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3) 최혜영 ‘일상의 사건, 존재의 그물망’
최순덕의 ‘소년의 공’, 2025년 에세이문예 여름호
최혜영/문학평론가
수필은 오랫동안 개인의 내면과 일상을 성찰하는 자전적 글쓰기로 이해되어왔다. 이때 수필 속 자아는 비교적 고정된 중심으로 설정되어, ‘나’의 경험과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오늘날 수필 속 자아는 더 이상 ‘나’라는 단일하고 고정된 주체에 머무르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타자, 사물, 기억, 사건이 얽힌 복합적인 관계망 속에서 지속적으로 구성되고 변화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이 인식은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상호작용을 중시하는 브뤼노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과도 맞닿아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격 수필은 ‘나의 이야기’를 넘어, 사물과 상황, 환경 등 비인간 존재들과의 접속을 통해 발생하는 ‘사건’의 기록으로 변모한다.
최순덕의 수필 <소년의 공>은 해운대 백사장에서 공놀이를 하던 아들과 아빠의 공이 바다로 떠내려가는 사소한 사건으로 시작한다. 아이는 공을 잃을까 불안해하고, 아빠는 아이를 달래며 안타까워한다. 거세지는 파도 앞에서 작가와 주변 사람들은 그저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작가는 평범한 사건을 통해 인간과 사물, 감정이 얽혀 형성되는 정서적 풍경과 내면의 흔들림을 세심하게 포착한다. 이처럼 작가는 일상적인 장면 속에서 감정의 흐름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독자가 사건 속에 숨겨진 감정의 깊이를 새롭게 깨닫도록 이끌어간다.
이 작품에서 공은 단순한 사물에 머무르지 않는다. ‘두둥실 춤추는’, ‘혼자 신나는’, ‘해방의 기쁨을 누리는’ 존재로 묘사되며,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움직이며 글의 흐름을 이끈다. 아이와 아빠, 작가는 공의 상실을 안타까워하지만, 공은 파도를 타며 자유롭게 떠다닌다. 인간의 감정과 비인간 존재의 움직임이 교차하며 장면에 생동감과 긴장감을 만든다. 사건은 인간만의 행위로 성립되지 않는다. 공과 바다, 파도 역시 사건의 의미를 구성하며, ‘공‑아이‑아빠‑작가‑바다’로 이어지는 관계망 속에서 각 존재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사건을 만들어낸다.
이 사건 앞에서 작가는 단순한 관찰자에 머무르지 않는다. 운동복 아래 수영복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공을 건져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만, 거센 파도 앞에서 망설인다. ‘그저 공 하나에 목숨을 걸 일은 아니다’는 이성적 판단과, ‘공을 건지지 못한 나 자신의 의협심 없음이 부끄럽다’는 내적 감정이 충돌한다. 이러한 갈등은 누구나 일상에서 마주하는 선택의 순간을 떠올리게 하며, 용기와 두려움, 이타심과 자기보존 본능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솔직한 모습을 드러낸다. 최순덕 작가는 이 순간들을 정교하게 포착하여, 감정에 휘둘리며 갈등하는 작가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다.
스피노자의 관점에 따르면, 모든 개체는 존재를 유지하고 지속하려는 힘, 즉 코나투스를 지닌다. 바다로 떠내려가는 공과 거센 파도는 각자의 코나투스에 따라 움직인다. 공이 파도와 맞닿는 순간, 그 움직임은 자연의 흐름 속에서 방향과 속도를 찾아간다. 이는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작동하는 자연의 질서이다. 작가는 공의 운명을 통해 인간의 나약함과 무력감을 경험하며, 인간 또한 자연 속에서 소멸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인식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무력감, 허탈감, 부끄러움 등의 감정을 느끼며, 평자는 이 감정들을 스피노자가 정의한 수동적 정념으로 해석한다. 즉, 외부 사건에 의해 감정이 끌려가는 상태에 놓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은 작가가 자연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과정에서 변화한다. 수동적 정념에 휘둘리던 작가는 이제 상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그 과정을 성찰하고 감정을 능동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소년의 공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가는 삶, 인간 존재의 유한함, 피할 수 없는 상실을 나타내는 문학적 상징이다. 작가는 ‘한 점 생으로 이 세상에 와 잠시 유희를 즐기다 미련 없이 떠나는 삶’이라는 구절을 통해, 인간 존재의 유한함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태도를 드러낸다. 이러한 깨달음은 개인적 경험을 넘어서, 인간은 자연과 상호작용을 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임을 분명히 한다. 작가는 파도에 사라지는 공을 통해 수동적 정념을 경험한 뒤, 이를 이해와 수용을 통한 능동적 정념으로 전환한다. 이와 같은 사유의 과정은 글이 개별적 체험을 넘어 보편적 통찰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준다.
