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5(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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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정자 [수상작품] 영의影衣

[대한기자신문 김채원 기자] 사람이 생을 마치면 육체는 소멸되고 세상에는 결을 남긴다. 육체는 사라지지만 죽은 자가 남긴 결, 그 본질이 역설적으로 드러난다. 살아있는 사람의 손에 의해 색 바랜 린넨 위에 성긴 니트가 얹히고, 감추려 해도 드러나는 내면의 결이 고스란히 그림자처럼 발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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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송정자 2026년 지구일보 신춘문예 당선자와 지구일보 이창호 대표

 

경북 고령군 쾌빈리에서 이장 작업 중에 곽조이의 묘가 발견되었다. 그 안에서 낡고 삭은 저고리, 고쟁이, 솜바지가 나왔다. 누비저고리는 깁다 못해 덧단까지 댄 남루한 옷들이 부스스 삐져나왔다. 서울여자대학박물관은 무덤에서 출토된 복식을 복원해 전시하는 중이다. 오랜 세월동안 빛을 잃고 색이 바랜 의복에 정성스러운 재현작업을 거쳐 다시 새 생명을 입혔다. 장 옷, 저고리, 치마, 속바지 열한 벌이 한 땀 한 땀 손길을 거친 바느질과 솔기 처리로 세밀하게 살아났다. 단순한 복원의 차원만이 아닌 17세기 여인의 삶을 불러와 잃어버린 색채와 숨결을 되살린 현장이다.

 

면천해남곽조이지구라는 망자의 신분이 불그스름하게 얼룩진 명정 천에 쓰여 있다. 면천과 조이가 함께 쓰인 최초의 명정이라 한다. 면천은 천민의 신분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조이는 조선전기까지 신분과 연령, 혼인여부와 무관하게 여성의 이름대신 두루 쓰이던 고유명사 이름이다. 후기에는 첩의 신분을 표시하는 명칭이었다. 천첩이었던 곽조이는 남편의 청원으로 면천이 되었을까. 아니면 적자 손 없는 집안에 자손을 두어 그 자식의 벼슬길을 위해 천한 출신인 첩의 신분을 높여주었을까. 누구의 부인, 정경부인이라는 칭호가 아닌 명정에 쓰인 면천이라는 각인은 마치 불로 지진 주홍글씨처럼 붉고 또렷하다.

 

살아생전 그녀는 신분의 상승을 간절하게 꿈꾸었을까. 천민이라는 처지를 내면에서부터 끊임없이 밀어내던 갈망의 꽃이 수백 년이 흐른 지금, 회곽 묘가 열리고 그녀가 잠에서 깨어 발화하고 있다. 그 음성의 일정한 연쇄체는 면천이라는 단어를 확고하게 전달해 주고 있다. 헤져서 누덕누덕한 누빔 저고리의 옆구리 여밈 끈조차 낡아 그녀의 삶을 분출시킨다. 남편이나 가문의 선택에 의해 삶이 좌지우지 되었던 여인, 곽조이의 생은 명정의 문자가 파편화되어 여기저기서 흩어져 소리를 내지 않은가. 관 위에 실크로 된 빨강 천, 파란 천을 덮어두어 명정에도 얼룩덜룩 색이 물들었다. 살아생전 결혼식 때 어른들께 폐백을 드리듯, 저 세상으로 갈 때도 지신과 천신에게 드리기 위한 예단이었을까. 북두칠성판아래 숯가루를 뿌리고 돗자리도 깔았다. 저승에서의 새로운 삶을 위해 이삿짐 싸듯 쟁여 넣은 부장품이 얼기설기 열악한 보존에 이염되어 낯선 얼굴을 하고 있다.

 

조이의 유해 골반을 보고 여성이라는 것과 출산의 경험을 알게 되었다. 이빨의 마모와 골반의 퇴행변형으로 관찰하고 추정한 그녀의 나이는 마흔 즈음, 저고리 품이 넉넉한 걸로 보아 임진왜란 전일 것이라는 추측이다. 생활 형편이 좋았을 리 없는데 망자를 대접하려는 상주의 예의였을까. 복식류와 치관제구 모두 오십 여점이 나왔다. 관이 흔들리지 않게 이불이 동원되었고 그녀의 몸 아래 위, 구석구석에 남자의 한삼까지 끼워 넣었다. 입고 있는 수의를 제외하고 관 속의 빈 곳을 모두 채우는 보공에 쓰인 옷이 수십 여벌이니 이승에서의 구차한 하직은 면했다고 말해도 될까.

그녀가 입고 있는 누빔 저고리에는 옷고름이 없었다. 옷고름을 떼어낸 것은 이승과의 인연을 끊어낸다는 의미라 하는데 생을 마치는 순간에도 지독한 가난에서 떠나고 싶었을까. 이승에서의 삶을 모조리 끝내고 싶었던 그녀를 떠올리니 검은 관 한 채가 새끼줄에 실려 하관하듯 저린 어둠이 수직으로 내리꽂힌다. 어찌 내면의 상처만 고통이라 할 수 있을까, 그녀의 외상은 기울 수조차 없는 누더기 낯빛인 것을, 감출 수도 없는 것을. 나는 한동안 쪽물 염색이 바래서 물에 탄 잉크자국처럼 얼룩진 그녀의 장옷 앞에 말없이 서있었다.

