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5(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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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봉구 수필가는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수필집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발간, 제1회 에세이문예사 찾아가는 북토크콘서트 대상작가, 제1회 에세이북콘서트어워드, 에세이문예 작가상 수상,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영어로 끝내 설명할 수 없던 감정들

 

 

김봉구/ 수필가, 고려대 명예교수

 

유학 생활에서 처음 3개월은 신난다. 한국에서는 영어로 연습을 할 수 없다. 미국인이 없어서다. 현지 사람은 모두 미국인이다. 얼마나 좋은가. 하우 두유 두, 마이 네임 이스 서치, 아이 케임 프롬 코리아, 마이 메이져 이스 서치 서치라고 인사를 한다. 매일 초면이니 같은 말을 하면 된다. 반복할 수록 길어진다. 자신을 소개하는 말이 5분을 넘게 된다. 이제 새로 만나는 사람은 없다. 만날 때마다 똑같이 어쩌구 저쩌구 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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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말을 생각해 내야 한다. 1년이 지나면 영어 말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이 정도 기간이 되면 저절로 말할 것 같다. 천만이다. 하도 많은 실수를 해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즐겁지 않다. 그때부터 영어 대화를 기피한다. 2년이 되면 영어 말하는 것 자체를 포기한다. 빨리 공부 끝내고 돌아가고 싶다. 3년이 되면 어떨까. 세상이 달라진다. 여학생들이 지나가면서 나누는 사적인 대화도 들린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 읊는다는 속담이 맞다. 사람을 만나면 저절로 입이 열린다. 말을 듣게 되니 입에서 소리가 나온다.

우리가 쓰는 말은 영어로 옮기기 어려울 때가 많다. 언어는 문화와 정서를 따르기 때문이다. 영어에서 안녕이라는 단어는 처음 만날 때는 하이라고 하지만, 해어질 때는 굿바이가 된다. 이라는 말은 한국에만 있는 표현이다. 사랑 이상의 뜻을 담고 있다. 오랜 시간 함께하면서 생기는 사랑과 의리 연민까지 포함하고 있다. 답답하다는 말은 의사소통이 안 될 때 느끼는 감정표현이다. 영어로 좌절하다는 표현으로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편 괜찮아요라는 표현은 영어로 오케이 노 워리 파인 등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영어로 내 사무실에 올 수 있겠느냐는 질문은 우리에게 왜 내 사무실에 오지 않느냐는 문책성 발언으로 들린다. ‘와이 돈츄라는 물음표가 다른 언어로는 이런 뜻을 유발한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좀 와줄 수 있느냐는 뜻이다. 죤 에프 케네디 대통령이 오스왈드의 총을 맞고 쓰러질 때 재클린 영부인이 그 자리에서 오 노했다고 우리 신문에 표기됐다. 감정을 뺀 글자만 표시한 것이다. ‘오우 노우라고 표기해야 맞다. 발음도 그렇게 해야 한다. 감정이 제대로 전달되려면.

초기에 카페테리아에서 저녁 메뉴로 스테이크가 나왔다. 한국 학생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불과 15년밖에 안 되었던 시기라 육류에 대한 체질적인 두드러기때문이다. 스테이크에 소금과 후추 가루를 뿌리고 한두 점 먹는다. 그 대신 우유와 식빵 몇 장을 가져와서 버터를 발라 먹었다. 가난한 시절의 습관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주말이면 유학생 싱글들은 마땅히 갈 곳이 없다. 결혼한 학생 집에 초대받아 식사하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새로 온 학생들을 흔히 저녁 식사나, 아니면 공원 피크닉 파티에 초대했다.

한 번은 학생 두 명과 레이크에 낚시하러 갔다. 낚싯대 3개를 펼쳐놓고 있었다. 낚시하기에 좋은 오후였다. 낚싯대 세 개는 한 사람에게 허용된 숫자다. 그날은 잘 물려서 잡히는 데로 줄에 꿰어 두었다. 두 친구는 신나서 즐거운 표정이었다. 단속 경찰이 보트를 타고 들이닥쳤다. 피싱 퍼밑을 확인했다. 내가 면허증을 보여주면서 이 두 사람은 내 낚시를 도와주고 있다고 둘러댔다. 무면허 낚시는 범칙금이 많았다. 두 사람은 면허증 요구를 받지 않고 넘어갔다. 호수 주변을 파헤친 흔적을 점검했다. 나는 피싱베이트 샵에 들러 지렁이를 사왔다고 답했다. 물가에 둔 20마리 꾸러미를 들어 올리면서 치수를 꼼꼼히 점검했다. 잡은 배스의 크기를 문제 삼는다. 30cm 이상만 잡고, 그 이하 치수는 물속에 돌려보내야 한다. 허가된 치수 이하가 많다고 지적했다.

꾸러미에서 증거로 두 마리를 신문지에 포장해서 가져갔다. 지금처럼 핸드폰이 있어서 사진으로 증거를 남겼다면 나는 틀림 없이 가중처벌을 받았을 것이다. 나중에 법정에 출두해야 한다고 말하고 자리를 떠났다. 2주 후에 경찰관이 내 사무실에 왔다. 지금 법정에 출두해야 한다고 통고했다. 그동안 이 사건이 무마될 것이라고 믿고, 잊어버리고 있었다. 차량으로 세인트루이스 법정까지 동행을 요구했다. 고속도로를 40분간 달려서 법정에 도착했다. 법정에서 파인 45불을 선고받았다. 가계수표 45불을 써서 쉐리프 사무실에서 현금으로 바꾸어 납부했다. 두 사람에게 잡을 수 있는 배스의 크기를 알려주지 못했다. 경찰관이 현장에서 단속하는 것은 처음 겪었다. 후회스러운 일은 경고로 처리해 달라고 말하지 못한 점이다.

나중에 캘리포니아에 초빙교수로 갔을 때다. 아버지와 아내가 미국을 방문하여 둘째 딸과 네 명이 LA지역으로 여행을 갔다. 헐리우드를 구경한 후 비탈진 도로를 따라 다음 방문지를 가고 있었다. 도로가 묘하게 생긴 지점에서 중앙선을 넘고 다른 도로까지 진입하여 달렸다. 경찰 차량이 따라와서 내 차를 정지시켰다. 어처구니없었다. 정중히 말했다. 한국에서 가족이 와서 함께 여행 중인데 길도 서툴고 해서 대단히 죄송하다. 이번 일을 경고로 처리해 주실 수는 없습니까 하고 물었다. 경관이 탑승한 아버지를 보더니 그냥 가라고 했다. 200불의 벌금을 유예받은 셈이다.

이 사회에서는 법과와 규범을 지켜야 한다. 합리적인 행동과 예의 절차는 그들에게도 통용되는 도리이고 아량이다. 언어가 불편하더라도 만약의 경우에는 예의 절차를 갖추는 것을 권고하고 싶다.

 

김봉구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수필집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발간, 1회 에세이문예사 찾아가는 북토크콘서트 대상작가, 1회 에세이북콘서트어워드, 에세이문예 작가상 수상,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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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김봄구 교수의 열정 인생사, 수필 '영어로 끝내 설명할 수 없던 감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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