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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미려 수필가는 지구문학 등단 계간문예 중앙위원 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정독도서관 다스림서울 회원 (사협) 강독서치료연구회 이사장

사기 군화

 

 

최미려/ 수필가

 

 

눈길이 멈춘 것은 아주 작은 끈 달린 가죽 구두였다. 발 떼자마자 신었을 그 구두는 어른 신사화를 아주 정교하게 축소한 것으로 수제공은 숨도 제대로 크게 못 쉬고 바닥이나 옆면을 꿰맸을 것 같다. ‘살까, 말까?’ 내 아이 것도 아닌 연고도 모를 벼룩시장 물건이고 그렇다고 지금 신길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장인의 공으로 모셔둘까 하다가 내려놓았다. 몇 번 신지도 못했을 구두, 어느 아이 집에서 호사를 누리다가 여기까지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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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두 개의 눈구멍을 뚫은 신문을 펼쳐 얼굴에 대고 계시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이크하시며 얼른 신문을 보는 척하신다. 그래도 반응이 이어지지 않으면 횃댓보 속에 숨었다가 나타났다, 일명 까꿍 놀이하길 여러 번, 벽에 건 횃댓보 아래로 다리는 다 보이는데 그때야 쳐다보면 찾은 게 기특하다는 과장된 눈빛을 보낸다. 할 말이 있는데 시간이 있느냐고 묻는 것이고 내용은 아주 우스운 일이라고 반은 표현하신 셈이다.

 

다 떨어진 이 군화가 네 맘에 들었더란 말이지? 가만있자, 밑창은 너덜대고 구두코는 다 들리고, 이것 보게나, 발목은 찢기고 구두끈도 다 풀렸구나.”

아버지 이거 진짜 같죠?”

앞이 터졌으니 발꼬락이 다섯 갠 줄은 알아보겠고.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대책이 서질 않겠다아.” 낡은 고물 색으로 칠해진 사기로 만든 군화와 나를 번갈아 보시며 늘 그러시듯 터질 듯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초등학교때 일이다. 시장 통에 손수레 가득 인형이나 장식품을 싣고 장사를 하는 아저씨가 왔다. 구경하다가 뚫어진 것이 실감나는 사기로 만든 장식용 군화 한 켤레가 눈에 띄었다. 내 신보다도 큰 회색 사기 군화, 그때 그걸 작품으로 봤을까? 장식품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그 사기 군화에 꽂혀 냅다 집으로 뛰어가 돈을 달래 사서 들어왔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군화를 머리맡에 가지런히 놓고 밤새 웃었다고 하셨다. 그 후로 나는 잊어버렸고, 아버지는 사기 군화를 소중히 간수하시는 것 같았다.

 

20대 후반에 여의도에 있는 한양쇼핑이라는 곳에서 선물코너를 운영했었다. 그곳은 서울에 쇼핑센터라는 이름으로 처음 개장한 여의도의 명소였다. 그간 모았던 결혼자금을 가지고 장사를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엄마는 헛돈이 될까봐 걱정했지만 아버지는 계획을 들으시곤 적극 후원해 주셨다. 허리춤에 별도로 주머니를 만들어 모갯돈을 챙겨준 후 어머니는 한번 하겠다면 하는 네 고집은 아버지를 닮았다고 하셨다. 장사는 제법 잘 되었다. 공방으로 운영하고 싶었던 나는 지금은 흔한 공예지만 당시 일본으로부터 새로 소개된 지점토 공예를 배웠다.

 

그때 처음 만든 작품이 어린이 구두였다. 점토이지만 밀대로 밀어 천처럼 늘리고 신발 본을 떴다. 박음질은 실처럼 가늘게 늘린 점토로 한 땀 한 땀 바느질의 효과를 내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가죽구두처럼 갈색에 라커까지 칠하고 나면 실제와 같은 앙증맞은 작은 구두가 되었다. 포도 항아리, 보리 테이블, 장미 거울, 과자 그릇 등등 만들기만 하면 잘도 팔렸다. 가게가 KBS 별관 옆이라 연예인도 많이 이용해 주었고 촬영 장소로도 여러 번 협찬했는데 그럴 때마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드리면 좋아하셨다. 단체 주문을 받거나 큰 이문을 보았을 때도 자랑삼아 전화했다. 언제나 이크! 큰딸이구나 그래, 그동안 별일은 없었느냐아로 시작되는 전화, 아침에 인사하고 나와 몇 시간이나 되었다고. 십여 년을 뇌졸중으로 거동이 불편했던 아버지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아니 두문불출 내 전화를 기다리셨다는 게 맞을 것이다. 말끝마다 옳거니, 그렇구나, 잘했다. 잘했어.” 아버지의 추임새에 흥도 나고 시집 밑천 다 들인 것 걱정하지 말라는 의도도 있었다. 늘 신여성이라고 말해주던 아버지의 귓속말이 아직도 따뜻하다.

 

 

전면에 진열했던 처음으로 만든 점토 구두는 산울림의 김창완이 사 갔다. 괜히 서운하기도 하고 유명가수가 사 간 것도 신기하기도 해서 아버지에게 말씀드렸더니 또 만들 수 있냐고 물으셨다. 그렇다고 해놓곤 만들지 못했다. 그리고 당신의 소중한 추억을 돈으로 환산해 버린 어리석은 일을 하였다. 그 회색 사기 군화를 들고 나와 팔아 버린 일이다. 아버지와 상의해야 한다는 의식도 없이 한 일이었다. 몇 백 원을 주고 산 사기군화를 높은 가격을 붙였는데도 팔렸다고 전화했을 때 그걸 왜 들고 나갔냐고 역정을 내시며 도로 가져올 수 있으면 찾아오라고 하셨다. 어딜 가서 그걸 되찾아온단 말인가, 아버지는 사라지는 것들 속에서 남겨진 의미 있는 물건 하나가 회상의 버튼임을 알고 계셨다. 사기구두에는 뜬금없이 진지하고 엉뚱했던 어린 나와 건강했던 당신의 젊은 시절이 배어있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보냈다. 아버지의 환청에 대답하고 당신 특유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생각나 웃는다. 머쓱하여 고개 들면 한쪽 어깨가 처진 상태로 쉬엄쉬엄 걸으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여기에도 계시고, 저기에도 계신다. 가만히 아버지하고 불러보았다. 순간 눈물이 저절로 주욱 흘러내린다. 이대로 친정으로 달려가 뵐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두 분 다 안 계신다는 것을 왜 자꾸 잊어버리는 걸까. 몸은 아이들이 있는 현재 집으로 향하는데 아버지의 냄새가 나는 예전 공간이 겹친다. 결혼 전 하루 일이 끝난 그때쯤의 저녁, 이 바람, 이 온기, 이 모퉁이 지나가는 사람들 그때 그대로다.

찰칵아파트 현관문 소리가 현실 위치로 돌려주었으나 이미 내 귀엔 아버지의 숨소리와 음성이 들렸다.

문자냐? 오늘 하루도 수고 많았다. 어서 오너라.”

. 아버지.”

 

최미려

지구문학 등단

계간문예 중앙위원

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정독도서관 다스림서울 회원

 

 

(사협) 강독서치료연구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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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수필, 최미려의 '사기 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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