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장의 눈물
송정자/ 수필가, 제3회 권대근문학상 수상
겨울 아침 김에 서린 대합실, 새벽 기차 타던 학생, 장터에 갔다 돌아오는 어르신들, 대학생들이 고향의 집으로 내려가던 역, 연인과 잡은 손을 놓고 헤어지던 플랫홈, 어머니가 주먹밥을 싸서 배웅해주던 간이역이 사라졌다. 작은 역사驛舍만이 아닌 인간의 삶 한 조각이 떨어져나가는 일이다.
화랑대역은 춘천역까지 연결되었던 경춘선 노선 중에서 서울에 위치한 마지막 간이역이다. 원래의 이름은 태릉역이었다. 경춘선 복선 전철화에 폐역이 되면서 마지막으로 남은 간이역이었던 화랑대역은 사라지고 아담한 역사 한 채만 빈 선로에 남게 되었다. 그렇게 생겨난 화랑대역사전시관은 철도 침목을 그대로 두고 외관을 변형시키지 않은 원형 그대로 간직한 모습이다. 그 곳에 경춘선이 사라지기 전까지의 철도에 관련된 오래되고 낡은 자료들을 한데 모았다.
정기승차권,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춘천행 통일호 차표. 열차시간표와 여객 운임표까지 예전에 사용하던 차표가 진열장에 담겨있다. 추억 속의 개표가위가 눈에 띈다. 칠십여 년 전 모습을 간직한 흔적이다. 에드먼슨식 승차권이라 불렀던 딱지승차권과 마그네틱 차표가 가지런히 유리 위에 누워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달라진 다양한 승차권은 철도승차권의 변천사를 담지한 채 추억을 묶어낸다. 입가에 살풋이 미소가 번진다.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흑자주색 빌로드 천으로 만든 좌석, 중간 팔걸이가 없어 낯선 동석자와 팔꿈치가 닿아야 했던 어색함은 나만의 기억일까. 오래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별의별 전시품들을 보니 묵은 기억들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눈에 먼저 띈 것은 열차 카트다. 쌕쌕 오렌지, 초록색 사이다병, 구운 계란 묶음, 보온병까지 그 옛날 기차 안 풍경이 새록새록 다가온다. 열차 위 선반에는 통기타, 옛날 트랜지스타와 책가방 등 추억의 물건들이 한가득 실려 있다.
굿바이 역장님, 화랑대역의 권재희 역장님은 마지막 역장이 되었다. 선반에는 잘 개어놓은 제복과 각진 모자가 있고 명찰도 전시해놓았다. 마네킹에 역장님의 제복을 입혀놓았다. 역장님과 기차를 타려는 손님들은 매일 얼굴을 마주하며 늘 대화를 나눴다. 감자와 옥수수를 나누어 먹기도 했다. 여행길에 나서는 손님을 가족처럼 맞이해 주고 싶었다는 역장님의 마음이 전해온다. 전철 전환을 하루 앞두고 역장님은 정복차림으로 플랫홈에 섰다. 마지막으로 출발하는 춘천행 열차를 향해 오른 손을 번쩍 들어 출발을 알리는 수신호를 보냈다. 동시에 화랑대역에도 이별의 인사를 건넸다. 그 순간 그의 눈에는 자신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철철 쏟아졌다. 수십 년간 열차손님을 맞이하고 배웅했던 역사와 작별해야 하는 순간에 어찌 복 받치는 회한이 없으랴
내가 서른 즈음, 우리 가족은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를 왔다. 다섯 살, 세 살 박이 아이를 데리고 남편 직장 따라 거주지를 옮기게 되었다. 남편은 먼저 올라와서 서울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된 상태였다. 나는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서울 문화를 익히느라 정신이 없었다. 때로는 새파란 바다를 보면 숨이 트이던 부산에 대한 향수에 질금질금 눈물이 나곤 했다. 한 번도 복잡한 서울에서 살게 되리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다. 나의 정신적 고충을 조금도 들여다보지 않는 남편과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어느 날 저녁상에서 언성이 높아졌고 나는 큰애를 데리고 집을 뛰쳐나왔다. 바다를 보고 싶은 마음에 무턱대고 역으로 갔다.