<소년의 공>은 일상의 사건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 존재가 얽히는 ‘존재의 그물망’을 보여주는 수필이다. 작가는 공을 붙잡지 못한 순간을 통해 우리가 끝내 붙잡을 수 없는 것과 그것을 놓는 법을 성찰하게 한다. 파도가 지운 발자국처럼 아무것도 영원히 남지 않는 세계에서, 작품은 삶과 존재의 의미를 조용히 묻는다. 이러한 사건을 통해 수필은 개인적 체험을 넘어 세계와 존재를 사유하는 장르로 확장된다. 작품은 수동적 정념에 휘둘리던 개인이 성찰과 이해를 통해 능동적 정념으로 나아가는 사유의 여정을 보여주며, 사소한 사건을 깊은 존재론적 성찰로 확장하는 문학적 성취를 이룬다.
▮최혜영
△에세이문예 평론 등단(2007) △문학평론가 △문학언어치료학박사 △한국본격수필비평가협회 회장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에세이문예 부주간 △에세이문예 수필계간평 집필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감사 △부산문인협회 이사 △권대근문학상 자문위원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 역임 △한국에세이 평론상 △부산수필문학협회 작품상 △부산북구문인협회 작가상 수상.
▮최순덕 <소년의 공>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해운대 백사장에도 어싱 바람이 한창이다.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해안선을 따라 긴 줄을 잇는다. 숲속의 황톳길에서 파도가 잘박거리는 백사장까지 유행처럼 번지는 어싱 바람이 해운대를 비켜 갈 리가 없다. 길에 시멘트를 바르고 신발에 고무 밑창을 깔면서 지력을 차단할 때는 언제고 다시 원시인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일까. 흙이나 물에 발을 직접 접촉하여 더욱 건강해지고자 하는 간절함 때문이리라. 신문에 대서특필된 어싱으로 건강을 되찾은 사연이 나의 신발을 벗겼다. 늘어진 긴 줄의 꼬리에 합류한다. 접지만 하면 단번에 엄청난 효과를 얻기라도 할 듯, 결과에만 군침을 흘리며 팔랑귀를 쫑긋 세운다.
어싱 바람이 불고 있는 해운대 백사장에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을 찍거나 바다를 보고 앉아서 멍때리기를 하는 일상의 풍경이 아니다. 어린 아들과 아빠가 간절한 눈으로 바다를 보고 있다. 안절부절 애태우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성인다. 무심코 곁을 지나다 그들의 시선이 닿는 곳을 따라 눈길이 간다. 그들이 보는 것은 바다가 아니라 파도를 타고 있는 공이었다. 아뿔싸. 모래사장에서 공놀이하다가 바다로 차버렸나 보다. 금방이라도 바다로 뛰어들 듯 팔딱거리는 아들과 저지하는 아빠의 비장한 표정은 말 없어도 충분히 눈길을 끈다.
속수무책이다. 순간의 헛발질로 아이는 기가 차는지 눈밭의 강아지처럼 설친다. 반은 체념한 듯 애타는 몸짓에 힘이 빠진다. 뛰어들기에 파도가 만만하지 않다. 몇 걸음으로 닿을 것 같은 거리지만 물 위의 거리는 가늠하기 어렵지 않던가. 보기엔 가까운 것 같아도 쉽게 다가갈 수 없음을 인식한 어른들이 멀뚱히 쳐다만 볼 뿐 누구도 손 쓸 수가 없다. 애타는 아이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류에 밀려 두둥실 춤을 추는 공은 혼자 신난다. 차이고 멍들었던 분노를 식히면서 해방의 기쁨을 누리는지, 아끼며 함께 놀았던 주인과의 이별을 슬퍼하는지 알 수 없는 몸짓으로 여유롭다. 멈춘 듯 흐르는 듯 동동 떠 있는 물새처럼 유유히 파도를 탄다.
발을 동동 굴리는 아이 옆에서 얼어붙은 듯 멍하니 바다만 쳐다보는 아빠를 본다. 진퇴양난에 처한 아빠의 심정이 부모라는 공통된 마음으로 내게 전해진다. 문득 운동복 밑에 수영복을 입고 있다는 생각이 솟는다. 물에 뛰어들어 공을 건져주고 싶은 생각이 불쑥 튀어나온다. 몇 걸음 가지 않아 넓은 백사장을 넘실거리는 파도가 순간 무서워진다. 무슨 변을 당할지 어찌 알겠는가. 무모한 짓일 수도 있겠다. 아이가 물에 빠진 것도 아닌데 고작 축구공 하나에 목숨 걸 일이 아니지 않는가. 아이 아빠도 못하고 서성이는데 무슨 영웅심리일까. 고개 숙이고 파도의 끝자락을 밟으며 걷다 보니 멀어진 아이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처럼 가뭇해진다.
