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기자신문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한반도의 역사는 오랫동안 ‘반도’라는 지리적 틀 속에 스스로를 가두어 왔다.
대륙으로 나아가는 길은 끊겼고, 해양을 향한 상상력 또 제한돼 있었다.
중국 산둥반도 연태(烟台), 그중에서도 삼선산(三仙山) 일대를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전혀 다른 역사적 시공간과 조우하게 된다.
천 년 전, 동북아의 광활한 초원과 해양을 동시에 품었던 나라, 발해(渤海)의 시선은 바로 이곳을 향해 있었다.
삼선산이 바라보는 황해와 발해만은 단순한 바다가 아니라, 북방 실크로드가 해양 실크로드로 전환되는 동쪽 끝의 관문이었다.
발해는 변방의 왕국이 아니었다. 이곳 연태를 기점으로 대륙과 해양을 잇는 거대한 문명 네트워크의 주역이었다.
■ 삼선산이 말해주는 ‘해동성국’의 개방성
연태 삼선산은 중국 고대 신화에서 신선이 머문 이상향으로 전해진다. 이 신화적 공간은 역사적으로도 의미심장하다.
산둥반도 북단, 발해만을 마주한 연태는 고대 동북아 해상 교통의 요충지였다.
8~9세기, 발해는 이 해역을 통해 당나라 산둥 지역과 빈번히 교역했고, 일본으로 향하는 항로 또한 이 일대를 경유했다.
발해 사신과 상인, 승려들은 이 바다를 건너며 모피·말·철기·불교문화를 교환했다.
발해의 수도 상경용천부가 장안을 닮았다면, 연태 앞바다는 발해가 세계로 열어젖힌 창구였다.
삼선산이 내려다보는 이 해역은 발해가 ‘고립된 북방국가’가 아니라, 해동성국(海東盛國)으로 불린 이유를 설명해주는 살아 있는 증거다.
■ 신기루처럼 사라진 발해, 연태가 증언하는 실체
발해가 ‘문화 신기루’로 불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926년 거란의 침공 이후, 발해의 역사는 패자의 기록으로 흩어졌고, 땅은 타국의 지도가 되었다.
연태와 산둥반도 일대에서 확인되는 유물과 교류 흔적은 발해가 결코 사라진 문명이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중앙아시아 양식의 은기, 서역 문양의 장식, 북방 불교의 흔적들은 발해가 단지 육로 실크로드에만 의존한 국가가 아니라, 해양 실크로드를 통해 유라시아 문명을 흡수·재창조한 존재였음을 보여준다.
삼선산을 중심으로 한 이 해역은, 발해 상인들이 초원길의 소식과 사마르칸트의 물산을 해상 네트워크로 전환해 동북아에 전파하던 문명 변환의 현장이었다.
"발해는 고구려의 계승자였을 뿐 아니라, 대륙 실크로드와 해양 실크로드를 잇는 동쪽 허브였다."
■ 동북공정의 시대, 왜 ‘연태의 발해’를 다시 불러야 하는가
오늘날 발해의 강역은 중국과 러시아의 영토 안에 있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발해를 당나라의 지방 정권으로 규정하려 하고, 발해의 해양 활동 역시 의도적으로 축소한다.
그러나 연태 삼선산을 중심으로 한 발해의 해상 활동은 이러한 서술에 균열을 낸다.
발해는 당의 변방이 아니라, 당과 대등하게 교류하며 자기 네트워크를 구축한 주체적 문명이었다.
발해를 실크로드의 동쪽 발상지로 재조명하는 일은, 한국사의 외연을 한반도에 가두지 않고 유라시아로 확장하는 역사적 선언이다.
이는 영토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 인식의 주권에 관한 문제다.
■ 신기루를 넘어, 삼선산에서 미래를 보다
이제 발해는 더 이상 잡히지 않는 신기루여서는 안 된다.
연태 삼선산에서 발해를 다시 읽는 작업은 과거 회상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상상력의 복원이다.
남북 분단으로 단절된 대륙의 길을, 우리는 역사와 문화의 차원에서 먼저 회복해야 한다.
발해가 그러했듯, 대륙과 해양을 동시에 바라보는 시선이야말로 동북아의 긴장 속에서 대한민국이 다시 선택해야 할 전략적 감각이다.
천 년 전 발해인이 연태 앞바다를 건너며 그렸던 세계지도는,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삼선산에서 시작되는 발해의 길, 그것은 21세기 대한민국이 반도적 사고를 넘어 다시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이정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