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월강론
월명의 <도솔가>와 월강의 <찬솔가> 비교연구
들뢰즈 사건의 존재론적 시각에서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Ⅰ.
신라 시대 향가는 단순한 시적 장치가 아니라, 사회적, 종교적 사건을 기록하고 재현하는 언어적 장치였다. 월명의 <도솔가>는 하늘에 두 개의 해가 뜨는 기이한 현상을 막기 위해 지어진 의례적 향가로, 인간과 신적 세계의 관계를 사건화한다. 들뢰즈가 말한 바와 같이, “사건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 사물과 세계가 맺는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관점에서, <도솔가>는 단순한 묘사나 신앙적 주문을 넘어, 사건이 경험되고 체험되는 장을 형성한다. 신라 경덕왕 때 월명사가 지은 10구체 향가로. ≪삼국유사≫ 권5 감통7 ‘월명사 도솔가조’에 실려 있다. 기록에 따르면 죽은 누이의 명복을 비는 노래로, 작가가 재를 올리며 이 노래를 지어 불렀더니 홀연히 바람이 불어 지전을 날려 서쪽, 서방 극락세계 방향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이 지전은 죽은 자에게 주는 노자로 지금도 장송 때 볼 수 있는 것으로 꼭 불교 의식에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죽은 뒤의 세계라고 하여 현세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 데서 나온 의식이다.
▷권대근(문학평론가)
이 시는 곧 인간의 도덕적, 정신적 반응과 우주의 변화를 동시에 기록하며, 향가가 단순한 시적 형식을 넘어 존재론적 사건의 언어임을 보여준다. 반면 월강의 <찬솔가>는 자연의 한 존재, 소나무를 중심으로 서정적 예찬을 펼친다. 시 속 소나무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사건적 관계를 맺는 매개체로 작동한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자연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과 과정 속에서 의미를 획득한다”고 말했듯, <찬솔가>의 소나무는 인간의 내적 의지와 결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생성한다. 향가와 달리, 이 시는 자연과 인간의 감각적, 정신적 교차를 탐구하며, 서정적 경험을 사건화하는 현대적 시적 접근을 예시한다. 이를 읽는 관전 포인트는 월강은 왜 <찬솔가>를 썼을까 <제망자가>에서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월강의 시는 사소한 관찰에서 시작되지만, 한 시인의 자연 사물에 대한 깊은 사유가 예찬으로 드러나고 있어 감동을 준다. 반면에 평자는 자연과 동떨어진 양자역학 등 미시물리학이나 시에서의 앙가즈망 등에 천착하면서 점점 자연과 멀어지고 있다. 아마 이런 이유로 월강의 <찬솔가>가 내게는 더욱 살갑게 다가오는 것 같다.
비교와 대조는 인식의 어머니다. 따라서 인식론에서 본질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탁월한 장치로 기능한다. 독자 여러분은 월명의 <제망매가>와 <도솔가>가 월강에 있어서 <제망자가>와 <찬솔가>로 변용되고 있음을 평자의 해설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월강의 발성학적 유비추리라는 발상이 <제망자가>와 <찬솔가>를 낳았다. 본 연구는 향가와 현대시를 들뢰즈 사건의 존재론적 관점에서 비교 분석함으로써, 향가의 의례적 기록성과 현대 시적 서정 사이의 연결점을 탐색한다. 해럴드 블룸이 말했듯, “시인은 세상과 사건 사이의 틈새를 읽어내는 감각을 가진 자”라는 통찰은, <도솔가>와 <찬솔가>가 각각 외적 사건과 내적 사건을 어떻게 언어로 재구성하는지를 이해하는 핵심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시문학 작품이 단순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인간과 세계, 자연과 의지, 경험과 언어의 관계를 사건화하는 창조적 장임을 확인할 것이다.
Ⅱ.
월명의 <도솔가>와 월강의 <찬솔가>는 각각 외적 사건과 내적 사건을 중심으로 구성된 향가와 현대시라는 점에서 흥미로운 대비를 이룬다. 대비는 뭐든 흥미롭다. <도솔가>가 하늘에 두 개의 해가 뜨는 기이한 현상이라는 외부적 사건을 기록하며 의례적 반응을 촉발한다면, <찬솔가>는 소나무라는 자연적 대상으로 인간의 내적 정서와 감각적 체험을 사건화한다. 들뢰즈가 지적했듯, “사건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향가와 현대시는 사건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드러내는 언어적 장치로 이해될 수 있다. 향가의 의례적 특성과 시적 서정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사건의 다층적 의미와 시간적, 공간적, 확장을 동시에 관찰할 수 있다.
