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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7800여년 문명의 시원서 피어난 '한중 신의'… 신러시 '복희 문화관광제' 개막
[대한기자신문 김채원 중국 특파원] 인문(人文)의 시조이자 동양 문명의 뿌리로 추앙받는 복희(伏羲)의 성지, 중국 허베이성 신러시(新乐市)가 7800년의 시공을 초월해 한중 양국의 문화적 연대를 확인하는 외교의 장으로 변모했다. 지난 4월 30일, 신러시 복희대 관광지에서 ‘2026 신러시 복희 문화관광제’ 개막식과 함께 국가급 무형문화유산인 ‘신러 복희 제전(新樂伏羲祭典)’이 엄숙히 거행됐다. 이번 행사는 단순한 지역 축제를 넘어, 인류 문명의 시원을 공유하는 한중 양국이 민간 차원의 신뢰를 바탕으로 실질적 교류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중대한 외교적 함의를 지닌다. ◇ '악무고제'로 되살아난 인문 시조의 숨결 이날 개막식에는 친전산 신러시 정협 주석을 비롯한 시 지도부와 전국의 복희 문화 학자, 정·재계 인사들이 대거 집결했다. 특히 중국 문학예술계 연합회 부주석을 역임한 변파지(边发吉) 위원의 개막 선언은 행사의 격을 한층 높였다. 오전 09시 20분경(현지시간), 쉬이밍 전 중화복희문화연구회 부회장이 제전의 시작을 알리자 복희대 광장에는 장엄한 예포 소리와 함께 웅장한 종고(鐘鼓)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지는 제전 공연에서는 진향무, 수소매무, 팔괘무, 태극무 등 철저한 고증을 거친 ‘악무고제(樂舞古制)’가 시연되며 참석자들에게 압도적인 경외감을 선사했다. 친전산 주석은 축사에서 “복희 문화의 심오한 내포를 발굴하여 중화 시조 문명의 서사를 전 세계에 전파하고 있다”며, “현재 신러는 베이징-톈진-허베이 협동 발전과 스자좡 도시권 건설의 전략적 기회를 선점하여 도시 인프라와 투자 환경을 비약적으로 최적화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 민간 외교의 정수, ‘문화적 신의(信義)’로 한중을 잇다 이번 축제의 핵심적 의미 중 하나는 한국 민간 교류의 권위자인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의 공식 방문이다. 중공 신러시 위원회와 신러시 인민정부, 중국 하북미술대학의 정중한 초청으로 성사된 이번 방문은, 경색된 국제 정세 속에서도 ‘문화적 가치’를 매개로 한 상호 존중의 외교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신러시 인민정부 측은 “이창호 위원장의 방문은 복희 문화가 지닌 국제적 위상을 제고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번 교류를 통해 양국의 관광 산업 네트워크가 한 단계 도약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 문화 자산과 현대 산업의 결합… ‘고품질 발전’의 모델 이 위원장은 인터뷰에서 “복희 문화는 특정 국가를 넘어 동양 문명 전체의 소중한 자산”이라며, “이번 행사가 한중 양국의 우호 증진은 물론, 문화 전승을 통한 경제적 고품질 발전을 견인하는 실질적인 협력의 이정표가 될 수 있도록 소임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희황성리(羲皇聖里)’ 신러시가 추진하는 문화 현대화 전략은 이제 한중 교류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7800년을 가로지르는 문명의 대화가 현대의 산업 및 민간 외교와 결합하며, 동북아시아 문화 관광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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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의 참살이] 80만의 클릭보다 무거운 것은, 80만의 신뢰다
대한기자신문 총접속자 수가 80만 명을 넘어섰다. 숫자만 놓고 보면 하나의 이정표다. 그러나 언론을 오래 지켜본 사람이라면 안다. 접속자 수는 축하의 이유가 될 수는 있어도, 결코 자부심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언론에게 숫자는 성과가 아니라 책임이기 때문이다. 80만 명은 기사를 ‘소비한’ 숫자가 아니라, 한 번쯤은 우리 보도를 믿어도 되겠다고 판단한 사람들이다. 그 판단이 반복될수록 신뢰는 쌓이고, 한 번의 방심으로도 무너진다. 우리는 그 불안정한 신뢰 위에 서 있다. 대한기자신문은 거대 자본도, 화려한 방송 장비도 없다. 대신 현장에서 발로 뛰는 기자와, 제도 밖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시민의 목소리가 있다. 우리가 선택한 길은 분명했다. 권력의 언어가 아니라 생활의 언어를 기록하고, 빠른 속보보다 사라지지 않는 사실을 남기는 것이었다. 조회수를 부르는 자극적인 제목, 확인되지 않은 단독 경쟁, 분노를 부추기는 문장은 언제든 선택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유혹 앞에서 자주 멈춰 섰다. 언론은 분노를 확산시키는 기관이 아니라, 문제를 이해하게 만드는 공적 장치여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80만 돌파는 도착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다. 이제 대한기자신문은 ‘작은 인터넷신문’이라는 변명 뒤에 숨을 수 없다. 한 줄의 오보가 한 사람의 삶을 흔들 수 있고, 한 편의 기사 방향이 공론장의 온도를 바꿀 수 있는 단계에 들어섰다. 그만큼 우리는 더 조심해야 하고, 더 엄격해야 한다. 앞으로 대한기자신문은 세 가지 원칙을 더욱 분명히 하려 한다. 첫째, 사실 우선이다. 속도보다 정확, 주장보다 증거를 선택하겠다. 둘째, 시민 중심이다. 불편한 권력보다 불편한 시민의 편에 서겠다. 셋째, 책임 있는 의견이다. 말은 날카로울 수 있으나, 품격은 잃지 않겠다. 이 길은 느리고 고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뢰는 지름길에서 성장하고 있다. 80만 명의 클릭보다 더 무거운 것은, 80만 명의 기대다. 우리는 그 기대를 가볍게 여기지 않겠다. 대한기자신문은 오늘도 묻는다. “이 기사는 누구를 위해 쓰였는가.” 그 질문에 떳떳이 답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계속 기록할 것이다. 감사하다. 그리고 더 엄격해지겠다. 이것이 80만 독자에게 드리는, 우리의 약속이다. 글: 발행인 이창호(李昌虎) 한중기자연맹 회장, 대한기자협회 제7대 회장, 칼럼니스트, 책 집필 50여권, Marquis Who’s Who 등재 저자. 덧붙임 : 대한기자신문은 2024년 1월 2일 서울시와 문체부에 공식 등록한 인터넷 언론사로, 같은 해 1월 2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각계 저명인사들을 모시고, 창간의 첫발을 내디뎠다. 짧은 준비 기간이었지만, 언론의 공적 책임과 시대적 역할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한 출범이었다. 이는 단순한 신문의 시작이 아니라, 신뢰를 축적해 나가겠다는 약속의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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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지구일보 신춘문예 출신 이도연 시인, 2026년도 부산문화예술지원사업 공모 '우수예술' 선정, 400만원 문예창작지원금 수혜
[대한기자신문=이산 대기자]부산문화재단은 2026년 2월 4일 부산광역시와 함께 2026년도 부산문화예술지원사업 1차공모 <우수예술> 선정결과를 발표하였다. 특히 2026년 이번 공모는 「부산문화예술지원 3.0」 체계 개편의 방향성 아래, 예술인의 창작여건과 동시대적 실천을 균형있게 조망하고, 예술인의 창작환경 변화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여 창작 중심 지원을 유지함과 동시에 보다 지속가능한 예술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26년도 첫 공모인 1차 공모 <우수예술>은 접수 마감 이후 약 43일간, 총 1,339건의 신청작을 대상으로 각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심의위원들이 충분한 숙고를 바탕으로 단계별 종합적인 심의를 진행하였다. 그 결과 전년보다 3억 원이 증액된 65억 원의 예산 지원방침에 따라 많은 예술인 및 단체를 지원하기로 결정하였는 바, 문학 부문에 이도연 시인 외 많은 예술인들이 문화예술지원사업의 혜택을 받게 되었다. 이도연 시인은 시집 ‘나는 사물의 다음 문장이다 I am the Sentence Beyond Things’라는 신유물론적 시집을 발간하겠다는 취지로 작품 10편을 제출, 이번에 우수예술로 선정되어 400만 원의 창작지원금을 받게 된다. 부산문화재단은 "이번 우수예술 지원을 통해 부산 예술인의 창작활동이 더욱 활성화되고, 그 성과가 부산 시민의 문화 향유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기를 기대한다. 앞으로도 예술인의 창작 자율성과 예술적 실험을 존중하며, 현장과 함께 호흡하는 지원제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 이도연 부산여자대학교 졸업, 2013년 계간 <문화와 문학타임> 시 등단, 2026년 지구일보 신춘문예 당선, 전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부회장, 한국세계문학협회, 이어도문학회 부회장, 국제문화예술명인, 현대차시명인, 부산펜문학상 작가상, 문화와 문학타임 작가상, 문화와 문학타임 작품상, 한국문화예술대상(차문화교육대상) 수상, 시집 ‘희망으로 가는 길’ ‘그대에게 가는 인생길’ ‘꽃비 쏟아지는 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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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 칼럼] '아는 길' 앞에 멈춰 서는 용기, 경청이 만드는 최적의 해(解)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칼럼니스트] ‘아는 길도 물어가라’는 선조들의 격언은 속도와 효율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자칫 고리타분한 잔소리로 치부되기 일쑤다. 내비게이션의 지시대로 한 치의 오차 없이 목적지에 도달하고, 방대한 데이터를 손안에 쥔 채 모든 것을 안다고 착각하며 사는 우리에게 ‘다시 묻는 행위’는 불필요한 지체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이 진부한 격언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한다. 확신이 집착으로 변하는 순간, 우리는 가장 위험한 길에 들어서기 때문이다. ● ‘내가 최고’라는 무의식적 오만 경계해야! 인생을 살다 보면 스스로 ‘틀림없다’고 자부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수년간 쌓아온 경험치와 성공의 기억이 결합하면, 타인의 조언은 소음으로 전락하고 자신의 판단은 신조(信條)가 된다. 하지만 경계해야 할 것은 밖으로 드러난 독단보다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나만이 옳다’는 생각이다. 자기 확신은 추진력의 원동력이 되지만, 성찰 없는 확신은 눈을 가리는 가리개가 된다. 나보다 더 나은 의견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미 성장이 멈춘 지점이다. 세상에는 우리가 미처 닿지 못한 영역의 전문가들이 도처에 존재하며, 그들의 시선은 내가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비춘다. ■ 신중함의 완성, 마지막까지 문을 열어두는 자세 진정으로 신중한 사람은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그들이 보여주는 신중함의 본질은 ‘결정의 유보’가 아니라 ‘최상의 의견 수렴’에 있다. 최종적인 결정권이 나에게 있음을 인지하면서도, 마침표를 찍기 직전까지 타인의 의견을 묻는 정성은 결코 유약함의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할 줄 아는 강한 자존감의 발로다. ▪︎다양성의 수용 내 생각보다 더 나은 대안이 나왔을 때, 그것을 즉각 수용하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전문성의 존중 각 분야 전문가들의 통찰을 내 결정의 거름으로 삼는 지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최적의 결과 도출 단순히 '내 뜻'을 관철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가장 적절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리더십의 본질이다. 경청은 최고의 효율이자 품격이다 우리는 흔히 타인에게 묻는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하지만, 잘못된 길을 되돌아오는 비용에 비하면 이는 가장 경제적인 투자다. 마지막 순간까지 '더 좋은 생각은 없을까?'라고 자문하며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는 '결과의 완성도'를 높일 뿐만 아니라, 그 결정을 함께하는 이들의 마음까지 얻는 길이다. 신중함은 단순히 조심하는 마음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겸허함이며, 타인의 지혜를 빌려 내 부족함을 채우겠다는 적극적인 태도다. 아는 길을 물어갈 때 비로소 우리는 길을 잃지 않는 것을 넘어,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더 아름다운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결국,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는 '나의 옳음'을 증명하는 곳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최선의 결과'가 있는 곳이어야 한다. 지금 당신이 걷고 있는 그 익숙한 길 위에서, 잠시 멈춰 서서 곁을 돌아보는 여유가 필요한 해(解:깨닫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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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사유의 지평을 넓히는 힘...왜 성인에게 ‘어휘력’이 곧 ‘생존력’인가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소통전문가] 이 짧은 문장은 우리가 세상을 인지하고 해석하는 방식의 핵심을 찌릅니다. 요리사가 가진 식재료가 빈약하면 일류 요리를 만들 수 없듯, 우리가 보유한 어휘가 빈약하면 우리의 사고 역시 빈곤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의 독서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행위를 넘어, ‘사고의 영토’를 확장하는 필수적인 과정이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어휘의 빈곤은 사고의 한계를 만든다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감정이나 상황을 명명할 단어를 갖고 있지 못할 때, 그 현상은 우리 머릿속에서 안개처럼 모호하게 머뭅니다. 예를 들어, ‘슬프다’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 감정을 퉁치는 사람과 ‘비창하다’, ‘애잔하다’, ‘먹먹하다’, ‘울적하다’의 차이를 섬세하게 구분해 사용하는 사람의 내면 풍경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전자가 감정의 덩어리를 그저 견뎌낸다면, 후자는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성인에게 어휘력이란 단순히 말을 잘하는 기술이 아니라, 복잡한 세상을 정교하게 읽어내는 해독 장치인 셈입니다. ■ 왜 ‘어른의 독서’는 달라야 하는가 학창 시절의 독서가 시험과 성적을 위한 ‘입력’이었다면, 성인의 독서는 삶의 맥락을 짚어내기 위한 ‘재구성’의 과정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며 마주하는 수많은 갈등, 인간관계의 피로도, 그리고 정체성의 혼란은 대부분 ‘적절한 언어’를 찾지 못해 발생합니다. 독서는 타인의 정제된 ‘생각의 재료’를 나의 창고에 채워 넣는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고전을 읽으며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을 배우고, 인문 서적을 통해 현상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어휘를 익히는 과정은 뇌의 근육을 단련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휘가 풍부해질수록 우리는 현상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재정의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 문해력 저하의 시대, 다시 ‘텍스트’로 돌아가야 할 때 영상 매체가 지배하는 시대입니다. 30초 내외의 숏폼 콘텐츠는 즉각적인 즐거움을 주지만, 우리의 사고를 ‘수동적 수용’ 상태에 머물게 합니다. 영상은 이미지를 통해 결론을 바로 보여주지만, 텍스트는 독자가 스스로 머릿속에서 이미지를 구현하고 논리를 세우게 만듭니다. 이 ‘사유의 간극’이야말로 생각이 자라나는 핵심적인 공간입니다.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는 ‘성인 문해력 저하’ 문제는 단순히 단어 뜻을 모르는 수준에 그치지 않습니다. 긴 글의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고, 타인의 의도를 오해하며, 논리적 비약에 쉽게 빠지는 현상은 모두 ‘생각의 재료’인 어휘력과 독서량의 부족에서 기인합니다. 지적인 성숙을 원하는 성인이라면, 이제 다시 활자의 세계로 돌아와 사유의 밀도를 높여야 합니다. ■ 사유의 풍요를 위한 제언... ‘어휘의 결’을 살리는 독서법 그렇다면 어떻게 독서해야 할까요? 단순히 많이 읽는 ‘다독’보다 중요한 것은 ‘숙독(熟讀)’과 ‘필사(筆寫)’입니다. ▪︎낯선 단어를 수집하십시오. 책을 읽다 마주친 생소하지만 울림이 있는 단어를 메모하십시오. 그 단어가 내 일상에 들어오는 순간, 그 단어만큼의 세계가 당신의 것이 됩니다. ▪︎맥락을 곱씹으십시오. 저자가 왜 이 상황에서 이 단어를 선택했는지 고민하며 읽는 습관은 공감 능력과 비판적 사고력을 동시에 길러줍니다. ▪︎나의 언어로 출력하십시오. 읽은 내용을 바탕으로 단 세 줄이라도 자신의 생각을 적어보는 연습을 하십시오. 재료(어휘)를 가지고 직접 요리(글쓰기)를 해볼 때 사유는 비로소 완성됩니다. ■ 언어는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준다 우리가 구사하는 언어는 곧 우리 존재의 격(格)을 결정합니다. 빈곤한 생각은 빈곤한 삶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풍성한 식탁을 차리기 위해 좋은 식재료를 고르듯, 풍요로운 삶을 위해 매일 독서를 통해 생각의 재료를 다듬으십시오. 오늘 당신이 읽은 한 페이지, 당신의 머릿속에 남은 한 단어가 내일의 당신을 더 깊고 넓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입니다. 언어라는 재료가 풍성해질 때, 당신의 인생이라는 작품 또한 비로소 깊은 맛을 내기 시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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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겨울을 데피는 한 편의 시, 남현설의 '해시'
