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이 필요 없는 아침
김봉구/ 수필가, 고려대 명예교수
나는 오랫동안 근무한 직장을 떠난다. 기간이 만료된 퇴직자다. 어제까지만 해도 사무실에서 끝마치지 못한 자료를 챙겨 가방을 들고 귀가했다. 그 전날도 어김없이 가방을 들고 출근했다. 이 습관 때문에 나는 거지와 흡사한 생활을 한다고 누군가 비아냥거린다. 항상 옆에 무엇인가를 들고 다니는 것에 빗대어 하는 말이다. 떠남을 위한 준비는 마지막 기념 강의에서부터 시작했다. 지난주에는 서적과 참고자료들을 집으로 옮겼다. 일찍 사무실을 비워야 한다.

후임자가 바로 들어올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그를 위한 당연한 베려다. 관련 부서와도 마지막 정리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야 한다. 협회나 학회 연구소등 관계기관에 적절하게 알리는 게 좋다. 직장 내에서도 만나는 사람마다 떠남을 알리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것 또한 도리이다. 여러 차례 술잔을 기울이는 송별 모임도 있었다. 기념행사로 대강당에서 가족 친지 직장동료와 상사들이 참여한 정년퇴임식에서 마지막 인사말도 남겼다. 이제 명함이 필요 없는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떠나는 의례절차는 직장생활 면면의 돌아봄을 불러온다. 직장생활을 회상해 보면 만 30세에 조교수로 시작했다.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했을 때 그 나이였다. 명강의를 하고 싶은 꿈이 있었다. 강의안을 철저히 준비했다. 그 준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한번 만든 강의안이 10년 간다’고 전해 내려오는 말은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다. 처음에는 서투른 면이 많았지만 거듭하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것을 경험했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노력하면 불가능이 없다는 사실이다. 강의시간이 되면 긴장하면서도 강의안을 들고 열심히 해보자는 의욕이 솟아난다.
연구는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과학적 근거에 입각한 분석이다.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여 창의적인 논문을 작성한다. 선진국에서 석박사 과정을 하면서 자료수집 계량모형 수립 분석절차에 익숙한 덕분에 진행에 자신감을 갖기도 했다. 행정 보직을 맡으면서 본연의 업무에 상당한 손실을 경험했다. 학생 민주화운동은 ‘학생지도’라는 또 다른 업무부담을 추가했다. 나는 보직을 맡은 기간에는 연구업무를 뒤로 물려둘 수밖에 없었다. 이 기간이 5년이나 되었다. 숨막히는 긴장 속에서 학생들과의 대화를 이어갔다. 어려운 문제들을 풀어 갈 수 있었던 것은 대화 상대자들에 대한 신뢰와 나의 마음가짐이었다. 자식처럼 아끼면서 보살피는 관심이었다.
퇴직 이후에는 다른 사회생활이 기다리고 있다. 직업이나 지위 신분이 완전히 달라진다. 새롭게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생활 태도로 임해야 한다. 그 무렵 아내가 나에게 부탁한 말이 기억난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교수로 직장생활을 했다는 이야기나, 교수직을 암시하는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을 분명히 해 주었다. 한동안 나는 이 말을 잘 지켰다. 어디에 가더라도 앞에 나서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더구나 어느 대학에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밝히지 않으려 했다. 지나고 나니 이 사실이 밝혀지면 나의 행동이 위축될 것만 같았다.
우리 사회에서 교수 직업은 사회적 공인의 위치에 있다. 사실은 모든 언행을 주의해야 한다. 처신하기가 쉽지 않다. 사회적으로 지도자의 위치에 속하기 때문이다. 정부를 비판하거나 사회문제를 지나치게 혹평하면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아니면 불편한 입장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성숙된 민주주의 국가로 유지하는 데는 사회지도층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직함이 사라진 뒤에 남은 것은 무엇인가. 동료들은 정년이 지나도 아쉬움을 잊지 못하고 있다. 업무를 영속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개인적으로 연구소를 만들거나 사무실을 마련한다. 정부 관련 기관과 접촉을 계속 이어간다. 연구비를 따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나는 이들과는 다르게 퇴직 후 문중활동에 기여했다. 문중회장을 하면서 많은 사람과 관계를 새롭게 맺었다. 조상의 유업을 기리는 숭조사업을 진행하면서 배운점이 하나 있다. ‘조상이 훌륭해서 자손이 번창하는가 하면, 반대로 자손이 훌륭해서 조상을 빛내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이다.
취미 활동은 골프와 등산 모임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골프는 늦은 나이인 50세가 넘어서 미국에 초빙교수로 갔을 때 배웠다. 사람들을 만나서 야외활동을 같이하면서 얻는 것이 많다. 동료 관계가 새롭게 만들어지고 풍요로운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부차적으로 신체활동을 많이하기 때문에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새로운 일을 또 찾았다. 매주 수필창작반에 다니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새롭게 무엇인가 배운다는 것은 신기하다. 어려움과 동시에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한동안은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때가 있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직장을 떠나면서 이별의 아쉬움은 크게 남는다. 이제 망망대해로 나아가고 있다. ‘명함이 필요 없는 사회생활’을 여는 아침의 순간은 장엄하다. 다른 세계가 다가오고 있다. 준비 없이 지내온 10여 년의 세월이 원망스럽다. 늦게나마 새로운 일을 찾을 수 있었다. 다행이다. 바로 수필 창작활동이다. 내 인생 최대의 행복을 안겨줄 수 있는 동력을 발견했다. 한 가닥 샘솟는 희망을 찾은 느낌이다. 창작활동이란 힘든 일이지만 무엇인가 보람을 주기 때문에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 김봉구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수필집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발간, 제1회 에세이문예사 찾아가는 북토크콘서트 대상작가, 제1회 에세이북콘서트어워드, 에세이문예 작가상 수상,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