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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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소현 수필가는 2002년 '책과 인생' 등단,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한국문인협회, 국제pen한국본부, 한국산문작가협회, 철학수필가회 회원,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2회 수혜(2008, 2020년),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대상, 계간문예수필문학상, 제1회 권대근문학상 수상, 수필집 '별들은 나이를 세지 않는다' '내 안의 윤슬이 빛날 때' 등 공저 다수

박소현의 명작산책 ㉙〉

 

인생은 한바탕 꿈이었을까?

김만중 구운몽

 

박소현/ 수필가, 제1회 권대근문학상 수상

 

인위적인 일체의 법은

꿈과 환상 같고, 거품과 그림자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 같으니

응당 이와 같이 볼지어다.

 

 

구운몽은 조선 숙종 때 문신 서포 김만중이 쓴 소설로 고전 소설 창작의 전형적인 모범으로 꼽힌다. 몽자류 소설의 효시가 된 이 작품은 현실과 꿈을 넘나드는 환몽 구조로 인생의 부귀영화가 한갓 꿈과 같다는 불교의 인생무상 사상이 짙게 배어있다.

아홉 구름의 꿈 이야기’, 또는 아홉 사람이 엮어 가는 꿈 이야기로 해석되는 구운몽에서 아홉 사람이란 불도를 닦던 성진이 지옥으로 떨어졌다 인간 세상에서 양소유로 환생한 그와, 연을 맺었던 여덟 명의 선녀를 말한다. 양소유가 팔선녀를 만나 자식을 낳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아가다 세속의 덧없음을 깨닫고 다시 불도에 정진하게 된다는 게 구운몽의 중심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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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나라 때, 서역으로부터 불교를 전하러 온 육관 대사는 연화봉 아래에 초암(草庵)을 짓고 부처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산부처가 세상에 나왔다며 많은 재물을 내놓자 큰 절을 짓게 된다. 하루는 육관 대사가 자신의 설법을 듣기위해 여러 번 참여해 경()을 들었던 동정호의 용왕에게 사례를 하려고 하자 성진이 자청하여 나섰다. 성진은 육관대사의 제자 중 가장 총명하고 지혜로운 승려였다.

스승의 명으로 용왕을 만난 성진은 용왕에게 후한 대접을 받는다. 술에 취해 돌아오던 성진은 마침 석교 위에서 담소를 즐기던 팔선녀와 마주쳐 이야기를 나누다 해가 기울어서야 선방으로 온다. 팔선녀의 미모에 도취되어 애정에 대한 욕망으로 괴로워하던 성진은 육관대사의 꾸짖음을 듣고 지옥으로 추방된다. 염라대왕 앞에 끌려간 그는 그곳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가 된 팔선녀와 재회하게 되고, 이후 성진과 팔선녀는 인간 세상에 태어나게 된다.

양 처사의 아들 양소유로 환생한 성진은 과거에 급제한 후 공훈을 세워 재상이 되었고, 2명의 아내(정경패, 난양공주)6명의 첩(가춘운, 계섬월, 적경홍, 진채봉, 심요연, 백능파)을 거느리며 부귀영화를 누린다. 아내와 첩들은 그가 전생에 만났던 팔선녀다. 하지만 양소유는 자신이 누렸던 그 모든 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속세에서의 남녀 간 욕정이나 부귀영화가 모두 허망한 것임을 깨닫게 해준 것이 육관대사의 깊은 뜻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성진은 그 앞에 꿇어앉아 눈물을 흘린다.

 

제자가 불초하여 마음을 잘못 먹어 죄를 지으니 마땅히 인간 세상에서 윤회할 것이거늘 사부께서 자비로우시어 하룻밤 꿈으로 제자의 마음을 깨닫게 하시니 사부의 은혜는 천만 겁이라도 갚기 어렵도소이다.”

 

네 흥이 일어 갔다가 흥이 다하여 돌아왔으니 내가 무슨 간섭함이 있으리오? 네 또 이르되 인간 세상에 윤회할 것을 꿈을 꾸었다 하니, 이는 인간 세상과 꿈을 다르다 함이니 네 오히려 꿈을 채 깨지 못하였도다.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다가 나비가 장주 되니, 어디가 가짜인지 어디가 진짜인지 분변치 못하나니, 이제 성진과 소유가 어디가 꿈이요 어디가 꿈이 아니뇨.”

-구운몽p.251~2(민음사 2025, 8)

 

팔선녀 또한 육관대사를 찾아와 가르침을 청하자 선녀의 뜻이 비록 아름다우나 불법이 깊고 멀어서 큰 역량과 바람이 아니면 능히 이르지 못한다며 거절한다. 하지만 여덟 선녀가 화장을 지운 후 머리를 자르고 다시 찾아오자 그들을 깊이 칭찬하며 법좌에 앉아 경문을 강론한다. 설법을 마친 후에는 다음과 같은 진언을 외웠다.

