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기자신문] 우리 사회가 거대한 정체(停滯)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광장을 가득 메우는 화려한 수사(修辭)와 소셜 미디어(SNS)를 수놓는 정의로운 외침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하지만 그 요란한 함성이 잦아든 뒤 우리 손에 쥐어지는 실질적인 변화는 무엇인가. 냉정하게 자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결론은 자명하다. 우리가 행동하지 않으면, 단언컨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실천이 거세된 ‘말의 성찬’
작금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말의 과잉’ 시대다. 정치권은 민생을 구하겠노라 호언장담하고, 지식인들은 시대의 병폐를 날카롭게 해부한다. 그러나 그 모든 진단과 처방이 실제적인 ‘발걸음’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공허한 관념의 유희이자 자기만족적인 도덕적 허영에 불과하다.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한 시대를 바꾼 것은 탁상공론의 화려함이 아니라, 시대적 소명을 안고 현장으로 뛰어든 이들의 투박한 발소리였다. 산업화의 기틀을 닦았던 선대들의 땀방울, 민주화의 파도를 일으켰던 청년들의 결단은 모두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에서 비롯되었다.
‘댓글 정의’의 함정과 책임의 방기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키보드 몇 번 두드리는 것을 세상을 바꾸는 행동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모니터 뒤에 숨어 비난의 화살을 쏘아 올리는 것은 쉽다. 타인의 잘못을 지적하며 자신의 도덕적 우월감을 확인하는 과정은 달콤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곳에는 책임이 없다.
진정한 변화는 자신의 안락함을 기꺼이 포기하고, 구체적인 불편함을 감수하는 현장에서 시작된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는 작은 실천부터, 불합리한 조직 문화에 맞서 목소리를 내는 일, 그리고 국가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고통스러운 타협의 과정까지가 모두 ‘행동’의 영역이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격언은 진부하지만, 그 한 걸음을 떼지 못해 천 리 밖의 이상만을 바라보다 고사(枯死)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대안 없는 비판을 넘어 '현장'으로
정치권의 행태는 더욱 가관이다. 상대 진영의 실책을 파헤치고 비난하는 데는 신기에 가까운 능력을 발휘하면서도, 정작 국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법안이나 정책을 실행하는 데는 지독하리만치 무관심하다. 행동하지 않는 정치는 직무유기이며, 실천 없는 비전은 대국민 사기극이다.
이제 우리는 ‘말의 시대’를 끝내고 ‘행동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진심이라면, 지금 당장 각자의 위치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기업은 혁신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하고, 공직자는 책임 행정을 실천으로 입증해야 하며, 시민은 성숙한 시민 의식을 삶의 현장에서 구현해야 한다.
행동하는 양심이 미래를 만든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가만히 앉아 누군가 대신 세상을 바꿔주길 기다리는 사회에 미래는 없다. 불평만 하는 100명보다, 묵묵히 길을 닦는 단 1명이 세상을 바꾼다.
행동에는 반드시 비용이 따르고 위험이 뒤따른다. 때로는 비난받을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힐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는 발걸음만이 정체된 사회의 벽을 허물 수 있다.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 행동하지 않는 정의는 위선이며, 실천하지 않는 지성은 죽은 지성이다. 우리가 오늘 내딛는 작은 발걸음 하나가 모여 대한민국의 내일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변화의 주체는 타인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어야 하며, 그 시점은 ‘나중’이 아닌 바로 ‘지금’이어야 한다.
▲ 글/사진: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겸 국제다자외교평의회 대표(의장), 한중기자연맹 회장, 중국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 위해직업대학 객좌교수, 허베이미술대학 명예/종신교수, Marquis Who’s Who 등재 저자, 《우리가 아는 중국 우리가 모르는 중국》 저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