마른 가슴 눈물로 적시네
그 글자마다 네 숨결이 어려
손끝으로 만지면 금세라도 돌아올 듯하다
오냐 이젠 편히 쉬거라
미처 다 못 이룬 모든 꿈과 한은
이 아비가 고이 접어 가슴에 묻으마
지극한 마음 모아 아미불께 께 비오니
자비로우신 가피력으로
아프지 않은 곳 슬픔이 없는 곳
안락정토(安樂淨土) 연화대에
내 아들 연꽃으로 피어나게 하소서
- 월강의 <제망자가祭亡子歌> 전문
그는 <제망자가>를 통해 아들 김정헌 시인의 죽음을 깊이 있는 내면적 사건으로 형상화하였다. 월강은 개인적 상실과 고통을 언어적 사건으로 변환함으로써, 죽음을 단순한 상실이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와 존재의 계기로 재구성한다. <제망자가>에서 아들의 죽음은 환갑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삶의 절단선으로 경험되지만, 그 절단선은 언어와 서사의 장 안에서 다시 진동하며, 화자의 내면에서 삶과 죽음, 고통과 사랑을 통합하는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낸다. 월강의 <제망자가>는 현대시 특유의 길고 서사적이며 자기반영적 구조를 띠고 있다. 시 속에서는 죽음과 상실의 감정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며, ‘피 토하듯 쏟아낸 시의 노래’라는 메타포에서 보듯, 언어 자체가 고통과 감정을 번역하고 재생산하는 과정으로 기능한다. 이렇게 개인의 내적 체험과 쓰기의 과정이 긴밀하게 결합되면서, 죽음은 주체의 내면에서 새로운 의미의 장을 생성하는 사건으로 탈바꿈한다.
현대적 신앙과 초월의 관점도 특징적이다. 월강의 시에서 정토는 전통적 의례나 문화적 신화가 아니라, 아비의 기도와 언어 속에서 ‘발생하는 초월’로 구현된다. 죽음 이후 남겨진 글과 시적 흔적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살아 있는 주체가 고통을 견디고 세계를 재구성하도록 만드는 사건적 힘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제망자가>는 개인적 구원의 서사이자, 언어적 창조와 사건화를 통해 내면적 초월을 이루는 시학적 실험으로 읽을 수 있다. 월강의 시적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죽음의 체험이 곧 언어적·미학적 변화를 촉발한다는 점이다. 죽음은 외부 세계의 리듬과 조화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내면에서 진동하며 새로운 감각과 의미를 만들어낸다. 언어와 서사는 고통을 직접적으로 재현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정서적·미학적 질서를 창출하며, 이는 현대시가 개인적 경험과 주체적 감각을 중심으로 사건을 구성하는 특징과 맞닿아 있다.
월강은 현대시인으로서 <제망자가>를 통해 가족의 죽음을 내면적 사건으로 형상화하고, 상실과 고통을 언어적 창조의 계기로 전환한다. 그의 시적 세계는 전통적 향가와 달리 공동체적 질서보다는 개인적 체험과 언어적 사건화를 중심으로 하며, 죽음을 통해 새로운 의미와 존재의 장을 열어젖히는 시학적 성취를 보여 준다. 이를 통해 <제망자가>는 현대시적 내면성과 개인적 구원의 문제를 결합한 대표적 사례로 평가될 수 있다.
2. 죽음의 사건: 사실이 아닌 생성
들뢰즈에게 사건(event)은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일어나게 하는 방식의 변화”이며, 이는 곧 주체와 세계의 접속관계가 달라지는 순간을 의미한다. 사건은 외적 사실이 아니라 관계의 형식이 바뀌는 변용의 지점이다. 이 관점에서 죽음은 생물학적 소멸이 아니라 남겨진 자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젖히는 변화의 힘’이 된다. 세계는 동일성을 유지하지 않고, 죽음을 계기로 전혀 다른 구조로 재편된다. 즉 죽음은 살아 있는 자의 인식, 감각, 시간 관리, 세계에 대한 기초적 신뢰까지 한꺼번에 재구성하는 실존적 변환의 장이다.