해시(海視) 남현설/ 시인, 권대근문학상운영위원회 사무국장 숨은 부서져 모래 위로 흐르고 파도는 심장을 삼킨 체 바람 속으로 흩어진다 어깨 위 철로 된 새들이 하늘을 가르고 시선은 풍경의 일부가 되어 바람과 물 사이에 머문다 해녀의 숨은 심해 깊이 갇히고 기름 그림자 심장을 덮는다 폐비닐은 기억을 감싸고 기계의 팔이 위장을 흔든다 이제 울음조차 사치다 그럼에도 파도 위에 그림자를 새기며 부서진 숨결 속 사라져가는 이름들을 찾아 길을 물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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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권대근 교수 추천, 이 한 편의 시, 장정애 '비닐봉지와 바람'
- 비닐봉지와 바람 장정애/ 시인 비닐봉지가 좋아하는 것, 바람 텅 빈 가슴을 부풀려 바람의 손길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떠돈다 너의 손을 떠난 뒤 나는 자유라고 믿었지만 그 길 끝에는 나뭇가지에 걸려 찢어지는 아픔, 물길에 휩쓸려 몸을 적시는 슬픔이 있었다 나는 얇은 날개 펴고 날고 싶었지만 새가 아닌 쓰레기였고 구름을 닮고 싶었지만 하늘에 상처를 남겼다 바람은 나를 밀어냈고 자연은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제야 알았다 완벽한 자유는 누군가에게 완벽한 고통일 수 있다는 것을 ▼장정애 부산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문과 졸업 계간 에세이문예 편집부장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이사 에세이문예작가상 수상 문학발전 유공 기념동장 수상 제1회 빛과언어문학상 수상 에세이문예 올해의 작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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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권대근 교수 추천, 이 한 편의 시, 장정애 '비닐봉지와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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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평론가가추천하는 명수필(23) 최혜영 ‘내면의 관찰자가 빚어낸 허기의 미학’
-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23) 최혜영 ‘내면의 관찰자가 빚어낸 허기의 미학’ 박경애의 ‘도시락’ 최혜영/ 문학평론가 우리는 왜 타인의 삶을 기록한 글을 읽으며 울고 웃는가. 그 경험은 결코 '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텍스트 너머의 감정은 독자의 마음을 세차게 흔든다. 아담 스미스는 그의 저서 《도덕감정론》에서 인간의 마음속에 '제3의 시선'인 공정한 관찰자(Impartial Spectator)를 세워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평가한다고 보았다. 문학에서의 동감은 작가가 감정을 쏟아내는 '과잉'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관찰자가 수긍할 수 있는 '적절성(Propriety)'의 지점을 찾아낼 때 발생한다. 박경애의 <도시락>은 이러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독자의 동감 능력을 극대화한 명수필이다. 이 작품은 대학을 갓 졸업한 새내기 교사였던 작가가 여덟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박봉으로 돌도 씹어 먹을 나이인 동생들의 허기를 채워야 했던 그녀에게, 정부미와 보리쌀로 다섯 개의 도시락을 싸야 하는 현실은 매일 넘어야 할 고단한 삶의 무게였다. 작품의 중심에는 막냇동생이 “도시락을 싸 달라”고 절박하게 부탁했던 순간이 놓여 있으며, 화자는 그 요청에 즉각적으로 “아니!”라고 반응했던 과거의 장면을 회상한다. 이 작품이 명수필로 꼽히는 결정적 근거는 과거의 고단함을 미화하거나 감정의 과잉을 통해 상투적인 슬픔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오히려 당시의 냉정했던 자신을 정직하게 응시하며, 비참함의 핵심을 회피하지 않는 진실한 힘을 보여준다. 작가는 ‘슬펐다’거나 ‘괴로웠다’는 직접적인 표현 대신 '정부미'와 '보리밥'이라는 구체적인 사물을 통해 가난의 질감을 간접적으로 제시한다. 특히 끈기 없이 흩어지는 안남미 밥알은 무너져가는 가족의 경제적 기반의 붕괴를 시각적으로 투영하는 효과적인 장치다. 독자는 작가의 눈물을 직접 보는 대신, 쌀독 긁는 소리가 가슴을 긁는 소리로 치환되는 묘사를 통해 스스로의 내면에 슬픔의 형상을 구축하게 된다. 이는 감정을 노출하는 대신 정교한 묘사를 택함으로써, 독자가 스스로 슬픔의 실체를 감각할 여백을 남겨 둔 것이다. 이러한 묘사의 성취는 당시의 자신을 철저히 객관화한 작가의 시선에서 비롯된다. 작품 도입부에서 드러나는 그 차가운 거절은 《도덕감정론》에서 말한 '자신을 객관화하는 시선'이 투영된 대목이다. 작가는 과거의 자신을 우울의 늪에 빠진 무심한 인물로 설정하며 자신의 도덕적 결점까지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러한 자기 성찰적 태도는 작가와 독자 사이의 심리적 벽을 허물며 고백의 진실성을 확보한다. 감정을 절제하고 상황을 관조하는 담담한 시선은 역설적으로 독자의 내면에 있는 공정한 관찰자를 깨워 깊은 동감의 기제를 작동시킨다. 작중에 등장하는 가족들의 모습은 가난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실존적 허기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정신 연령이 낮아진 할머니와 부엌에서 들려오는 달그락거림 속 아버지의 모습은 개인의 고단한 삶을 드러낸다. 특히 아버지의 '검은 굴' 같은 입은 가장의 권위가 거세된 자리에 남은 처절한 생존 본능을 상징한다. 작가는 이들의 허기를 애처롭게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서술함으로써, 독자가 그 결핍의 무게를 각자의 저울로 가늠하게 만든다. 결국 명수필이란 감정을 일방적으로 주입하지 않고 상황을 제시하여 독자의 상상이 개입할 통로를 열어두는 글이다. 아담 스미스가 강조했듯 감정의 핵심은 '적절성'에 있다. 과잉된 표현은 독자가 생각할 자리를 빼앗고, 감정이 일방적으로 전달되면 독자는 작품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주체가 아닌 수동적인 소비자로 전락하게 된다. 이 순간 동감은 함께 느끼는 정서적 교감이 아니라, 독자에게 일방적으로 주입된 강요된 감정으로 변질되고 만다. 박경애는 바로 이러한 감정의 적절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을 미화하는 대신 철저히 객관화하는 방식을 택한다. 작가는 과거의 자신을 '세상 물정 모르는 헛똑똑이'라 명명하며 동생에 대한 부채감을 고백한다. 이러한 자아 성찰은 독자에게 훈계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생에서 놓쳤던 타인의 고통을 환기하게 만든다. 결미에서 '망각'의 상자에 담기지 않는 '작은 아픔'을 언급하는 대목은 이 수필을 단순한 회고록을 넘어 철학적 사유의 단계로 끌어올린다. 모든 것을 지워주는 시간의 힘조차 거부하는 기억의 파편은 작가에게 있어 끝내 대면하고 치유해야 할 실존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이르러 "맛있는 도시락"을 싸 들고 동생을 찾아가겠다는 다짐은 과거의 결핍을 현재의 충만으로 치유하려는 의지의 표명이자, 내면의 관찰자와 화해하는 상징적 행위이다. 박경애의 <도시락>은 아담 스미스가 강조한 감정의 '적절성'이 어떻게 문학적 감동으로 승화되는지를 증명하며, 독자의 내면에 잠들어 있던 공정한 관찰자를 일깨워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는 깊은 울림을 완성한다. ▮최혜영 주요 약력 △에세이문예 평론 등단(2007) △문학평론가 △문학언어치료학박사 △한국본격수필비평가협회 회장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에세이문예 부주간 △에세이문예 수필계간평 집필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감사 △부산문인협회 이사 △권대근문학상 자문위원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 역임 △한국에세이 평론상 △부산수필문학협회 작품상 △부산북구문인협회 작가상 수상 △공저, 『오늘의 수필 비평1,2,3』 ▮박경애의 <도시락> “언니, 점심밥 싸 줄 수 있어?” 막냇동생의 말이 땅에 떨어져 흙이라도 묻을까 그대로 받아넘긴다. 잠시 잠깐의 생각도 하지 않고 “아니!”라고 한다. 동생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은 냉정함이다. 나도 모르는 ‘내 안의 내’가 내쏟고 만 것이다. 우울의 늪을 헤매는 무심의 소치이리라. 아버지는 젊은 날 파랑새를 찾아 떠난 고향을 반백이 되어 돌아온다. 그나마 꿈꾸던 고향 대신 도시의 낡은 시영 아파트 5층에 고단한 삶의 짐을 부린다. 갓 대학을 졸업한 새내기 교사의 가벼운 봉급은 8식구의 입에 겨우 풀칠만 하는 정도다. 청소년기 동생들은 돌이라도 소화할 수 있는데, 그 돌마저 찾을 수 없음이 난감하다. ‘가난은 나라에서도 구제 못 한다.’지만 나라의 손길이 그리울 뿐이다. 정부마저 외면하지 못하는 궁핍이 정부미 2포대로 가셔지기나 할까. 안남미로 만들어진 정부미 밥은 식으면 밥알이 제각각으로 날아다닌다. 이마저 배불리 먹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대식구 식사와 도시락 5개를 싸면 정부미 포대는 고개 숙이고, 허리를 꺾으며 조용히 사라지고 만다. 정부미에 보리쌀을 더한 밥은 춤추는 보리밥이다. 까만 보리밥 도시락은 예민한 사춘기 동생들에게 감추고 싶은 부끄러움이었을지도 모른다. 당시 혼·분식을 장려하던 사회 분위기로 그나마 위안이었지 싶다. 풀기 없는 보리밥일망정 양이라도 많으면 허한 속을 조금이라도 채우련만. 옛날 어머니 말처럼 ‘배 꺼질까’ 동생들은 뛰어노는 것마저 마음대로 못했으리라. 세상사는 중 가장 넘기 힘든 고개가 보릿고개라고 한다. 엄마를 잃은 슬픔의 고개보다 살아남아야 하는 보릿고개가 더 높기만 하다. 쌀독 긁는 소리는 가슴을 긁는다. 비어가는 쌀 포대가 이야기 속 ‘끝없이 소금을 만들어 내는 그런 맷돌’이라면 얼마나 좋으랴. 물론 소금 대신 쌀이면 더 좋으리. 성장기 동생들이나 누구도 채워지지 않은 허기를 입 밖에 내지 않는다. 내 한 입이라도 덜어 주거나 아니면 먹는 양이라도 줄이는 수밖에 없다. 손바닥만 한 작은 도시락을 준비한다. 도시락 속 밥이라고는 수저질 몇 번이면 비워질 양이다. 맛있는 걸 아껴 먹듯이 일부러 아껴서 조금씩 먹는다. 도시락 속 마지막 밥 한 숟가락이 아쉽고 서운해 수저를 선뜻 놓지 못한다. 그 시절 나 역시 돌을 삼켜도 소화할 20대 초반의 나이였는데. 연로하신 할머니의 정신 연령은 열두어 살이다. 두 차례의 연탄가스 중독으로 괄괄하고 무서운 할머니를 잃는 대신 순수하고 천진스러운 할머니를 얻었다. 병원과 아버지 형제들마저 희망의 끈을 놓은 할머니다. 부모님의 지극정성이 하늘과 통했는지 할머니는 차도를 보여 그만큼이라도 회복한다. 그런 할머니가 우리와 살고 있다고 고모가 한 달에 한 번씩 쌀을 사 보낸다. 끈기 없는 밥에 끈기를 보태주고, 까만 보리밥에 흰색 무늬를 만드는 고마운 쌀이다. 할머니는 먹는 한입이라도 덜어주려고 고모 집으로 가셨다. 그나마 한 달에 한 번씩 오던 흰쌀이 툭 끊어져 오지 않는다. 우리를 생각한 할머니 셈법이 고모에게는 통하지 않나 보다. 할머니가 가신 것보다 끊어진 흰쌀이 서운하고 그리워진다. 우리는 5층에서 옥상을 머리에 이고 산다. 한여름의 뜨거운 복사열이 그대로 내려와 온 집안은 한증막이다. 묵직한 소리를 내며 겨우 회전하는 선풍기 한 대로 더위를 어찌 쫓으랴. 무더위로 잠 못 드는 밤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희미한 백열등 아래에서 아버지는 밥을 짓는 중이다. 끈기 없는 밥은 소화된 지 오래다. 꺼진 배의 허기가 커서 도무지 잠들지 못하시나 보다. 이가 빠져 검은 굴이 된 입가에는 멋쩍고 무안한 웃음만 짓는다. 그 허기가 아버지를 더욱 작고 초라하게 만드나니. 아버지의 허기는 풀풀 날리는 밥알로 메워질 것일런가. 짝 잃은 외기러기 되어 여기저기 찾아드는 육신의 아픔을 누구에게 하소연이라도 할까. 아버지가 보내는 밤들은 그 얼마나 외롭고 힘겨웠을까. 어리고 세상 물정 모르는 우리가 어찌 그 속을 헤아릴 수 있으랴. 미루어 짐작해 보면 당시 아버지는 고혈압, 뇌졸중, 당뇨, 백내장 등을 앓으신 것 같다. 넉넉지 못한 살림 하는 중에도 엄마는 아버지를 살뜰히 챙기셨는데. 겨우 하루를 버텨나가는 하루살이 같은 삶에서 병원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열 효자보다 악처가 더 낫다.’는 말을 아버지는 실감하시리라. 막냇동생은 너무 먼 길을 돌아 제자리를 찾았다. 헛똑똑이인 나는 세상 물정 모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잘못 상담해 준 고교 진학으로 동생의 삶을 고단하게 했지 싶다. 공부만 잘하면 졸업 후 은행 취업은 자연스러운 수순인 줄 알았으니. 실업계 졸업과 가난이 취업의 높은 문턱이 되리란 것을 모르다니. 구겨지고 상처받은 자존심을 어느 정도 회복한 것은 동생의 굳은 의지와 성실함이 가져온 결과이다. 오랜 객지 생활로 건강에 빨간불이 들어와 내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취업을 위해 자신의 건강과 싸우며, 밥 먹는 시간마저 아끼려 도시락 얘기를 어렵게 꺼냈으리라. 그 당시 나의 삶 또한 우울의 잠 속을 헤어나지 못하는 중이다. 막내의 절실한 소리가 머리에서 가슴까지 전해지는데, 흐른 시간이 너무도 오래 걸리고 말았다. 흐르는 세월 속에 두껍게 쌓이고 쌓인 기억을 다 보듬고 어찌 살까. 그나마 잊을 수 있는 ‘망각’이라는 선물이 있으니 살지 싶다. ‘망각’의 상자에 아무리 구겨 넣으려 해도 들어가지 않는 ‘작은 아픔’이 하나 있는 걸 어쩌랴. 볕이 좋은 날 “맛있는 도시락”을 챙겨 막냇동생을 찾아가야 하리라. 아직 꺼내지 못한 “미안해.”라는 말 한마디도 후식으로 꼭 챙겨야 하리라. 《겨울 폭설 속에는 봄에 피어날 씨앗이 있다》 ▮박경애 수필가. 2012년 계간 ≪에세이문예≫로 등단. 계간 에세이문예 선임 편집부장, 국제PEN한국본부 회원, 국제PEN부산지역위원회 회원, 부산수필문학협회 부회장, 기장문인협회 편집국장. 홍조근정훈장 수훈, 제5회 한국에세이작품상 수상, 제2회 에세이문예 작품상 수상, 제22회 부산수필문학작품상 수상. 에세이문예 집행부 공로장 은장 수상. 제12회 풀꽃수필문학상 수상. 수필집 ????겨울 폭설 속에는 봄에 피어날 씨앗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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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평론가가추천하는 명수필(23) 최혜영 ‘내면의 관찰자가 빚어낸 허기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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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제3회 권대근문학상 수상자, 지구일보 신춘문예 출신 작가 송정자 두 번째 수필집 『누에나비의 척수가 되어』출간