또한 이 두 시를 사건 존재론적 시각으로 비교하면, 향가가 단순한 역사적 기록이나 신앙적 의례를 넘어, 인간과 세계를 연결하는 매개적 장으로 기능함을 알 수 있다. <도솔가>에서 사건은 외부적 충격으로서 인간의 도덕적, 영적 반응을 촉발하고, <찬솔가>에서 사건은 자연과 인간 의지의 교차점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생시킨다. 칼 융이 말했듯, “심리적 사건은 단순한 경험이 아니라,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형성되는 의미의 순간”이라는 통찰은, 향가와 현대시 두 작품의 사건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가 된다.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본 분석에서는 향가와 현대시가 사건으로서 어떻게 존재하며, 언어와 경험을 통해 사건화되는지를 구체적으로 탐구하고자 한다. <도솔가>의 해석은 해석하는 분들에 따라 다 다르나, 평자는 양주동의 해석을 분석 텍스트로 삼고자 한다.
오늘 이에 산화 불러
뿌린 꽃이여 너는
곧은 마음의 명 받아
미륵좌주 뫼셔라.
- 월명의 <도솔가> 전문
신라시대 월명의 <도솔가>는 하늘에 해가 두 개 나타나는 기이한 현상을 제지하고자 지은 향가이다. 향가 속에서 ‘오늘 이에 산화 불러 / 뿌린 꽃이여 너는 / 곧은 마음의 명 받아 / 미륵좌주 뫼셔라’라는 구절은 단순한 의례적 주문이 아니라, 사건의 도래를 기록하는 언어로 이해될 수 있다. 들뢰즈가 말한 사건은 사물이나 현상이 발생하는 순간을 넘어서, 그것이 인간과 세계에 가져오는 ‘관계적 변화를 의미하는 순수한 사건’이다. 월명의 향가는 하늘의 변고라는 외적 사건을 기록하는 동시에, 인간의 도덕적, 정신적 반응을 개입시켜 사건을 구성한다. 이 지점에서 향가는 단순한 묘사가 아닌 사건의 실현과 경험을 중첩시키는 장으로 확장된다.
척박한 바위 위에 굽이친 세월이여
푸른 강철 같은 기백이 하늘을 찌른다
모진 눈보라 속 홀로 깨어 선 선비의 모습
홀로 푸르름을 지키는 그 기상에 고개를 숙인다
- 월강의 <찬솔가> 중에서
월강의 <찬솔가>는 소나무를 예찬하며 ‘곧은 마음’과 자연의 의지를 동시에 드러낸다. 이 시에서 소나무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사건의 매개자다. 들뢰즈적 관점에서 소나무는 ‘사건화된 사물’로, 인간의 주관과 자연적 대상 사이에서 새로운 의미와 관계를 생성한다. 즉, 소나무의 직립성과 생명력은 인간의 내적 의지와 결합하여 하나의 순수사건으로 작동한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말처럼, “자연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사건의 연속 속에서 의미를 얻는다.”는 사실과 맞닿는다. 월강의 시는 대상과 주체의 관계를 사건적 층위에서 드러내며, 자연과 인간의 감각적·정신적 교차점을 탐색한다.
이 현대시는 소나무를 매개로 인간과 자연, 시간과 역사, 내적 정신성을 연결하는 서정적 시적 장치로서 읽힐 수 있다. 시의 첫 구절, “척박한 바위 위에 굽이친 세월이여 / 푸른 강철 같은 기백이 하늘을 찌른다”에서 우리는 단순한 자연 묘사를 넘어, 소나무가 겪어온 시간과 그 존재의 내적 강도를 사건화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들뢰즈가 말한 사건이란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사물과 세계가 맺는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점에서, 시 속 소나무는 사건의 주체가 된다. 즉 소나무는 바위와 세월이라는 외적 환경과 인간 독자의 주관적 인식을 만나며, 단순한 존재를 넘어 사건으로서 경험된다. 척박한 바위 위에서도 굴하지 않는 소나무의 기백은, 독자에게 인간 정신과 자연의 긴장, 그리고 불굴의 의지를 동시에 감각하게 한다.
