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기자신문 이창호 칼럼니스트] 냉혹한 국제 질서 속에서 명분보다 실익을 앞세운 전략적 유연성이 절실한 시점이다.
최근 글로벌 통상 환경은 ‘격변’이라는 단어로도 부족할 만큼 가파르게 변하고 있다.
미·중 갈등의 고착화와 블록화 경제의 심화는 수출 주도형 국가인 한국에 유례없는 도전 과제를 던지고 있다.
특히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우리 기업들이 직면한 불확실성은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러한 국면에서 우리는 냉정하게 자문해야 한다. 과연 중국과의 경제적 거리를 두는 것이 우리의 미래 먹거리를 보장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지금이야말로 한·중 경제협력의 ‘골든타임’이자 실용주의적 복원을 위한 최적의 기회다.

○ 구조적 변화를 직시하는 혜안이 필요하다
한·중 관계가 한국의 중간재를 중국이 조립해 세계로 수출하는 ‘수직적 분업’ 단계였다면, 현재는 첨단 기술과 서비스가 융합되는 ‘수평적 경쟁 및 협력’의 단계로 진입했다.
중국의 기술 자립 속도가 빨라지면서 우리 산업의 위기감이 고조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단순한 '위협'으로만 치부해 관계 절연의 구실로 삼는 것은 전략적 패착이다.
중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의 소비 시장이자, 이차전지 소재와 핵심 광물 등 글로벌 공급망의 상류(Up-stream)를 장악하고 있는 거대 경제체다.
미국조차 ‘디커플링(탈동조화)’의 한계를 인정하고 ‘디리스킹(위험 완화)’으로 선회하는 마당에, 지정학적 인접국인 우리가 앞장서서 중국과의 경제적 칸막이를 높일 이유는 전혀 없다.
오히려 중국의 내수 진작 정책과 첨단 제조 산업의 고도화 과정을 우리 기업의 새로운 진출 기회로 삼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 ‘안미경중’을 넘어선 ‘정경분리’의 재정립
작금의 외교적 상황은 한·미·일 밀착으로 기우는 양상이 뚜렷하다.
안보적 측면에서의 가치 외교도 중요하지만, 경제는 생존의 문제다.
정부는 안보와 경제를 철저히 분리 대응하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중국 역시 자국 경제의 연착륙을 위해 한국의 기술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이 ‘상호 의존성’의 틈새야말로 협력의 모멘텀을 되살릴 지점이다.
특히 환경, 에너지, 바이오, 디지털 전환 등 양국이 공통으로 직면한 사회적 과제들은 새로운 협력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게다가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수소 경제 협력이나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실버 산업의 공동 대응은 정치적 갈등 소지가 적으면서도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다.
이를 위해 한·중 FTA 후속 협상과 서비스·투자 분야의 개방을 가속화해 제도적 안전판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 민간 교류의 복원과 정부의 뒷받침
경제 협력의 실질적인 동력은 결국 민간에서 나온다. 지난 몇 년간 경색된 한·중 관계 속에서 우리 기업들은 보이지 않는 규제와 정서적 맞춤 허들에 시 물켜왔다.
이제 정부가 나서서 ‘정치적 리스크’를 걷어내 주어야 한다. 고위급 경제 회담을 정례화하고, 지방 정부 간의 경제 특구 협력을 활성화해 중소기업들이 마음 놓고 뛸 수 있는 마당을 만들어야 한다.
또, 중국 내 '애국 소비' 열풍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 제품의 프리미엄화와 현지 맞춤형 전략을 재점검해야 한다.
중국의 MZ세대가 무엇에 열광하는지, 디지털 플랫폼 기반의 유통망이 어떻게 재편되고 있는지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과거의 성공 방정식에 안주하지 않는 혁신적 접근이 뒷받침될 때 한·중 경제협력은 비로소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다.
● 실리를 위한 용기 있는 선택
국제 관계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다. 오직 영원한 국가 이익만이 존재할 뿐이다.
지금의 한·중 관계는 갈등의 잔재를 털어내고 새로운 상생 모델을 정립해야 하는 중차대한 기로에 서 있다.
미·일과의 공조를 공고히 하면서도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을 지렛대로 활용하는 ‘전략적 자율성’을 발휘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기회다. 감정적 대응보다는 이성적 판단을, 명분보다는 실리를 우선하는 담대한 외교적 행보가 절실하다.
한·중 경제협력의 복원은 단순히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불확실한 대전환의 시대에 한국 경제의 생존력을 높이는 가장 확실한 보험이다.
정부와 기업, 그리고 학계가 머리를 맞대고 이 ‘기회의 창’을 열어젖혀야 할 때다.
▲ 글/사진: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국제다자외교평의회 대표(의장), 한중기자연맹 회장, 중국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 위해직업대학 객좌교수, 허베이미술대학 명예/종신교수, Marquis Who’s Who 등재 저자, 《새 시대를 이끄는 시진핑과 한중관계》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