월명사의 <제망매가>에서 누이의 죽음은 ‘윤회적 세계관’ 속에서 다시 만남의 약속을 여는 ‘미래의 사건’으로 재사유된다.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하나의 통로이자, 다음 생의 재회를 준비하는 문장적·의례적 시간이다. “아아! 아미타 정토에서 만난 날”라는 구절은 죽음을 과거의 끝이 아니라 미래의 시작으로 재배치하며, 단절의 시간성이 ‘접속의 시간성’으로 변환된다. 이때 사건은 시간의 파국이 아니라 시간의 재배열이며, 세계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통로를 마련한다. 루쉰이 “죽은 이는 흙이 되지만, 그 죽음은 산 이들의 말을 흔들어 깨운다”고 말했듯, 누이의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관계의 재구성이다. 남겨진 화자는 죽음을 통해 오히려 세계의 의미망을 확장한다. 주체는 슬픔을 통과하며 새로운 존재적 리듬을 갖게 되고, 이 리듬이 곧 윤회의 시간과 접속하는 개인적, 우주적 호흡이 된다.
반면 월강 <제망자가>의 화자는 아들의 죽음을 “환갑도 못 되어 떠난 이승 길”이라는 삶의 절단선으로 경험한다. 여기서 죽음은 윤회의 고리로 역전되지 않는다. 세계는 끊기고, 시간은 비어 있으며, 관계는 재회로 보정되지 않는다. 단절은 단절 그대로 남아, 회복 불가능한 파열을 형성한다. 그러나 이 파열이 끝은 아니다. 역설적으로 “남겨진 몇 편의 글만이 네가 다녀간 유일한 증표”가 되면서, 죽음은 언어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타자의 죽음 이후 남는 것은 흔적이며, 이 흔적이 바로 새로운 세계의 문이 된다. 즉 죽음은 부재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부재를 말하게 만드는 언어적 힘으로 변형된다.
이처럼 월명사의 <제망매가>는 죽음을 ‘미래로 이어지는 사건’으로, 월강의 <제망자가>는 죽음을 ‘내면에서 재의미화되는 사건’으로 읽게 한다. 전자가 세계의 리듬에 접속하며 사건을 외부의 질서 속에서 정돈한다면, 후자는 세계가 붕괴한 자리에서 언어를 다시 일으켜 세우며 사건을 내면의 생성으로 전환한다. 결국 죽음은 두 시에서 각각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다시 쓰는 힘이 된다. 전통 서정시는 죽음을 우주의 순환 속에 배치함으로써 화자의 슬픔을 ‘큰 질서’에 통합시키지만, 현대시는 그 질서의 부재 자체를 직면하며 의미를 언어의 내부에서 새로 구축한다. 바로 이 차이가 죽음을 바라보는 시적 주체의 위치를 다르게 만들고, 독자에게도 서로 다른 방식의 감정적 사유적 진입로를 제공한다.
3. 혈연애의 층위: “몸의 관계에서 영혼의 관계로”
월명사의 <제망매가>는 누이와 형제라는 혈연의 끈을 불교적 윤회관으로 확장하여, 혈연을 초월적 연의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죽음은 ‘다시 만남의 길목’으로 체험되며, 혈연은 신체적 관계를 넘어 영적 공동체의 결속으로 확장된다. 반면 월강의 <제망자가>에서는 육친의 사랑이 훨씬 더 물질적·현실적 질량을 가진다. “손끝으로 만지면 금세라도 돌아올 듯하다”는 표현은 들뢰즈가 말하는 “촉각적 감응의 사건성”을 떠올리게 한다. 아들의 부재는 신체적 빈자리로 경험되고, 이 빈자리는 언어적, 정동적 사건을 발생시킨다.
즉 월명사 <제망매가>의 혈연은 ‘영원한 순환적 사건’이며, 월강 <제망자가>의 혈연은 ‘단절에서 비롯되는 내면의 사건’이다. 전자가 사라짐과 만남을 불이(不二)의 흐름 속에서 파악한다면, 후자는 남겨진 자의 내면에서 터져 나오는 상흔의 지층을 탐색한다. 월명은 죽음마저 윤회의 질서 안으로 끌어안으며, 잎이 떨어져도 다시 돋아날 것을 아는 순환적 생명의 리듬에 자신의 슬픔을 편입한다. 반면 월강의 <제망자가>는 더 이상 되돌아오는 반복의 시간을 믿지 않는다. 죽음의 ‘이후’는 곧 관계가 끊겨버린 자리에 남겨진 공백이며, 그 공백 속에서 말해지는 고독의 모티프가 바로 그의 ‘사건’이 된다.