- 지구일보 신춘문예 출신으로 등단한 수필가 송정자 씨가 두 번째 수필집 『누에나비의 척수가 되어』를 출간했다. 이번 수필집은 경기예술생애 첫지원(문학) 사업에 선정되어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의 지원으로 발간되었으며, 2026년 5월 도서출판 진실한사람들(대표 김주안)에서 펴냈다. 총 280쪽 분량으로, 정가는 2만1천 원이다. 첫 수필집 『f홀의 위로』를 통해 섬세한 감수성과 깊은 사유를 인정받으며 문단의 주목을 받은 송정자 작가는 이번 작품집에서 한층 깊어진 문학적 성찰과 존재론적 사유를 선보인다. 인간과 자연, 시간과 기억, 상처와 치유를 촘촘한 문장으로 엮어내며 독자들에게 삶의 결을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특히 이번 수필집의 제목 『누에나비의 척수가 되어』는 연약한 생명의 변태와 성장, 그리고 고통을 통과한 존재의 내면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독특한 문학적 울림을 전한다. 작품 속에서 작가는 일상의 미세한 떨림과 시대의 상흔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따뜻하면서도 깊은 사유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작가의 말에서 송정자 작가는 “이십 년 만에 첫 수필집을 겨우 내고, 두 번째 수필집은 일 년 반이 걸렸다. 쉼없이 글의 수장고를 열어주시며 ‘탐하고, 퍼가라’는 강렬한 메시지로 유혹하시는 권대근 교수님의 강의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일이다”라고 밝히며 문학적 스승에 대한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번 수필집의 서평은 하북미술대학 객좌교수인 권대근 문학평론가가 맡았다. 권 평론가는 “송정자의 수필집은 문학적 성취가 다층적으로 발현된 작품집이다. 그는 단순한 체험 기록을 넘어 자연과 인간, 역사와 사회, 예술과 윤리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독자의 사유와 감각을 동시에 체험하게 하는 문학적 성취를 보여준다”고 평했다. 이어 “송정자의 문장은 상처를 직시하면서도 끝내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는 따뜻한 정신을 품고 있다”고 덧붙였다. 송정자 작가는 경남 밀양 출생으로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수필작가회 회원이며, 미미래수필문학회 사무장, 동대문문인협회 감사 및 편집위원, 정독수필다스림 회장 등을 맡아 활발한 문단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한국문인협회 서울지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그는 『한국수필』 등단 이후 제43회 강원경제신문 코벤트가든문학상, 제4회 설총문학상, 제7회 동대문문학상, 제3회 권대근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아 왔다. 2026년에는 지구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다시 한번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첫 수필집 『f홀의 위로』에 이어 두 번째 작품집 『누에나비의 척수가 되어』를 통해 송정자 작가는 인간 존재의 내면과 삶의 흔적을 더욱 깊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길어 올리고 있다. 그의 수필은 단순한 감상의 차원을 넘어, 상처 입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조용한 위로와 성찰의 시간을 선물한다. 문단 안팎에서는 이번 수필집이 한국 현대수필의 새로운 감각과 깊이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성과라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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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제3회 권대근문학상 수상자, 지구일보 신춘문예 출신 작가 송정자 두 번째 수필집 『누에나비의 척수가 되어』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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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권대근 교수 추천, 이 한 편의 수필 조선연 '붕디산 소나무처럼'
- 붕디산 소나무처럼 조선연/ 수필가 요즘 어느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에서는 뜻밖의 사람들 소식을 알려준다. “뭐해뭐해” 하는 알림 소리에 하루에도 몇 번씩 드나들다 보면 반가운 사람, 궁금했던 사람, 기억에도 없던 사람까지 소식이 전해진다. 퇴직하고 벌써 정리해야 했을 연락처를 그대로 둔 게으름을 피운 덕분인가 보다. 막 흙을 뚫고 올라온 새싹을 마주한 것과 같았던 후배의 프로필을 보니 어느새 중간 간부가 되어있고 입사한 지 스무 해가 지나 있었다. 내가 처음 회사에 들어갔을 때 그 자리에는 곧 퇴직해도 이상하지 않은 모습을 한 남성들로만 채워져 있었다. 의자 등받이를 최대한 엉덩이로 쭉 밀어 젖히고, 담배를 입술에 피워물고, 펜을 쥔 손이 종이를 디디면 손목은 물결처럼 흔들리고 종일 일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의 자리였다. 그 공간은 나에게 낯설고 단단한 벽처럼 느껴졌다. 영원히 비워지지 않을 것 같았으나, 시간은 그 벽을 허물어 나도 그 안에 밀어 넣었다. 순간 그 자리를 지나왔고, 지금은 후배가 올라서 있고, 나는 이제 퇴직자가 되어있다. 한때 올려다보던 그 자리를 스쳐 간 동료들이 넘쳐난다. 그렇게 높고 단단해 보이던 위치가 수풀처럼 키워내고 흐르는 시간 속에 잠시 머물면 되는 자리였나 보다. 이제는 그렇게 높아 보이던 사람들은 더 이상 위에 있지 않다. 세월 속에 모두 자라나서 같은 눈높이로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그 시간에 그 구간을 먼저 통과했고 뒤따르던 사람들은 조금 늦게 지났을 뿐이었다. 나는 너무 멀리 있어서 높아 보이지 않았나 싶다. 시간은 다른 것들을 끌어올려 결국 같은 지평 위에 올려놓는 것 같다. 퇴직을 지나 다시 마주한 그들은 더 이상 직급으로 구분되지 않는 한 사람으로 인식된다. 명함도 직책도 사라진 자리에서 나누는 대화는 의외로 가볍고 정겨우며 솔직해진다. 올려다보던 시선이 수평으로 바뀌자, 선배였던 것도 후배였던 것도 더 이상 구분되지 않는 듯하다. 높낮이로 이해하던 세계가 어느새 나란한 결로 풀려버렸다. 어릴 적 고향마을 앞산에도 그런 풍경 하나가 있었다. 붕디산이라고 불렀다. 학교에서 돌아와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책가방을 던져놓고 마루에 누우면 아래채 지붕 위로 앞산 봉우리가 보였다. 어린아이들이 도화지에 그리던 그 소나무처럼 단순하고 또렷한 한 그루가 산등성에 우뚝 서 있었다. 크지 않으면서 바람이 불어도 잘 흔들리지 않았다. 그 나무는 어린눈에 기준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주변의 나무들은 배경이었고 그 소나무만이 중심이었다. 내가 쑥쑥 커서 성인이 될 때까지 산 중턱을 지키고 서 있었다. 작년 성묘 때 고향에서 문득 그 나무가 생각나 늘 보던 위치에 누워 찾아보았다. 보이지 않는다. 바깥마당으로 나가서 산 전체를 둘러봤다. 베어진 것도 쓰러진 것도 아닐 텐데 더 이상 눈에 띄지 않는다. 주위의 나무들이 자라나 비슷한 높낮이가 되었기 때문이리라. 한때는 혼자서 하늘을 차지하던 나무가 이제는 산속의 한 나무로 스며들어 있다. 그들과 편안히 마주 앉아 있는 시간이 낯설면서도 자연스럽다. 한때는 닿기 어려웠던 자리가 이제는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로 바뀌었다. 질문과 농담도 오간다. 어느 해 체련대회 때 모두 산을 올라야 했으나 몇몇 직원들과 달콤한 일탈로 단체 질책을 당하던 기억을 해내어 그날로 돌아가기도 했었다. 현직에 남아 있는 후배들도 붕디산에서 자라난 나무들처럼 쑥쑥 올라와 나와 같은 입장이 된다면 같은 행동 같은 생각을 하려나. 지금은 후배들도 누군가를 존경하며 거리를 느끼고 있을 테지만 조직의 문화와 시대가 바뀌면서 그 간격은 우리 때보다 덜 단단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예전처럼 분명한 위계 대신 더 유연해진 경계 속에서 관계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통점은 남을 것 같다. 시간을 통과하며 시선이 수평으로 바뀌는 경험과 역할이 걷힌 자리에서 사람을 다시 보게 되는 감각은 세대가 달라도 반복되지 않겠는가. 한 직장을 오래 다니고 퇴직하니 회사에서 중요하게 여기던 것들이 바깥에서는 크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 그 안에서 분명했던 위계와 거리는 시간을 다 지나고 나면 의외로 단순하게 주름처럼 접힌다. 그렇다고 존경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퇴직 후에는 같은 시간에 출근하지 않는 사람들,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로 자연스럽게 바뀐다. 만나는 관계는 현실적이다. 각자 살아가는 이야기로 대화가 채워진다. 건강, 가족, 시간 보내는 방식 같은 것들이 중심이 된다. 나란해진다. 사람도 나무도 세월 속에서 같은 방식으로 변해간다. 우러러보던 사람도 새싹처럼 보호해 주고 싶던 이들도 모두 하나의 숲으로 스며든다. 붕디산의 배경이라 생각했던 것들도 자라나 소나무와 같은 눈높이가 되듯이 그렇게 뚜렷했던 높낮이가 나란해져 간다. 뿌리는 내게 깊이 내려 조직의 토양을 단단히 붙잡고 있고 줄기는 바람을 견디며 방향을 타고 있다고 SNS를 통해 알리는 후배와도 나란해 질 날이 오겠지. 결국 선배도 후배도 나란해진다는 것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역할이 끝난 뒤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변화다. 그 흐름을 받아들이고 나면 사람을 대하는 마음도 한결 단순하고 편해진다. 핸드폰의 연락처에 모두 직책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최종 직위로 바꾸려니 모두가 올려다보아야 할 사람들이다. 나는 조용히 직함 하나를 내려놓는다. 높이를 낮추기보다 오래 그늘을 내어주는 붕디산 소나무 한 그루로 남고 싶다. ▲조선연 경남 하동 출신으로, 중앙대학교 건설대학원 건설경영학 전공, 공학석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가로 등단했다. 정독도서관 다스림서울 문예창작반 회원.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생반 회원, 한국본격문학가협회 회원, 건설단체 근무'36년'. 건설교통부장관 표창,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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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권대근 교수 추천, 이 한 편의 수필 조선연 '붕디산 소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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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박소현의 명작산책,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박소현의 명작산책 ㉚〉 사랑은 왜 삶을 무겁게 하는가?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들은 서로 사랑했는데도 상대방에게 하나의 지옥을 선사했다. 박소현/ 수필가, 제1회 권대근문학상 수상자 자유롭고 가볍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일까, 무겁게 책임지며 사는 것이 좋은 삶일까. 우리는 이 질문 앞에서 자주 머뭇거린다. 자유를 선택하면 외로움이 따르고, 사랑을 선택하면 책임과 고통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가끔 가볍게 살기를 꿈꾸면서도 동시에 누군가를 붙잡고 싶어 한다. 이 모순된 욕망은 어쩌면 인간 존재의 본질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이 딜레마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인간 존재의 근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리곤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한다. 1968년 체코 프라하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 역사와 개인의 삶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프라하의 봄’이라는 짧은 자유의 시간과 그 뒤를 잇는 억압의 시대는 인물들의 선택을 더욱 극단으로 몰아간다. 자유가 가능했던 순간과 그것이 무너진 이후의 현실 사이에서 인간은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는다. 이 작품 속에는 밀란 쿤데라가 직접 경험한 시대의 균열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밀란 쿤데라는프라하의 봄을 주도했던 청년 세력의 일원이었으며 1963년 프라하의 봄이 외부의 억압으로 좌절될 때까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운동’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그 일로 밀란 쿤데라는 반체제 지식인으로 낙인 찍혀 교수직이 박탈되었고 작품들은 출판이 금지되는 수모를 겪었다. 자유로운 연애를 즐기며 살아가던 외과의사 토마시는 출장길에 작은 술집에서 일하던 테레사를 만나게 된다. 그는 사랑과 육체를 분리하고 사랑은 하되 얽매이지 않는자유로운 삶을 신념처럼 즐기며 살아가는 인물이다.사랑을 지속되는 감정이 아니라 하나의 순간으로 생각하며 깃털처럼 가볍게 여긴다. 그의 이런 태도는 삶을 가볍게 유지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반복되지 않는 삶이라면 굳이 무거운 선택을 할 필요가 없다는 그의 생각은 나름의 논리를 갖고 있다. 단 한 번뿐인 삶이라면 그 어떤 선택도 절대적인 의미를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테레사는 다르다. 그녀에게 사랑은 운명이고 책임이며 존재의 이유다. 테레사를 만난 순간 토마시의 세계는 조금씩 균열을 일으킨다. 테레사는 불안정한 어린 시절을 지나며 사랑에 대한 깊은 갈망을 품고 살아온 인물이다. 그녀에게 사랑은 선택 이전의 것이며 이미 주어진 운명과도 같다. 토마시와의 만남을 운명처럼 받아들인 그녀는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책 한 권과 작은 여행 가방만을 든 채 토마시를 찾아 프라하로 간다.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토마시에게 맡기려는 생각에서다. 토마시는 처음에는 그녀를 ‘떠맡게 된 존재’처럼 받아들이지만, 점차 그녀의 순수함과 연약함에 이끌린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삶의 방식을 쉽게 내려놓지 못한다. 결혼 후에도 다른 여성들과 끊임없이 외도를 한다. 특히 화가 사비나와의 관계는 오랫동안 이어진다. 테레사는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토마시를 떠나지 못하고 사랑과 고통 사이에서 방황한다. 이들의 관계는 사랑이 얼마나 인간을 구속하며 동시에 불안하게 만드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사비나는 이 작품에서 ‘가벼움’의 극단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녀는 삶에서도 예술에서도 어떤 틀에도 속하지 않으려 한다. 그녀에게 배신은 단순한 도덕적 일탈이 아니라, 자신을 구속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식이다. 가족과 조국, 사랑까지도 그녀를 붙잡는다면 미련 없이 떠나버린다. 그러나 끝없이 떠나는 그녀의 삶은 점점 더 가벼워지고 그 가벼움은 결국 공허로 남게 된다. 머물지 않는 삶은 자유롭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 지적이고 교양 있는 대학 교수로 사비나를 사랑하는 프란츠는 사비나의 그런 ‘가벼움’에 매료된다. 그는 자유보다는 사랑과 이상, 도덕적 신념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으로 다른 인물들과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프란츠에게 있어 사랑은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삶을 바꾸는 진지한 선택이다. 토마시와는 정반대의 가치관을 가졌다.그는 사비나에게 헌신적이지만 그의 진지함은 오히려 그녀에게 부담이 된다. 