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대기자] 서울 마포의 토정로를 걷다 보면,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자리에서 한 인물이 발걸음을 붙든다.
조선 중기의 실학자이자 사상가, 그리고 백성의 삶을 깊이 헤아렸던 토정 이지함이다. 화려하지도, 과장되지도 않은 그의 동상은 오늘의 도시 풍경 속에서 오히려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지함은 벼슬보다 민생을 택한 인물로 기억된다. 가난한 백성의 삶을 외면하지 않았고, 현실의 고통을 해결하는 데 사유의 초점을 맞췄다.
점술서로 알려진 『토정비결』조차 단순한 길흉 예언이 아니라, 절제와 준비, 삶의 태도를 일깨우는 생활 철학에 가까웠다. 그는 미래를 맞히려 한 것이 아니라,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고자 했다.
토정로에 세워진 그의 동상은 그런 삶의 방향을 상징처럼 드러낸다. 빠르게 흘러가는 차량과 빽빽한 상가 사이에서, 이지함은 여전히 서민의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본다.
성공과 속도를 숭배하는 시대에, 그의 존재는 효율보다 인간을 먼저 생각하라는 무언의 경고처럼 다가온다.
지금의 한국 사회 역시 불확실성과 불안 속에 놓여 있다. 미래에 대한 집단적 피로가 커질수록 사람들은 손쉬운 해답과 즉각적인 처방을 찾는다.
그러나 토정 이지함이 남긴 메시지는 분명하다. 삶은 예측의 대상이 아니라 준비의 과정이며, 공동체는 경쟁의 장이 아니라 서로를 떠받치는 구조여야 한다는 것이다.
토정로에서 만나는 이지함 동상은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현재의 거울이다. 그 앞에 잠시 멈춰 서는 일만으로도 우리는 질문을 건네받는다.
더 많이 가지는 삶이 아니라, 더 덜 아프게 함께 사는 길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질문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