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기자신문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유라시아 대륙의 혈맥을 뚫다, 제국의 야망이 빚어낸 역사적 우연이 오늘날 우리는 ‘일대일로(一帶一路)’라는 거대한 구호를 통해 중국의 굴기를 목도하고 있다.
이 거대한 대륙의 연결망, 즉 실크로드의 기원을 추적하다 보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한(漢) 제국의 일곱 번째 황제, 무제(武帝) 유철과 마주하게 된다.
기원전 2세기, 변방의 오랑캐를 막아내기에 급급했던 은둔의 제국을 유라시아의 중심축으로 바꿔놓은 것은 한 개인의 집요한 의지와 시대적 결단이었다.
◆ 흉노라는 거대한 장벽, 장건의 출사표
한나라 초기의 대외 정책은 굴욕의 연속이었다. 건국 시조 유방조차 흉노와의 싸움에서 패해 조공을 바치는 화친(和親) 정책으로 연명해야 했다.
그러나 무제는 달랐다. 그는 유교를 국교화하여 내부 기틀을 다진 뒤, 시선을 외부로 돌렸다.
당시 한나라를 위협하던 흉노를 견제하기 위해 무제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전략을 구상한다.
흉노에게 쫓겨 서쪽으로 이동한 대월지(大月氏)와 동맹을 맺으려 한 것이다.
기원전 139년, 한무제의 명을 받은 장건(張騫)이 100여 명의 사절단을 이끌고 서북쪽으로 향했다.
결과적으로 대월지와의 군사 동맹은 실패했다. 하지만 13년 만에 돌아온 장건이 가져온 정보는 동양과 서양의 지도를 통째로 바꿨다.
그가 보고한 서역(西域)의 존재, 즉 대완의 천마(天馬)와 강거, 안식(파르티아)의 화려한 문명은 한무제의 가슴에 제국 팽창의 불꽃을 지폈다.
◆ ‘천마’를 향한 욕망이 연 비단길
한무제가 서역 경영에 집착한 표면적인 이유는 흉노의 고립이었으나, 그 이면에는 강력한 기병을 육성하기 위한 '천마'에 대한 갈구와 사치재에 대한 욕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이광리 장군을 보내 대완(페르가나)을 정벌하고, 하서주랑(河西走廊)에 무위, 장액, 주천, 돈황이라는 ‘하서 4군’을 설치했다.
이 결정은 역사적인 분기점이 되었다. 이전까지 유라시아 대륙은 국지적인 교역만이 존재하던 파편화된 공간이었다.
그러나 한무제가 흉노를 밀어내고 감숙성 일대에 안전한 통로를 확보하면서, 장안에서 로마에 이르는 거대한 ‘경제 회랑’이 완성되었다.
한나라의 비단은 로마 귀족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서역의 포도, 석류, 유리가 중원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실크로드는 단순한 무역로가 아니라, 동서양의 문명적 유전자가 섞이는 거대한 용광로가 된 것이다.
◆ 경제적 팽창과 제국 유지의 딜레마
하지만 화려한 실크로드의 이면에는 한 제국의 처절한 희생이 뒤따랐다.
무제의 쉼 없는 정벌 전쟁과 서역 경영은 국가 재정을 바닥나게 했다.
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소금과 철의 전매제(염철전매)를 실시하고, 상인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물렸다.
이는 중앙집권적 경제 체제를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민초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무제가 개척한 실크로드는 이후, 2천 년간 유라시아의 동맥 역할을 수행했다.
불교가 이 길을 따라 동진하여 동아시아의 정신세계를 재편했고, 제지술이 서진하여 인류 문명의 기록 방식을 바꿨다.
한무제의 서역 개척은 단순한 영토 확장을 넘어, 중국을 ‘중화(中華)’라는 세계의 중심 모델로 설정한 문명사적 사건이었다.
◆ 21세기 실크로드에 던지는 시사점
오늘날 시진핑 정부가 추진하는 현대판 실크로드 전략은 한무제의 그것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물류망을 장악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이를 통해 자국의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동시에 꾀한다는 점이 그렇다.
하지만 한무제의 역사는 우리에게 명확한 경고도 함께 던진다. 과도한 팽창주의와 주변국에 대한 고압적인 자세는 결국 내부의 결속력을 약화시키고 막대한 비용을 초래한다는 사실이다.
한무제는 말년에 자신의 정벌 정치를 반성하는 ‘윤대죄기조(輪臺罪己詔)’를 발표하며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었다.
제국의 영광 뒤에 숨겨진 백성의 고통을 뒤늦게나마 직시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무제와 실크로드는 ‘연결이 곧 권력’임을 증명한 역사적 사례다.
그가 뚫은 사막의 길은 오늘날 디지털 통신망과 고속철도로 치환되었을 뿐, 대륙을 잇고자 하는 인류의 욕망은 여전하다.
2천 년 전 한무제가 꿈꿨던 유라시아의 통합이 오늘날 어떤 형태로 진화할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국은 어떤 전략적 포지션을 취해야 할지 깊이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과거의 실크로드가 한 제국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듯, 미래의 길 역시 독점이 아닌 '공존'의 가치가 담길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