 

인위적인 일체의 법은(一切有爲法)

꿈과 환상 같고, 거품과 그림자 같으며(如夢幻泡影)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 같으니(如露亦如電)

응당 이와 같이 볼지어다.(應作如是觀)

 

진언을 들은 성진과 여덟 비구니가 불생불멸의 도를 얻자 육관대사는 크게 기뻐한다. 그리곤 불법을 전하기 위해 중국으로 온 자신은 이제 소임을 다했다며 성진에게 금강경 한 권을 물려주고는 서천으로 떠난다. 성진이 육관대사의 뜻을 이어 대중에게 교화를 베푸니 사람들로부터 크게 존경을 받는다. 팔선녀 또한 성진을 스승으로 섬기며 큰 도를 얻어 결국 아홉 사람 모두가 극락세계로 간다.

 

서포 김만중은 구운몽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했던 것일까. 그는 조선 현종 때 정시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공조판서와 대제학 등 벼슬을 거친 정치가요 학자로구운몽,사씨남정기등 주옥같은 걸작을 남겨 한국의 몽테스키외로도 불린다. 그러나 그의 운명은 기구했다. 병자호란 때 아버지 김익겸은 강화도가 후금의 군사에게 함락되고 인조가 굴욕적인 항복을 하자 화약고에 불을 질러 스스로 불에 타 순절했다. 163736, 만삭이던 어머니 윤 씨는 강화에서 김포로 피란 나오다 배 위에서 그를 출산한다. 배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그의 아명은 선생(船生)’이다.

 

이 소설은 그가 장희빈 소생의 아들을 원자로 책봉하는 것을 반대하다가 평북 선천에 유배된 1688(숙종 6)년에 쓰기 시작해 다시 기사환국으로 노론이 실각하게 되는 이듬해에 남해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완성했다. 이 소설의 저술 동기에 대해서는 귀양 간 아들 걱정에 노심초사 하고 있을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썼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서포는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유달리 깊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남해에 유배된 몇 달 후 윤 씨 부인은 세상을 뜨게 된다. 그러나 그가 어머니의 부음을 듣게 된 건 이듬해 1월이었다. 부고를 듣고 까무러쳤던 서포는 위패를 모셔놓고 매일 곡을 하였다. 그 곡소리가 얼마나 처량했던지 지나가던 사람도 그의 곡이 끝날 때까지 발걸음을 떼지 못하였다고 하니.

권력도 부귀영화도 모두 빼앗긴 채 유배의 사슬에서 어머니 장례식에도 참석 못한 불효자가 된 서포, 뼛속까지 사무치는 그 처연한 슬픔을 이겨내고자 그는 집필에만 매달렸던 게 아닐까? “우리말을 버리고 다른 나라 말로 시와 소설을 쓰는 것은 앵무새가 사람을 흉내 내는 데 지나지 않는다.”며 스스로 한글로 집필하며 민족 자존심 지키기를 역설했던 서포 김만중. 어머니 윤 씨 부인이 죽은 후 마음의 병이 깊어가던 그는 어느 날 집안 형님에게 편지 한 통을 보낸다.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고 없습니다. 인생은 진실로 한바탕 꿈인가 합니다.”

 

서포 김만중은 이미 치유하지 못할 정도로 병이 깊어져 있었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는 모시고 있던 사람이 올린 탕약마저 물리쳤다. 그러고는 남해로 귀양 온 지 3년 만에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다. 그의 나이 55세 때였다. 바다에서 태어난 그가 남해 바다 한가운데 노도 섬에서 생을 하직한 것을 보면 바다는 그에게 생과 사, 운명의 갈림길을 동시에 주었던 듯하다. 그의 말처럼 인생은 한바탕 꿈이었을까?

 

▲ 김만중(1637, 3, 6~1692, 6, 14)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소설가. 1637년 정축호란 때 아버지가 순절했다. 병자호란으로 피란을 가던 중 배 안에서 유복자로 태어났으며 어머니 윤 씨의 특별한 가정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자는 중숙(重叔), 호는 서포(西浦). 공조 판서, 홍문관 대제학을 지냈다. 1665(현종 6) 정시문과에 장원급제 하였고, 1671(현종 12) 암행어사가 되었다. 이듬해 동부승지가 되었으나 1674년 인선왕후가 작고하여 자의대비의 복상문제로 서인이 패하자, 관직을 삭탈 당했다. 숙종 대의 환국정치 속에서 유배와 관계 복귀를 반복하는 삶을 살았다. 주희의 논리를 비판하고 불교용어를 사용하는 등 진보적인 사상을 가졌으며 국문가사 예찬론을 펼치는 등 국문 시가와 소설에 대한 식견이 높았다한글 소설 문학의 선구자로사씨남정기』『구운몽』『서포만필』『서포집등을 썼으며 363편의 시를 남겼다.

 

 

▲박소현

2002년 '책과 인생' 등단,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한국문인협회, 국제pen한국본부, 한국산문작가협회, 철학수필가회 회원,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2회 수혜(2008, 2020년),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대상, 계간문예수필문학상, 제1회 권대근문학상 수상, 수필집 '별들은 나이를 세지 않는다' '내 안의 윤슬이 빛날 때' 등 공저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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