청량리역에서 밤새 동해로 가는 야간 완행열차를 탔다. 지금은 폐선이 된 화랑대역을 지나가는 그 기차였다. 화랑대역사에 진열해둔 전시품처럼 짐칸에는 통기타가 올려져 있고 라디오도 있었다. 대학생들의 빅백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노트와 볼펜이 삐져나오기도 했다. 학생들은 맥주와 땅콩을 바닥에 깔아놓고 트랜지스터라디오를 틀어 기타를 치며 목청 높여 노래를 불렀다. 그 중 기억나는 노래는 고래잡이였다. “자 떠나자 고래 잡으러” 학생들은 밤새 기차로 달려 고래를 때려잡고도 남을 정열과 기운이 왕성해 보였다. 다섯 살 꼬마가 귀엽다고 여기저기서 과자를 주며 안아주는 형들 틈에 영문도 모른 채, 마냥 신나하던 아들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선하다.
간이역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보내고 마중하던 공간이다. 사라지는 데는 노후된 철도의 변화만이 아니라 지방 인구가 줄어들고 고령화가 가장 큰 이유이리라. 승객이 감소하니 자연 열차 운행이 줄어들고 역의 기능이 약해지는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러다가 결국 폐역이 되는 수순을 밟는다. 간이역의 소멸은 인구의 감소와 직접 연결되는 신호가 아니겠는가. 사람 냄새 나는 풍경들이 문을 닫고 있다. 더 빨리, 더 멀리, 더 효율적인 것들을 추구하는 시대에 느림과 머묾의 고유성은 이제 다른 시설, 다른 방식으로 다가온다. 기차 까페와 전시관, 역사관 또 다른 볼거리로 조성된 곳은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흔한 공간이지 않은가.
역장님은 단순히 마지막 역장의 퇴임에만 그치지 않았다. 사라지는 역이 아닌 기억의 공간으로 남기기 위해 애를 썼다. 폐역 직전에는 작은 음악회와 마지막 열차 추억담기 행사를 열었다. 역사 내부에 기록 사진을 내 걸고 낡은 간이역의 매표소, 대합실을 살렸다. 방문객들이 자유로이 이용하도록 피아노를 놓고, 차를 마실 수 있게 커피포트를 두기도 했다. 젊음과 열정을 쏟았던 곳이니 역을 떠나야 하는 빈자리가 얼마나 크셨을까. 숲길 공원 개장식에서 역장님은 과거처럼 수신호를 들어 기차 출발을 알리는 세러머니를 흔들었다. 여전히 화랑대역 지킴이라는 변함없는 마음으로 역사를 지키고 사람들의 기억을 지키려 하는 한 사람의 헌신에 많은 이들이 위안을 받지 않았을까.
잊혀져가고 아련한 것들에는 무엇인지 모를 그리움이 잔뜩 묻어있다. 차표 한 장 끄집어내는 그 순간에 내 곁에 서있던 어린 아들이 스며있고, 주춤거리던 젊은 내 모습도 그 곳에 서있다. 찰나에 각인 되는 한 장면처럼, 잊음과 기억 사이의 균형은 살아 움직인다. 조르주 상드가 말한 “우리가 진정 사랑한 것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우리에게서 멀어질 뿐이다.”라는 말이 와닿는다. 간이역의 사라짐은 소멸이 아니라 남는 방식이 달라지는 새로운 시작이라 할 수 있을까.
▼송정자
경남 밀양 출생, 경희대학교 서정범수필교실 수료, 정독도서관 다스림서울 수필과정, 2001년 <한국수필> 등단, 2022년 제43회 강원경제신문 코벤트가든문학상. 수필 대상 (족두리 꽃), 2024년 제4회 설총문학상, 2025년 (2025) 경기문화재단 경기예술생애첫지원 (문학)사업 선정, 2025년 제7회 동대문문학상, 2025년 제3회 권대근문학상, 수필집 『f홀의 위로』,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수필작가회 회원, 동대문문인협회 감사, 동대문문학 편집위원, 정독수필다스림서울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