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기자신문 이창호 칼럼니스트] 2025년의 한 해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다시금 '생의 유한함'을 마주한다.
러시아의 소설가 도스토옙스키는 사형대 위에서 집행 직전 사면을 받았던 5분간의 기억을 평생의 동력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에게 삶은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 절박한 무대였다.
2026년 새해를 맞이하며 우리가 되새겨야 할 첫 번째 문장 역시 이것이다. "인생에는 기필코 리허설이 없다."
우리는 흔히 "준비가 되면 시작하겠다"거나 "다음 기회에 잘하겠다"는 말로 현재를 유예한다.
동서고금 삶은 연습 게임 없는 본 게임이며, 매 순간이 초연(初演)이자 종연(終演)이다.
다가오는 새해,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거침없이 대지를 가르는 '적토마(赤兎馬)'의 기개다.
동시에, 그 질주의 끝이 낭떠러지가 되지 않게 하는 '적정선(適正線)'의 철학이다.
■ 적토마의 기세, 주저함을 돌파하는 에너지
적토마는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기개와 열정을 상징한다.
정체된 시대, 무력감에 빠진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자기 주도적 질주'다.
모범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인물 중 하나가 파타고니아의 창업자 이본 쉬나드다.
그는 환경 보호라는 가치를 위해 기업의 이윤을 도구로 사용했다.
"준비가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일단 올바른 방향이라면 뛰어들라"는 그의 철학은 적토마의 그것과 닮아 있다.
그는 인생을 리허설로 여기지 않았기에, 내일로 미루지 않고 당장 실천 가능한 환경 운동을 비즈니스에 이식했다.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느라 시간을 허비하기보다, 적토마처럼 앞을 향해 발을 내딛는 용기가 필요하다.
망설임은 기회를 잠식하고, 지나간 시간은 결코 되돌아오지 않는다.
■ 적정선의 지혜, 멈춤이 아닌 ‘최적의 균형’
우리는 무조건적인 질주가 미덕인 시대는 지났다.
적토마의 속도감을 유지하되, 나를 파괴하지 않는 '적정선'을 찾는 것이 더 멋진 삶을 위한 핵심이다.
여기서 말하는 적정선은 게으름이나 타협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한계를 인지하고,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지략적 멈춤'이다.
최근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 잡은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이나 '워라밸'에 대한 논의도 본질적으로는 이 적정선에 대한 탐구다.
하지만 진정으로 모범적인 사례는 북유럽의 '라곰(Lagom)'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은' 상태를 지향하는 이 가치는, 일터에서의 몰입과 가정에서의 휴식 사이에서 정교한 선을 긋는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생활 양식을 보라.
그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일정량의 글을 쓰고, 정해진 시간에 달리기를 한다.
더 쓸 수 있는 에너지가 남아 있어도 그는 '적정선'에서 멈춘다.
그 멈춤이 있기에 그는 수십 년간 현역으로 질주하는 적토마가 될 수 있었다.
과잉된 열정으로 스스로를 태워버리는 '번아웃'은 리허설 없는 인생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불상사다.
■ 더 멋진 삶을 위한 연대와 성찰
인생이 리허설이 아니라는 자각은 우리를 겸허하게 만든다.
내가 내뱉은 말, 내가 행한 선택이 곧 나의 역사(歷史)가 되기 때문이다.
2026년, 우리의 주권 사회는 각자도생의 시대를 넘어 서로의 적정선을 존중하는 인류 공동체적 감각이 절실하다.
▪︎나 자신에게는 적토마의 용기를, 실패를 두려워해 시도조차 하지 않는 패배주의를 걷어내야 한다.
▪︎타인에게는 적정선의 예의를, 타인의 삶에 과하게 개입하거나 나의 기준을 강요하지 않는 '관계의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사회적으로는 지속 가능한 속도를, 성과 지상주의에 매몰되어 구성원의 영혼을 갈아 넣는 구조를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인생이라는 위대한 무대 위에 선 주연 배우다.
관객은 바로 나 자신이며, 커튼콜은 단 한 번뿐이다.
적토마처럼 뜨겁게 달리되, 적정선을 아는 차가운 이성을 잃지 말자.
■ 뜨거운 심장과 냉철한 발걸음
새해는 단순히 달력의 숫자가 바뀌는 날이 아니다. 리허설 없는 우리 생의 새로운 막이 오르는 순간이다.
"적당히 살자"는 말이 비겁한 변명이 아니라, "가장 나다운 속도를 유지하겠다"는 결단이 될 때 우리의 삶은 비로소 멋져진다.
맹목적인 속도전에서 벗어나 나만의 궤적을 그리는 적토마가 되자.
그 질주 속에 나를 돌보는 적정선이 살아 숨 쉴 때, 우리는 비로소 후회 없는 삶의 예술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026년, 당신의 무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소중한 생의 현장에서, 당신만의 멋진 레이스를 펼치길 응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