파도처럼 끝없이 밀려오는 갈등을 밟으며 걷는다. 용기가 없는 것이 오히려 다행인가. 술에 취해 철길에 떨어진 일본인의 목숨을 구하려고 철길에 뛰어들어 같이 죽은 이수현 의인이 생각난다. 자칫하다간 그렇게 함께 죽을 수도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비뚤어진 영웅심리로 뛰어들기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마음 한쪽에 들앉은 갈등의 자국은 묵직하다. 누군가의 작은 배려와 노력으로 아름답게 돌아가는 사회를 생각하면 발동하지 못한 나의 밑바닥 의협심이 부끄럽다. 사람의 힘으로 아무리 용을 써도 절대 안 되는 일이 있음을 그 아이는 터득했을까.
한참을 가다가 돌아보니 여전히 아이와 아빠는 서성이며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있다. 쉽게 포기하고 돌아서기에는 아깝고 특별한 공이었는지도 모른다. 과감하게 미련을 버리고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아이를 달래고 있을까. 해류에 밀려서 올 것 같은 요행을 바라고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살면서 요행을 바라는 일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일러주고 싶은데 다시 돌아보니 파도를 타던 공은 작은 점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아이의 실수도 안타까움도 아빠의 애태움도 흔적 없이 사라진 점에 불과하지 않은가. 나와 너의 오점도 좀 더 거리를 두고 보면 점 하나도 못 되는 것을, 집착인지 미련인지 알 수 없는 욕심 때문에 무의미한 헛발질만 해댄 나를 돌아본다. 헛헛한 발자국을 부지런히 뭉개고 있는 파도를 꾸역꾸역 밟는다.
성아우구스투스의 전설 같은 일화가 떠오른다. 성인은 해변 산책길에서 작은 모래 구덩이에 조가비로 바닷물을 다 옮겨 담으려고 하는 소년을 만난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타이르자 꼬마는 하느님의 신비를 인간의 작은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도 똑같이 불가능한 일이라 말하고는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던 ‘삼위일체’의 신비를 인간의 머리로 이해하려고 한 자신의 교만을 깨닫고 더욱 겸손하게 하느님께 경외심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성인의 일화는 그의 저서 ????삼위일체론????에 직접적으로 쓴 사실은 아니지만, 후대에 전해지는 교훈적인 울림은 크다.
우리 생의 마지막도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성인이 만난 해변의 소년처럼 오늘 내가 만난 소년에게서 ‘떠나보내는 이’와 ‘떠나가는 이’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울며불며 눈물로 붙잡으려 해도 이미 떠난 공은 유유히 물결에 흔들리며 떠날 뿐이다. 공을 잘못 찬 소년도 어쩔 수 없는 이별 앞에 주저앉아야 하는 보내는 이의 허탈함이다. 공처럼 둥근 세상에서 구르고 구르다가 저렇게 허무하게 떠나야 하는 공을 생각한다. 한 점 생으로 이 세상에 와서 비록 고통이 동행하더라도 유희를 즐기다가 미련 없이 떠나는 소년의 공과 같은 생이 아닌가.
다음날 해변을 걸으며 아무리 찾아도 소년의 공은 보이지 않는다. 그 소년이 어떤 방법으로 건져 갔을까. 결국 포기하고 돌아섰으리라. 풍요로운 물질 세상을 사는 요즘 아이들이니 지금쯤 새로운 공을 안고 있을지도 모른다. 주인과 이별한 공은 어디로 떠나갔을까. 해류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떠돌다 어느 바닷가 바위틈에 끼어 있는지, 아직도 망망대해를 떠돌고 있을지 공의 최후는 알 수 없다. 한순간의 앞도 알 수 없는 세상에서 얼마나 더 오래 이 짧은 생을 유영할지 모르면서 어싱에 진심이다. 최후를 알 수 없는 내 삶의 마지막을 소년의 공에 새기고 보듬는다. 어싱으로 지력을 흡입하여 남은 생의 밧줄을 튼튼하게 붙잡으려는 얄팍한 속내를 앞세우고 오늘도 열심히 파도를 밟는다. 시원한 파도가 애무하는 맨발이 간지럽다.
<2025년 에세이문예 여름호>
▮최순덕
2003년《문예시대》로 등단, 국제PEN한국본부부산지회 부회장, 부산문인협회 수필분과 이사, 부산수필문인협회 부회장, 부산여류문인협회 회장 역임, 가톨릭문인협회 부회장 역임
풀꽃수필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우수상, 부산펜문학 작품상, 부산펜문학 본상, 가톨릭문학 본상, 부산수필문학상 작품상, 부산수필문인협회 ‘올해의 작품상’ 수상, 수필집 『박제된 나비가 내게 말을 걸어올 때』 외 4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