롤랑 바르트의 말을 빌리면, “사랑이란, 사라짐 이후에야 비로소 가장 강렬하게 말해진다.” 이 문장은 두 작품의 정서적 구조를 가르는 지점이기도 하다. 월명사의 <제망매가>에서 사라짐은 곧 만남을 예비하는 문이자 다음 생의 조우로 이어지는 순환의 징표이지만, 월강의 <제망자가>에서 사라짐은 말해질 수밖에 없는 상실의 현장, 즉 언어가 고통을 대신 견뎌내야 하는 절단면에 가깝다. 하나는 사라짐을 통해 다시 하나의 전체로 돌아가고, 다른 하나는 사라짐을 통해서만 비로소 주체의 고독과 사랑의 잔향이 선명해진다. 두 작품의 혈연적 정동은 ‘죽음 이후’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갈린다. 순환의 시간 속에서 위무를 발견하는가, 아니면 단절의 시간 속에서 자기 존재의 상흔을 더듬는가. 이 차이가 바로 두 텍스트가 보여주는 비극과 사랑의 언어, 그리고 사건의 형식을 근본적으로 다르게 한다.
4. 언어 형식의 비교: 의례적 노래, 상흔의 문장
향가는 기본적으로 노래다. 이는 단순히 운율을 갖춘 시라는 의미가 아니라, 공동체의 의례적 삶과 밀착되어 존재하던 ‘목소리의 문학’이라는 뜻이다. 노래는 몸의 호흡과 공동체의 시간 속에서 울렸으며, 그 결과 향가는 문장이 짧고 절제되어 있고, 상징적 압축이 강할 수밖에 없다. 폴 발레리가 “시는 감정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 감정이 생성되는 기계다”라고 한 말은 향가 미학을 정확히 비춰준다. 향가의 감정은 사적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것이 아니라, 의례적 상황의 언어적 형식 속에서 생성된다. 즉 감정은 언어의 뒤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앞에서, 언어가 울릴 때 생겨나는 것이다.
월명사의 시에 등장하는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같은 자연 이미지는 단순한 계절 묘사가 아니라, 의례적 정조를 매개하는 매개체다. 낙엽이라는 이미지 하나가 죽음, 이별, 윤회, 초월이라는 복합적 의미를 한순간에 압축한다. 이처럼 언어적 표면에 미세한 의미의 떨림이 생겨나는 방식은 들뢰즈가 말한 “사건의 표면에서 일어나는 비물질적 변화”와 닮아 있다. 사건은 물리적 상실이 아니라 언어의 표면에 떠오르는 정서적 진동이다. 비물질적이지만, 그 울림은 누구나 감각할 수 있는 집단적 정동(affect)을 형성한다. 향가의 세계에서 죽음은 현실의 사실보다 언어적 표면 위에서 일어나는 의미의 은근한 흔들림으로 경험된다.
반면 월강의 현대시는 전혀 다른 글쓰기의 질서를 따른다. 그의 문장은 길고, 서사적이며, 감정의 굴곡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향가의 정제된 압축 대신, 현대시는 감정의 리듬과 파열을 드러내며, 의미가 응축되기보다 흘러가고 밀려오며 서사적 운동을 이룬다. 시는 ‘피 토하듯 쏟아낸 시의 노래’라는 메타포 속에서 자기반영적 구조를 띠게 된다. 이는 시가 단순히 감정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감정이 스스로의 발생 조건을 드러내는 장이 됨을 의미한다. 즉 시는 자신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신이 흘러나오는 지점을 노래 속에 노출한다.
죽음 이후 쓰기(writing after death)라는 행위는 단순한 추모가 아니라 글쓰기를 사건화하는 미학적 실천이다. 타자의 죽음은 세계를 단절시키지만, 그 단절을 견디는 방식은 언어를 다시 쓰고 새롭게 발생시키는 과정과 연결된다. 쓰기란 곧 애도의 한 형식이며, 동시에 치유의 행위가 된다. 들뢰즈가 말한 “표현이 존재를 생성한다”는 원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쓰기의 행위 자체가 새로운 감정, 새로운 관계, 새로운 주체성을 생성하는 사건이 되는 것이다. 월강의 시에서 슬픔은 받아들여지는 감정이 아니라 ‘표현을 통해 만들어지는 감정’이며, 이 표현의 생성 과정이 곧 시를 사건으로, 그리고 주체를 다시 살게 하는 힘으로 변환된다.