향가와 현대시는 시간적, 형식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사건을 기록하고 체험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향가는 의례와 공동체적 경험을 바탕으로 사건을 기록했지만, 현대시는 주관적 경험과 서정적 반응을 강조하며 사건의 의미를 재구성한다. 월명의 <도솔가>가 하늘의 두 해라는 외부 사건을 주제로 삼았다면, 월강의 현대시는 일상적, 심리적 사건을 사건화하여 독자에게 내적 체험으로 전환한다. 해럴드 블룸은 “시인은 세상과 사건 사이의 틈새를 읽어내는 감각을 가진 자”라고 말했듯, 향가와 현대시는 사건을 인식하고 언어로 변형하는 역할에서 유사성을 가진다.
결국 <도솔가>와 <찬솔가>는 사건의 존재론적 해석을 통해, 단순한 서정이나 의례의 영역을 넘어선다. 사건으로서의 시는 인간과 세계, 자연과 의지, 경험과 기록 사이의 관계망 속에서 의미를 발생시키며, 이를 통해 신라시대 향가가 현대적 시적 경험과 접속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들뢰즈의 관점에서 볼 때, 시는 사건을 ‘일어나는 것’으로서 존재하게 하며, 이는 곧 언어와 세계의 관계를 재편하는 창조적 장이다. 따라서 향가의 의례적 언어와 현대 시적 서정이 결합하면, 사건화된 시적 체험이 어떻게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인간의 인식 속에서 살아나는지 재확인할 수 있다.
월명의 <도솔가>를 해석함에 있어서, 김동욱은 미륵청불의 불교가요로 보는가 하면, 김열규는 <구지가>와 그 성격을 같이하는 것으로 본다. 한편 김종우는 ‘미륵좌주’라는 말을 낭불융합(郎佛融合)의 과정에서 이루어진 독특한 용어로 보고, 순불교적인 가요로 각각 파악하였다. 월명의 <도솔가>는 하늘에 해가 둘 나타난 괴변을 없애기 위한 의식에서 불린 노래이다. 합리적 사고로는 하늘에 해가 둘 나타나는 것을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두 해가 함께 나타났다.”는 것은 사실의 기록이 아니며, 우회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천상계와 인간계의 대응관념으로 보았을 때, 해는 곧 왕에 대응된다. 하늘의 두 해 중 하나는 현재의 왕에 도전할 세력의 출현을 예보해 준다. 이러한 세력의 출현은 혼돈을 빚고, 그래서 이 혼돈을 조정할 행위가 필연적으로 요구된다는 측면에서 이 <도솔가>의 존재 의의가 생성된다고 하겠다.
이와같이, 왕권에 도전하려는 세력들에 의한 사회적 혼란을 조정하기 위하여 행해진 의식이 산화공덕이고, 이 의식에서 불린 노래가 <도솔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산화공덕은 순수한 불교적인 관념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재래신앙의 차원에서 불교의식을 수용한 상태의 것이다. 즉 재래의 천신숭배사상에다 시조강림관념은 쉽사리 미륵하생관념(彌勒下生觀念)을 받아들였고, 그것이 변용되어 미륵좌주로 나타난 것으로 보는 것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실린 해석이다. 거기에 계를 지으라고 함에 향가로 대신하는 양상이 나타난 것이란 입장이다.
척박한 바위 위에 굽이친 세월이여
푸른 강철 같은 기백이 하늘을 찌른다
모진 눈보라 속 홀로 깨어 선 선비의 모습
홀로 푸르름을 지키는 그 기상에 고개를 숙인다
어찌하여 천 년을 변치 않는가
굳건한 절개는 곧은 뼈에 새겨져
도끼도 감히 범접하지 못할 청렴이다
이 땅의 으뜸 솔의 자태여
솔잎 끝에 매달린 새벽 이슬마저 맑고
가슴을 열면 퍼져나오는 그윽한 향
더러움을 씻어내는 정화의 기운으로
내 영혼까지 청정하게 맑혀주네
아 소나무여 우리 민족의 기상이여
그 강인한 생명력과 고결한 향기를
대대손손 물려받아 영원히 노래하리
그대의 이름은 영원불멸 그 향은 천년의 노래
- 월강의 <찬솔가> 전문
▷월강(시인)
둘째 연에서 시인은 소나무의 불변성과 고결함을 강조하며, 이를 인간 정신의 모델로 삼는다. “굳건한 절개는 곧은 뼈에 새겨져 / 도끼도 감히 범접하지 못할 청렴이다”라는 표현은 자연의 물리적, 시간적 강인함이 인간의 윤리적, 정신적 가치와 결합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여기서 소나무는 단순한 생태적 대상이 아니라, 들뢰즈적 의미의 ‘사건화된 사물’로 작용한다. 사건화된 사물은 그것이 놓인 환경과 인간의 인식 사이에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며, 이 시는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한다. 