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5(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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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정자 수필가의 ‘f홀의 위로’, 2025년 제3회 권대근문학상 수상작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2) 송명화 '공명의 블랙홀을 지나 차오르는 음률로'

송정자의 ‘f홀의 위로’, 2025년 제3회 권대근문학상 수상작

 

 

송명화/ 문학평론가

 

수필 ‘f홀의 위로는 딸의 극단적 선택이라는 사건을 겪는 지인과 그 딸에게 작가가 글로 보내는 조문이며 제문으로, 문학치료성을 극대화한다. 자식의 죽음이라는 그보다 더할 것 없는 아픔과 고통은 그 자체로 독자들에게 쇼킹하게 다가가지만 그렇기에 일반적 서사와 애도에 머물지 않기 위해, 또 비탄의 격한 토로에 빠져 독자의 감정만을 건드리는 데 머무르지 않기 위해 작가에게는 더 정교한 구조짜기와 서술기법이 요구된다. 작가는 객관적 사건 보기, 메타포를 활용한 형상적 체험으로의 변용과 전이를 통해 문학성을 확보한다. 들뢰즈의 사건의 존재론적 시각으로 본다면, 죽음이라는 사건을 맞닥뜨린 작가는 그 아이의 죽음이 예고하고 있는 잠재태로서의 사건과 영안실에 있는 그 상황이라는 현실태로서의 사건을 제재로 하여 사건-사유-의미의 과정을 거친 본격문학수필의 탄생이라는 사건을 만들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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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을 앓는 딸을 정성껏 보살펴 대학공부를 시키고, 취업까지 하였는데 그 딸은 예상치 못하게 삶을 놓아버린다. 작가가 49재를 지인과 함께하며 그녀의 슬픔과 아픔을 걱정한다는 서사가 이 작품의 뼈대다. 이 수필의 문학성은 탁월한 인식과 상관화 전략에서 나온다. 꺽꺽 울먹이던 지인의 여윈 등에서 오르내리던 뼈의 움직임을 첼로와 바이올린의 f홀에 상관화시켰다. ’f홀은 안과 밖의 공기를 이어주는 통로’ ‘모녀가 나란히 두 개의 f홀에 마음을 헹구며 주고받던 사랑의 하모니는 이제 공명을 잃었다.’는 두 문장만으로도 독자들은 작가에게 충분히 설득될 만하다. 이어 작가는 수 세기에 걸쳐 장인들이 피를 갈아 혼을 불어넣은 악기의 심장이다. f홀 구멍이 연주자를 잃고 끝없는 블랙홀로 빠져들고 있다.’는 문장에 모든 상황을 객관적으로 쓸어담는다. 형상적 유사성에 근거한 악기의 f홀과 두드러진 견갑골의 모습, 기능적 유추에 근거한 음률의 공명과 부녀간 사랑의 공명이라는 참신한 메타포에 힘입어 이 수필은 문예미학적 가치를 담보한다.

 

어린 자식들을 잃고 이십 대에 죽은 허난설헌, 청년이었던 아들을 잃고 평생 한 서린 삶을 살았던 박완서 소설가, 스물네 살 아들을 잃고 평생을 숨죽여 살았던 작가 어머니의 삽화는 이런 고통이 주는 폐해를 일반화하기 위해 투입된 예화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아픔을 강력하게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참척의 아픔을 먼 거리에서 자신 쪽으로 끌어오며 아픔의 강도를 조율해가는 대목은 이 수필의 쾌미라 하겠다. 조선의 여성, 작고한 현대의 여성, 죽은 아들을 평생 품고 사셨던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로 올수록 시간의 거리에 반비례해 고통의 크기는 커지고, 슬픔의 강도도 높아진다. 그 아픔의 크기와 깊이에 공명된 작가는 엄청난 목소리로 걱정과 한탄을 문예미학적 문장으로 쏟아놓는다. 그저 모든 것을 깨부수는 직설, 즉 생소리가 아니다. 비유를 활용한 문장력으로 퍼덕거리는 감정을 갈무리하여 효과적으로 독자를 슬픔 속으로 끌어들인다. 바슐라르의 말처럼 연상과 상상을 통해서만 감정을 증폭하고 감동에 도달할 수 있음을 알기에 문장마다 슬픔은 비유로 넘쳐나고, 뚜렷한 이미지로 아픔이 거듭난다. 표현의 탁월함으로 인해 소리 내어 읽다 보면 비통하여 목소리가 절로 극적 효과를 띨 정도다.

들뢰즈 사건의 존재론에 기대어 쓴 권대근 교수의 본격수필론에서 말하는 초험적 사건화와 지배적 정황이 겹치는 지점은 결말부다. 결말에 이르러 감정은 가라앉고, 드디어는 치유의 그날을 그린다. 아픈 서사의 주인공과 작가, 그리고 독자가 함께 바라보는 희망의 빛이 텅 빈 f홀은 이별을 위무하는 음률을 잔잔히 차올릴 수 있을까.’에 담겨져 여운을 준다. 블랙홀이 된 f홀이 다시 공명을 시작하는 사건의 장소가 되는 지점이 독자가 생성하는 사건의 잠재태로 작용함으로써, 송정자의 질문 속, 다시 울리는 f홀은 현재의 삶을 초극하는 미래적 생성을 상징함으로써 담론층의 의미화가 완성된다.

