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기자신문 이창호 칼럼니스트] 국가의 흥망은 권력의 크기로 결정되지 않는다. 역사는 반복해서 말해 왔다.
나라를 지탱하는 마지막 힘은 군대도, 재정도, 지도자도 아닌 ‘깨어 있는 국민’이다.
저항은 파괴가 아니라 균형의 언어다. 부당함에 침묵하지 않는 태도, 권력이 경계를 넘을 때 제동을 거는 시민적 행동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안전장치다.
저항은 무질서와 다르다. 그것은 체제를 부정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라, 체제를 바로 세우기 위한 교정 장치다.
헌법은 국민에게 주권을 부여했고, 그 주권은 선거와 표현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권리로 구체화된다.
이 권리들이 살아 움직일 때 국가는 스스로를 정화한다.
반대로 비판이 사라지고 두려움이 일상이 되면, 국가는 겉으로는 고요해 보여도 내부에서부터 썩어 간다.
역사적 경험은 이를 증명한다. 권력이 스스로를 견제하지 못할 때, 사회는 국민의 감시와 참여로 균형을 회복해 왔다.
문제는 저항의 방식이다. 사실과 증거에 기초하지 않은 선동은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폭력은 정당성을 갉아먹는다.
성숙한 저항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공공의 이익을 향해, 대안을 동반해야 한다.
감정의 분출이 아니라 책임의 발현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의 사회는 정보의 홍수 속에 놓여 있다. 분노는 빠르게 확산되고, 확인되지 않은 주장도 순식간에 여론이 된다.
이럴수록 국민의 저항은 더 높은 기준을 요구받는다. 무엇에 반대하는가만큼이나, 무엇을 지키려 하는가가 분명해야 한다.
자유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 또 다른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저항의 품격이 민주주의의 수준을 가늠한다.
국가는 완성형이 아니다. 끊임없이 수정되고 보완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 시민의 참여가 없다면 권력은 관성에 기대게 된다. 세금의 사용, 정책의 방향, 공권력의 행사에 대해 질문하는 일은 불편을 만들지만, 그 불편이야말로 공공성을 지키는 비용이다.
침묵은 편안할 수 있으나, 그 대가는 오래 남는다.
저항하는 국민이 있다는 사실은, 그 사회에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는 신호다.
서로 다른 의견이 공존하고, 토론이 가능하며, 비판이 처벌이 아니라 논쟁으로 이어지는 사회라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국가는 건물처럼 하루아침에 붕괴하지 않는다. 신뢰가 서서히 침식될 때 비로소 흔들린다. 그 신뢰를 지키는 힘이 국민의 감시와 참여다.
결국 나라를 살리는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일상의 책임이다.
투표하고, 질문하고, 토론하며, 필요할 때 목소리를 내는 국민이 있는 한 공동체는 다시 균형을 찾는다.
저항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더 나은 질서를 향한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깨어 있는 국민이 존재하는 한, 국가는 쉽게 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저항을 통해 더 단단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