사비나는 그를 떠나고 프란츠는 끝내 그 간극을 극복하지 못한다. 이후에도 그는 이상을 좇으며 살아가지만 현실과의 괴리 속에서 결국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그의 삶은 순수했기에 더 쉽게 상처받고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인간의 또 다른 얼굴이다. 1968년, 소련의 체코 침공으로 ‘프라하의 봄’이 무너지고 사회는 급격히 억압적으로 변한다. 이 거대한 역사적 사건은 인물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흔든다. 토마시는 정권을 비판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병원에서 쫓겨나 유리창을 닦는 노동자로 전락한다. 자유를 누리던 그는 이제 현실 속에서 무게를 짊어진 존재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결국 도시를 떠나 시골로 내려간 그는 테레사와 함께 평범한 일상을 이어간다. 그곳에서 토마시는 비로소 중요한 깨달음을 얻는다. 가벼움이 곧 행복이 아니며 오히려 반복되는 일상과 함께하는 시간이 삶을 따뜻하게 만든다는 것을. 함께 밥을 먹고, 같은 길을 걷고,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 속에서 그는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행복을 느낀다.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만 비로소 드러나는 삶의 의미였다. 그러나 이 평온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토마시와 테레사가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이 짧고도 비극적인 결말은 어쩜 슬픔으로 보이지만 둘이 마지막까지 함께였다는 사실은 그들의 삶이 결코 가볍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오히려 그들은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서로의 삶 속에서 확고한 의미로 자리 잡았는지도 모른다. 토마시는 자유를 추구했지만 결국 사랑을 선택했고, 테레사는 고통 속에서도 사랑을 끝까지 지켜냈다. 사비나는 자유를 선택했지만 고독에 이르렀고, 프란츠는 이상을 믿었지만 현실 속에서 무너졌다. 토마시와 테레사, 사비나와 프란츠,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는데도 결국 상대방에게 하나의 지옥을 선사한 것이다. 자유롭고 가벼운 삶은 분명 매혹적이다. 그것은 책임으로부터의 해방이며, 선택의 부담을 덜어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삶, 스쳐 지나가는 순간들의 연속일 뿐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무겁게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끝까지 책임지는 일이다. 그 무게는 버겁고 고통스럽지만 그 순간에 삶은 비로소 의미를 얻는다. 토마시는 말한다. 삶은 단 한 번뿐이기에 비교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고, 또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조차 알 수 없다고. 이 말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는 말이다. 우리는 삶의 기로에서 언제나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이 옳았는지는 끝내 확신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선택한다. 그리고 그 선택을 통해 삶에 무게를 부여한다. 삶은 본질적으로 가볍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하고, 머물고, 책임지는 순간 그 삶을 무겁게 만든다. 어쩌면 인간은 바로 그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살아가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지금도 우리에게 묻고 있다. ‘자유로운 가벼움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사랑의 무게를 기꺼이 짊어질 것인가?’ 라고. 하지만 이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네 삶 속에서 계속되고 있으니…. ▼박소현 ∙2002년 『책과 인생』 등단 ∙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2회 수혜(2008, 2020년) ∙경북문화체험전국수필대전 대상, 계간문예수필문학상, 권대근문학상 등 수상 ∙한국문인협회, 국제PEN 한국본부, 한국산문작가협회, 철학수필가회 회원 ∙수필집 『별들은 나이를 세지 않는다』,『내 안의 윤슬이 빛날 때』등 공저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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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박소현의 명작산책,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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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7800여년 문명의 시원서 피어난 '한중 신의'… 신러시 '복희 문화관광제' 개막
- [대한기자신문 김채원 중국 특파원] 인문(人文)의 시조이자 동양 문명의 뿌리로 추앙받는 복희(伏羲)의 성지, 중국 허베이성 신러시(新乐市)가 7800년의 시공을 초월해 한중 양국의 문화적 연대를 확인하는 외교의 장으로 변모했다. 지난 4월 30일, 신러시 복희대 관광지에서 ‘2026 신러시 복희 문화관광제’ 개막식과 함께 국가급 무형문화유산인 ‘신러 복희 제전(新樂伏羲祭典)’이 엄숙히 거행됐다. 이번 행사는 단순한 지역 축제를 넘어, 인류 문명의 시원을 공유하는 한중 양국이 민간 차원의 신뢰를 바탕으로 실질적 교류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중대한 외교적 함의를 지닌다. ◇ '악무고제'로 되살아난 인문 시조의 숨결 이날 개막식에는 친전산 신러시 정협 주석을 비롯한 시 지도부와 전국의 복희 문화 학자, 정·재계 인사들이 대거 집결했다. 특히 중국 문학예술계 연합회 부주석을 역임한 변파지(边发吉) 위원의 개막 선언은 행사의 격을 한층 높였다. 오전 09시 20분경(현지시간), 쉬이밍 전 중화복희문화연구회 부회장이 제전의 시작을 알리자 복희대 광장에는 장엄한 예포 소리와 함께 웅장한 종고(鐘鼓)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지는 제전 공연에서는 진향무, 수소매무, 팔괘무, 태극무 등 철저한 고증을 거친 ‘악무고제(樂舞古制)’가 시연되며 참석자들에게 압도적인 경외감을 선사했다. 친전산 주석은 축사에서 “복희 문화의 심오한 내포를 발굴하여 중화 시조 문명의 서사를 전 세계에 전파하고 있다”며, “현재 신러는 베이징-톈진-허베이 협동 발전과 스자좡 도시권 건설의 전략적 기회를 선점하여 도시 인프라와 투자 환경을 비약적으로 최적화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 민간 외교의 정수, ‘문화적 신의(信義)’로 한중을 잇다 이번 축제의 핵심적 의미 중 하나는 한국 민간 교류의 권위자인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의 공식 방문이다. 중공 신러시 위원회와 신러시 인민정부, 중국 하북미술대학의 정중한 초청으로 성사된 이번 방문은, 경색된 국제 정세 속에서도 ‘문화적 가치’를 매개로 한 상호 존중의 외교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신러시 인민정부 측은 “이창호 위원장의 방문은 복희 문화가 지닌 국제적 위상을 제고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번 교류를 통해 양국의 관광 산업 네트워크가 한 단계 도약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 문화 자산과 현대 산업의 결합… ‘고품질 발전’의 모델 이 위원장은 인터뷰에서 “복희 문화는 특정 국가를 넘어 동양 문명 전체의 소중한 자산”이라며, “이번 행사가 한중 양국의 우호 증진은 물론, 문화 전승을 통한 경제적 고품질 발전을 견인하는 실질적인 협력의 이정표가 될 수 있도록 소임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희황성리(羲皇聖里)’ 신러시가 추진하는 문화 현대화 전략은 이제 한중 교류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7800년을 가로지르는 문명의 대화가 현대의 산업 및 민간 외교와 결합하며, 동북아시아 문화 관광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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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부산교대 문창반, 문인 3인 배출, 시인 이은주, 수필가 민상기 정영자 에세이문예 신인상 당선, 지역 문학의 새 얼굴로 주목
- 부산교대 문예창작반이 또다시 신예 문인을 배출하며 지역 문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부산교대 문창반 소속 이은주 씨가 시인으로, 민상기 씨가 수필가로, 각각 문단에 등단하고, 시인인 정영자 씨는 수필가로 재등단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번에 등단한 세 사람은 앞으로 부산교대문학협회와 한국본격문학가협회 소속 회원으로 활동하며 창작 역량을 더욱 넓혀갈 예정이다. 특히 지역 문학 현장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과 문학 교류를 통해 부산 문학의 미래를 이끌어갈 신진 작가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시인 이은주 부산교대 문창반은 오랜 기간 문학 인재를 길러온 지역의 대표적인 문학 교육 공간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약 30여 명의 수강생이 시와 수필 창작을 중심으로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있으며, 문학적 감수성과 창작 능력을 키우기 위해 꾸준히 정진하고 있다. 수필가 민상기 시창작론은 문학평론가이자 문학박사인 권대근 교수가 맡아 시의 본질과 현대시 창작 방법론을 지도하고 있으며, 수필창작론은 부산교대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담당교수인 송명화 박사가 강의하고 있다. 두 교수의 전문적인 지도 아래 수강생들은 작품 합평과 창작 실습을 병행하며 문단 진출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수필가 정영자 특히 부산교대 문창반은 단순한 취미 교실을 넘어 지역 문학의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문학의 요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실제로 다수의 수강생들이 문예지 신인상과 공모전, 신춘문예 등을 통해 등단하며 창작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에 등단한 이은주 시인과 민상기 정영자 수필가 역시 꾸준한 창작 수련과 합평 과정을 거치며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구축해 왔다. 이들은 앞으로 부산교대문학협회(회장 송명화)와 한국본격문학가협회(회장 권대근)의 다양한 문학 활동에 참여하면서 작품 발표와 문학 행사, 지역 문화 발전에 적극 기여할 계획이다. 송명화 회장은 “문학은 인간과 삶을 깊이 이해하는 길이며, 이번 등단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라며 “앞으로도 지역의 우수한 문학 인재들이 지속적으로 배출될 수 있도록 창작 교육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권대근 회장 역시 “좋은 문학은 치열한 독서와 성실한 창작에서 나온다”며 “세 분의 등단은 개인의 성취를 넘어 부산교대 문창반의 교육 역량을 보여주는 결실”이라고 평가했다. 문학의 꿈을 품은 이들이 모여 배우고 성장하는 부산교대 문창반의 이번 신예 문인 3인의 탄생은 지역 문학의 저변을 넓히고 미래 문학을 밝히는 의미 있는 성과로 기록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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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부산교대 문창반, 문인 3인 배출, 시인 이은주, 수필가 민상기 정영자 에세이문예 신인상 당선, 지역 문학의 새 얼굴로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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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권대근 교수 추천, 이 한 편의 시, 예닮 정영자의 '만남'
- 만남 예닮 정영자/시인, 수필가, 에세이문예 운영위원장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날 은빛 머리 경비원님의 퇴직 소식을 듣고 작은 선물 하나 고르러 나선 길 진열대 앞에서 낯익은 석순을 만났다 우리는 봄꽃 아래서 웃었고 장맛비 속에서 어깨를 나란히 했으며 삼십 년의 계절을 함께 건넜다 늘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던 친구는 이 년 전 뇌출혈로 쓰러진 뒤 의료 파업 속에서 끝내 한마디 남기지 못한 채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다 세월은 하얗게 쌓여가지만 나는 아직도 친구를 만난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에도 마트에서 선물을 고를 때에도 사람들 사이로 네가 웃으며 걸어올 것만 같아 보이지 않아도 함께 있고 닿을 수 없어도 마음속에 살아 있는 이름 "석순아, 잘 있었나?" 바람결 어디선가 네 목소리 들려오는 듯하다 "응, 나 여기 있어." 그 한마디면 족하다. ▼예닮 정영자 부산교육대학교 교육대학원 인문교육 석사 졸업 서울문예운동 시 등단(2011년), 계간 에세이문예 수필 등단, 저서 ‘한 세상 동행하는 풍경들’ 2016년 외, 사)세계화예작가친선협회 부이사장, 예닮중앙회장, 부산영남지방회 회장, 유네스코부산 선정 우수잡지 계간 에세이문예 운영위원장 ▼ 권대근(문학평론가) 해설 정영자의 「만남」은 상실의 경험을 과장된 감정이나 비극적 수사에 의존하지 않고, 일상의 사소한 계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환기해 낸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시는 경비원의 퇴직 선물을 고르러 간 평범한 장면에서 시작되지만, 그 순간 우연히 마주한 친구의 이름은 곧 삼십 년의 시간을 불러내는 기억의 통로가 된다. 이러한 전개는 기억이 특정한 사물이나 장소를 매개로 갑작스럽게 현재화되는 인간 의식의 작동 방식을 설득력 있게 형상화한다. 특히 "우리는 봄꽃 아래서 웃었고 / 장맛비 속에서 어깨를 나란히 했으며"와 같은 구절은 오랜 우정의 시간을 계절의 이미지로 압축하면서도 독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투사할 수 있는 보편성을 획득한다. 구체적 체험에서 출발해 보편적 공감의 차원으로 나아가는 시적 확장력이 이 작품의 중요한 미덕이다. 또한 이 시는 죽음을 단절이 아니라 관계의 지속으로 이해하는 성숙한 생명 의식을 보여준다. 친구는 육체적으로는 사라졌지만, 화자의 기억과 일상 속에서는 여전히 살아 있는 존재로 남아 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마트 진열대 앞, 사람들 사이를 스치는 찰나의 장면들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현재의 삶에 동행하는 방식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특히 마지막의 "응, 나 여기 있어"라는 짧은 응답은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를 넘어서는 상상적 대화를 가능하게 하며, 상실의 슬픔을 위안과 화해의 정서로 승화시킨다. 절제된 언어와 자연스러운 서사, 그리고 기억의 존재론적 의미를 따뜻하게 포착한 이 작품은 인간관계의 본질과 우정의 지속성을 감동적으로 형상화한 수작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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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권대근 교수 추천, 이 한 편의 시, 예닮 정영자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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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권대근 교수 추천, 이 한 편의 시, 장정애 '비닐봉지와 바람'
