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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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가 몸담고 있는 이곳 하북미술대학에서 마주하는 도자기의 세계는 단순히 그릇을 만드는 행위를 넘어, 동양적 사유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대한기자신문 김지윤 하북미술대학 교수·도예가ㆍ디지인학 박사] 중국 하북성(河北省)의 겨울은 깊고도 정적이다. 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화북평원을 바라보며 물레 앞에 앉을 때면, 나는 비로소 흙이라는 가장 정직한 물질과 대면한다.

 

도자기는 인류가 발견한 가장 오래된 기술이자, 자연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고도의 정신적 산물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이곳 하북미술대학에서 마주하는 도자기의 세계는 단순히 그릇을 만드는 행위를 넘어, 동양적 사유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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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중국 하북미술대학교 전경

 

, 기다림의 미학

 

도예의 시작은 기다림이다. 흙은 인간의 손길을 허락하기 전, 자신 안의 불순물을 덜어내고 공기를 빼내는 숙성의 시간을 거친다.

 

하북의 거친 흙을 만지다 보면 그 입자 하나하나에 서린 대륙의 기운을 느낀다.

 

도예가는 그 흙의 성질을 거스르지 않고, 다만 그가 가고자 하는 길을 살며시 열어줄 뿐이다.

 

물레 위에서 회전하는 흙 덩어리는 우주의 원리와 닮아 있다. 중심축이 흔들리면 형태는 무너진다.

 

작가의 호흡과 흙의 회전이 일치하는 찰나, 비로소 생명력이 깃든 기()가 탄생한다.

 

한국의 '덤벙분청'이 지닌 투박한 미소와 중국 '정요(定窯)'의 백자가 보여주는 서슬 퍼런 정교함 사이에서, 필자는 현대 도예가 나아가야 할 길을 묻는다.

 

그것은 전통의 복제가 아니라, 시대의 공기를 담아내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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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지윤 作 작품설명: 두루결은 흙이 지닌 결을 따라 시간과 마음이 고르게 스며드는 모습을 담은 이름이다. 거칠고 고운 층이 겹겹이 쌓이며 만들어진 흙의 표면은 삶의 흔적처럼 서로 다른 결을 품는다. ‘두루’라는 말에는 넓고 차별 없이 감싸 안는 뜻이 담겨 있다. 이 작품은 사랑이 특정한 형태로 머무르지 않고, 미래를 향해 고르게 퍼져 나가듯 흙 위에 조용히 남는 순간을 다자적 평면으로 표현했다. 

불의 세례와 우연의 필연성

 

도자기는 인간과 자연의 합작품이다. 성형이 인간의 의지라면, 소성(燒成)은 불의 의지다. 섭씨 1,300도의 고열 속에서 흙은 자신의 몸을 녹이고 유약과 결합하며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무력해진다. 가마 안의 산소 농도, 불꽃의 흐름, 그날의 습도에 따라 색과 질감은 시시각각 변한다.

 

우리는 흔히 이를 불의 조화라 부르지만, 도예가에게 그것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다.

 

수천 번의 실험과 실패 끝에 얻어낸 단 하나의 빛깔. 그것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경외심을 가르친다.

 

최근 필자가 집중하고 있는 작업 역시 이 지점에 맞닿아 있다.

 

인위적인 장식을 배제하고, 불이 남긴 흔적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 비움으로써 오히려 꽉 찬 존재감을 드러내는 도자기의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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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지윤 교수의 작품, 금학과 금거북이

 

대학, 예술의 경계를 넓히는 실험실 이곳 하북미술대학의 교정은 거대한 예술 실험실과 같다.

 

중국은 도자기의 종주국답게 압도적인 스케일과 기법의 다양성을 자랑한다.

 

하지만 필자가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기술적 숙련도가 아니다. "무엇을 담을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이다.

 

현대 도예는 이제 가구(家具)나 장식품의 경계를 허물고 설치 예술과 조형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흙이라는 소재가 가진 가변성은 무궁무진하다.

 

필자는 한국인 교수로서 우리 도예가 지닌 절제의 미와 중국 도예의 장엄한 에너지를 융합하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중 양국의 예술적 자양분을 섭취한 제자들이 빚어내는 작품 속에서, 나는 도자기의 미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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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지윤 作


손끝에서 피어나는 인문학

 

도자기를 빚는 일은 곧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다. 흙을 이기고 누르려 하면 흙은 반드시 뒤틀린다.

 

자신을 낮추고 재료와 소통할 때 비로소 순수한 형태가 나온다. 현대 사회의 속도전 속에서 도예는 우리에게 '느림의 가치'를 일깨워준다.

 

한 점의 도자기는 그저 흙덩이가 아니라, 대지의 숨결과 인간의 고뇌, 그리고 불의 열정이 응축된 결정체다.

 

하북의 연구실 불빛 아래서 나는 오늘도 흙을 만진다. 차가운 흙이 따뜻한 예술로 승화되는 그 순간을 위해, 그리고 국경을 넘어 예술로 소통하는 그 깊은 울림을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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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윤 하북미술대학 교수·도예가ㆍ디지인학 박사

 

김지윤한중문화칼럼니스트 기자 kcunews@hanmail.net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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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시평] 흙과 불의 변주, 김지윤이 빚어낸 ‘하북(河北)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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