 

송명화 주요 약력

 

수필가, 문학평론가, 문학언어치료학 박사 

경남 남해 출생  전남일보 신춘문예 수필(2005) 에세이문예 문학평론(2010) 전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회장, 전 한국본격수필비평가협회 회장 계간 [에세이문예] 주간, )부산문인협회 부이사장, 부산교대 평생교육원 문예창작반 지도교수 수필집 <순장소녀>(세종도서), <꽃은 소리 내어 웃지 않는다>(문학나눔), <나무의 응시 풀의 주름>(아르코창작기금) 6이론서 <본격수필 창작이론과 적용> 김만중문학상(수필), 우하박문하문학상(평론), 한국에세이평론상(평론), 평사리문학대상(수필), 신격호샤롯데문학상(수필) 등 수상

송정자 <f홀의 위로>

 

영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설익은 봄날이 주저앉았다. 잠시 볕을 더듬고 있다. 세상이 마치 누군가를 떠나보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냉혹한 삶의 편린이 내 오장육부를 훑어댄다. 계단에 발을 얹자 덮쳐오는 한기가 섬뜩하다.

 

그 아이가 13층 아파트에서 몸을 날리는 순간 나비가 사뿐히 받아주었을까. 하얀 날개를 입은 천사가 두 팔을 벌려 품을 내어주었을까. 수만 가지 꽃이 만발한 정원에서 오색 창연한 융단이라도 깔아 두었을까. 손에 잡히지 않는 깃털이 되어 세상에 티끌 한 올 남기지 않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파르르 저 너머의 세상으로 날아갈 때, 이미 천상과의 약속이라도 있었을까. 오직 저 하나 앞에서만 웃고 울던 어미가 아니던가. 떠난다는 글자 한 톨 없이, 어미를 망망대해 끝에다 오롯이 가둬놓고 그 발걸음이 떨어졌을까.

 

오랜 세월 아끼던 동생이 불현듯 꿈에 나타났다. 지난날 한창 아름다웠던 젊은 시절의 얼굴로 미친 듯이 웃어대는 모습이었다. 십수 년이 지나도록 다 큰 딸 병수발에 엄마 노릇 하느라 자신조차 돌보지 않은 동생이었다. 소식이 뜸하던 차에 꿈 이야기도 전할 겸 통화를 눌렀다. 첫 안부로 딸은 요즘 약 잘 먹고 있느냐고 물었다. 숨이 멎은 듯 뚝 끊어진 차가운 공기 속으로 오열과 함께 터져 나온 말은 언니, 애가 가 버렸어.’였다.

 

봉선사 관음전에서 그 아이의 49재가 열리고 있었다. 늦게 소식을 접하는 바람에 셋째 재부터 참석했다. 사각모를 쓴 긴 머리에 학사복 속의 살빛 블라우스가 목 끝까지 살랑거린다. 해사한 웃음꽃이 얼굴가득 피어 있는 눈이 부신 아가씨가 죽음을 인정할 수 없는 뫼비우스의 검은 띠를 두르고 사각 틀 안에 갇혀있다. 기가 막혔다. 몇 년 전 피자집에서 맛있다며 깔깔대던 아이였다. 나는 하얀 스카프를 두른 소녀가 그려진 르누아르의 그림엽서에다 이제는 아프지 않는 곳으로 잘 가라는 인사를 썼다. 그 아이 사진틀에 꼭 끼워주었다. 하늘에서 너의 엄마를 잘 지켜달라는 말이 목 끝을 돌았다. ‘태어남도 인연이요 돌아감도 인연인 걸, 그 무엇을 애착하고 그 무엇을 슬퍼하랴연륜이 깊은 스님이 법요집 영가전의 인생길이라는 법문 송독을 하신다. 눈물방울이 턱 밑을 타고 단방석으로 뚝뚝 젖어들었다.

 

오랫동안 울먹이는 동생의 잿빛 등골에서 시커멓게 지져놓은 듯한 알파벳 f 글자 두 개가 대칭으로 서 있다. 깜깜하다. 내뱉은 숨결은 유령처럼 떠돌다가 목에 걸렸다. 가시처럼 꺽꺽 쉰 소리만 날 뿐이다. 모녀의 영원한 이별 앞에 마주보고 서 있는 f홀은 음을 감춘 채 제 기능을 잃었다. 악기가 곡기를 끊었다. 그 아이가 새소리를 연주하면, 그녀의 f홀은 온유한 어미의 음성으로 화답하곤 했다. 이제는 울림통 안에서 길을 잃고, 소리조차 돌려주지 않는다.

