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8(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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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수부 수필가는 고려대학교 산림자원학과 졸업(학사) 동국대 교육대학원 영어교육과 졸업(석사) 월남 맹호부대 참전(ROTC 3기) 미 육군공병학교 측지과정 수료 미8군 JUSMAG-K 연락장교 육군대학 졸업 국방부 관리정보실(육군중령 예편) 전쟁기념관 학예관 정년퇴임 K․J 스피치 자문위원 순수문학 등단(2003) 국제pen한국본부 회원 순수문학 우수상 전쟁문학상 제20회 순수문학 대상 제7회 에세이문에문학상 대통령 표창 국무총리 표창 수필집 '댓돌 위의 갈색 구두' '진주반지' '아침 한 때의 행복' '손자의 비밀' '아내' '석양에 물든 가을 바다' 'Beautiful Story(아름다운 이야기)' '이 모습 이대로' '추억의 집' '길에 선 나무는 웃지 않는다' '어둠을 건너는 빛처럼' 출간

향긋한 커피 한 잔의 여운

 

 

고수부/ 수필가

 

주일이 돌아오면 마음이 설렌다.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목사님의 말씀을 들을 생각에 가슴이 뛴다. 성경 66권의 말씀 중 한 구절을 택해 30분간 설교문을 준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울까. 군 복무 시절 군목이 주일 설교문을 쓰는 일이 일주일 내내 스트레스라며 웃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는 듣기만 하지만 말씀을 준비하는 분의 부담은 결코 가볍지 않음을 그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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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부 고려대학교 산림자원학과 졸업(학사) 동국대 교육대학원 영어교육과 졸업(석사) 월남 맹호부대 참전(ROTC 3기) 미 육군공병학교 측지과정 수료 미8군 JUSMAG-K 연락장교 육군대학 졸업 국방부 관리정보실(육군중령 예편) 전쟁기념관 학예관 정년퇴임 K․J 스피치 자문위원 순수문학 등단(2003) 국제pen한국본부 회원

 그러나 모든 설교가 다 감동적인 것은 아니다. 때로는 마음이 딴 데로 향한다. 2000년 전 예수님의 말씀보다 오늘의 정치와 사회문제에 귀가 쏠릴 때도 있다. 그런 면에서 광장의 설교는 현실감이 있다

 

그는 신앙과 시대를 함께 이야기한다. 거룩함 속에서도 현실의 소리를 담아내는 용기,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교회에 가는 이유는 단지 설교만이 아니다. 예배가 끝나면 이어지는 성도의 교제가 더 큰 기쁨이다. 수십 년 동안 매주 얼굴을 맞대온 교인들과의 만남, 그것이 주일의 또 다른 예배다. 세상 어디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삶을 나누는 공간이 있을까.

 

2부 예배가 끝나면 나는 곧장 지하 1층 식당 로비로 향한다. 그곳엔 늘 함께 만나는 집사님들이 있다. 네 명이던 우리 모임은 요즘 한 분이 쳑추협착증 통증으로 쉬고 있어 셋만 모인다. 그래도 여전히 반갑다. 매주 얼굴을 보는데도 늘 새롭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우리를 삼총사라 부른다

 

식당 앞은 늘 긴 줄이 늘어서지만 우리는 굳이 줄을 서지 않는다. 의자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주제는 특별할 것 없지만 정치 이야기만큼은 흥미롭다. 세상 돌아가는 일을 솔직하게 나눌 수 있는 자리이기에 더욱 속이 시원하다

 

셋이 이렇게 친해진 것도 몇 해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서 함께 서명하고 광화문 광장을 함께 걸으면서부터였다. 그때 맺은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식사가 끝나면 우리는 다시 1층 로비의 물댄동산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곳은 마치 교회 안의 작은 스타벅스 같다. 성도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소리로 가득하다. 조잘조잘 끊이지 않는 웃음소리, 커피 향이 퍼지는 따뜻한 공기, 그리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온기, 이보다 평화로운 풍경이 또 있을까

 

자리를 잡고 앉아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첫 모금을 입에 머금으면 향긋한 향이 코끝을 스친다. 커피의 진미는 단숨에 마시는 데 있지 않다. 한 모금 마시고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다시 한 모금, 그렇게 시간을 음미하는 데 있다. 그 순간의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친교의 매개 시간의 향기다.

 

지난주에는 작은딸과 함께 분당제생병원을 다녀왔다. 척추 수술을 받은 지 꼭 일 년이 되는 날이었다. 서울에서 분당으로 달리는 동안 딸의 운전대 잡은 손길이 어쩐지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나는 뒷좌석에 앉아 있었지만 속도가 80만 돼도 괜히 불안했다. 그러나 운전대 앞의 딸은 침착했다

 

그 모습이 대견스러워 가슴이 뿌듯했다. 작년에 처음 왔을 때는 지하주차장 진입로의 급한 곡선에 놀라 차가 긁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일 년 사이 운전 실력이 부쩍 늘었다. 차는 매끄럽게 지하 3층에 들어섰고 나는 조용히 이제 베테랑이 다 됐구나하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진료를 마친 뒤 의사는 아무 이상 없습니다. 현 상태면 충분히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에 마음이 놓였다. 다리는 여전히 쪼그려 앉기 어렵지만 걷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나는 수술을 집도한 의사에게 속으로 감사를 드렸다. 병원 약국에서 약을 타고 딸과 식당에 들어가 갈비탕 한 그릇을 나누었다

 

그리고 차 한잔 하자며 지하의 작은 커피숍으로 향했다. 딸은 냉 아메리카노를, 나는 커피라떼를 시켰다. 복도에 놓인 간이의자에 나란히 앉아 마시는 커피의 향이 어찌나 향긋한지 마치 마음속에 햇살이 비추는 듯했다.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으며 그 순간을 천천히 음미했다. “아빠, 맛있죠?” “그래, 이건 단순한 커피 맛이 아니야. 행복의 맛이지.” 딸이 웃었다.

 

남은 커피를 들고 병원을 나섰다. 차 안에서 고속도로를 달리며 창밖을 바라본다. 도로 위로 펼쳐진 가을 하늘이 유난히 높다. 병원 진료 결과가 좋다는 사실 때문일까 마음이 한결 가볍다. 옆자리 컵홀더에 꽂힌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을 머금는다. 순간 그 향긋한 맛이 온몸을 감싼다. 달리는 차 속에서 느끼는 커피의 향기 그것은 단순한 음료의 향이 아니다. 삶이 주는 위로와 평안의 향기다.

 

커피는 장소와 때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을 낸다. 내게는 세 곳이 있다. 첫째는 주일 예배 후 물댄동산에서 집사님들과 함께 마시는 커피, 둘째는 목요일 수생반 강의실에서 글을 쓰며 홀짝이는 커피, 그리고 셋째는 오늘처럼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고속도로 위에서 딸과 함께 나누는 커피다

 

커피의 향은 단지 입맛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의 순간을 기억하게 하는 시간의 향이다. 오늘의 커피 한 잔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단순하다. “향기로운 것은 커피가 아니라 그 순간을 함께한 사람의 마음이다.” 그 향긋한 커피의 맛, 오늘도 내 기억 속에서 따뜻하게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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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겨울을 데피는 한 편의 수필, 고수부 '향긋한 커피 한 잔의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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