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는 도시
남현설/시인, 수필가, 권대근문학상운영위원회 사무국장
벽들이 질서정연하게 숨을 쉰다
창문마다 같은 하늘을 잘라 들여놓고
하늘의 넓이로 행복을 잰다
엘리베이터는
욕망의 방향을 오르내린다
누군가는 위로
누군가는 아래로
버튼 하나로 결정되는 인생의 층수
밤이면 네모난 별들이 동시에 켜진다
빛이 아니라
서로의 불안을 가리는 커튼 같은 것
타인의 숨이 내 폐를 지나가고
내 숨이 이웃의 창틀에 맺힌다
수천 개의 방이 모여
하나의 몸이 된 거대한 심장
그 속에서
같은 꿈을 꾸며
서로의 벽이 되어간다
▼남현설
포항 출신, 2023년 에세이문예 시 등단, 2025년 에세이문예 수필 등단, 2024년 에세이문예작가상 수상, 2025년 제1회 진리와표현문학상 수상,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부산수필문학협회 회원, 권대근문학상운영위원회 사무국장, 사)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이사, 에세이문예 편집차장, 다스림부산 동인 녹조근정훈장 수훈
▼해설/권대근(문학평론가)
이 시는 도시를 인간의 배경이나 무대로 재현하지 않고, 비인간적 물질들의 집합체가 스스로 호흡하고 감응하는 신유물론적 존재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벽들이 숨을 쉰다’, ‘엘리베이터는 욕망의 방향을 오르내린다’라는 구절은 도시의 구성 요소들을 단순한 사물로 두지 않고, 행위능력(agency)을 지닌 물질적 행위소로 호출한다. 여기서 욕망은 개인의 내면 심리가 아니라, 버튼, 층수, 수직이동이라는 물질적 장치의 배열 속에서 생성되는 흐름이다. 인간은 욕망의 주체라기보다, 엘리베이터라는 비인간적 장치가 만들어낸 경로를 통과하는 통행자에 가깝다. 이는 신유물론이 말하는 “주체의 탈중심화”와 정확히 맞닿아 있으며, 의미와 행위가 인간 내부가 아니라 물질적 배치의 상호작용 속에서 발생함을 드러낸다.
이 시에서 도시는 더욱 급진적으로 하나의 신체로 전환된다. ‘타인의 숨이 내 폐를 지나가고 / 내 숨이 이웃의 창틀에 맺힌다’는 구절은 개인의 경계를 해체하며, 호흡이라는 생물학적 행위를 공기, 창틀, 방, 벽이라는 비유기적 물질들과 얽힌 공동의 사건으로 재구성한다. 이때 ‘거대한 심장’은 은유가 아니라, 수천 개의 방과 벽과 빛과 숨이 만들어낸 집합적 물질-생명체에 가깝다. 도시의 빛은 위안이 아니라 ‘불안을 가리는 커튼’이며, 벽은 보호막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구성하는 경계면이 된다. 결국 이 시는 인간들이 도시 안에 사는 이야기가 아니라, 도시라는 물질적 집합체 속에서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꿈꾸고, 함께 숨 쉬며, 서로의 조건이 되어가는 과정을 포착한 신유물론적 시적 사유의 성취라 할 수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