- 비닐봉지와 바람 장정애/ 시인 비닐봉지가 좋아하는 것, 바람 텅 빈 가슴을 부풀려 바람의 손길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떠돈다 너의 손을 떠난 뒤 나는 자유라고 믿었지만 그 길 끝에는 나뭇가지에 걸려 찢어지는 아픔, 물길에 휩쓸려 몸을 적시는 슬픔이 있었다 나는 얇은 날개 펴고 날고 싶었지만 새가 아닌 쓰레기였고 구름을 닮고 싶었지만 하늘에 상처를 남겼다 바람은 나를 밀어냈고 자연은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제야 알았다 완벽한 자유는 누군가에게 완벽한 고통일 수 있다는 것을 ▼장정애 부산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문과 졸업 계간 에세이문예 편집부장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이사 에세이문예작가상 수상 문학발전 유공 기념동장 수상 제1회 빛과언어문학상 수상 에세이문예 올해의 작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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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권대근 교수 추천, 이 한 편의 시, 장정애 '비닐봉지와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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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28) 최혜영 ’활시위에 응축된 물질 상상력‘
-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28) 최혜영 ’활시위에 응축된 물질 상상력‘ 김예순의 ‘활시위’ 최혜영/문학평론가 문학은 상상력의 예술이다. 그것은 현실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힘이며, 인간 존재를 깊이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동력이다. 임마누엘 칸트는 상상력을 “흩어진 감각의 파편들을 종합하여 의미 있는 형식을 구성하는 자발적 능력”으로 보았다. 우리가 한 편의 수필에서 깊은 울림을 느끼는 순간은 바로 그러한 창조적 사유가 작동하는 때다. 또한 가스통 바슐라르는 상상력을 현실의 단순한 모사가 아니라 세계를 새롭게 변주하는 창조적 힘으로 규정하였다. 문학에서 상상력은 감각과 경험을 하나의 미학적 형상으로 통합하는 인식의 가교이다. 김예순의 「활시위」는 이러한 물질적 상상력이 역사적 체험과 결합하여 깊은 수필적 감동으로 승화된 작품이다. 작가는 청령포라는 역사적 공간에서 단종의 비극적 운명을 마주한다. 그러나 청령포는 단순한 답사의 장소가 아니다. 이 작품에서 청령포는 인간 존재의 고독과 상실이 응축된 상징적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작품의 중심에는 바슐라르가 말한 물의 상상력이 자리한다. 삼면을 감싸고 흐르는 서강은 세상과 단절된 어린 왕의 운명을 상징하는 물줄기이다. 작가는 단종의 눈물과 탄식, 그리고 왕방연의 시조를 강물 위에 포개 놓음으로써 인간의 슬픔을 자연 속에 스며들게 한다. 바슐라르에게 물은 흐름과 침잠, 기억과 정화의 원소이다. 작품 속 강물 또한 역사의 상처를 품은 채 흐르며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물의 상상력은 세조의 피 묻은 적삼과 정순왕후의 자줏빛 염색 이야기로 확장된다. 적삼의 핏자국은 권력욕이 남긴 죄의 흔적이자 인간 탐욕의 비극적 결과를 상징한다. 반면 정순왕후가 붉은 치마를 물들인 자줏빛 염색은 상실과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는 인간 의지의 표상이다. 작가는 단종의 눈물과 세조의 핏자국, 정순왕후의 자줏빛 물을 하나의 이미지 계열로 연결함으로써 액체가 지닌 기억의 힘을 드러낸다. 이로써 역사적 비극은 추상적 관념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물질 이미지로 형상화되어 독자의 감각 속에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이와 함께 작품을 떠받치는 또 하나의 축은 대지의 상상력이다. 청령포를 둘러싼 육육봉의 험준한 산세와 어소, 그리고 망향탑은 모두 운명의 무게를 드러내는 상징적 존재들이다. 바슐라르에게 흙은 존재를 지탱하는 근원이자 인간을 붙드는 무거운 물질이다. 특히 망향탑은 단순한 돌무더기가 아니다. 그것은 고향을 향한 단종의 그리움과 절망이 응축된 존재의 흔적이다. 작가는 돌과 산이라는 물질을 통해 유배된 왕의 실존적 고독을 공간 속에 새겨 넣는다. 흐르는 강물이 시간의 지속을 상징한다면, 침묵하는 대지는 그 비극을 오래도록 기억하는 저장소가 된다. 그러나 작품은 비극의 무게에만 머물지 않는다. 육백 년의 세월을 견뎌온 관음송과 노산대는 단종의 슬픔을 품어주는 자연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깊게 뿌리내린 관음송은 고난 속에서도 삶을 견디는 존재의 의지를 보여주고, 노산대는 그리움과 희망이 머무는 정신적 공간으로 기능한다. 작가는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통해 역사적 비극을 단순한 상실의 서사가 아니라 존재에 대한 성찰의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인간의 권력 투쟁은 결국 역사 속 한순간의 흔적으로 사라지지만, 그 슬픔을 묵묵히 품어주는 자연은 오랜 시간 기억을 간직한다. 작품은 바로 이 지점에서 유한한 인간과 지속하는 자연 사이의 실존적 역설을 드러낸다. 이러한 물질적 사유의 여정은 작품의 마지막 문장에서 강렬하게 응축된다. “슬픈 역사가 강물 따라 흐르는 청령포에서 숨을 멈추게 하는 하루의 아련함이 당겨진 활시위처럼 팽팽해진다.” 여기서 ‘활시위’는 단종의 비극과 역사의 상처,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작가의 사유가 응축된 미학적 결정체이다. 시위를 당기는 순간의 팽팽한 긴장감은 역사를 단순히 관조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의 슬픔을 현재의 감각으로 전환하여 독자의 내면을 향해 화살처럼 날아든다. 작품 제목인 「활시위」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역사와 인간, 기억과 사유를 하나로 묶는 핵심 상징인 셈이다. 김예순의 「활시위」는 역사적 공간인 청령포를 물과 대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하여 인간 운명의 비애와 생명의 지속성을 탁월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특히 물질 이미지들이 마지막 ‘활시위’의 상징으로 수렴되면서 작품 전체에 강한 응집력을 부여한다. 그 결과 역사는 과거의 사건을 넘어 현재의 감각으로 되살아나고, 수필은 단순한 체험의 기록을 넘어 고도의 미학적 성취를 이룬 예술로 승화된다. 이는 수필이 지닌 상상력의 힘과 문학적 가능성을 새삼 확인하게 하는 수작이라 할 수 있다. ▮최혜영 주요 약력 △에세이문예 평론 등단(2007) △문학평론가 △문학언어치료학박사 △한국본격수필비평가협회 회장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에세이문예 부주간 △에세이문예 수필계간평 집필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감사 △부산문인협회 이사 △권대근문학상 자문위원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 역임 △한국에세이 평론상 △부산수필문학협회 작품상 △부산북구문인협회 작가상 수상 △공저, 『오늘의 수필 비평1,2,3』 ▮김예순 <활시위> 하늘은 맑고 푸르기만 해 서강을 비추는 햇살에 눈이 부시다. 강원도 영월로 역사 속 어린 단종의 삶에서 죽음까지 사유해 보는 문우들과의 기행이다. 경자년 오월의 넷째 토요일, 강원도 영월로 조선의 6대 왕 단종을 만나러 간다.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의 꽁무니가 아직도 감춰지지 않았다. 조심스러운 가운데 버스를 타고 또 나룻배를 타고 역사의 현장인 청령포에 들어서니 단종의 그 애타던 그리움이 온몸을 휘감아 온다. 세종의 손자인 단종. 세종은 아들을 열여덟이나 두었으나 맏아들인 세자에게 원손이 없어 애를 태우던 차에 현덕빈 권씨에게서 원손을 얻었다. 단종은 태어난 지 이틀 만에 어머니를 잃고 쓸쓸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왕실의 어여쁨은 독차지했다. 세종은 어린 세손의 장래를 근심하여 성삼문과 박팽년, 신숙주 등에 세손을 잘 보살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단종이 12세 되던 해 아버지 문종이 재위 3년 만에 병으로 세상을 뜨자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작은아버지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을 일으켜 정인지, 한명회, 권남 등과 결탁하여 이듬해 단종을 보필하던 영의정 황보인과 좌의정 김종서 등을 암살한다. 동생인 안평대군을, 누명을 씌워 강화도로 유배 보내고는 얼마 후 사약을 내린다. 곧 수양대군은 최고 권력자가 되니 단종은 허수아비 왕이 되어 버렸다. 수양대군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단종은 3년 만에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니 수양대군이 7대 왕인 세조다. 다음 해 성삼문, 박팽년, 이 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등이 단종의 복위를 계획하였지만, 합류했던 김질의 배반으로 발각되어 처참히 죽게 되니 이들이 사육신이다. 이 사건으로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되고 영월 청령포에 유배된다. 30여 년 전 역사의 현장을 보기 위해 오대천 계곡을 끼고 오대산 상원사로 향하던 일이 생각난다. 예고 없이 내린 눈에 발이 푹푹 빠져 걸음을 걷지 못할 정도의 어려움 속에서 동행한 스님의 기지로 양말을 껴 신기도 하고, 또 새끼줄로 신발을 옥여 매어 간신히 상원사에 도착했다. 거기서 단종을 폐위시킨 세조에게 내린 천벌을 보았다. 법당의 한편에 속죄하듯 누워있는 피고름 묻은 세조의 명주 적삼은 내내 지워지지 않는 역사의 한 장면이었다. 권력이 무엇인지 권력 앞에서는 친구도 조카도 없는 소용돌이 속 역사는 알면 알수록 깊어지는 느낌이다. 단종 유배지 청령포는 아픈 역사와 절경으로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 기념물 15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12월 26일 명승 제50호로 변경되었다. 청령포는 영월군 남면 광천지 남한강 상류에 있다. 강의 지류인 서강이 휘돌아 흘러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한쪽으로는 육육봉의 험준한 암벽이 있어 마치 한반도처럼 생긴 지형이다. 17세 어린 단종이 그 시절 한양에서 영월 이곳까지 머나먼 길을 쫓겨 내려갈 때의 슬픈 심정은 어찌 글로 다 표현하겠는가. 첩첩으로 서서 길을 막는 산중의 소나무와 빙 둘러싼 서강은 무슨 말로 단종에게 인사를 했을까. 그러나 이곳 생활도 잠시 경상도 순흥에 유배되어 있던 넷째 작은아버지 금성대군이 다시 단종 복위를 꾀하다 실패하니 노산군은 다시 서인으로 강등되었으며 단종의 나이 17세인 1457년 10월 죽임을 당하였다. 몇 년 전 원도심 B 서원 인문학 카페에서 수신인은 상관없이 편지글 쓰기가 있었다. 나의 마음도 이별의 아픔을 겪은 뒤라 그리움에 젖은 설음까지 구구절절이 정순왕후에게 쓴 편지 생각이 난다. 단종의 비 정순왕후는 판돈령부사 여량부원군 송현수의 딸로 1454년 왕비로 책봉되었다. 삼 년 뒤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되자 정순왕후도 궁궐에서 쫓겨나 부인으로 강봉 되었고 그 후 단종을 영영 만나지 못하였다. 단종의 죽음을 알게 된 정순왕후는 매일 정업원 지금의 청룡사의 뒤 산봉우리 동망봉에 올라 영월을 바라보며 통곡했다고 한다. 정순왕후가 산봉우리에 올라 곡을 하면 백성들도 따라 울었다. 양반 가문의 딸로 또 왕비로 살았지만, 궁을 떠난 후에는 스스로 일을 해서 생계를 이을 수밖에 없었다. 손재주가 있은 덕에 옷감에 자줏물을 들이는 염색 일을 도우면서 입에 풀칠이나마 할 수 있었고, 그런 생활 속에서도 모진 목숨이 여든을 넘게 살았다. 1698년 노산으로 강봉 되었던 단종이 복위되자 정순왕후도 부인에서 왕후로 복위되었다. 죽은 지 200년 만의 일이었다. 그런 애절함이 있었기에 능호도 사능思陵이라고 하였을까. 사필귀정이듯 조선 왕릉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까지 되었다. 지금도 육지의 섬인 청령포는 나룻배 없이 갈 수 없는 곳이다. 우리 일행이 오랜 세월을 이고 선 소나무 길과 낮은 담장을 지나 단종의 어소에 다다르니 곳곳에 단종의 흔적이 그의 눈물처럼 서려 있다. 두고 온 왕비 송 씨를 생각하며 주변에 있던 막돌을 하나씩 주워 만들었다는 망향탑이다. 지금은 600년도 넘은 천연기념물인 관음송은 우리나라 소나무 중에서 키가 가장 크다고 한다. 하늘을 향해 양쪽으로 뻗은 가지에 앉아 시름을 달래기도 했다는 단종. 밤이며 구슬픈 단종의 울음소리를 들었다는 관음송이다. 우리 일행은 계단으로 된 가파른 산길을 한참 오른다. 청령포에서 제일 높은 곳이라 했다. 여기는 노산대로 단종이 자주 올라와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한양과 두고 온 정순왕후를 그리워하였다고 한다. 생각만으로도 뼛속 깊은 서러움이 서린다. 560여 년 전 단종이 지은 ‘자규시’의 구절이다. 한 마리 원한 맺힌 새가/ 궁중에서 나온 뒤로/ 외로운 몸 짝없는 그림자가 푸른 산속을 헤맨다.⋯⋯하늘은 귀머거린가 애달픈 이 하소연 어이 듣지 못하는지 어찌 수심 많은/ 이 사람의 귀만 홀로 밝은가 이런 어린 단종에게 형을 집행하려고 사약을 가지고 온 의금부도사 왕방연도 차마 고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이를 보다 못해 평상시 단종을 모시던 이가 목을 졸라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옥체는 동강에 버렸다. 이에 왕방연은 하늘이 부끄러워 한양으로 떠나지 못하고 강가에서 시조 한 수를 남겼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맘 같아서 울며 밤길을 흐르누나’ 누구라도 옥체를 거두면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에도 영월의 호장 엄홍도가 단종의 장사를 지내겠다고 강에 떠 있는 옥체를 수습해 산에 몰래 매장한 덕택에 단종은 다행히 장릉에 모셔졌다. 중종 11년 단종의 묘를 찾고 25년 후 영월 군수 박충원이 봉분을 만들어 제사를 지냈다. 단종이 돌아가신 뒤 241년 만의 일이었다. 2007년 4월, 단종을 추모하는 단종문화제 기간에 그를 보내는 국장을 550년 만에 치렀다. 해마다 영월에는 단종제를 지낸다. 올해는 세계적인 재앙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단종제는 열리지 않는다고 했다. 정순왕후처럼 애절한 마음이 되어 청령포에서 글을 읽고 있는 단종과 만난 날이다. 슬픈 역사가 강물 따라 흐르는 청령포에서 숨을 멈추게 하는 하루의 아련함이 당겨진 활시위처럼 팽팽해진다. <김예순 수필집 『움직이는 시간의 순간들』중에서> ▮김예순 주요 약력 △‘시와 수필’ 시 등단 △ ‘에세이문예’ 수필 등단 △(사)부산문인협회 회원 △(사)국제PEN한국본부부산지역위원회 이사 △신서정문학회 부회장 △부산수필문학협회 감사 △부산남구문인협회 이사 △한국본격문학가협회 회원 △부산수필문학 작가상 △부산신서정문학회 작품상 △부산남구문인협회 작가상 △부산펜문학 작품상 △한국에세이 작가상 △수필집 ‘내 마음의 정원’, ‘움직이는 기억의 시간들’ △시집 ‘시 속에 피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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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28) 최혜영 ’활시위에 응축된 물질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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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27) 송명화 ‘잠김의 심연, 부력의 시학’
