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김봉구/수필가, 고려대 명예교수
나는 혼자 있을 때를 떠 올려본다. 해야 할 일이 있거나 목적의식을 가지고 시간을 보낼 때다. 읽어도 읽어도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 반복 시도로 가능케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답을 알 수 없다. 몇 가지 가정과 전제를 새운 후에 해결책을 추구한다. 뚜렷한 원인이 없는데도 수질오염이 발생하는 과제이다. 진원지 없이 발생하는 비점오염원 문제로 접근힌다.
미시경제분석 과목을 이수할 때다. 밤늦게까지 연구실에서 혼자 남아 참고교재인 논문을 읽는다. 처음에는 읽어도 낫설게 느껴지고 개념 파악이 되지 않는다. 당연하다. 저자는 학계에서도 뛰어난 교수이다. 그의 논문은 오랜 연구와 검증을 거쳐 학술지에 게재된 것이다. 교과목에서 필수로 지정된 논문들은 경제이론의 핵심을 구성하고 있어서 난해할 수밖에 없다. 읽고 또 읽으면 어렴풋이 개념이 잡힌다. 계속하면 진척이 있는 것 같다. 그러다가 대충 이해가 되기도 한다. 아직 완전히 다가가기에는 멀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저자가 논문을 쓸 때의 지식수준에 근접해야 내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믿음으로 논문을 정독하는 일에 매진한다. 더 중요한 것은 논문의 핵심을 물어뜯어야 한다.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반복한다. 머릿속에 그 내용이 잘 흡수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유명 화가의 그림을 꽤뚫어 보는 것처럼 이해력을 높여야 하지 않을까.
프리리미너리 시험을 치를 때의 일이다. 석사학위나 박사학위 취득을 위해서는 프리림이라고 하는 자격시험은 필히 통과해야 한다. 논문연구에 들어갈 수가 있고 논문이 통과되야 학위를 받을 수 있다. 시험은 보통 네 시간 동안 치러진다. 시험문제는 냉혹하리만큼 난해하다. 때로는 정답이 없는 문제가 출제되기도 한다. 이 시험은 당락을 결정짓는다. 탈락자는 학위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 때문에 한시도 소홀히 할 수 없어서 모두가 최선을 다한다. 특히 박사학위 과정생들에게는 이 시험은 잔혹하기까지 하다. 정답이 없는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는 황당한 수준을 넘어 앞이 캄캄하다. 냉정을 찾는 일이 먼저다. 출제자 의도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알지 못하는 문제를 체계적으로 접근하여 정답을 찾아가는 전 과정을 채점한다. 수험자는 적절한 가설을 세우고 필요한 가정조건을 설정한다. 이와 같이 문제분석의 틀이 마련되면 전제조건에 따라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밟는다. 문제분석이다. 이를 기초로 심혈을 기우려 접근하면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합리화된다. 정답을 추리해내는 논리적 접근방법을 확인하여 평가하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가정과 전제를 토대로 해결을 시도한다. 정답이 없는 문제를 대하게 되면 누구나 당황할 수 밖애 없다. 이를 경험하면서 나 자신의 한계나 인간의 한계가 이런가를 되내어본다.
연구실에서 음용수의 수질오염연구를 진행할 때다. 서울시민이 마시는 수돗물은 소양댐을 비롯한 북한강 수계에서 유입되는 강물에서 비롯된다. 팔당댐을 거쳐 하류의 각 수원지에서 정수 처리를 거친다. 기존의 연구는 공장폐수 축산폐수 등 오염원을 배제하는 데 초점이 모아졌다. 정부의 철저한 단속에도 불구하고 수질오염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문제는 뚜렸한 원인이 없는데도 수질이 크게 개선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도시빗물이나 농업빗물과 같은 비점오염원 Non Point Pollutants이 문제이다.
전자는 도시지역을 빗물로 씻어 내려오는 폐수를 말하며, 후자는 농경지에 살포된 비료 농약의 30% 정도가 토양에 흡수된다. 이 성분이 빗물에 씻겨 유출되는 폐수를 뜻한다. 도시빗물 피해는 중랑천 사례로 알아본다. 여름철에 소낙비라도 쏟아지면 서울의 도시빗물이 중랑천에 유입되기 시작한다. 몇 시간 후에는 중랑천은 폐사한 잉어때가 핳야게 뒤덮힌 상황을 노출시킨다. 어류가 폐사하는 끔찍한 사건이다. 서울시 관련부서에서는 당황한 나머지 한강에서 중랑천이 이어지는 지점 물속에 철사망을 설치하였다. 큰 어종들이 중랑천에 올라오지 못하도록 하는 차단시설이다. 처음에는 공장페수로 오인했으나 도시빗물의 폐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지금은 도시빗물을 하수처리시스템으로 통합해서 해결하고 있다. 그러나 농경지는 광활해서 뚜렸한 처리방법이 없다. 농업빗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은 수돗물을 이용하는 서울과 수도권 시민들에게 환경보전 기금을 마련하여 상류지역인 북한강 수계지역 주민들에게 지원하는 방식이다. 매우 효과적인 방안이다. 자율적 접근이다. 상류지역 주민들에게 직접보상하는 행위이다. 농가에서 농업경영을 하면서 비료 농약 살포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경제적 유인을 마련해 주기 때문이다. 프로젝트를 끝내고 논문으로 발표할 때는 마음이 가뿐하다. 의욕이 넘쳐 살 맛이 날때는 ‘앞으로도 오늘만 같아’라는 느낌이 든다. 휴식시간이라도 이어지면 즐겁고 유쾌한 감정이 온 몸을 지배한다.
혼자 있을 때 나는 무엇을 느꼈는가. 나 혼자만이 남겨져 있거나 나홀로 무엇에 매몰되어있다면 고독의 느낌은 어떻했을까. 어떤이는 고독의 쓸쓸함을 빗대어 악마의 유혹과 같다고 한다. 낭만과는 다른 느낌이다. 혼자있을 때의 마음상태를 고독이라고 한다면 나는 쓴맛보다는 단맛에 흠뻑 빠졌던 경험을 말하고 싶다. 세상에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고독의 시간을 잘 보내고 나면 큰 성과가 기다리고 있다. 열정 덕분이 아닐까. 외로움에 빠져 쓸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독을 ‘즐겼다’고 해야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