칼 융의 말처럼, “심리적 사건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형성되는 의미의 순간”이라는 통찰은, 소나무를 통해 인간 내면의 윤리적, 정신적 사건이 발생함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세 번째 연, “솔잎 끝에 매달린 새벽 이슬마저 맑고 / 가슴을 열면 퍼져나오는 그윽한 향 / 더러움을 씻어내는 정화의 기운으로 / 내 영혼까지 청정하게 맑혀주네”는 자연의 물리적 현상이 독자의 감각과 정서에 작용하는 사건적 경험임을 보여준다. 소나무의 향기와 이슬은 단순한 감각적 이미지가 아니라, 인간의 내적 공간을 변화시키는 사건적 힘으로 작동하며, 독자 스스로 사건에 참여하게 만든다. 이는 시가 단순한 자연 찬미를 넘어, 인간과 자연의 감각적, 정신적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시적 장치임을 드러낸다. 스티븐 제이 굴드가 말했듯, “자연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사건과 과정 속에서 의미를 획득한다”는 관점에서, <찬솔가>는 소나무를 중심으로 사건화된 자연의 의미를 시적 언어로 재현한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소나무를 민족적, 역사적 상징으로 확장하며, 그 생명력과 향기를 영원한 가치로 승화시킨다. “아 소나무여 우리 민족의 기상이여 / 그 강인한 생명력과 고결한 향기를 / 대대손손 물려받아 영원히 노래하리 / 그대의 이름은 영원불멸 그 향은 천년의 노래”라는 구절은 사건이 시간 속에서 지속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들뢰즈가 지적한 ‘순수사건’의 지속성 개념과 맞닿는 지점이다. 소나무의 존재가 단순히 시간적 흐름 속에서 묘사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경험과 역사적 기억 속에서 반복적으로 사건화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생성한다.
<찬솔가>는 자연예찬적 서정시를 넘어, 사건 존재론적 시학을 실현하는 작품으로 읽힌다. 소나무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외적 환경과 인간 인식 속에서 사건화되는 존재이며, 이를 통해 인간의 내적 윤리와 정신, 감각적 체험이 동시에 작동한다. 시는 독자에게 단순한 묘사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경험하게 하고, 인간과 자연, 역사와 시간, 감각과 정신의 교차점을 드러내는 창조적 장으로 확장된다.
Ⅲ.
월명의 <도솔가>와 김월강의 <찬솔가>는 서로 다른 시대적 배경과 대상에도 불구하고, 사건 존재론적 관점에서 공통적인 시적 기능을 수행한다. <도솔가>가 외적 사건, 하늘에 두 개의 해가 뜨는 기이한 현상을 기록하며 인간의 도덕적, 정신적 반응을 불러일으킨다면, <찬솔가>는 자연의 한 존재, 소나무를 매개로 내적 사건을 체험하게 한다. 들뢰즈가 말한 바와 같이 “사건은 사물과 세계가 맺는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관점에서, 향가와 현대시 모두 인간과 세계, 자연과 의지가 교차하는 장으로서 기능하며, 언어를 통해 사건을 경험하게 만든다.
또한 월명의 향가와 월강의 현대시는 단순한 서정적 표현이나 의례적 기록을 넘어, 인간과 자연, 역사와 시간의 관계를 사건화하는 창조적 장을 제공한다. <도솔가>에서 인간은 외적 사건에 대응하며 의례적 실천 속에서 사건을 완성하고, <찬솔가>에서 독자는 자연적 존재와의 감각적, 정신적 교차를 통해 사건적 체험을 수행한다. 칼 융의 통찰처럼, “심리적 사건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의미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두 향가는 각각 외적, 내적 사건을 매개하며 인간 경험의 의미를 확장한다.
이 향가와 현대시 비교를 통해 우리는 향가와 현대시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사건을 기록하고 체험하는 시적 장치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해럴드 블룸의 말처럼, “시인은 세상과 사건 사이의 틈새를 읽어내는 감각을 가진 자”라는 통찰은, 향가가 단순한 역사적 유물이 아니라, 인간과 세계, 자연과 의지, 경험과 언어를 잇는 사건화된 시적 장임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신라 시대 향가와 현대 시적 서정은 단절되지 않고, 사건 존재론적 관점 속에서 하나의 연속적 경험으로 재해석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