-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27) 송명화 ‘잠김의 심연, 부력의 시학’ 이정숙의 ‘잠김과 부력’ - 표현 26년 봄호 송명화/ 문학평론가 이정숙의 <잠김과 부력>은 삶을 떠받치는 부력에 대한 찬가이자, 인간이 상처와 침잠을 딛고 다시 떠오르는 방식에 대한 탐색으로 읽힌다. 이 작품에서 부력은 살아내려는 의지이며, 생존의 사투를 견디게 하여 끝내 자신의 근원으로 돌아오게 하는 힘이다. 제목에서 잠김과 부력은 대등하게 놓여 있으나, 작품의 무게중심은 결국 부력 쪽에 실려 있다. 잠김은 어린 시절 물에 휩쓸렸던 공포, 제주의 역사적 상처, 해녀의 잠수, 삶의 고난 등으로 형상화된다. 반면 부력은 그러한 침잠의 상태를 견디게 하고 다시 삶의 자리로 떠오르게 하는 힘으로 기능한다. 이처럼 상처와 회복의 구조를 물의 이미지로 치환한 방식은 이 작품의 중요한 미학적 쾌미라 할 만하다. 바슐라르가 <물과 꿈>에서 물을 인간 무의식의 심연과 연결시켰듯, 이 수필에서 물은 어린 시절 물에 빠졌던 기억이 침잠해 있는 내면의 공간으로 기능한다. 특히 물이 가진 몽상의 작용은 침잠에서 멈추지 않고, 용해와 정화의 원소로 확장된다. 공포를 녹여내는 상상적 의식으로 몸을 씻어내며 두려움을 극복하는 장면은 이 작품의 압권 중 하나다. 결국 그녀는 다시 떠오른다. 그리고 그 이후의 바다는 ‘양수의 기억을 복기시킨 편안함’으로 변모한다. 죽음의 물이 모성적 생명의 물로 전환되는 이 대목은 후반부 새의 귀환과도 긴밀하게 호응하며, 작품 전체를 하나의 유기적 상징 구조로 묶어낸다. 해녀는 이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모티프다. 잠김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시 떠오르는 존재, 물과 대립하지 않고 경계를 오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부력을 뚫고 잠기고, 부력을 품고 오르는 빈틈없는 생존의 사투’라는 표현은 인간 존재의 원형적 투쟁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숨을 울음과 바꿔내는 소리’로 형상화된 숨비소리는 바다의 울음과 해녀의 숨이 합쳐진 청각적 이미지로, 인간과 자연이 만나는 가장 시적인 순간을 만들어낸다. 감각과 존재의식을 동시에 흔드는 이러한 표현은 이 작품이 지닌 서정적 깊이를 배가시키며, 독자에게 오래 잔향을 남긴다. 바슐라르의 관점에서 보면 이 수필의 핵심은 결국 물의 이미지가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 공포와 심연의 물이 모성의 물로 변모함으로써, 작가는 물을 치유와 귀환의 장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 변환의 유연성과 사유의 깊이는 작품의 높은 문학성을 담보하는 요소라 하겠다. 한편 작품 속 ‘새’는 자유로운 영혼 혹은 의식을 상징한다. 새는 멀리 날아갈 수 있는 존재이지만, 작가는 “아무리 멀리 날아가도 돌아와야 할 곳이 있다”고 말한다. 잠김은 물속, 부력은 수면, 새는 하늘이라는 수직적 구조 속에서 새는 부력의 궁극적 형상으로 자리한다. 즉 새는 잠김을 극복한 존재이며, 자유의 이미지이자 제주의 기억과 슬픔, 생명력을 품고 날아가는 상승의 존재다. 그러나 이 새가 귀속과 귀환의 의미를 동시에 품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물의 심상이 지배하는 작품 속에서 이처럼 상승과 귀환을 동시에 포괄하는 상징 구조는 작품의 철학적 밀도를 한층 높이며, 독자에게 존재론적 성찰의 여운을 남긴다. 또한 ‘바다는 눈물이 모인 곳’, ‘땅에서 흘러간 슬픔이 모두 모이면 이런 냄새일까’ 같이 시적 감각을 보여주는 대목들이 곳곳에 보인다. 이미지와 감각을 앞세우면서도 의미망을 넓혀가는 이러한 문장들은 존재와 치유에 관한 철학적 사유를 자연스럽게 문학 속에 스며들게 한다. 개별적 현상과 행위에 대한 개성적 해석과 깊은 사유로 철학성을 획득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상당한 수필적 성취를 보여준다. 특히 사유와 감각이 하나의 문장 안에서 함께 살아 움직인다는 점은 이 수필의 큰 미덕이다. 총 17개 문단을 담아내다 보니, 서사의 명료성과 논리적 연결이 느슨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특히 도입부의 벽돌과 봄꽃 이미지는 이후 전개되는 부력의 의미망과 다소 거리감이 있어 독자로하여금 그 연관성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게 한다. 그러나 작가는 서사의 엄격한 인과 대신 의식의 흐름에 따른 연상과 몽상을 적극적으로 허용함으로써 사색적이고 명상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수필에서 연상과 몽상이 하나의 미학적 전략으로 기능함을 보여주었다. 수필 <잠김과 부력>은 존재의 상처와 회복의 과정을 물의 상상력 속에서 길어 올림으로써 흔히 수필에 부족하다고 말해지는 상상력 부분에서 의미있는 진전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라 하겠다. ■송명화 주요 약력 △수필가, 문학평론가, 문학언어치료학 박사 △경남 남해 출신 △전남일보 신춘문예 수필(2005) △에세이문예 문학평론(2010) △제8대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회장, 초대 한국본격수필비평가협회 회장 △한국도서비평가협회 부회장, 부산교대문학협회 회장 계간 [에세이문예] 주간, 사)부산광역시문인협회 부이사장, 부산교대 평생교육원 문예창작반 지도교수 △수필집 <순장소녀>(세종도서), <꽃은 소리 내어 웃지 않는다>(문학나눔), <나무의 응시 풀의 주름>(아르코창작기금) 등 6권 △이론서 <본격수필 창작이론과 적용> △김만중문학상(수필), 우하박문하문학상(평론), 한국에세이평론상(평론), 평사리문학대상(수필), 신격호샤롯데문학상 대상(수필) 등 수상 잠김과 부력 이정숙 서귀포가 들썩거렸다. 제주의 숨결에서 무엇을 찾아낼지 궁금한 기대가 차오른 상태였고, 사나흘에 걸쳐 비와 바람이 그곳을 미리 깨워 둔 때문이었다. 떠나온 전주에는 아직도 비바람이 거세다는데, 함께한 사람들이 덕을 쌓아서 그럴까. 끄느름하지만 바람마저 차분한 봄날에 그렇게 발을 디뎠다. 특별한 색과 모양을 가진 벽돌들을 만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먼저 떠올렸다. 글쓰기는 집 짓는 일인데, 한동안 낯익은 벽돌들만 매만지고 있었다. 제주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진 처처를 돌아보는 시간은 이전의 방문에서는 발견하지 못한 벽돌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벽돌들을 어떻게 품어 안고 가야 할까, 하는 고심이 시작되었다. 뭍에서는 겨울인 듯 봄인 듯 엉거주춤 시간의 이름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서귀포는 이미 봄을 선언한 이후였다. 매화, 산수유, 수선화, 목련이 제각각 봄과 거래한 대로 꽃을 피웠다. 어느 집 울안에는 완두콩이 이른 꽃을 피웠고, 먼나무는 거리마다 꽃처럼 빨간 열매를 달고 유혹하고 있었다. 봄이어서 선뜻 유혹당했다. 걸음을 옮겨 거대한 물이 가두어진 바다로 다가갔다. 해변의 소리라고 모두 같을까? 빈틈없이 바다로 에워싸인 제주의 소리를 듣기 위해 큰 바위에 이슥하게 앉았다. 망망대해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숨 가쁘게 흘러갔다. 하늘인지 바다인지 모를 모호한 경계가 눈동자 속에 만들어지는 걸 느꼈다. 쪽빛 하늘이 출렁이는 바다로 내려와 합치를 이루는 순간, 발랄한 소녀와 할머니가 하나로 포개졌다. 할머니가 소녀를 받아들이는 무조건의 환대는 아니었다. 서로가 사랑을 생성해야 섞일 수 있었다. 불만과 후회가 훼방을 놓는다면 일치를 이루기는 쉽지 않은 일. 날씨를 받아들여 바다가 색을 바꾸고, 바꾼 색을 받아들여 삶을 꾸린 일이 수용이고 포용이었다. 푸르게 밀고 왔다가 온 길에 흰빛을 뿌리며 풀어지듯 소리를 놓고 돌아가는 파도를 보고 있자니 의도적으로 봉쇄시킨 밑바닥 기억이 올라왔다. 초등학교 시절 어느 하굣길, 갑작스레 불어난 냇물에 한참을 휩쓸려가다가 겨우 빠져나왔다. 기억 속 물은 소름 끼치게 차갑고 깊어서 얼음 속 블랙홀에 갇혔고, 수백의 물귀신한테 잡힐 것 같은 공포로 떨었다. 살짝만 깊어도 물 근처에 가는 것도, 배를 타는 것도 두려움이 앞장서 긴 세월 담을 쌓았다. 물을 두려워하자 물 부족 현상이 나타났다. 정신이 허든거리며 갈증이 났다. 어느 날 하루에도 서너 번씩 씻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왜지? 씻고 난 뒤의 개운함 때문인 줄로만 알았는데 무의식 속에 자리한 공포를 없애려는 용해의 과정이었다. 따뜻하게 흘러나오는 물줄기 하나하나가 나를 끌어가려는 물귀신의 손아귀를 하나씩 없애며 차가운 기억을 지우고 있었다. 공포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으려는 부력이었다. 제주를 칠흑의 심해 속으로 가라앉지 않도록, 어떻게든 일상을 꾸려가도록 손잡아준 부력은 무엇이었을까. 한 사람의 상처와 공포에도 치유의 부력이 필요한데, 제주는 숫자로 가늠하기 어려운 상처와 공포를 이겨내야 했다. 제주의 삶이 이어지고 있음은 제주가 품은 거대한 부력이 있었기 때문일 터이다. 자리를 옮겼다. 서귀포항 인근, 80살에 가까워 보이는 할머니가 물질 장비를 질질 끌고 힘겹게 걸었다. 걸음걸음에 신산辛酸이 굵은 방울로 한 점 한 점 뚝뚝 떨어진 듯했다. 땅에서는 그렇게 허리와 다리를 파고드는 아픔을 견디며 걸음을 옮기지만, 바다에 몸을 넣으면 그냥저냥 물질을 할 수 있으시단다. 부력 덕분이다. 부력은 한 번에 이용할 수 없다. 한 번에 써버리면 잠김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생을 부지해주는 부력이 그렇다. 배가 망망대해에 내려주면 실으러 올 때까지 일해야 한다. 차디찬 물속에서 2분 가까이 숨을 참아가며 물질하고 부력의 계단을 밟고 물 밖으로 떠올라 테왁(해녀들이 사용하는 부력 도구)을 끌어안고 2~3분 호흡을 고른다. 그리고 다시 잠긴다. 그 일을 대여섯 시간 동안이나 반복한다. 나는 얼마나 숨을 참을 수 있을까. 물의 압박 없이도 30초를 넘기기 힘들었다. 해녀를 떠올리면 낭만을 생각하지만, 부력을 뚫고 잠기고, 부력을 품고 오르는 빈틈없이 생존을 위한 사투다. 낭만이 없을 수 없겠지만, 사투 중에 찾아오는 햇살 같은 낭만, 짧고 눈부시고 명징한 낭만은 낭만의 무리에 넣어 다른 것과 비교할 것이 아니다. 해녀들에겐 ‘숨병’이 고질병처럼 따라온다. 숨을 오래 참다 보니 혈액 속에 질소가 쌓이면서 혈관이 막히는 직업병을 앓는다. 그런 깊은 병의 곁에 있는 낭만을 비교해서는 안 된다. 물이 두려웠으나 바다를 찾았다. 무서웠다. 반복의 과정에서 어느 날 양수의 기억을 복기시킨 편안함이 찾아왔다. 바다가 좋아졌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가 만나고 싶어졌다. 웅장함과 역동이 오롯한 아름다움으로, 고요와 평화로 안기었다. 그 바다로 더 가까이 걸음을 놓았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우는 소리가 조금 더 크게 울렸다. 바다가 저 홀로 울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소리가 들렸다. 잠김과 부력으로 바다를 견디고 올라온 해녀들이 숨을 울음으로 바꿔내는 소리였다. 바로, 그 숨비소리. 문득, 바다는 눈물이 모인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라산 곳곳의 골짜기며 오름으로 스며든 눈물들이 속으로 길을 만들고 만들어 낮은 곳에서 만나 이룬 것이 바다일 거다. 육지하고는 비할 수 없이 쏟아지는 비들이 스며들어 사라지는 것도 그 길 때문이지 않을까. 육지의 눈물들도 그런 길을 따라 바다로 모였을 테고. 다시 숨비소리가 들렸다. 혼자가 아니었다. 숨비소리의 길을 따라 훅 비릿한 내음이 다가왔다. 땅에서 흘러간 슬픔이 모두 모이면 이런 냄새일까. 눈을 한껏 열고, 귀를 한껏 열었듯이 코를 열어 근원을 이해해야 했다. 문득, 새에게 걸음을 맡기고 묻는다. 어디로 날아갈 것인가? 아무리 멀리 날아가도 돌아와야 할 곳이 있다. 눈감으면 만져지는 감귤 향기와 귓속에 감겨오는 파도 소리, 숨비소리가 사는 곳으로 돌아와야 한다. 안개에 잠기고, 눈에 잠기고, 비에 잠기고, 세간의 어이없는 슬픔에도 잠기겠지만 솟아오르는 곳으로 돌아와야 한다. 훗날, 올봄의 제주가 새로운 기억으로 서랍 속에서 얼굴을 내밀면 반갑겠다. 2박 3일로는 턱없이 부족한, 두서너 달은 머물면서 둘러봐야만 조금 알 수 있는 우리나라의 보물섬. 제주의 3일은 짧고 빛났다. ▮이정숙 주요 약력 △ 2001년 《수필과비평》 등단 △ 신곡문학상, 전북문학상, 작촌예술상, 작촌문학본상, 온글문학상, 한글사랑유공자 전라북도지사상수상 △ 온글문학회장, 수필과비평전라북도지회장, 국제PEN한국본부전북위원장 △ <지금은 노랑신호등> <내 안의 어처구니> <꽃잎에 데다> <계단에서 만난 시간> <다시 페달을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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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27) 송명화 ‘잠김의 심연, 부력의 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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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유선이 교수, 2026년 부산문화재단 문예지원 심의위원 위촉, 예술과 행정을 아우르는 문화기획 전문가로 기대 모아
- [대한기자신문 권대근 대기자] 부산문화재단 창작지원팀은 지난 5월 26일, 경성대학교에 출강 중인 유선이 교수를 2026년 부산문화재단 문예지원 심의위원으로 위촉했다고 밝혔다. 이번 위촉은 지역 문화예술계에서 활발한 창작 활동과 문화행정 역량을 두루 인정받은 결과로 평가된다. 특히 음악과 문학, 예술기획을 넘나드는 융합적 활동 경력이 이번 심의위원 선정에 큰 신뢰를 더했다. 권대근 한국도서비평가협회 회장은 "유선이 교수는 연주학 학사 석사를 비롯해 음악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문화행정기획 분야 박사과정을 수료한 문화예술행정 전문가다. 예술 현장과 학문을 함께 경험한 그는 음악적 감수성과 기획 역량을 바탕으로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꾸준히 기여해 왔다. 또한 경북신문 신춘문예 수필 부문 당선과 문학전문지 『에세이문예』 문학(음악)평론 신인상 수상을 통해 문학적 역량까지 인정받으며 예술 전반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현재 유 교수는 경성대와 동의대, 창신대 등에 출강하며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으며, 두루지야앙상블 대표와 두루지야플루트앙상블 예술감독, 알마스앙상블 단장으로 활동하면서 지역 공연문화 활성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특히 다양한 연주 기획과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민과 예술을 연결하는 데 힘써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화예술계 안팎에서는 “유선이 교수는 예술 현장 경험과 학문적 전문성, 문화행정 감각을 고루 갖춘 보기 드문 인재”라며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으로 부산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부산문화재단 문예지원 심의위원은 지역 예술인과 문화예술단체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주요 사업의 심사와 평가를 담당하는 자리로, 전문성과 공공성을 동시에 요구하는 중요한 역할이다. 이번 위촉을 통해 유선이 교수는 지역 문화예술 생태계의 건강한 성장과 창작 지원의 질적 향상에 의미 있는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유선이 연주학 학사, 석사 음악학 석사, 박사 문화행정기획 박사수료 경북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 에세이문예 문학(음악)평론 신인상 당선 경성대, 동의대, 창신대 출강 두루지야앙상블 대표 두루지야플루트앙상블 예술감독 알마스앙상블 단장 사)유니세프경남후원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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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유선이 교수, 2026년 부산문화재단 문예지원 심의위원 위촉, 예술과 행정을 아우르는 문화기획 전문가로 기대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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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26) 권대근 ‘선택의 길, 소명의 길’
