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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필옥 '갈치와 고스톱' 에세이문예 26년 봄호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15) 최순덕 구성적 비유를 통한 관계의 재조직

김필옥 <갈치와 고스톱>

 

최순덕/수필가 평론가

 

김필옥 작가의 <갈치와 고스톱>은 해학적인 수필이다. 작가는 첫 문장에서부터 난전 상인인 할머니의 걸쭉한 농담을 아무런 포장도 없이 펄떡이는 생선처럼 그대로 던져놓는다. 역설적인 웃음을 용감하게 독자에게 전달하여 진정성을 확보한다. 바로 이 순간의 포착이 흥미 유발의 출발점이자 사건의 발생을 견인한다. 수필 창작의 핵심은 단순히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언어 속에서 새롭게 의미화되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라고 평론가 권대근이 수필시학에서 강조했다. ‘구성적 비유의 존재론적 형상화라는 수필의 개념에 기대어 형상과 구성적인 비유의 측면에서 김필옥 수필을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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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삶에서 일어난 작은 변화, 감정의 진동, 우연한 만남을 언어로 구성하며 그 속에서 새로운 관계망을 만들어 낸다. 김필옥 작가는 통영을 여행 중, 인간 냄새 풍기는 시장의 난전에서 싱싱한 해산물을 감격적으로 만난다. 기억력 감퇴라는 아내의 작은 변화를 인지한 남편이 고스톱을 가르치기 시작하고, 즐거운 학습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웃음과 함께 변화되어 가는 자신을 보여준다. 처음 접해보는 화투 놀이가 작가의 의식에 스며들면서 철학적인 사유를 끌어낸다. 고스톱 놀이와 인생의 닮은 공통점을 발견한 지점에서 존재론적 형상화가 이루어진다.

<갈치와 고스톱>을 읽으면 메타수필에 대한 개념을 머릿속에 인지하고 있었음이 잘 드러난다. 작가는 은빛 갈치와 광, 대부리 갈치와 피라는 비유의 큰 틀로 기본 골격을 구성하고 사건을 배치한다. 그뿐만 아니라, ’을 좇다가 실패하는 사람과대부리 갈치처럼 상처를 안고도 영광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을 함축적으로 비유의 틀에 주입한다. 이런 구성적 비유를 구성해 놓고 서술 전략을 출발한 까닭으로 수필의 정석이라 할만한 명수필의 조건을 갖춘다. 이로써 작가는 갈치와 고스톱과 새롭게 변화된 자신의 관계를 재조직하기에 성공한다.

들뢰즈에 의하면 사건이 의미고, 의미가 사건이다. 갈치와 고스톱,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낯선 관계를 김필옥 작가는 심오한 통찰력으로 투시하여 의미를 연결한다. 타자의 위치에 있는 상처 난 대부리 갈치와 부정적 시선에 놓였던 고스톱 화투 놀이를 새로운 이미지로 형상화함으로써 변신을 통한 사건의 의미화에 성공한다. 화투 놀이는 가정불화, 빚 문제, 패가망신의 상징으로 여겨왔고 일본문화의 흔적이라는 점에서 부정적 시각으로 존재해 왔다. 작가는 이 고스톱을 긍정적인 놀이 문화로 삶의 전면에 내세우며 다른 존재 방식으로 인식의 문을 연다. 치매 예방을 위한 고스톱을 학습하면서 의 중요성을 인식한 작가는 을 좇았던 자신을 내려놓고 라는 타자의 존재를 중심부로 이동시킨다. 기록되지 못하는 타자의 존재를 경험의 사건화를 통해 서로를 호출하며 사건을 배치한다. 평범한 일상의 한순간을 포착하여, 일상의 언어로 자기반성을 이루고, 존재의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힘을 발생시킴으로써 이 수필은 미학적 성취를 이루었다고 보겠다.

나는 오늘도 식탁 위에 새로운 패를 깐다.’는 마지막 문장은 다의성의 백미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삶에서 흥미진진한 새로운 오늘이 펼쳐지는 것이다. 작가의 의도된 문장이 독자의 삶을 향해 조용히 확장된다. 본격수필은 주변부 타자의 존재를 가치화를 통해 서로를 호출하며 사건을 배치한다고 했다. 수필의 표명은 자기 고백이 아니라 관계의 재조직이다. 사건, 타인, 그리고 나 사이의 거리 속에서 새로운 인식이 형성된다. 작가 김필옥의 <갈치와 고스톱>은 제재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 성찰과 관조가 돋보이고 거기서 얻은 깨달음을 미적 구조로 재조직하여 문학적 성취를 이룬 명수필이라 하겠다. 오늘은 또 어떤 패가 깔리고 갈치를 발라 먹듯 진중하고, 화투판 같은 인생을 즐기게 될지, 작가의 전율이 짜릿하게 전염될 것 같은 날이다.

