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기자신문 김지윤 한중칼럼니스트] 1908년, 뉴욕의 거리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외쳤던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는 구호는 생존권(빵)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장미)을 상징했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넘는 시간이 흐른 오늘날, 세계여성의 날은 단순한 기념일을 넘어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점검하고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는 상징적 지점이 되었다.
예술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인 동시에 담장을 허무는 망치다. 예술가의 눈으로 바라본 여성의 날은 단순히 '권리 쟁취'의 기록이 아니라, 인류가 잃어버렸던 절반의 서사를 복구하고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는 '미학적 혁명'의 과정이다. 오늘날 예술가는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우리가 꿈꾸는 여성의 미래 비전은 무엇인가.

◘ 목격자이자 기록자로서의 예술가, '누락된 서사'의 복원
역사적으로 여성의 목소리는 자주 침묵 강요를 당하거나 변두리로 밀려났다. 예술가의 첫 번째 역할은 이 '누락된 서사'를 복원하는 기록자가 되는 것이다.
과거의 예술이 여성을 '뮤즈'라는 이름 아래 관조의 대상이나 수동적인 존재로 박제했다면, 현대의 예술가는 여성의 삶을 주체적인 역사로 다시 써야 한다.
가사 노동의 숭고함, 육아와 경력 사이의 치열한 사투, 유리 천장을 깨부수기 위한 투쟁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미세한 감정의 결까지도 예술적 언어로 포착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여성 작가가 여성을 그린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남성 중심의 거대 담론에 가려져 있던 '돌봄', '공감', '일상의 평화'와 같은 가치들을 예술적 전면에 내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기록되지 않은 삶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받기 쉽기에, 예술가는 캔버스와 렌즈를 통해 여성의 존재론적 증명을 끊임없이 시도해야 한다.
◘ 해체자로서의 예술가, '남성적 시선'의 전복과 새로운 신체성
예술은 오랫동안 '남성적 시선(Male Gaze)'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 여성의 신체는 아름다움의 척도로서만 소비되었고, 그 안의 영혼과 지성은 소외되기 일쑤였다. 예술가는 이러한 고정관념을 파괴하는 '해체자'가 되어야 한다.
현대 예술은 표준화된 미의 기준에 도전한다. 나이 듦의 주름, 출산의 흔적,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난 체형 등을 가감 없이 드러냄으로써 '여성적 신체'의 진정한 정의를 다시 세워야 한다. 이는 단순히 추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아를 긍정하는 '자기애의 미학'으로의 전환이다.
또한,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이 예술의 영역에 깊숙이 들어온 지금, 알고리즘이 재생산하는 성차별적 편향성을 지적하고 수정하는 것 또한 현대 예술가의 긴급한 과제다. 데이터가 편향되어 있다면 예술은 그 데이터를 비판적으로 재구성하여 보다 공정하고 평등한 시각적 문법을 창조해야 한다.
◘ 연결자로서의 예술가, '교차성'과 '돌봄의 미학’
미래의 예술적 비전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교차성(Intersectionality)'이다. 여성이라는 단일한 범주 안에는 인종, 계급, 장애, 성적 지향 등 수많은 층위의 차별과 정체성이 얽혀 있다.
예술가는 이러한 다양한 선상에 놓인 여성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연결자'가 되어야 한다.
서구 중심의 여성주의 예술을 넘어 제3세계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기후 위기와 여성의 삶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탐구하는 포괄적 시각이 필요하다.
특히 '돌봄'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공동체적 미학을 제안해야 한다. 경쟁과 승리가 지배하는 자본주의적 창작 생태계에서 벗어나, 서로를 보듬고 치유하는 '돌봄의 미학'은 인류가 직면한 고립과 혐오의 시대를 극복할 유일한 대안이다.
예술은 파편화된 개인을 연결하는 접착제가 되어, 서로의 상처를 공유하고 함께 치유하는 공공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 지속 가능한 평등을 위한 '예술적 선언’
세계여성의 날에 우리가 제시해야 할 비전은 명확하다. 그것은 '여성성'이 더 이상 약함의 상징이 아니라, 세상을 재구성하는 '창조적 힘'의 근원이 되는 세상이다.
예술가는 미래를 예견하는 예언자이기도 하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는 여성이 남성과 똑같아지는 세상이 아니라,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자신의 고유한 색깔로 빛날 수 있는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사회다.
예술은 이 여정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다. 논리나 법전이 닿지 못하는 인간의 심연에 호소하고, 감동을 통해 사람들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캔버스 위에 칠해지는 색채 하나, 셔터를 누르는 손길 하나에 연대와 평등의 의지를 담아야 한다.
오늘의 예술적 실천이 내일의 상식이 될 때까지, 우리는 멈추지 않고 노래하고 그려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 예술가에게 주어진 가장 고귀한 역할이자, 우리가 후대 여성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장미'일 것이다. 모든 여성의 삶이 예술이 되는 그날까지, 우리의 연대는 계속될 것이다.
◘ 글/사진: 中 허베이미술대학교 조소, 공공예술대 교수, 디자인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