-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26) 권대근 ‘선택의 길, 소명의 길’] - 문형배의 「누구도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다」, 에세이집 <호의에 대하여> 권대근/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 앞서 “문자폭탄이나 국회의원의 항의는 두렵지 않았다” “탄핵심판 선고를 못 하고 나가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던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수필 「누구도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다」는 단순한 회고담이나 직업적 자부심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이 자기 삶의 방향을 어떻게 선택하고, 그 선택을 어떻게 ‘양심의 책임’으로 감당해왔는가를 보여주는 ‘소명의 서사’다. 특히 이 글은 문학적 수사를 과시하지 않으면서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 오히려 비문학인의 글이기에 가능한 투명성과 진정성이 독자를 강하게 끌어당긴다. 수필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진솔성이라면, 이 작품은 그 본령에 가장 충실한 수필이라 할 수 있다. 이 수필의 가장 뛰어난 미덕 가운데 하나는 안치환의 노래 <고백>을 수미상관 구조로 활용한 점이다. 글은 “누구도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라는 노랫말에서 시작하여 다시 그 문장으로 끝난다. 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작품 전체의 존재론적 의미를 지탱하는 축이 된다. 노래는 배경음이 아니라 삶의 해석 장치로 기능한다. 인간은 타인이 지정한 길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결단에 의해 살아간다는 메시지가 글 전체를 관통한다. 수필은 흔히 산문의 형식을 띠지만, 그 내부에 시적 구조를 가질 때 문학적 긴장이 높아진다. 이 작품의 수미상관은 바로 그 긴장을 성공적으로 완성한다. 이 수필을 엄밀한 의미에서 문학적 완성도가 최고의 경지에 이른 ‘명수필’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를 수도 있다. 섬세한 상징체계나 치밀한 비유의 밀도, 언어 자체의 미학적 실험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전문 문인의 수필과는 일정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학은 단지 수사의 정교함만으로 평가되는 장르가 아니다.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과 삶의 진정성, 그리고 독자의 마음속에 오래 남는 정신적 울림 또한 문학적 가치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런 점에서 문형배의 이 수필은 비록 문학적 기교를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지만, 삶과 직업, 시대와 양심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명수필에 준하는 감동과 품격을 획득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자기 삶을 과장하거나 미화하지 않는 절제된 진솔성으로 독자의 신뢰를 얻는다. 좋은 수필은 언어의 화려함 이전에 인간의 진실이 먼저 살아 있어야 한다. 몽테뉴 이후 수필문학의 본질은 ‘자기를 성실하게 드러내는 글쓰기’에 있었다. 문형배의 글은 바로 그 수필 정신에 충실하다. 따라서 이 작품의 가치는 문학적 장식의 현란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이 자기 시대를 어떻게 통과하며 어떤 양심으로 자신의 길을 견디어왔는가를 담백하게 증언하는 데 있다. 바로 그 점에서 이 수필은 문학성과 인간성이 조화를 이루는 ‘명수필에 가까운 수필’로 평가될 충분한 이유를 지닌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길은 먼데 가야 할 길은 더 먼데”라는 가사가 다시 등장할 때 독자는 처음의 노랫말과 전혀 다른 정서적 무게를 느끼게 된다. 처음의 노래가 방황과 선택의 전조였다면, 마지막의 노래는 책임과 숙명의 언어가 된다. 이는 폴 리쾨르가 말한 ‘서사적 정체성’의 전형적 구현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단순히 시간을 통과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이야기로 구성하면서 스스로를 이해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문형배의 이 수필은 바로 그러한 자기 서사의 완성 과정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또한 ‘직업’을 ‘생계’가 아니라 ‘소명’으로 받아들이는 인간의 품격을 보여준다. 그는 판사가 된 것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진술은 성공담의 자기 과시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부족함과 흔들림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군 시절의 좌절, 병원 생활에서의 자기반성, 위병 근무에 대한 불만, 삶의 방향 앞에서의 망설임 등이 꾸밈없이 제시된다. 이러한 자기 노출은 독자에게 신뢰를 형성한다. 미셸 드 몽테뉴가 “나는 책의 소재인 동시에 내용이다”라고 했듯이, 좋은 수필은 자기 존재를 숨기지 않는다. 문형배의 글은 바로 그 수필정신에 충실하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그의 진솔한 태도다. 그는 학생운동의 시대를 지나면서도 성급한 영웅주의에 자신을 던지지 않았다. 대신 “판단을 유보하였다”고 고백한다. 이 대목은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의 회고록은 과거의 자신을 미화하기 쉽지만, 그는 자기 망설임까지 기록한다. 그러나 바로 그 솔직함 때문에 오히려 인간적 신뢰가 생긴다. 진실은 완벽함이 아니라 성찰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던져진 존재”라고 말했다. 인간은 이미 주어진 시대 속에 내던져진 채 선택해야 한다. 문형배의 수필은 그러한 실존적 조건 속에서 자기 길을 선택한 인간의 기록이다. 또한 이 글은 ‘연대의 감수성’을 보여준다. 공장 체험을 했던 장면은 단순한 이력의 특이성이 아니다. 민중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 채 정의를 말할 수 없다는 시대적 질문에 그는 직접 몸으로 응답하려 했다. 하루 1,500개의 나사를 조이며 천장에 나사 구멍이 보였다는 묘사는 짧지만 매우 문학적이다. 단조로운 노동이 인간의 감각을 어떻게 잠식하는지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이 부분은 에밀 졸라의 자연주의적 시선과도 닿아 있다. 관념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려는 태도가 있기 때문이다. 수필의 미학은 거창한 사건보다 사소한 기억을 어떻게 의미화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런 점에서 그는 법원 조직 내부의 인간적 풍경을 매우 따뜻하게 복원한다. “경력 30년 원장님이 초임 판사를 정중하게 예우하는 수평적 인간관계”라는 표현에는 직장에 대한 단순한 애착을 넘어 공동체 정신이 담겨 있다. 특히 판결을 받았던 피고인의 아버지가 양주를 들고 찾아온 일화나, 출소를 앞둔 수형자의 편지는 이 글의 정서적 절정이다. 법이 처벌의 기계가 아니라 인간 회복의 과정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이 장면들을 과장된 감동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담담한 서술 속에서 오히려 인간에 대한 신뢰와 법의 온기가 은은하게 살아나며, 독자는 그 절제된 정서 때문에 더 깊은 울림을 경험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한나 아렌트의 말을 떠올릴 수 있다. “악의 반대말은 선이 아니라 사유다.” 문형배의 수필에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의 사유가 흐른다. 그는 법을 절대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의가 법의 이름으로 행해질 때 그건 정의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법조인 스스로의 역사적 과오를 성찰한다. 이 자기반성의 태도야말로 법률가를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양심적 인간으로 만든다. 특히 이러한 성찰은 타인을 향한 비판 이전에 자기 내부를 먼저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진정성을 획득한다. 법의 권위를 말하기 전에 법을 운용하는 인간의 책임을 먼저 묻는 태도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잃기 쉬운 지성의 겸허함을 보여준다. 문학적으로 보더라도 이 작품은 구성의 안정감이 뛰어나다. 공장 체험, 연수원 시절, 군 생활, 판사 생활로 이어지는 시간 배열은 단순 연대기가 아니라 ‘성장 서사’의 흐름을 형성한다. 특히 각 장면은 독립된 에피소드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주제, 즉 “나는 왜 이 길을 걸어왔는가”라는 질문으로 수렴된다. 이것은 수필이면서도 교양소설적 구조를 가진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더구나 각 장면 사이에는 삶의 방향을 찾아가는 내면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서사의 밀도를 높인다. 독자는 단순히 한 법관의 이력을 읽는 것이 아니라, 시대 속에서 자기 존재의 의미를 발견해가는 한 인간의 정신적 성장 과정을 함께 따라가게 된다. 문체 역시 돋보인다. 법조인의 글답게 문장은 명료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그러나 그 건조함 속에서 오히려 깊은 정서가 배어난다. 감정을 과장하지 않기 때문에 진심이 더 크게 전달된다. 좋은 수필은 독자를 설득하지 않는다. 다만 자기 삶을 조용히 내어놓을 뿐이다. 독자는 그 삶의 결을 따라가며 스스로 감동하게 된다. 이 작품이 바로 그러하다. 특히 그의 문장은 논리를 앞세우면서도 그 이면에 인간적인 체온을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이는 화려한 수사보다 역사 앞의 절제된 진실성이 더 오래 독자의 마음에 남는다는 수필문학의 본질을 다시 확인하게 만든다. 결국 이 수필의 핵심은 ‘운명에 대한 태도’에 있다. 그는 누가 시켜서 판사가 된 것이 아니다. 누구도 길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선택한 길 앞에서 끝까지 책임지려 했다. 그것은 직분의 소명의식 이전에 존재의 책임 문제다. 니체는 “운명을 사랑하라”고 말했다. 문형배의 글은 바로 그 운명애의 산문적 구현이라 할 수 있다. 자기 삶을 회피하지 않고, 맡겨진 자리에서 의미를 발견하며, 시대와 공동체에 대한 책임으로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이 수필은 그런 인간의 품격을 보여준다. 문형배는 대통령 탄핵심판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고, 그는 “그처럼 중대한 문제를 해결 못 하고 나가면 내가 어떻게 거리를 다닐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직업적 성공보다 ‘어떤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자신을 세우고 있었던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수필은 한 법관의 개인적 회고를 넘어, 자기 삶을 성실하게 감당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공감과 사유의 여운을 남긴다. 그것은 한 시대를 통과한 인간의 양심 기록이며, 직업과 소명, 책임과 자유, 선택과 성찰이 어떻게 한 인간 안에서 화해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뛰어난 문학적 증언이다. 평자는 그의 헌법수호의 신념과 정의로운 판단, 역사적 책임 앞의 당당함을 높이 받든다. “누구도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 그러나 그는 끝내 그 길을 자신의 길로 만들었다. 선택의 길을 소명의 길로 이끈 바로 그 점에서 그의 이 수필은 오래 남는 울림을 지닌다고 하겠다. ▮권대근 주요 약력 △경남 남해 출생 △영남대 영문과, 동아대 대학원 국문과, 문학박사 △'동양문학' 수필 등단(1988) △'문예사조' 문학평론 △'경북신문' 문학평론 △미주 '중앙일보' 수필 신춘문예 당선 △현재 대신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중국 하북미술대 객좌교수 △한국본격문학가협회 회장 △한국도서비평가협회 회장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명예회장△세계한글작가대회 집행위원 △평론집 '수필은 사기다', 번역서 '한국의 명수필', 문학이론서 '문장가로 가는 길' △수필집 '고운 별 하나 가슴에 묻고' 등 28권 △부산수필문학상, 부산펜문학상, 월강문학상, 여산문학상, 정과정문학상, 부산pen번역문학상 등 수상 누구도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다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 사무실에 안치환의 <고백>이라는 노래가 흐르고 있다. “누구도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 나의 꿈들이 때로는 갈 길을 잃어 이 칙칙한 어둠을 헤맬 때...” 안치환의 노래를 좋아한다. 막힌 가슴이 탁 트이는 듯한 우렁찬 목소리, 주제에 대하여 정확하게 서술하는 가사, 그가 노래를 하게 된 동기, 그래서 내 능력이 미치지 못함을 뻔히 알면서도 <내가 만일>을 2년째 애창곡으로 삼고 있다.(그 노래가 나에게 어울린다는 K 판사의 후원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1987년 그의 노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어떤 이유에서건 많은 사람이 부를 때 나도 그 노래를 꽤 좋아했다. 그 무렵 안치환의 노래와 인연을 맺은 셈이다. 나는 ‘헌법의 존립을 해하거나 헌정 질서의 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헌정 질서 파괴 범죄에 대한 공소 시효’가 배제되고 있는 동안(1983~1986) 대학교를 다녔다. 그때 열심히 사법 시험 공부를 하였다. 헌정 질서가 파괴되건 말건, 헌정질서가 파괴되는 것에 저항권을 행사하건 말건. 그렇다고 내가 20대 초반의 들끓는 피를 가지고 있던 내가 현실을 초월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학생운동을 하던 친구가 있었고, 당장 도서관 공부를 방해하는 최루탄이 있었다. 나는 판단을 유보하였다. 시험을 끝내놓고도 얼마든지 시간은 있다고. 1986년 2차 시험을 끝내고 그 무렵 유행하던 공장체험을 해보기로 하였다. 미중의 고통을 체험하지 않은 주장이나 실천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거나, 기득권 때문에 민중의 고통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그 당시 널리 퍼져 있었으므로. 나는 내 이름으로 이력서를 쓰고(최종 학력을 속였지만 그것은 무형 위조로써 형사처벌은 되지 않고 해고 사유는 될 수 있었다. 곧 그만둘 생각이었으므로 그것조차 문제되지 않는다는 법적 판단을 거쳤음은 물론이다) 1986년 8월 5일 서울 구로공단에 있던 진흥주식회사에 입사하였다. 근무시간은 여덟 시간, 일당은 3,340원, 하루 종일 전자제품의 나사를 조였다.(당시 최저 임금이 월 10만원으로 기억되는데 그 금액을 간신히 넘는 수준이었다). 일은 힘들지 않았지만 매우 심심하였다. 하루에 1,500개 정도 나사를 조이고 잠자리에 들면 천정에 나사 구멍이 촘촘하게 뚫여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나는 9월 9일 퇴사하였고, 월급으로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사법연수원은 참으로 신나는 곳이었다. 월급을 받는다는 게 좋았고,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한다는 게 즐거웠다. 연수원 18기는 최초로 학회를 만들어 분야별 모임을 진행했다. 나는 노동법연구회에 참여했다. 많은 학회 중에 노동법연구회가 가장 열심히 활동했던 것 같다. 연수원 자치회 주최로 사회 봉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1년 차 연수과정이 끝나고 휴가 기간 중 무변촌이나 YMCA 같은 시민단체에 가서 법률상담을 맡았다. 그 상담을 끝내고 우리는 연수회 자치회 명의로 군 복무 대신에 무변촌 봉사 활동을 하는 방법을 건의했으나(당시 군법무관 정원이 얼마 되지 않아 많은 연수원 수료자가 정훈, 공병 등 기타 병과에서 근무하는 실정이었다) 당국으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 내가 정훈장교로 온갖 고생 다 하고 제대하고 나니 공익법무관 제도가 생겨 그 건의가 결과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학회 활동과 봉사 활동은 지금 연수원의 공식 과정에 편입되어 의무적인 것이 되었다고 한다. 구하라, 그러면 언젠가는 누군가는 거두리라. 정훈장교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연수원에서 귀하게 공부하던 버릇이 남아 있던 나로서는 처음에 정훈장교 생활이 못마땅했다. 한 계급밖에 안 높은 대위가 반말하는 것도 기분 나빴고, 동기생인 법무관들은 하지도 않는 위병 근무를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것에도 괜히 화가 났다. 1990년 3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몸이 아파 진해병원으로 후송된 일은 나를 슬프게 했다. 병원 생활 6개월 동안 “생활 영역에서 해결되지 않고 있는 문제가 병으로 표출된 것”이라는 인식을 토대로 많은 반성을 하였다.(칼 사이몬트 등, <마음의 의학과 암의 심리치료>). 그 뒤 정훈장교 생활은 정말로 즐거웠다. 많은 장병들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게 그렇게 고마운 일인 줄 몰랐다. 지루한 정훈 교육을 재미있게 하려고 유행하던 유머 시리즈 수집차 서울로 왔다 갔다했던 기억이 새롭고, 법무관으로서 같은 부대에 근무했던 Y 판사의 도움도 잊을 수 없다. 남 앞에서 말도 잘 못하고 노래는 더욱 못했던 내성적인 성격이 정훈장교 생활을 하는 동안 적극적인 성격으로 개조되었다. 내가 올해 5월 2일 법원 체육대회에서 100여 사람을 앞에 두고 판사실 대표로 노래를 부를 줄 그 전엔 꿈엔들 상상했으랴. 