 

최순덕의 약력

경남 통영 출생 2003문예시대수필 등단 2025에세이문예평론 등단 국제PEN한국본부부산지부 부회장 부산문인협회수필분과 이사 부산여류문인협회 회장 역임 부산가톨릭문인협회 부회장 역임 부산수필문학협회 부회장 에세이문예 편집3부장 풀꽃수필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우수상 부산PEN문학 작품상 부산가톨릭문학 본상 부산수필문학 작품상 부산수필문인협회 올해의 작품상2회 한영문학상 부산PEN문학상 본상 수상 수필집 껍질 벗는 나무』 『사라예보의 붉은 강물』 『잃어버린 도시』 『고등어의 눈물』 『박제된 나비가 내게 말을 걸어올 때

 

김필옥 <갈치와 고스톱>

이게 가자미가 아니면 니 신랑 불알이가? 별꼴을 다 보겠다.” 통영 중앙시장 생선 가게를 지나며 들은 할머니의 웃음 섞인 구수한 소리가 정겹게 들렸다.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그 옆 가게 할머니의 물 좋은 갈치. 지금 막 잡아 왔다는 말에 발걸음을 멈췄다. 값을 깎는 대신 갈치 한 마리를 더 넣어 주는 것으로 흥정을 마치고 갈치 손질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갈치가 살아 있는 것도 아닌데 주인장 손에서 자꾸만 빠져나간다.

대충 좌판을 펼치고 생선을 파는 할머니들의 모습에서 사람 냄새가 난다. 그냥 좋다. 뭐든 더 사고 싶다. 조기도 사고, 김도 샀다. 여행을 간 것이 아니라 장을 보러 간 듯했다. 하루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깊은 바닷속에서 고기를 잡아 오는 듯 마음이 뿌듯했다.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남편에게 넋두리했다. 요즘 난 계산이 잘 안된다고. 두 가지 이상만 사면 머릿속이 하얗게 되면서 계산할 수가 없다. 집에 도착하자 남편이 식탁에 앉아보란다. 귤을 하나, , , 넷 순서대로 놓고 이 중에 귤 하나만 움직여 다시 하나 둘 셋 넷이 되게 만들어 보란다. 난 귤 하나를 움직여 원하는 답을 만들었다. 남편이 웃으며 네 머리는 아직 괜찮다며, 오늘부터 계산하는 훈련을 위해 매일 잠깐잠깐 고스톱을 치자고 했다.

고스톱 게임이 조금 익숙해질 때 새로운 것을 알았다. ‘으로 점수를 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내가 빛을 좇아다니는 사이 상대는 "를 열심히 모아 실속 있는 점수를 내고 있었다. 고스톱의 놀이가 마치 인생살이와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너무 좋고 화려한 패가 들어와도 상대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낮에 산 대부리 갈치가 생각났다. 갈치의 빛나는 은색이 벗겨져 연분홍 속살을 여기저기 드러내고 있는 갈치. 왜 이 갈치는 이렇게 껍질이 벗겨져 있냐고 물으니, 은갈치는 낚시로 한 마리 한 마리 잡아 올린 귀하신 몸. 대부리 갈치는 그물로 한꺼번에 잡아 올린 갈치란다. 그물에서 서로 얽히고설키며 그물에 긁혀 껍질이 벗겨진 것이란다. 그러면 고스톱의 광과 피가 그렇듯 대부리 갈치와 은갈치도 광과 피의 신세란 말인가.

남편은 계산을 핑계로 고스톱을 가르쳐 주면서 내가 몇 점으로 이겼는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점수 계산이 끝나면 혼자 재미있어했다. 청단을 빼먹었다는 둥, 자기가 피박인데 슬쩍 패를 섞어 자기가 피박인 것을 내가 모르게 패를 섞는 귀여운 속임수를 부렸다. 내가 멍하니 당하고 있으면 남편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내가 투정을 부리면 이게 다 훈련이야. 네가 정신을 바짝 차려.”하며 연신 킥킥거렸다. 그 웃음소리에 약이 오르기도 했지만 내가 또 무엇에 속았을까? 실눈을 뜨고 살폈다. 덕분에 놀이하는 내내 우리는 서로의 장난기 어린 눈빛을 정답게 주고받았다.

며칠이 지나자, 상황은 역전이였다. 갈치 가시를 발라내듯 고도의 집중력이 고스톱판에서 발휘되기 시작했다. 내가 상대의 패를 읽어내고 무심히 던진 패가 내 피를 불러줄 때면 !”를 외쳤다. 내가 를 외칠 때마다 남편은 잘하는데!” 하면서도 얼굴에 웃음기가 줄어들었다. 급기야 남편은 이제 그만하자.”며 바닥에 깔린 패를 모두 뒤섞어버렸다. 그 모습이 어찌나 우스운지 이번엔 내가 배를 잡고 웃었다. 그 시간 이후로 나는 우리 집 타짜가 되었다.

갈치 살을 바르는 힘 조절은 수행이다. 조금만 힘을 주어도 연약한 살점은 어스러진다. 살점을 조심스레 건져 올려 입속으로 들어갈 땐 내가 더 넓은 바닷속 갈치가 되고 갈치는 내가 된다. 고스톱판에서 패를 뒤집는 찰나의 손맛이 그러하다. 단지 점수를 내기 위한 계산이 아니라 다음 장에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불확실성 속으로 나를 던지는 유쾌한 시간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네 인생도 고스톱 판이나 갈치 좌판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늘 화려한 을 꿈꾸며 살아가지만, 실제 기쁨을 느끼며 내 삶을 살찌우는 것은 투박하지만 순한 같은 일상이다. 그물에 긁히고 부딪히며 비늘이 벗겨진 대부리 갈치가 오히려 깊고 구수한 맛을 내듯, 이리저리 치이며 삶의 비늘이 벗겨져도 매 순간 새로운 존재로 다시 살아난다. 가시를 바르는 집중력에, 패를 던지는 손맛에, 그리고 남편의 귀여운 속임수를 알아차리며 한바탕 웃음소리에 삶을 슬쩍 밀어 넣는다. 나는 오늘도 식탁 위에 새로운 패를 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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