향가의 시적 세계는 언어의 표면에서 미세하게 떨리는 정조의 미학이고, 현대시는 언어의 깊은 내면에서 솟구치는 감정의 발생학이다. 하나는 의례와 공동체의 목소리 속에서 감정을 생성하고, 다른 하나는 개인의 고통과 쓰기의 과정 속에서 감정을 새롭게 만들어낸다. 이 차이가 바로 고대적 노래와 현대적 시 쓰기가 만나는 지점을 선명하게 가른다. 더 나아가 향가는 슬픔조차 공동체적 울림 속에서 익명화되지만, 현대시는 고통의 주체가 전면에 드러나며 감정의 고유한 질감을 적극적으로 발화한다. 따라서 두 전통은 모두 죽음을 노래하지만, 그 노래의 방향과 깊이는 시대의 감정 구조와 언어관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5. 죽음과 사건의 미학: 때림의 미학, 앓음의 미학
월명사 <제망매가>의 죽음미학은 ‘때림의 미학’이다. 여기서 ‘때림’은 폭력적 충격이라기보다, 삶의 흐름 속에서 어느 순간 불가항력적으로 닥쳐오는 자연적 사건을 가리킨다. 갑작스러운 낙엽처럼 떨어지는 죽음은 분명 비극적이지만, 그 떨어짐조차 자연의 호흡에 귀속되며 세계의 질서와 은근히 조화를 이룬다. 이면에는 신라 불교 특유의 순환적 생명관이 작동한다. 슬픔은 예기치 않은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큰 리듬 속에 안착되며, 결국 정적의 미학으로 승화된다. 죽음은 ‘파국’이라기보다 자연이 허락한 또 하나의 이동이며, 감정은 개인의 내면에서 폭발하기보다 세계의 질서 속에서 가라앉는다. 이러한 정적의 미는 한 존재가 사라진 자리에도 여전히 세계가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는 신라적 감수성의 증표다.
반면 월강의 <제망자가>는 ‘앓음의 미학’이다. 이 작품에서 죽음은 더 이상 자연적 리듬에 귀속되지 않는다. 오히려 세계의 연속성 속에서 이탈해 나온 파열의 충격으로 다가오며, 고통은 문장의 곳곳에서 생체적 아픔으로 형상화된다. 슬픔은 가라앉지 않고, 응고되거나 단련되지 않는다. 오히려 신경의 노출처럼 날카롭고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미학자 리하르트 지머만이 말한 “슬픔은 세계와 내가 만나는 가장 예민한 경계면에서 빛을 낸다”는 문장은 월강 <제망자가>의 정서를 정확히 포착한다. 이때 슬픔은 자연의 질서로 환원되지 않고, ‘나’의 살갗과 언어의 표면이 직접 맞닿는 경계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발광이다. 월강의 제망자가에서 “가슴을 깎아 만든 소설의 꿈”이라는 구절은 언어가 통증을 번역하는 과정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고통이 언어로 이동하는 ‘감각의 변환’이며, 바로 그 변환이 문학적 미학을 만들어낸다.
들뢰즈의 관점에서 보자면, 두 작품은 사건이 형성되는 양상부터 확연히 다르다. 월명사 <제망매가>의 사건은 “세계의 리듬 속에서 감싸는 양상”이다. 사건은 주체에게 충격을 주지만, 궁극적으로는 세계의 큰 질서 속에 의해 덮이고, 포섭되고, 다시 전체의 리듬으로 회귀한다. 죽음이라는 단절조차 세계, 자연의 호흡에 의해 매만져지는 셈이다. 반면 월강 <제망자가>의 사건은 “자아의 내면에서 진동하며 또 다른 감각을 생성하는 양상”이다. 여기서 사건은 세계의 리듬과 접속하지 않고, 오히려 개인의 내면 깊은 곳에서 분기하며 새로운 감정의 신경망을 일으킨다. 이 진동은 곧 새로운 감각의 탄생이며, 그것이 바로 현대적 슬픔의 미학이다.
