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잡은 만연필
고수부/ 수필가
제11수필집을 배부하고 난 뒤부터 은근히 기다려지는 것이 있다. 독후감이다. 다른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는 유난히 어떤 반응이 올지 궁금했다. 지금까지 대여섯 분에게서 소감문을 받았다. 백석대학교 교수, 미용실 미용사, 아파트 경비원, 사랑하는 외손자, 국민은행 팀장 등 독자의 면면이 이렇게 다양하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이미 큰 선물을 받은 셈이다. 하나약국 약사님은 전화를 걸어 “이번에는 꼭 소감문을 써 보내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 소식이 없다. 바쁜 일상 속에서 마음은 있으나 책을 펼칠 여유가 없을 것이라 짐작한다.
사실 책 한 권을 완독한다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유튜브에서는 달콤한 말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카카오톡에 떠도는 짤막한 글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소비된다. 반면 일부러 시간을 내어 남의 수필집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일에는 인내와 결심이 필요하다. 나 역시 독자의 자리에 서면 다르지 않다. 지난주 교회에서 선교회 회장이 나를 ‘수필가’라고 소개하며 한 분을 연결해 주었다. 연세가 제법 들어 보이며 머리에 백발이 내려앉은 노인이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라 곰곰이 떠올려 보니 작년에 내가 다니는 수생반에 한두 번 나오셨던 분이었다. 그분은 말없이 자신의 수필집 두 권을 내 손에 쥐여 주었다.
마음을 다잡고 읽기 시작했지만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두 권을 모두 읽지는 못했다. 겨우 한 권을 마쳤다. 수학교사로 재직하다가 남의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교단을 떠나야 했던 이야기, 사회의 생활전선에서 겪은 고단함, 대장암 수술과 대동맥 절단 수술을 거치며 마주한 생사의 갈림길 등 그의 삶은 순탄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그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글로 표현하고자 하는 문학적 의지가 곳곳에서 느껴졌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나는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고통은 글을 낳는다. 삶의 상처와 질병, 실패와 좌절을 통과하지 않고는 결코 나올 수 없는 문장이 있다. 만약 그가 자신의 고통을 글로 옮기지 않았다면 그 세월은 그저 견뎌낸 시간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글을 쓰는 순간부터 그의 삶의 나무에는 문학이라는 꽃이 피기 시작했고 언젠가는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렇게 횡설수설 글을 쓰고 있지만 오늘 이 글을 쓰게 된 분명한 계기가 있다. 2026년 새해 첫 주일예배였다. 내 수필의 나무에도 새해의 빛이 비추어 주기를 은근히 기대하며 교회 본당에 앉아 있었다. 그때 아내가 내 옆으로 다가와 조용히 귀를 기울이라고 했다. “오은식 권사님이 이번에 낸 당신 수필집을 읽고 글을 너무너무 잘 썼다고 꼭 고 집사님에게 전해 달라셨어.” 세상에는 많은 칭찬이 있지만 내 수필집을 끝까지 읽고 ‘잘 썼다’고 말해 주는 칭찬만큼 가슴을 벅차게 하는 말은 없다. 한 권의 책 속에 담긴 시간과 고뇌를 알아주는 사람의 한마디는 작가에게 축복과도 같다.
글을 잘 썼다는 말은 다음 수필집을 쓰게 하는 가장 확실한 원동력이다. 매번 수필집을 내놓고도 아무 반응이 없을 때면 메아리 없는 골짜기에 서 있는 듯한 허탈함이 밀려온다. 그렇다고 글을 안 쓸 수도 없고 쓰자니 마음이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글은 과정 자체로 이미 보상을 받는 일이라고들 말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오늘 받은 칭찬 한마디가 유독 각별한 이유는 그것이 연초에 받은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오 권사님은 연세가 나보다 위이시지만 늘 젊은 패기가 넘친다. 교회 권사회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맡고 계시며 젊은 시절에는 중·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셨다. 신앙 또한 깊어 남편 되시는 분은 교회 원로 장로님이시다. 어느 날 낮에 집에서 쉬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뜻밖에도 김정우 장로님의 전화였다. 평소 전화를 주고받던 사이가 아니었기에 순간 긴장마저 됐다. 전화를 받자마자 장로님은 내 수필집 이야기를 꺼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여러 권을 받아 책꽂이에 꽂아두기만 하다가 우연히 한 권을 집어 들었는데 너무 흥미롭고 글이 매끄럽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날의 기쁨과 흥분은 아직도 생생하다. 바로 그 장로님의 부인이 새해 첫 주일에 다시 한 번 내 글을 칭찬해 주었으니 내 마음이 들뜨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예전에 나는 “군인은 사기를 먹고 살고 글 쓰는 사람은 칭찬을 먹고 산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무명작가인 나에게 이웃의 칭찬 한마디는 책 한 권을 더 쓸 수 있는 에너지를 넉넉히 안겨준다. 무엇이든 의지가 있어야 지속할 수 있고 의욕이 있어야 성과가 나온다. 위대한 글과 그림, 음악과 문명도 결국 그런 마음의 불씨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고수부
고려대학교 산림자원학과 졸업(학사)
동국대학원 영어교육과 졸업(석사)
월남 맹호부대 참전(ROTC 3기)
미 육군공병학교 측지과정 수료
미8군 JUSMAG-K 연락장교
육군대학 졸업
국방부 관리정보실(육군중령 예편)
전쟁기념관 학예관 정년퇴임
K ․ J 스피치 자문위원
순수문학 등단(2003)
국제펜한국본부 회원
수상
순수문학 우수상
전쟁문학상
제20회 순수문학 대상
제7회 에세이문에문학상
대통령 표창
국무총리 표창
수필집
『댓돌 위의 갈색 구두』
『진주반지』
『「아침 한 때의 행복』
『손자의 비밀』
『아내』
『석양에 물든 가을 바다』
『Beautiful Story(아름다운 이야기)』
『이 모습 이대로』
『추억의 집』
『길에 선 나무는 웃지 않는다』
『어둠울 건너는 빛처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