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기자신문]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흐른다
이창호 詩
한평생 앞만 보고 쌓아 올린 것들
손에 꽉 쥐고 있으면 내 것인 줄 알았더니
저무는 노을 앞에 서서 보니
빈손에 머물다 간 바람만이 내 것이었다.
가치란, 금테 두른 이름 석 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시린 손을 잡아주던 온기였음을
덕(德)이란, 높은 곳으로 오르는 사다리가 아니라
낮은 곳으로 기꺼이 흐르는 물길이었음을.
이제 나의 미래는 내일의 숫자가 아니라
내가 심은 나무 밑에서 쉴 누군가의 웃음이다
움켜쥐었던 손 마디를 천천히 풀 때
비로소 내 안의 향기가 세상으로 번져간다.
나누어 줄수록 줄어들지 않고 깊어지는 것
새벽 5시, 잉크 향에 실어 보내는
이 고요한 기도가 세상의 거름이 되기를.
해설: 삶의 저녁에서 만난 참된 소유
시의 도입부는 평생을 앞만 보고 달려온 한 사람의 고백으로 시작됩니다. 우리는 흔히 무언가를 손에 꽉 쥐고 있어야 내 것이라고 믿지만, 생의 저녁노을 앞에 서면 깨닫게 됩니다. 정작 내 곁에 남는 것은 움켜쥔 물질이 아니라, 내 곁을 잠시 머물다 간 바람 같은 인연과 기억뿐이라는 사실을요.
가치와 덕에 대한 시각의 전환
시인은 우리가 흔히 좇는 '성공'의 기준을 뒤집어 놓습니다. 이름 뒤에 붙는 화려한 수식어나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한 사다리는 진정한 가치가 아닙니다. 대신, 추위에 떠는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던 온기, 그리고 높은 곳이 아닌 낮은 곳으로 기꺼이 스며드는 물길이야말로 진정한 '덕'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나를 증명하려 애쓰는 삶에서 타인을 보듬는 삶으로의 위대한 전환을 의미합니다.
미래는 숫자가 아닌 웃음이다
보통 미래라고 하면 내일의 날짜나 통장의 숫자, 남은 수명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시인의 미래는 다릅니다. 내가 심은 나무 그늘 아래에서 누군가가 편히 쉬며 웃음 짓는 것, 즉 나의 부재 중에도 남겨질 '선한 영향력'이 곧 시인의 미래가 됩니다.
손을 풀 때 번지는 향기
이 시의 가장 아름다운 통찰은 '비움'의 순간에 '채워짐'이 시작된다는 점입니다. 무언가를 가지려 꽉 쥐었던 손마디를 천천히 풀 때, 비로소 내 안의 진정한 향기가 세상으로 퍼져 나갑니다. 나눌수록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깊어지는 그 향기는 세상의 흐름(욕망의 바람)을 거슬러 올라가 사람들의 마음을 적십니다.
고요한 새벽의 기도
마지막으로 시인은 새벽 5시의 고요함 속에서 이 시를 써 내려갑니다. 잉크 향에 실어 보내는 이 짧은 글귀들이 세상의 척박한 땅을 적시는 거름이 되기를 소망하며, 자신의 삶 자체가 하나의 기도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시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담은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그 깊이를 더 느껴보시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