 

첼로와 바이올린의 두 몸통에서 화인처럼 찍혀있는 f홀이 마주 보며 나를 올려다본다. 줄감개를 조절하면 현의 섬세하고도 가느린 그 떨림조차도 고스란히 실어 나르는 악기의 f홀은 안과 밖의 공기를 이어주는 통로다. 바이올린이 내는 이름다운 선율의 흐름을 모두 이곳에서 조율한다. 모녀가 나란히 두 개의 f홀에 마음을 헹구며, 주고받던 사랑의 하모니는 이제 공명을 잃었다. 단순히 알파벳과 유사한 미학적 상징인 줄만 알았던 f홀은 수세기에 걸쳐 장인들이 피를 갈아 혼을 불어넣은 악기의 심장이다. f홀 구멍이 연주자를 잃고 끝없는 블랙홀로 빠져들고 있다.

 

허난설헌은 어린 딸을 잃고, 연이어 아들마저 세상을 떠났다. 아이들 무덤 앞에 서서 지전을 사르며 자식의 혼을 부르고 한 잔 술을 뿌리며 넋을 위로하는 곡자라는 시를 바쳤다. ‘아이들의 무덤가에 백양나무, 소슬바람, 도깨비불이 소나무와 가래나무들 사이에 밝았구나쓸쓸하고 비감한 분위기를 나타내는 대상물이 자식에게 제사를 지내는 어머니의 비극적인 모습이 그대로 전해진다. 젊은 어미는 통한의 세월을 보내다 서른 살도 채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한 말씀만 하소서작품집은 박완서 작가가 스물여섯 살 의대생 막내 외아들을 잃는 참척을 당하고 피를 토하며 신에게 퍼붓는 극한의 절규를 엮은 책이다. 아들을 뺏어간 신에게 침묵만 하지 말고 어떤 말이든 해보라고 소리친다. 신이 있다면 살의를 느낀다고까지 고백하며 정신을 놓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몸부림쳤던 글이다.

 

내가 어릴 때, 스물네 살 큰아들을 먼저 보내고 엄마는 평생을 숨죽여 살았다. 눈을 감기 전 섬망 상태에서도 혼신의 기력으로 뱉어 낸 마지막 말은, 곁에서 간호하며 지키던 자식이 아니라 새파란 나이에 떠난 큰아들의 이름 끝 자였다. 소름 끼치도록 선명했던 그 외마디에, 나는 엄마의 일그러진 얼굴을 비통하게 어루만졌다. 엄마의 마른 붓질 같은 평생의 어혈을 보았기에, 딸을 잃은 동생이 어찌 살아갈지 암담하고 걱정스런 방백이 나도 모르게 목구멍을 타고 흘러나왔다.

 

동생은 딸을 치료하기 위해 정신과에 데리고 다녔다. 약을 거부할 때는 삼키는 것까지 물 잔을 들고 지켜봐야 했다. 마음이 아픈 아이였으니 대학을 진학했지만 심리 상태에 따라 휴학했다 복학하기를 거듭했다. 어렵사리 늦게라도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까지 하게 된 가슴 벅찬 일이 찾아왔다. 이제 고지를 넘긴 안도감에 얼마나 뭉클했을까. 기특하고 가슴이 뜨거웠을 테지. 한시름 놓고 숨고르기를 하며 파근파근 익어 갈 딸의 청사진에 마음이 설레기도 했으리라.

 

몸속을 거꾸로 빠져나간 피가 다시 수혈이 될 수 있을까. 그래서 누덕누덕한 그 속을 마름질이라도 하면 곱게 펴질 수 있을까. 구석구석 깨어져 버린 파열음이 여기저기 한 가득이다. 자식을 앞세운 모성은 직소 퍼즐처럼 끼워 맞출 수도 없다. 수만 가닥으로 너덜너덜해진 저 정신줄이 돌아오려면 생이 끝날 무렵이 되려나. 끊임없이 자신을 무두질해야 하는 유형流形의 땅에서 그 기나긴 형벌의 날들을 어찌 견딜 것인가. 뭉치고 맺힌 응집이 올 풀리듯 빠져나올 수나 있을까. 골수가 뒤틀리고 창자가 끊어져 나가고, 눈앞의 곡기가 쓴 소태가 되어 입안을 되물릴 것을, 어긋난 뼈마디가 아우성치는 그 줄타기의 순간은 숨통을 막으며 제자리에서 맴돌 테지.

 

어느 날 퍼렇게 그을린 그리움이 부싯돌처럼 삶을 피워보려 할 때, 부딪히다가 무던히도 무뎌져갈 때, 텅 빈 f홀은 이별을 위무하는 음률을 잔잔히 차올릴 수 있을까. 사랑한다고 다시 말을 걸어올까. <2025년 권대근문학상 수상작>

 

송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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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필 등단. 지구일보 신춘문예 당선.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수필작가회, 미리내수필문학회 회원, 동대문문인협회 감사. 정독도서관 다스림서울 동인. 설총문학상, 동대문문학상, 제3회 권대근문학상 수상. 수필집 f홀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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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2) 송명화 '공명의 블랙홀을 지나 차오르는 음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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