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기자신문] 봉수대에 오르니
詩 김채원
산마루 바람이
묵은 해의 먼지를 털어내고
새해의 빛을 먼저 건네온다.
도시는 아래에서 숨을 고르고
연기 대신 기도가 하늘로 오른다.
어제의 근심은 골짜기에 묻고
오늘의 마음은 능선을 따라 맑아진다.
멀리 집마다 켜질 저녁 불빛,
그 하나하나가
서로의 안부가 되고
살아 있음의 인사가 되리라.
나는 두 손 모아
가까운 이와 먼 이를 함께 떠올리며
올해는 조금 더 따뜻하게
서로를 부르리라 다짐한다.
봉수대의 빈 하늘에
첫 마음을 띄운다
평안하라, 오늘의 세상아.
[해설]명절은 흔히 가족의 시간으로만 이해되지만, 설날은 본래 개인의 안부를 넘어 사회 전체의 안녕을 기원하던 공동체 의례였다. 이 시는 그 잊혀가는 의미를 ‘봉수대’라는 상징적 공간을 통해 다시 불러낸다. 봉수대는 과거 국가의 위급함을 알리던 신호의 자리였다. 그러나 시 속에서 그 연기는 사라지고 대신 기도가 오른다. 경계의 장치가 평안의 장소로 바뀌는 순간, 독자는 우리가 지나온 시대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시대의 거리를 자연스럽게 성찰하게 된다.
화자는 산 위에서 도시를 내려다본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보는 시선은 우월함이 아니라 거리두기를 통한 자기 성찰의 시선이다. 아래의 도시는 ‘숨을 고르고’, 골짜기는 근심을 묻는 자리로 제시된다. 이는 설날이 단순한 새 출발의 선언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을 정리하고 마음을 가다듬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곧 새해란 달력의 교체가 아니라 태도의 변화라는 점을 조용히 환기한다.
특히 “집마다 켜질 저녁 불빛”은 이 시의 정서적 중심이다. 불빛은 각자의 삶이지만 동시에 서로의 생존 신호다. 명절의 인사가 형식으로 남은 시대에, 시는 안부의 본래 의미를 복원한다. 살아 있음 자체가 서로에게 건네는 인사라는 인식은, 경쟁과 속도의 일상 속에서 잊히기 쉬운 공동체 감각을 되살린다.
결국 이 작품에서 봉수대는 외부의 적을 알리던 시설이 아니라 내면을 밝히는 자리로 전환된다. 시의 마지막 “평안하라, 오늘의 세상아”라는 구절은 개인의 소망을 넘어선다. 가족을 위한 기원이 사회를 향한 기도로 확장되는 지점에서, 설날은 사적인 의례에서 공적인 윤리로 격상된다.
이 시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새해는 더 나은 계획을 세우는 날이 아니라, 서로를 다시 부르는 날이라는 것. 봉수대에 올린 첫 마음은 결국 타인을 향한 마음이며, 그 마음이야말로 공동체를 유지시키는 가장 오래된 신호임을 조용히 일깨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