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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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용대 목사는 전남 고흥군 남양면 출신으로, 한국 복음성가(CCM)의 개척자이자 ‘1세대 찬양사역자’이었습니다.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발행인]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향춘, 평생을 낮은 곳에서 소외된 이들의 벗이 되어주었던 나의 죽마고우 전용대 목사가 어제(9). 주님의 부름을 받고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갑작스러운 이별 앞에 가슴이 먹먹해지지만, 그가 이 땅에 남기고 간 찬양의 궤적을 떠올리며 슬픔보다는 감사의 마음으로 마지막 인사를 건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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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용대 목사는 전남 고흥군 남양면 출신으로, 한국 복음성가(CCM)의 개척자이자 ‘1세대 찬양사역자’이었습니다.

 

찬양의 선율에 담긴 희망의 메시지

 

전용대 목사는 전남 고흥군 남양면 출신으로, 한국 복음성가(CCM)의 개척자이자 ‘1세대 찬양사역자이었습니다.

 

소아마비라는 육체적 한계를 딛고, 친구가 부르던 찬양은 단순한 노래를 넘어, 고난 속에 있는 이들에게 건네는 주님의 따뜻한 위로였습니다.

 

대표곡인 주여, 이 죄인을속에 담긴 절절한 고백은 수많은 영혼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친구는 자신의 장애를 원망하기보다, 그 아픔을 통해 다른 이들의 상처를 보듬는 치유의 도구로 자신을 기꺼이 내어놓았습니다.

 

교회의 문턱을 낮춘 낮은 자의 목회

 

친구는 화려한 성전보다 어둡고 그늘진 골목을 더 사랑했던 진정한 찬양 사역자였습니다.

 

복음은 담장 안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친구는, 교도소와 소년원, 장애인 시설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습니다.

 

사회적 편견에 갇힌 이들의 손을 맞잡고 함께 울어주던 친구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는 살아있는 설교였습니다.

 

친구는 평생동안 세상적인 명예나 부를 좇지 않았습니다. 개척교회의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사례비보다 어려운 이웃의 구제비를 먼저 챙기던 친구의 헌신은 동료 목회자들에게도 큰 귀감이 되었습니다.

 

친구에게 목회란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 종의 모습으로 섬기는 순종의 여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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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단했던 십자가를 내려놓고 주님 품으로

 

사랑하는 벗 전용대 목사여! 이제 그 무거웠던 육신의 짐과 헌신의 십자가위에 내려놓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주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나.

 

자네가 이 땅에 뿌린 찬양의 씨앗들은 이제 거대한 사랑의 숲이 되어 우리 곁에 영원히 남았네.

 

자네의 찬양은 멈추지 않고 여전히 우리 가슴 속에 울려 퍼질 것이며, 자네가 보여준 헌신의 삶은 우리가 걸어가야 할 이정표가 될 것이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딤후 4:7~8)

 

비록 육신은 나의 곁을 떠났지만, 전 목사가 남긴 찬양의 불꽃은 꺼지지 않을 것입니다.

 

친구의 삶을 기억하는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전용대가 되어 그가 못다 한 사랑을 실천해 나가길 소망합니다.

 

천국에서 다시 만날 그날을 기약하며, 나의 영원한 친구 전용대 목사의 영면을 간절히 기도합니다.

 

친구 이창호가 쓰다 2026.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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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낮은 곳으로 향했던 ‘참 목자’, 나의 벗 전용대 목사를 하늘나라로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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