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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국 116년 만에 돌아온 유묵 ‘빈이무첨 부이무교’, 힘의 정치에서 품격의 정치로 향하는 길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발행인] 역사는 때로 총과 칼이 아닌 한 줄의 글씨로 기억된다. 순국 116년 만에 안중근 의사의 유묵 빈이무첨 부이무교(貧而無諂 富而無驕)’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일본 지방정부가 공공자산 형태로 보관하던 유묵을 한·일 우호와 협력을 위해 대여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문화 교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 글씨는 단순한 서예 작품이 아니다. 19103월 뤼순 감옥에서 죽음을 앞둔 한 인간이 마지막으로 남긴 철학 선언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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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일본 도쿄 세타가야구 로카기념관에 있는 안중근 의사의 유묵이 오는 3월 26일부터 서울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전시될 예정이며, 필자의 집필도서 ‘대한민국 안중근 평전’ 표지/북그루

 

빈이무첨 부이무교(貧而無諂 富而無驕) “가난해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해도 교만하지 않는다.” 이는 유학 경전의 문장이지만, 안중근에게는 삶과 정치, 그리고 국제질서에 대한 원칙이었다.

 

그는 제국주의에 저항한 혁명가이면서 동시에 동양의 평화를 설계하려 했던 사상가였다.

 

필자는 안중근 평전을 집필하며 그가 단지 항일 영웅이 아니라 품격의 정치를 꿈꾼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했다.

 

그가 주장한 동양평화론은 승자와 패자의 구도가 아니라 상호 존중의 질서를 전제로 한다. , 힘의 균형이 아니라 도덕의 균형이 국제관계를 안정시킨다는 사상이다.

 

유묵 속 문장은 바로 그 철학의 축약이다. 약하다고 굴종하지 말고, 강하다고 오만하지 말라는 원칙은 국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번 대여의 상징성은 여기에 있다. 일본 사회 내부에서도 침략을 비판했던 문학가 도쿠토미 겐지로 가 이 유묵을 간직했다는 사실은 역사가 단선적 적대만으로 구성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기억해야 할 것은 과거의 갈등이 아니라 그 갈등을 넘어설 수 있는 인간의 양심이다.

 

특히 공공기관이 보관하던 자료를 공식적으로 한국에 빌려준 행위는 역사 문제를 외교 갈등의 도구로만 소비하지 않겠다는 하나의 메시지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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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사진: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국제다자외교평의회 대표(의장), 한중기자연맹 회장, 중국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 위해직업대학 객좌교수, 허베이미술대학 명예/종신교수, Marquis Who’s Who 등재 저자, 《대한민국 안중근 평전》 저자.

 

역사 인식은 결코 타협의 대상이 아니지만, 기억의 공유는 협력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유묵은 사과도 아니고 면죄부도 아니다. 대신 대화를 가능하게 만드는 최소한의 신뢰 장치다.

 

오늘날 한·일 관계는 안보와 경제 협력의 필요성이 커지는 동시에 과거사 갈등이 반복되는 이중 구조 속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안중근의 글씨가 전시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미래를 향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는 힘의 정치로 갈 것인가, 품격의 정치로 갈 것인가.

안중근은 처형 직전까지도 일본을 증오의 대상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그는 침략 정책을 비판했지, 국민을 적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글씨는 복수의 선언문이 아니라 관계의 윤리를 제시하는 철학 문장으로 남는다.

 

이번 전시는 한 영웅의 작품 귀환이 아니라 한 문장의 귀환이다. 그리고 그 문장은 지금의 동아시아에 여전히 유효하다. 가난해도 굴종하지 않는 국가, 강해도 오만하지 않은 국가. 바로 그 균형 위에 평화가 존재한다.

 

결국 이 유묵의 가치는 과거를 기념하는 데 있지 않다. 미래를 설계하는 데 있다. 안중근이 남긴 글씨는 116년이 지난 오늘, 다시 외교 문장으로 읽히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문장을 읽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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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안중근의 한 문장, 동아시아의 미래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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