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기자신문 김민정 코치] 조직에는 흔히 “좋은 사람”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있다. 부탁하면 잘 들어주고, 예민한 말은 삼가며, 곤란한 상황에서는 먼저 양보하는 사람들. 겉으로는 팀워크의 중심 같지만, 그 내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피로가 쌓여간다. 최근 코칭 현장에서도 이른바 ‘좋은 사람 증후군’으로 번아웃을 호소하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 문제는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조직이 요구하는 ‘좋음의 기준’이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수평적 문화와 공감 리더십을 말하면서도, 조직에는 여전히 암묵적 규칙이 존재한다.
“분위기를 흐리지 마라”. “양보하라”, “불편한 말은 피하라”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이 규칙의 영향력은 크다. 사람들은 갈등을 피하기 위해 감정을 누르고, 부탁을 떠안고, 자신의 욕구를 뒤로 미루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업무적·관계적·정서적 부담이 한꺼번에 증가한다.
먼저, 업무가 과중된다.
모호한 수락은 책임 범위를 흐리고 결국 과도한 과업으로 돌아온다.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은 늘 일의 사각지대를 담당하게 된다.
다음으로, 관계가 왜곡된다.
갈등을 피하면 겉으로는 평화롭지만, 실제 신뢰는 깊어지지 않는다. 필요한 충돌이 사라진 자리에서는 오해와 거리감이 더 쉽게 자란다. 그럼에도 많은 조직은 여전히 ‘조용한 평화’를 더 높은 가치로 여긴다.
그리고, 정체성이 흔들린다.
타인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감정을 조절하는 일이 반복되면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 자체가 흐려진다. 조직엔 ‘좋은 사람’으로 남을지 모르지만, 그 개인의 삶은 조용히 무너진다. 결국 업무 만족도는 떨어지고, 자존감은 흔들리며, 번아웃의 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점검해야 할까.
좋은 사람이 되려는 마음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다만 그 마음이 나 자신을 소진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할 때다. 친절과 배려로 시작한 ‘좋음’이 어느 순간 침묵과 희생의 이름으로 바뀌어 있다면 그 역할은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개인이 지나치게 부담을 떠안지 않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변화보다는 작은 조정들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첫째, 경계를 세우는 언어를 갖추는 것이다.
“지금은 어렵지만, 다음 일정에 가능하다”, “조금 더 고민해 보고 말씀드리겠다”는 표현은 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한다.
둘째, 내 감정을 먼저 확인하는 습관이다.
“나는 지금 정말 하고 싶은 걸까?”, “누구의 기대에 반응하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은 무리한 양보를 막는다.
셋째, 관계의 안전지대를 확보하는 것이다.
불편함을 말해도 괜찮은 사람, 심리적 숨통을 틔워주는 사람은 조직 내 긴장을 견디는 힘이 된다.
넷째, ‘좋아 보이기’보다 ‘솔직해지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겉보기의 화합이 아니라 불편함을 건너야 만들어지는 신뢰가 조직을 더 단단하게 한다.
조직 역시 마찬가지다. 갈등을 피하는 방식으로 유지되는 평온은 오래가지 않는다. 문제를 드러내고 의견을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야 개인의 소진을 막고 조직의 신뢰도 지킬 수 있다.
결국 필요한 것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 평온이 아니라, 각자가 감정과 역할을 무리 없이 감당할 수 있는 균형 잡힌 협업이다. 팀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한계를 말할 수 있는 환경에서 조직은 비로소 지속 가능해진다.
건강한 일터는 갈등이 없는 곳이 아니라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부담을 공평하게 나누고 해결할 수 있는 곳이다. 좋은 사람이라는 역할에 갇히지 않고 각자가 ‘지치지 않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을 때, 퇴사와 버팀 사이에서 흔들리는 개인도, 구성원을 잃지 않으려는 조직도 조금 더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