‘죽음이 세계 속에서 어떻게 의미화되는가’라는 질문에 두 작품은 서로 다른 미학적 방식으로 답한다. 하나는 세계의 리듬 속에서 슬픔을 정적으로 가라앉히고, 다른 하나는 개인의 감각 속에서 슬픔을 다시 진동하게 만든다. 이 차이가 바로 고대 서정과 현대적 내면성의 미학적 경계를 갈라놓는 핵심이다. 전자는 죽음을 우주의 질서 안에 배치하여 감정을 자연의 한 흐름으로 편입시키지만, 후자는 죽음이 남긴 균열을 언어 내부에서 재조직하며 새로운 의미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결국 두 시는 같은 ‘상실’에서 출발하지만, 그 상실을 다루는 방식이 전혀 다른 시적 존재론을 드러내고, 이 차이는 독자로 하여금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계와 자기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6. 종교적 상상력: 미타찰과 정토의 차이
칼 야스퍼스는 “죽음은 인간을 가장 철저히 단독자로 만든다”고 했다. 이 말은 두 작품이 죽음을 어떻게 사유하는지를 가르는 핵심적 단초가 된다. 월명사 <제망매가>의 미타찰은 순수한 신라 불교의 영가 세계로, 단독자의 고독을 즉각적으로 치유하는 ‘집단적 초월의 장치’이다. 그곳은 죽음이 남기는 단절을 공동체적 신앙의 품으로 다시 봉합하는 공간이며, 궁극적으로는 ‘다시 만날 공간’이라는 서사적 위안을 제공한다. 이때 불교적 접속은 단순한 종교적 장식이 아니라, 죽음을 초월적 사건으로 승격시키는 문화적 코드다. 죽음은 개인의 고독을 강조하는 철학적 심연이 아니라, 한 민족의 세계관 속에서 반복되는 순환의 질서로 편입된다.
그러나 월강 시인의 아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제망자가>의 정토는 이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곳의 정토는 이미 주어진 신앙이나 문화적 전통에서 흘러나오는 안정된 형상이 아니다. 오히려 ‘아비의 기도’라는 단독자의 절박한 호소 속에서 새롭게 생성되는 실존적 공간이다. 즉 신앙은 문화적 배경이 아니라 개인적 애통에서 발생하는 ‘사건적 신앙’이며, 그 사건성은 타자를 잃은 존재가 스스로를 견디기 위해 만들어낸 내면적 초월의 자리다. 정토는 외부에서 전승된 장소가 아니라, 상실을 수용하려는 마음이 만들어낸 내적 지평으로 변화한다.
이 지점에서 신라적 집단 의례성과 현대시의 개인적 구원 서사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월명사의 <제망매가>가 공동체적 신앙의 질서 안에서 죽음의 의미를 재조정한다면, 월강의 <제망자가>는 개인적 실존의 균열을 통해 신앙을 다시 태어나게 한다. 전자는 ‘죽음 이후의 만남’을 이미 보증된 약속처럼 제시하지만, 후자는 그 약속을 보증하는 절대적인 권위가 부재한 자리에 서 있다. 그렇기에 현대시의 주체는 스스로 정토를 만들어내야 하며, 기도는 세계관의 반복이 아니라 단독자의 심연에서 솟아오르는 술어가 된다.
월명사의 <제망매가>와 월강의 <제망자가>는 두 작품의 신앙적 공간이 ‘전승된 초월’과 ‘발생하는 초월’의 차이를 보여준다. 하나는 문화적 신화 속에서 죽음을 다시 연결시키고, 다른 하나는 상실의 현장에서 새로운 초월을 발생시키며 주체를 구원한다. 이 대비가 두 작품의 시대적 정서와 실존적 깊이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지점이다. 전자는 이미 마련된 구원의 구조에 자신을 맡기며 세계와의 조화를 회복하지만, 후자는 기존의 초월이 붕괴된 폐허 속에서 주체 스스로 초월의 근거를 재창조해야 한다. 따라서 두 시에서 신앙은 단순한 종교적 배경이 아니라, 고통을 견디고 삶을 다시 세우는 서로 다른 방식의 존재론적 응답이 된다.
Ⅲ. 로그아웃
– 두 죽음의 노래와 사건의 존재론적 지형
시가 삶에서 나온다는 점, 월강은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 그렇기 때문에 월강은 아름다운 시를 쓸 수밖에 없다. 월강 시의 존재 이유는 “저는 시를 쓰는 것이 행복합니다. 시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고,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다. 모든 예술은 순수한 사상과 감정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동양시학에 의하면, ‘의잡불순’이란 게 있다. 의도가 잡스러우면 순수하지 못하다고 했다. 월강 시인은 시의 출발점을 순수에 두고 있어 시심이 든든하다. 표현 기술은 그 다음의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문학의 사회적 기능도 무시할 수가 없다. 문학이 개인과 사회에 어떤 영향력을 끼치는가 하는 점이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 상업주의가 팽배하여 자본이 빈번하게 오고 가는 시대에 그 순기능과 역기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자.
