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돼지
한청수/ 수필가
스패인 살라망카주의 중세 마을 라 알베르카에는 마을 전체가 돼지 한 마리를 함께 키우는 독특한 전통이 있다. 매년 6월 13일 성 안토니오 축일에 축복받은 새끼 돼지 한 마리를 마을 거리에 풀어놓는다. 이 돼지는 '산 안톤'이라 불리며, 약 7개월 동안 마을 거리를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마을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빵과 물을 먹고 살을 불리며 몸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큰 돼지가 된다. 추운 밤에는 주민들이 자신의 집에 잠자리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겨울이 오면 스페인의 작은 시골 마을은 유난히 분주해진다. 눈에 띄는 건 화려한 조명도, 관광객도 아니라, 마을 사람들 사이를 조용히 오가는 약속들이다. “올해도 같이 키우자.” “이번 주엔 내가 먹이 줄게.” 누구도 크게 말하지 않지만, 서로가 알고 있는 일들이 있다. 한 해 동안 마을이 힘을 모아 돼지 한 마리를 공동으로 사육하고, 연말 축제 기간에 그 고기와 식료품을 꾸려 동네에서 가장 어려운 이웃에게 선물하는 일. 축제는 그때 비로소 ‘나만의 기쁨’이 아니라 ‘함께의 온기’가 된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조금 놀랐다. 누군가의 불쌍함을 드러내기 위한 행사가 아니라, 오히려 가난이 그 사람의 이름이 되지 않도록 배려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마을은 ‘누가 받는지’보다 ‘모두가 마음을 모았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공동 사육이라는 단순한 노동은 연말의 선물보다 먼저 사람들을 하나로 묶었다. 날씨가 궂은 날도 있었고, 일이 바쁜 날도 있었지만, 그 작은 약속들이 쌓여 ‘누군가의 겨울’을 지켜주는 큰 울타리가 되었다. 함께 조금씩 시간을 내고, 작은 부담을 나누고, 그 작은 꾸러미를 ‘당연한 듯’ 건네는 일. 그 소박함 속에 진짜 따뜻함이 있다.
내가 태어난 곳 지도에서도 한참을 더듬어야 닿는, 시골의 끝자락 같은 그곳은 흙냄새와 바람의 결이 먼저 떠오르는 곳이다. 겨울이면 바람이 뼈마디를 두드렸고, 여름이면 볕이 마당의 그늘까지도 뜨겁게 달구었다. 열두 가구가 사는 가난에 찌든 두메산골, 마을 공동우물 옆에 영호네가 살고 있었다. 무릎 아래 수동다리 한쪽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아 일할 수 없는 아버지와 내종을 앓고 있는 어머니, 일곱 남매는 늘 배가 고팠다. 어쩌면 “살아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어린 것들이 너무 많아, 집안은 늘 작은 숨소리와 배고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집과 집 사이가 멀지 않았고, 누구네 마당에서 밥 짓는 냄새가 나면 온 동네에 금방 스며들었다.
영호 엄마는 밥이 떨어지는 날이 오면, 말없이 빈 소쿠리를 들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나는 그 뒷모습을 종종 기억한다. 미안함을 삼키는 사람의 등은 왠지 더 작아 보였다. 어머니의 걸음이 빠르지 않았던 것은, 다리가 아파서만이 아니라 마음이 무거워서였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 빈 밥 소쿠리는 늘 가득 채워져 돌아갔다. 마을 사람들은 각자의 밥그릇에서 한 숟가락씩 덜어냈다. 한 숟가락, 정말 적은 사랑의 나눔이 모여 영호네 집의 하루가 되었다. 그 한 숟가락에는 밥만 담긴 게 아니었다. “괜찮다”, “살아라”, “어린 것들은 먹어야지” 같은 말들이 함께 담겨 있었다.
가난은 사람을 외롭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람을 더 사람답게 묶어 주었다. 누군가를 도울 힘이 없는 사람들이 서로를 돕는 방식이 있다는 것을 보며 영호네 칠 남매는 그렇게 자랐다. 온 동네의 손길이 일곱 아이를 키웠다. 밥을 나누어 준 손, 감자를 쥐여 준 손, 울고 있는 아이를 잠깐 안아 준 손, 어머니 대신 머리를 묶어 준 손 그 손들이 모여 하나의 큰 품이 되었고, 그 품이 일곱 아이를 넘어지지 않게 받쳐 주었다.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은 슬픔이 많은 대신 온기가 많았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만큼 마음이 더 오갔고, 각자의 삶이 팍팍했던 만큼 서로의 사정을 더 잘 알아보았다. 지금도 가끔 밥 냄새가 진하게 퍼지는 날이면, 나는 어머니의 밥그릇에서 반이나 펴내어 주시고 숭늉으로 배를 채우시든 그 마음을 떠올린다. 한 숟가락씩 모아주던 밥, 그 밥의 온도, 밥그릇이 부딪치며 내던 작은 소리, 그리고 누군가의 삶을 살게 해주던 조용한 마을, 누군가의 손길이 곧 누군가의 숨이 되어 배고픔을 조금씩 밀어내 주었다. 아이들은 ‘남의 밥’이 아니라 ‘마을의 밥’을 먹고 자랐다.
나는 스페인 ‘산 안톤의 돼지’를 키우듯 아프리카 케냐에 새까만 돼지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어린아이 때부터 후원해 온 ‘사닷’이다. 직접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아이지만, 해마다 연말이 되면 사닷은 자신의 시간을 카드 한 장에 담아 보내온다. 어제보다 조금 커진 키, 전보다 또렷해진 눈빛, 낯설지만 정직한 미소. 그 카드 위에는 말보다 먼저 자란 시간이 붙어 있다. 처음엔 그저 사진 속 아이였다. 그러나 해가 바뀔수록 사닷은 숫자가 아니라 계절이 되었고, 소식이 아니라 기다림이 되었다.
나는 먼 곳에서 그 아이의 성장을 조용히 지켜보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보내주는 적은 정성을 먹고 아이는 스스로 자라 나에게 안부를 건넨다. 사닷이 보내오는 카드를 받을 때마다 사랑은 손을 잡지 않아도 닿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구의 반대편에서 한 아이가 무사히 커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 해의 끝은 충분히 따뜻해 진다. 그 아이의 내일이 오늘보다 조금 더 단단해지기를 바라며, 우리가 함께 키우는 돼지들이 세상의 아픔을 밀어 올리는 그날이 오기를, 또 한 마리의 ‘산 안톤’을 조용히 기다린다.
▲한청수
전북대학교 법정대학 법학과 졸업,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으로 수필가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생반 회원, 서울시교육청 산하 초등학교, 테헤란 한국학교 교사 근무, 문교부 장관 표창, 옥조근정훈장 수상, 한국교원 교육논문 금상, 에세이문예작가상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