제대를 앞두고 진로를 결정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연수원에 다닐 때까지만 하여도 변호사의 길을 가겠다며 여러 사람에게 떠들고 다녔고 뭔가 책임지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연수원 시절의 실무 수습 기간을 떠올렸다. 나는 문제 제기가 아니라 문제 해결을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법원 실무 수습기간 중에 본, 업무의 독립성, 절간 같이 정돈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으로 부산지방법원에 가면 향판으로 계속 그곳에 눌러앉을 수 있다는 점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길지 않은 인생에 수십 번 이사를 했던 나로서는(이삿짐이라야 이불 보따리와 책이 전부였지만) 이젠 대지에 정착하고 싶었다. 나는 결정했다. 부산지방법원 판사가 되기로. 작년에 모교를 방문했다. 고등학교 3학년 후배들은 격려하는 자리에서 질문을 받았다. “판사된 것을 후회한 적이 있나요?” 그때나 지금이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판사가 된 것을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 경력 30년 원장님이 초임 판사를 정중하게 예우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수평적 인간관계, 개성은 존중되나 철저하게 책임지는 프로페셔널리즘, 싫은 일을 강요하지도 강요당하지도 아니하는 분위기, 왠지 믿음이 가고 정다운 사람들.... 이것들이 내 선택이 옳았음을 입증해주었고, 나아가서 다음과 같은 일화는 나를 이곳에서 영원히 떠날 수 없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1996년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에서 형사 단독을 마치고 1997년 9월경 부산지방법원에서 가사 단독을 맡고 있을 때였다. 50대의 웬 아저씨가 판사실로 쑥 들어와서 나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드리는 게 아닌가. 무슨 영문인지를 몰라 자리도 권하지 않고 이야기를 들었더니, 그의 아들이 1996년 나한테서 형사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억울함을 풀어 답례를 하고자 찾아왔다며 양주를 선물로 내놓는 게 아닌가.(내 자랑이 목적이 아님을 독자들은 이미 눈치챘으리라) 1998년 3월 초에는 부산구치소 기결수의 편지를 받았다. 1996년 나한테서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고, 1998년 3월 5일 출소할 예정이며, 많은 것을 반성하고 있다고, “판사님을 실망시키지 않는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내가 원했고, 내가 생각하는 바대로 결정할 수 있고, 또 내가 한 일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판사, 국민들으로부터 의심 어린 눈초리와 못 미더운 시선을 받은 적도 있지만 법원만큼 자연 치유력을 갖고 있는 국가기관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자존심이 누구보다도 강하면서, “불의가 법을 유린할 때 그건 불법이다. 불의가 법의 이름으로 행해질 때 그건 정의가 아니다.”라고 선언하지 못한 과거를 스스로 반성할 줄도 아는 판사들의 법원. 안치환의 노래는 종반부로 치닫고 있다. “누구도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 누구도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 길은 멀은데 가야 할 길은 더 멀은데, 비틀거리는 내 모습에 비웃음 소린 날 찌르고 어이 가나 길은 멀은데.” ▮ 문형배 △카이스트 초빙석학교수(2026/1~현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1987/2 △사법시험 28회 합격 1986/11 △사법연수원 18기 수료 1989/2 △부산지방법원 판사 임용 1992/3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장 2011/2-2012/2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 2012/2 △부산가정법원장 2016/2~2018/2 △부산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 2019/2 △헌법재판관 2019/4~2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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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26) 권대근 ‘선택의 길, 소명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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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도연 시인 네 번째 시집 '나는 사물의 다음 문장이다' 부산문화재단 우수예술지원사업 지원을 받아 에세이문예사에서 펴내다
- 계간 『문화와문학타임』 신인상으로 등단하고 지구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도연 시인이 네 번째 시집 『나는 사물의 다음 문장이다』를 에세이문예사에서 펴냈다. 이번 시집은 2026년 부산문화재단 우수예술지원사업(개인) 지원을 받아 출간되었으며, 총 100여 편의 시를 5부로 나누어 담았다. 215쪽, 값 13,000원이다. 시집은 1부 「차향 머무는 오후」를 시작으로 2부 「풀잎 끝에 앉은 시간」, 3부 「별빛은 낮은 곳으로 흐르고」, 4부 「마음의 숲에 이르다」, 5부 「희망의 싹은 돋아나고」로 구성되었다. 「바람의 정류장」, 「소여물통」, 「시간의 주름」, 「꽃비정원」, 「골담초」 등 자연과 사물, 일상의 풍경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탐색하는 작품들이 고루 실려 있다. 이번 시집의 서평은 문학박사이자 중국 하북미술대 객좌교수인 권대근 평론가가 맡았다. 권 평론가는 「웃음 띤 오색 무지개, 삶을 일구는 녹색 찬가」라는 제목의 서평에서 “이도연 시인은 자연과 사물의 외형을 단순히 묘사하는 데 머물지 않고, 사물의 침묵 속에서 다음 문장을 듣는다”고 평가했다. 그는 “꽃이 지는 자리에서 희망을 읽고, 바람의 결 속에서 인간 존재의 흔들림을 포착하며, 일상의 작은 풍경 속에서 삶의 본질을 길어 올린다”며 “사물은 그녀에게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존재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며 또 다른 자아”라고 말했다. 권 평론가는 특히 시집 제목 『나는 사물의 다음 문장이다』에 주목했다. 그는 “‘사물’은 현실과 자연이며, ‘다음 문장’은 그것을 넘어 생성되는 새로운 의미”라며 “시인은 돌멩이 하나에도 시간을 읽고, 낙엽 하나에도 생의 윤회를 발견하며, 찻잔 속 물결에서도 인간 존재의 고독과 희망을 건져 올린다”고 분석했다. 이어 “결국 그녀에게 시란 사물의 침묵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이며, 존재의 이면에 숨겨진 문장을 이어가는 행위”라고 평했다. 이도연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인생백년의 기로에 서서 하나하나 배워 가면 좋은 일이 반드시 내 곁을 지켜준다는 희망을 품었다”며 “이론적인 ‘왜’에 대한 해답에도 창조적인 ‘어쩐지’에 대한 심상을 살려나가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고 밝혔다. 또 “어린 시절 민들레 꽃이 지고 나면 솜털처럼 바람 따라 어디든 날아가 자리 잡고 살아가는 민들레 홀씨가 되고자 했다”고 고백했다. 이에 대해 권 평론가는 “민들레 홀씨처럼 척박한 자리에서도 다시 뿌리내리려는 의지와 화려하지 않지만 꿋꿋하게 자신의 생명을 밀고 나가려는 생의 태도가 시편 곳곳에 녹아 있다”며 “이도연의 시는 서정시학의 전통 위에 서 있으면서도 존재론적 질문을 품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이도연 시인은 사물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을 통해 세계를 읽는다”며 “그녀의 시에서 사물은 대상이 아니라 관계이며 존재를 이해하기 위한 통로”라고 강조했다. 이어 “익숙함 속에 잠든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게 함으로써 사물 속에 숨어 있던 또 하나의 의미를 발견하게 하는 데 이도연 시의 빛이 있다”고 덧붙였다. 권 평론가는 서평 말미에서 “이도연 시인이 찾고자 하는 것은 거대한 이념이나 관념이 아니라 사물 속에 숨겨진 생명의 온기이며 존재의 다음 문장”이라며 “그녀의 시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하나의 문장이 끝나는 자리에서 또 다른 문장이 이어진다”고 평가했다. 이어 “동편 하늘이 서서히 밝아오듯 그녀의 시 또한 어둠 속에서 작은 빛을 길어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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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도연 시인 네 번째 시집 '나는 사물의 다음 문장이다' 부산문화재단 우수예술지원사업 지원을 받아 에세이문예사에서 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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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송명화 교수 부산교대문학협회 제2대 회장 취임 부산교대 문예창작 출신 문인들의 구심체로 자리매김
- 2026년 5월 27일, 부산교대문학협회는 부산교육대학교 과학관 강의실에서 회장 이취임식을 열고 초대회장인 권대근 회장(중국 하북미대 객좌교수)이 이임하고, 송명화 교수(부산교대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담당교수)가 제2대 회장으로 취임했다고 밝혔다. 부산교대문학협회는 부산교대 평생교육원 문예창작과정 출신 문인들의 문학적 연대와 창작 활성화를 위해 결성된 단체로, 초기 ‘부산교대수필동인회’로 출발해 ‘부산교대문학회’를 거쳤으며, 회원 수 증가와 활동 영역 확대에 따라 2025년 현재의 ‘부산교대문학협회’로 명칭을 변경했다. 현재 협회는 부산교대 평생교육원 문예창작과정을 수료하거나 문단에 등단한 회원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 수필 평론 아동문학 등 다양한 장르의 문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초대 회장을 맡아온 권대근 회장은 부산교대 평생교육원 문예창작 과정 출신 문인들의 지속 가능한 창작 공동체 필요성을 강조하며 협회를 조직했다. 이후 정기 세미나, 문학기행, 작품 합평회, 신춘문예 및 문예지 등단 지원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며 지역 문학계에서 독창적인 문학 네트워크를 구축해 왔다. 특히 회원 간의 친목을 넘어 창작 역량 강화와 비평적 안목 함양에 힘써왔으며, 전국 단위 문예지와 문학상 수상자를 꾸준히 배출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초대회장 권대근 교수(중국 하북미술대 객좌교수) 이날 취임한 송명화 신임 회장(수필가, 평론가, 문학언어치료학박사)은 취임사를 통해 “부산교대문학협회를 단순한 친목 단체가 아니라 창작과 비평, 연구와 출판이 함께 이루어지는 전문 문학 공동체로 성장시키겠다”고 밝혔다. 이어 “회원 저변을 확대하고 신진 문인을 적극 발굴하는 한편, 회원들의 문학적 성과를 체계적으로 집대성할 협회지 발간 사업을 추진하겠다”며 “지역 문학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플랫폼 역할을 해나가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송 회장은 앞으로 한국본격문학가협회, 한국도서비평가협회, 한국수필비평가협회, 다스림동인회 등과의 협력 체계를 강화해 학술 세미나, 전국 문학 교류전, 합동 출판 프로젝트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디지털 시대에 맞춘 온라인 문학 강좌와 젊은 작가 육성 프로그램을 도입해 부산 지역 문학의 외연을 전국적으로 확장한다는 비전도 제시했다. 2대 회장 송명화 박사(부산교대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론 담당교수) 한편 부산교대문학협회는 앞으로 지역 문화기관 및 대학 평생교육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시민 문학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문학과 인문학이 결합된 융합형 콘텐츠 개발에도 나설 예정이다. 협회는 “문학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성찰하는 본격문학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부산을 대표하는 창작 공동체로 성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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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송명화 교수 부산교대문학협회 제2대 회장 취임 부산교대 문예창작 출신 문인들의 구심체로 자리매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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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문학과 민화의 경계를 넘다" 손채원 작가, ‘국보 도자기 민화의 색으로 피어나다’테마전에서 주목
- 제3회 교덕현대민화테마전 ‘국보 도자기 민화의 색으로 피어나다’ 1차 전시가 지난 2026년 4월 5일부터 11일까지 부산시청 제2전시실에서 열렸으며, 이어 2차 전시는 4월 12일부터 18일까지 부산진구청 1층 전시실에서 개최되어 시민들의 관심을 모았다. 이번 전시에는 부산교육대학교 평생교육원 문에창작 과정 출신 손채원 작가를 비롯해 27명의 작가가 참여해 우리 전통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현대 민화의 색채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특히 손채원 작가는 문학과 미술을 넘나드는 독창적 예술 세계로 관람객들의 주목을 받았다. 수필가로 문단에 등단해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손 작가는, 섬세한 감성과 사유를 바탕으로 민화 작업에서도 깊은 서정성과 상징성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전시에서 손 작가는 국보 도자기의 전통미를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내며, 단순한 재현을 넘어 문학적 정서가 스며든 화면 구성으로 관람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중국 하북미술대 객좌교수인 권대근 평론가는 “이번 민화 작품은 국보 도자기의 전통미를 단순히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고, 공간의 정서와 시간의 결을 함께 담아낸 점에서 주목된다. 화면 중심에 놓인 청자 어문병은 단아하면서도 깊은 기품을 드러내며, 뒤편의 대나무와 창살 문양은 절제된 동양적 정신을 환기한다. 특히 작가는 전통 민화 특유의 평면성과 현대적 구성 감각을 조화롭게 결합하여 정적인 화면 속에서도 은은한 생명감을 불러일으킨다. 청자의 푸른빛은 단순한 색채가 아니라 오래된 문화의 숨결처럼 번져 나오고, 여백의 운용 또한 사물과 사물 사이의 침묵을 미학으로 승화시킨다. 이는 단순한 공예적 재현을 넘어, 전통 도자기에 깃든 정신성과 서정성을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피워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손채원 작가는 현재 시인 등단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수필 분야에서 꾸준한 작품 발표를 통해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구축해 온 그는, 시적 언어와 회화적 감각을 함께 아우르는 복합예술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지역 문화예술계에서는 “문학적 감수성과 민화의 전통미가 자연스럽게 융합된 보기 드문 사례”라는 평가도 이어졌다. 이번 교덕현대민화테마전은 전통 문화유산인 국보 도자기를 민화라는 친숙한 예술 언어로 재해석함으로써 시민들에게 한국적 미의식의 깊이를 새롭게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참여 작가들은 각자의 개성과 현대적 해석을 담아 전통과 현재가 공존하는 예술의 장을 펼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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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문학과 민화의 경계를 넘다" 손채원 작가, ‘국보 도자기 민화의 색으로 피어나다’테마전에서 주목