문학의 사명이라든지 문학인의 양식이 그 어느 때보다도 요구된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에서 월강이 <제망자가>라는 시를 쓰고, 절에 오는 내방객과 차담을 즐기며 자연과 더불어 사는 청정의 자세는 높이 평가된다. 자연은 상징과 암호로 말한다고 휠타이는 말했다. 자연은 신의 계시적인 언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자연은 그 모든 진리를 각각 그 자신 속에 간직하고 있다. 자연에는 신의 속성이 내포되어 있으므로 자연을 벗 삼는 것은 신과 벗 삼는 것과 같고 자연과 대화하는 것은 신과 대화하는 셈이 된다. 종교인은 신의 대리자이기도 하다. 이러한 견해에 입각해서 보게 될 때 자연을 벗 삼은 월강 스님의 많은 시편들은 애수를 띠고 소박할 수밖에 없으며, 격조가 있을 수 있을 수밖에 없다. 월강은 자연을 스승으로 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의 시에 나타나는 것은 인간은 자연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사상은 추도시 <제망자가>에도 담겨 있다.
월명사의 <제망매가>와 월강의 <제망자가>는 시대, 형식, 미학, 정동의 차이를 지니지만, ‘죽음의 사건이 남겨진 자에게 새로운 삶의 구조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깊은 공통성을 지닌다. 향가는 죽음을 우주적 리듬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사건을 공동체적·순환적 질서 속에서 재배치한다. 현대시는 죽음을 절단과 고통으로 경험하며, 그 상처를 언어적 사건으로 변환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향가는 개인적 슬픔을 자연과 의례 속에 통합시키며, 죽음을 정적이고 치유 가능한 사건으로 만들지만, 현대시는 그 치유가 언어적 창조와 기록의 과정 속에서 비로소 발생한다. 두 시 모두 죽음을 단순한 상실로만 다루지 않고, 주체와 세계의 관계를 재편하는 기제로 활용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죽음이 남긴 공백과 변화의 힘을 동시에 체험하며, 시대적 감각의 차이를 보다 명확히 느낄 수 있다.
들뢰즈의 사건 존재론으로 볼 때 두 시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죽음을 생성의 계기로 만든다.’ 즉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의 시작이다. 들뢰즈는 “사건은 존재를 파괴하지 않고, 존재를 변형시킨다.”라고 했다. 향가는 죽음을 윤회의 질서와 연결하여, 슬픔을 우주적 리듬 속에 편입시킴으로써 존재의 변형을 평온하게 이끌어낸다. 현대시는 죽음으로 인해 생긴 단절과 고통을 언어화함으로써 주체 내부에서 새로운 의미의 장을 창출하며, 이는 곧 삶의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과정과 연결된다. 두 시 모두 죽음을 사건으로 체험하면서, 단순한 감정의 표출을 넘어 문학적, 정동적 생성의 기제로 확장한다.
각각 다른 시대적 감성 속에서 두 작품은 가족애의 절정, 죽음의 체험, 언어의 변형을 보여주며, 죽음이 문학에서 어떻게 ‘존재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젖히는지 보여주는 귀중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향가는 공동체적 의례와 순환적 시간 속에서 죽음을 사건화하며, 화자의 슬픔을 세계와 연결된 의미망 속에 배치한다. 현대시는 개인적 고통과 언어적 쓰기를 통해 죽음을 사건으로 재현하며, 주체가 상실을 견디고 새로운 존재적 질서를 창조하도록 한다. 이러한 대비는 죽음을 바라보는 인간 경험의 다층성을 드러내며, 문학이 단순한 표현을 넘어 존재론적, 윤리적 사유의 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두 시의 비교를 통해, 독자는 고대와 현대의 문학적 감수성이 죽음과 상실을 어떻게 서로 다르게 구조화하는지 통찰할 수 있다.
▼권대근 평론가
경남 남해 출신으로 부산기계공고 기계과 10회 졸업, 영남대 영문과 졸업, 동아대 대학원 박사 과정 문학박사(동아대) 명예철학박사(대신대학원대) 88년 월간 <동양문학> 등단, <경북신문>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및 수필 부문 당선, 2000 중국연변대 초청 수필특강(중국 연변) 2016 국제PEN한국본부 토론토지부 초청 문학특강(캐나다 토론토) 2016 미주 중앙일보 주최 문학특강(미국 달라스) 2018 해외한국문학학술강연 (영국 런던) 2018 미주 중앙일보 주최 문학특강(미국 달라스) 2019 한국문협 인니지부 초청 특강(인도네시아 자카르타) 2021 미주 LA한국문인협회 초청 문학특강(로스엔젤리스) 한국문학세계화위원회 위원장 현) 대신대학원대학교 문학언어치료학 특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