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발행인] "만족을 아는 사람은 가난해도 즐겁고, 만족을 모르는 사람은 부유해도 근심한다." 고 명심보감(明心寶鑑)에 밝혔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더 많이', '더 높이'를 외친다.
자본주의의 거대한 수레바퀴는 우리의 소유욕을 동력 삼아 굴러가고, 미디어는 남들과 비교하며 끊임없이 결핍을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는 한 번쯤 멈춰 서서 자문해 보아야 한다. 과연 얼마나 더 가져야 우리는 비로소 '만족'이라는 종착역에 도달할 수 있을까?
노자(老子)의 도덕경에는 '지족불욕 지지불태(知足不辱 知止不殆)'라는 명언이 등장한다.
만족함을 알면 욕을 당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이 고전의 지혜는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정신적 빈곤을 겪는 우리에게 매서운 죽비 소리와 같이 다가온다.
■ 소유의 역설, 가질수록 커지는 갈증
심리학에는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라는 용어가 있다.
새로운 물건을 사거나 성취를 이뤘을 때의 기쁨은 잠시뿐, 곧 그 상태에 적응되어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된다는 법칙이다.
만족할 줄 모르는 마음은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다.
아무리 넓은 집에 살고, 최고급 차를 타며, 통장의 잔고가 늘어나도 마음의 중심에 '지족(知足)'이 자리 잡지 못하면 그 모든 것은 결핍의 증거가 될 뿐이다.
100을 가진 사람은 200을 가진 사람을 보며 불행해하고, 200을 가진 사람은 1000을 가진 사람을 보며 자신의 초라함을 한탄한다.
결국 만족을 모르는 삶은 타인의 시선에 저당 잡힌 채 끝없는 비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삶이다.
■ 지족(知足), 무기력함이 아닌 '마음의 선택'
흔히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발전 없는 안주'나 '포기'로 오해하곤 한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지족은 성장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가진 것의 가치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마음의 근력'이다.
외부의 기준이 아닌 내면의 기준에 따라 현재의 삶을 긍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주변을 돌볼 여유가 생긴다.
반면, 늘 부족함에 시달리는 사람은 자신의 결핍을 채우느라 타인의 고통을 살필 겨를이 없다.
인성(人性)의 완성은 바로 이 '여유'에서 시작된다. 나를 채우고 남은 에너지가 타인을 향해 흐를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따뜻한 공동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족함'을 아는 삶을 위한 실천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만족의 미학을 삶에 적용할 수 있을까?
▪︎비교의 창을 닫고 성찰의 거울을 보라
SNS 속 화려한 타인의 삶은 편집된 단면일 뿐이다. 타인의 하이라이트와 나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비교하는 어리석음을 멈춰야 한다.
▪︎ '감사'의 구체화
막연한 감사가 아니라, 오늘 내가 누린 사소한 것들...따뜻한 커피 한 잔, 동료의 미소, 건강한 숨 가쁨에 구체적으로 이름을 붙여보자.
▪︎소유보다 존재에 집중하라
'무엇을 가졌는가'가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어가는가'에서 행복의 근거를 찾아야 한다.
■ 행복의 열쇠는 내 안에 있다
탐욕은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아서 마실수록 갈증이 심해진다. "만족할 줄 모르면 아무리 많이 가져도 부족하다"는 말은 단순한 경구가 아니라 인류가 체득한 생존의 지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풍요는 창고에 쌓인 물건의 양이 아니라, 마음의 평온과 자족하는 태도에 있다.
오늘 하루, 내가 이미 손에 쥐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이미 충분하다는 깨달음이 올 때, 비로소 우리는 세상 그 누구보다 부유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진 우리 모두가 소유의 노예가 아닌, 지족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품격 있는 사회를 꿈꿔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