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기자신문 이창호 기자] 최근 일부 종교 단체를 둘러싼 논란은 단순한 신앙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안전과 법치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국가와 국민에게 해악을 미치는 종교 단체의 해산은 국민도 동의할 것”이라는 발언이 공감을 얻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입법은 공감의 크기가 아니라, 기준의 정교함으로 완성돼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다수의 여론은 정치의 출발점일 수는 있으나, 법의 최종 근거가 될 수는 없다.
헌법 질서는 다수의 감정을 제어하기 위해 존재한다. 특히 종교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와 더불어 가장 민감한 기본권 중 하나로, 제한이 불가피할 경우에도 명확한 법적 요건과 엄격한 절차가 전제돼야 한다.
문제는 ‘종교’가 아니라 ‘행위’다. 작금 일부 특정 종교 집단에서 드러난 조직적 사기, 인권 침해, 강압적 신도 통제, 불법 자금 조성, 공공질서 훼손 행위는 신앙의 범주로 보호될 수 없다.
이는 명백히 형사·행정법의 적용 대상이며, 반복적이고 구조적인 경우 사회적 해악으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현행 법체계는 이러한 집단적·구조적 문제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개별 범죄 처벌에 그칠 뿐, 조직 차원의 책임과 해체 요건에 대해서는 기준이 모호하다. 그 공백 속에서 피해는 누적되고, 사회적 불신은 확대된다.
이제 국회가 답해야 할 시간이다. 필요한 것은 추상적 해산 선언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입법이다.
첫째, 종교 단체라 하더라도 반복적 인권 침해와 중대한 불법 행위가 확인될 경우, 조직 책임을 명확히 묻는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재정 운영의 투명성을 의무화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종교 단체에 대해 공적 감독 체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셋째, 신도에 대한 강압·통제·위계적 착취 행위를 명시적 위법 행위로 규정해야 한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입법이 ‘종교 탄압’으로 오인되지 않도록, 적용 기준을 신앙의 내용이 아닌 행위의 불법성에 엄격히 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산이나 활동 제한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하며, 사법적 판단과 충분한 소명 절차가 전제돼야 한다.
입법의 목적은 분노의 해소가 아니라 피해의 예방이다.
‘국가에 해가 된다’는 모호한 판단이 아니라, 법률 위반이라는 명확한 기준 위에서만 제재가 작동할 때 사회적 합의도 지속될 수 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뜻을 따르지만, 법치는 다수의 감정을 넘어선다.
특정 종교의 사회적 해악을 제거해야 한다는 요구는 이제 감정의 언어를 넘어 법의 언어로 번역돼야 한다.
국회가 그 책임을 회피할수록, 피해는 개인의 몫으로 남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설계도다.
입법은 신앙을 겨누는 칼이 아니라, 사회를 보호하는 방패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