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콘서트를 개최하다
황인강/ 수필가
흩어져 있던 시간의 조각들과 오래 붙들고 있던 문장들이 한 권의 책이 되어 내 손으로 돌아왔다. 제4수필집을 출간했다. 한국문협 평생교육원 수생반에서 배운 글쓰기가 씨앗이 되어 맺은 열매라 더욱 각별하다. 오래 마음속에서만 자라던 문장들이 마침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손에 잡히는 순간, 지나온 시간이 조용히 뒤를 돌아보게 했다. 표지 제목이 ‘신의 한수’에 비견된다는 찬사를 들었을 때는 쑥스러움과 기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책 한 권에는 글자만 실린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숨과 망설임, 그리고 포기하지 않았던 시간까지 함께 눌어붙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그 출간을 기념해 토크콘서트를 열게 되었다. 생각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세상에는 많다. 마음속에만 두었다면 끝내 꺼내지 못했을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끌어주는 분이 있었기에 가능한 자리였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과연 내가 콘서트를 열 자격이 있는가 하는 망설임이 앞섰다. 내 문장이 누군가 앞에 서도 되는가 하는 질문이 오래 마음을 두드렸다.
콘서트는 특별한 유명 인사만의 무대라고 여겨왔기 때문이다. 지도교수이신 권대근 문학평론가의 강력한 권유로 1월 29일, 인사동의 한정식집 넓은 홀에서 행사를 열었다. 장소와 날짜에 약간의 혼선은 있었지만, 오히려 그 소란이 잔잔한 기대를 더해 주었다. 평생교육원에서 함께 공부한 분들께 연락을 드렸으나 갑작스러운 한파로 참석하지 못한 이도 있었다. 결국 한국문인협회 회원 50여 명과 가족 몇 분이 모여 차분하고 단단한 분위기 속에서 행사가 진행되었다.
문단의 원로이자 문학감성TV를 운영하는 권갑하 선생을 특별히 모셨다. 시작에 앞서 두 분의 미니 강의가 이어졌는데, 무료해질 틈을 주지 않는 따뜻한 시간이었다. 문학의 연못 위에 작은 꽃 한 송이를 띄워 보내는 순간 같았다.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긴장과 설렘이 뒤섞였지만 막이 오르자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사회를 맡은 송명화 교수의 차분한 소개로 콘서트가 시작되었고, 소프라노 김미숙 수필가의 노래가 홀 안의 공기를 부드럽게 적셨다.
이어 진행자의 여유로운 질문과 나의 답변이 오가며 대담이 이어졌다. 수필과 맺은 인연, 책 제목에 담은 의미, 직장 생활의 기억, 오래된 인간관계, 20여 년 넘게 이어온 연재 활동까지 지나온 시간이 하나의 서사로 묶였다.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과거가 말 속에서 되살아났다. 그 대화는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시간이었다. 함께 앉아 있던 수필가들 역시 저마다의 시간을 돌아보았으리라 믿는다.
오래전 신문에서 읽은 최재천 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자연과학이든 인문학이든 결국 글쓰기에서 판가름 난다는 문장이었다. 그날의 콘서트는 문학의 힘이 인간의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과 지정의를 드러내는 일임을 다시 확인하는 자리였다. 읽고 쓰는 일이 인생의 황금 열쇠라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더욱 또렷해졌다. 축사를 들려준 권갑하 선생의 말씀 또한 깊은 울림으로 남았다. 문단의 거목이 들려주는 육성은 그 자체로 하나의 배움이었다.
현장의 분주한 손길도 잊을 수 없다. 급히 플랙카드를 걸고 꽃다발을 정리하며 무대를 다듬어 준 이들의 정성이 공간을 채웠다. 콘서트가 끝난 뒤 나는 그 플랙카드를 집 거실 벽에 일주일 동안 걸어 두었다. 「나는 오늘도 한 줄의 삶을 조각한다」라는 문장이 햇빛 속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그 문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하루가 다시 시작되는 느낌이 들었다. 디자인을 맡은 편집진의 감각 덕분에 그 천 한 장이 작은 축제의 기억으로 남았다. 식탁 위 꽃다발도 햇살을 받아 더욱 환하게 피어 있었고, 그 빛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처럼 방 안에 오래 머물렀다.
이 모든 장면에는 지도교수와 수생반 선생님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꽃다발의 색과 향기처럼 따뜻한 응원이었다. 나는 그 정성 위에 다시 펜을 얹는다. 한 줄을 쓰는 일이 한 사람의 시간을 쓰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함께 배우는 수필가들이 이 전통을 이어가기를, 각자의 문장이 또 다른 축제가 되기를 조용히 바라본다. 그날의 무대는 막을 내렸지만, 글을 향한 걸음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어쩌면 진짜 토크콘서트는 그날 이후, 다시 책상 앞에 앉는 순간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황인강
경기 파주 출생으로 영의정 방촌 황희 정승 20대손으로 아호는 춘강이다. ‘순수문학’에 ‘막가는 세상’으로 등단했다. 경동중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경영대(61학번) 졸업, ROTC 3기로 롯데그룹 임원을 역임했다. 한국스피치아카데미 정회원, 한국문인협회 정책개발위원, 국제PEN한국본부 회원, 한국순수문학인협회 상임이사, 용수문학회, 순수수필작가회 회장 역임, 용산문학인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지도교수 권대근) 8년째 수강, 순수문학상 본상 및 대상 수상, 수필집 ‘한발 물러서서 생각하기’ ‘켜안아 주기’ ‘봄의 벽에 서다’ ‘나는 오늘도 한 줄의 삶을 조각한다’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