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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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필옥 수필가는 경남 창원 출신, 계간 ‘에세이문예’ 수필로 등단, 경남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 한국본격문학가협회 회원, 에세이문예창작대학원 문학평론반 수학, 동화 읽기를 좋아하는 주부다

마음의 빈터에 빛이 들 때

 

김필옥/ 수필가

 

좋은 울림은 입체적이며, 좋은 음악은 공간을 연다. 이 말은 마틴 슐레스케의 가문비나무의 노래에 나오는 말이다. 공간이 있어야 울림이 있다는 자명한 진리를 알고 있었음에도, 나는 그 공간을 만들생각은 하지 못했다. 현실이라는 평면에 코를 박고 사느라, 고개 들어 내가 선 자리에 어느 정도의 여백이 있는지 살필 겨를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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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기도를 시작한 지 300일이 좀 지나고 있다. 처음엔 흘러가는 시간의 한 조각을 떼어 가볍게 시작한 일이었으나, 이제 이 시간은 나를 깨우고 마음을 여는 공간이 되었다. 베른트 알로이스 치머만은시간을 앞뒤로 흐르는 선이 아니라 모든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구형이라 말했다. 100일째 되던 날, 기도를 거른 날이 더 많았던 나를 보며 자책했던 것은 시간을 채워야 할 선으로 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일을 300일에 접어든 지금, 새벽 5시는 더 이상 어제와 오늘 사이의 징검다리가 아니다. 그 시간은 내 삶의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의 감정들이 한데 모여 공명하는 입채적인 성소(聖所)가 되었다.

 

기도와 공명은 깊은 연관이 있다. 처음 기도를 시작할 때 내 마음은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꽉 차 있었다. 바늘 하나 꽂을 틈 없이 빽빽한 마음속엔 소리가 머물 공간이 없었다. 미움은 반사될 곳을 찾지 못해 내 안에서 둔탁한 소음이 되어 가슴을 때리고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고 싶다.’고 발원한 순간 꽉 막힌 마음에 작은 구멍이 생겼다. 베른트 알로이스 치머만 구형 시간론처럼 시간이 공간화되자 고정되어 있던 미음의 밀도가 낮아지기 시작했다. 비워진 만큼 화가 줄고 그 틈으로 빛이 들어왔다. 이 작은 진동이 구형의 공간을 타고 사방으로 퍼져나가, 미움보다 사랑의 마음 감사한 마음으로 내 삶을 채우기를 소망하고 있었다.

 

기도를 하는 1시간은 나라는 악기를 조율하는 시간이다. 전날 엉켜있던 감정의 줄을 팽팽하지도 느슨하지도 않으며, 내 안의 빈 공간이 소리를 낼 준비가 되었는지 살핀다. 최근 성악 레슨에서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노래의 생명은 공명입니다. 목에서 나는 소리는 하품(下品), 코에서 나는 소리는 중품(中品), 온몸의 공간을 울려 내는 소리는 명품(名品)입니다.” 참 신기하다. 목구멍, , , 광대뼈 사이의 미세한 틈, 비어있는 공간을 공기가 통과할 때 비로소 감동적인 소리가 태어난다. 비어있기에 비로소 존재할 수 있는 소리, 그것이 바로 공명이었다.

 

바이올린 제작자가 나무 속에 빈 함을 만들어 연주자가 그 안에서 아름다운 소리를 찾아내게 하듯, 나 역시 내 몸이라는 악기 안에 너른 여백을 만들어야 한다. 공간이 악기의 음색을 결정하듯, 내가 틔워낸 마음의 여백은 곧 내 삶의 음색이 된다. 예전에는 그저 크고 높은 소리, 남들에게 지지 않는 빽빽 지르는 소리를 내는 것이 정답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가장 멀리 가는 소리는 억지로 내지르는 비명이 아니라, 깊은 비움에서 터져나오는 부드럽고 가벼운 울림이라는 것을.

 

새벽마다 무릎을 꿇고 나만의 공간을 가다듬는다. 오늘 내가 내뱉을 말들은 얼마만큼의 울림을 줄까. 내 마음의 빈터에 내가 쉴 때 누군가 내 곁에 와 기쁘게 쉬어가길 기대해 본다. 비어있기에 비로소 충만한 그 아름다운 소리를 위해 나는 오늘도 고요히 나를 비워낸다.

 

김필옥

 

경남 창원 출신, 계간 에세이문예수필로 등단, 경남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 한국본격문학가협회 회원, 에세이문예창작대학원 문학평론반 수학, 동화 읽기를 좋아하는 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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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권대근 교수 추천, 이 한 편의 수필 김필옥의 '마음의 빈터에 빛이 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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