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이 내릴 때, 조명은 더 낮아진다
김봉구/수필가, 고려대 명예교수
인간은 배움을 통해 직업을 갖고 활동한다. 수명이 연장되면서 퇴직 후에도 새로운 삶을 영위한다. 노년이 되면 전체 삶의 과정에서 죽음을 경건히 받아 들이는 준비를 하게 된다. 평생교육 시대가 오면서 스스로 공부하지 않으면 정신이 바로 늙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산책은 신체적 쾌감을 가져오고, 노년에 할 일이 있는 삶은 행복을 보장받는다.

사람은 교육과정을 거쳐 직업을 갖는다. 신비스러움을 찾는 과정은 오랜 시간을 요구하는 제도 속에서 진행된다. 초 중등 교육과정에 이어 대학을 거치도록 보편화 되어있다. 교육이 지향하는 목표는 선량하고 잘 훈련된 모범생을 배출하는 데 있다. 이점은 개인 스스로 창의력을 발휘해서 기술혁신을 모색할 기회가 줄어드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이는 푸로이센 교육제도에 기초한 록펠러의 교육입안과 관련이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대기업이나 잘 조직된 군대는모범 인재를 활용하는 데 매우 적합하다. 벤처기업의 탄생이나 첨단 과학기술혁신은 기대하기 어렵다. 국가 차원에서 첨단 산업을 육성하거나 연구 개발 투자를 늘리는 것이 강조된다.
직장이란 무엇인가. 인생에 있어서 16년의 교육기간이 끝나고 사회에 나가면 본인의 소양과 자질에 맞는 직업을 선택한다. 구체적인 근무처인 개별 직장을 가지게 된다. 좋은 직장은 안정된 조직체계를 갖추고 근무 여건이 좋으며 급여나 복지 상태가 양호하다. 대체로 사람들은 직장에서 30-40년을 근무하고 퇴직한다. 오랜 직장생활을 통해서 본인이 가진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여 신분상승의 기회를 잡기도 한다. 기업에서 임원으로 승진하게 되면 역할 자체도 바뀌어 지도력을 발휘하는 위치에 있게 된다.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연장되고 있다. 사회적으로 보면 정년퇴직 이후의 노년 시기가 비중있게 다루어 진다. 노년의 생활을 위한 안정된 소득은 확보되어 있는가. 자녀들의 성공을 위한 부모의 지속적인 교육투자가 노후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가. 자녀들의 결혼을 위한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가. 본인들의 노후 생활은 안정적인가 등의 숱한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뿐이 아니다. 자신들의 건강은 잘 돌봤는지가 노출된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재물이 아니라 건강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시기가 온다. ‘늙고 병들면 못 노나니’ 라는 노래 가사가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문중 일로 고향에 손수 운전해서 가는 동안 같이 간 사람들로부터 아직 젊다는 평을 받았다. 농담으로 아직 65세라고 말해도 괜찮겠다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누가 나이를 물으면 그냥 젊다고 얼버무린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갖기도 했다. 나는 틀렸다. 나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나이에 따른 단계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기회를 걷어차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자기 나이에 맞게 사는 것이 지혜였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젊게 보이려는 노력을 지나치게 하고 있다. 나도 정확히 그렇다. 나는 2년에 한 번씩 하는 건강검진에서 최근 6년 동안 의사로부터 아무런 지적을 받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건강을 과신하지는 않는다. 삶의 긴 여정에서 앞으로 맞이할 죽음도 삶이 끝나는 ‘막’으로 받아드릴 준비를 해야 한다. 노년에 죽음에 대한 마음가짐을 위해서다.
노년기를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서는 삶 전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오래 살고 있다. 개인 생애에서 노년에 다시 한번 새로워지는 삶을 체험할 수 있다. 노년에 접어들어 간절하게 소원하면 운명이 따라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저의 부친은 스스로 원하고 간절히 바라면 운명은 따라오는 것을 자식에게 보여주었다. 우리는 삶을 다 끝내기 전에 그림 전체를 바라봐야 한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는 끊임없이 새로워 지고 있다. 지속적으로 소멸하고 태어나는 과정을 반복한다. 인간은 죽음과 성장, 놓아버림과 새로워 짐을 겁듭하여 경험한다. 이것은 삶의 마지막에 대한 우리의 희망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암이나 중증질병에 걸려도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기 때문에 개인의료비 부담이 크지 않다. 세계에서 의료비 고통을 느끼지 않는 나라다. 다만 노년에는 암보다 더 두려운 질병이 치매이다. 치매로 인한 끝 없는 돌봄은 자식에게는 큰 재앙이 되고 있다. 사설 간병비 부담은 월 400만 원이나 된다. 치명적이다. 이 비용은 일반 직장인 자녀의 월급 수준을 훨씬 넘는다.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자녀는 생업을 포기하고 직접 간병에 매달리기도 한다. 부모가 자녀의 생계를 위협하는 비극이 되는 경우다. 치매의 원인인 뇌 기능의 저하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다시 되돌릴 수 없다. 온 가족이 힘들어지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기억력을 유지할 수 있는 시기를 연장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사람 중에는 죽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는 이가 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아예 하지 않고, 의식적으로 삶에서 죽음을 밀어내는 부류다. 그들은 삶에만 관심이 있고,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않는다. 영적인 세계는 이와 반대다. 죽음이 삶 때문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베네딕도는 수도규칙에서 ‘죽음은 날마다 눈앞에 두라’고 말하고 있다. 수도자는 언제 죽음이 닥칠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죽음을 눈앞에 두고 그에 걸맞게 살아야 한다. 죽음을 외면하지 말고 마지막을 준비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의 막은 ‘끝’이 아니라 ‘어두운 조명’이다. 죽음이 종말이 아니라 소음이 줄어든 세계다. 작은 것들이 다시 들리기 시작하는 상태이다. 막을 내릴 때, 조명은 더 낮아진다.
▼김봉구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수필집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발간, 제1회 에세이문예사 찾아가는 북토크콘서트 대상작가, 제1회 에세이북콘서트어워드, 에세이문예 작가상 수상,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