 

내가 어릴 적 살았던 외딴집이 생각난다. 외풍에 가늘게 흔들리는 호롱불빛 방향으로 흑채처럼 늘어뜨린 등 그림자를 세워두고 엄마는 내 옷을 꿰매고 양말을 시침질했다. 바늘에 꿴 실이 수없이 왔다갔는지 천을 덧댄 양말 발꿈치가 두꺼워져 키가 커질 정도였다. 쌀 장독 바닥이 휑한데도 박 속 긁어 파듯, 바가지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도록 북북 긁어대던 지독한 가난의 대물림은 이제 역사의 길로 사라져갔다. 지금은 양말이 서랍 속에서 넘쳐나지만 기운 발바닥의 기억은 버리지 못한다.

 

가을날 낙엽처럼 고요히 흙의 양분이 되어 섞이지 못한 그녀의 일생, 회곽을 덧칠해 혼연히 녹아내리지도 못한 그녀의 주검이었다. 자신처럼 궁핍하고 처절했던 천민의 일생을, 넉넉한 풍요를 입고 사는 현대여성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을까. 천민을 면한 안도의 숨에도 곽조이는 행복하지 못했을 듯싶다. 정경부인의 관속에서나 볼 법한 청보라 빛 숯은 깔지 못해도 입은 수의만이라도 정갈한 새 옷이었다면, 그녀의 사후가 이리도 애련할까. 면천이 되어 천민의 신분을 벗고도 그녀의 관 위에는 여전히 천민이라는 문장이 박혀있다.

 

그녀의 출토복식을 보고 패션전공 학생들이 새 옷을 지었다. 박제가 된 과거의 모습이 아닌 현대의 자유를 입히는 조이의 해방 옷 전시가 문을 열었다. 학생들의 작품 중에 유독 영의影衣가 눈에 띈다. 그림자의 옷, 곽조이의 유물을 죽은 그녀가 남긴 그림자라 해석했다. 부패된 천 조각 속에 숨겨진 생의 흔적을 찾아 한 벌의 드레스로 다시 꿰어내었다. 길고 짧은 치마 밑단의 대조는 균형 잡히지 않은 생의 조각을 다잡아주었을까. 그녀의 누덕하고 헤진 저고리를 면천시켜 후손인 한 여학생의 섬세한 손길이 억압에서 해방된 자유의 날개를 달아주었다.

조명불빛 속에 전시된 조이의 누빔 저고리가 새 하얗다. 옆구리 좌임을 여미는 두 가닥 무명 끈이 마치 물 전기에 감전된 풀벌레처럼 파르르 떨린다. 그녀의 사후 생은 끊어내지 않아도 될, 연 분홍빛 옷고름을 곱게 매었으면 싶다. 그녀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면천을 받은 고운 옥색 치마 끝자락이 어여삐 스쳐가기를 희원해 본다.

 

 

[송정자 수상 소감

 

아프리카 사자들이 먹이를 잡아 배를 채운 후에, 남긴 살점을 기다리고 있는 하이에나를 눈감아 주며 슬그머니 자리를 뜹니다. 남이 이룬 성과에 편승하기를 좋아하는 하이에나의 먹이 활동처럼 내 삶은 주체적이지 못했습니다. 한 발자국 뒤에 서서, 남이 먼저 이룬 후에, 내 몫이 있기나 할지 더듬거려보는 몸짓이 허다했지요. 글은 오롯이 내 것이 되어주는 무한한 공간을 만들어 주었고, 나만이 유영할 수 있는 푸른 집으로 손짓을 보냈습니다.

 

여학교 시절부터 새해, 첫날이 되면 옆집 신문을 빌려보았습니다. 신춘문예란에 실린 저 너머 세상 사람들의 당선 글을 시린 손이 벌겋도록 쓰다듬어보기도 했습니다. 나도 언젠가 새해, 새 신문의 첫 페이지에 내 글을 실을 수 있을까, 꿈같은 상상으로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반세기가 흘러 싸목싸목 글 걸음을 내 딛기 시작한 지금, 뜻밖의 당선통지를 받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첫눈 내리는 날, 함박눈이 되어 나를 온통 새하얗게 뒤덮었습니다.

 

의식 있는 글, 수정 같은 세포가 저장될 수 있도록 언제나 수장고를 확장해주시는 권대근 지도교수님, 모두가 그 분의 번뜩이는 강의 덕분입니다. 묵정밭 같은 글을 이리 자양분이 되도록 곱게 여미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고개 숙여 고마움의 인사를 전합니다. 따듯한 정이 넘치는 정독다스림 문우들, 여중 때 선생님 세 분, 친구, 소중한 가족들과 오래도록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작가는 글로 말하고 인성으로 평가된다고 했습니다. 심연에서 끌어올리는 단단한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송정자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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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 출생
경희대학교 서정범수필교실 수료
정독도서관 다스림 수필과정

2001<한국수필>등단
2022년 제43회 강원경제신문 코벤트가든문학상. 수필 대상 (족두리 꽃)
2024년 제4회 설총문학상
2025(2025) 경기문화재단 경기예술생애첫지원 (문학)사업 선정

2025년 제7회 동대문문학상

2025년 제3회 권대근문학상

수필집 f홀의 위로

 

공저 수필집

<사막의 해우소>외 다수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수필작가회 회원. 미리내수필문학회 사무장.

동대문문인협회 감사. 동대문문학 편집위원. 정독수필다스림 회장.

김채원(金采媛)전문 기자 kcunews@daum.net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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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2026년 지구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당선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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